대한민국의 중심 가도인 광화문광장에는 조선왕조만 건재하다. 경복궁과 광화문을 배경으로 세종대왕상이 앉아 있고 이순신 장군상이 서 있다. 광화문광장에 한국 역대 대통령의 동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건국 62년의 역사 해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첨예한 대립을 깔고 있다
역대 대통령 9명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늘 1위를 차지한다. 2위는 김대중, 3위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4위와 5위는 이승만 전두환 대통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50∼60년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건국(建國)과 6·25전쟁의 극복에 대한 우리 세대의 이해가 너무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승만 없이 대한민국 있었을까
그러나 당시의 세계질서와 국내 정세를 돌아보면 단정(單政) 노선은 현실적 선택이었다. 소련은 김일성을 내세워 1945년 9월부터 북한에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해 나갔음이 구소련의 기밀문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의회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진영을 넘볼 수 없도록 포위의 블록을 쌓아 그들의 팽창을 저지하겠다”며 냉전의 시작을 알렸다. 이 대통령의 반공(反共)은 새로운 냉전 질서에서 소련이 아니라 미국의 날개에 올라타 남한 정부를 이끌고 가려던 전략이었다.
국제정세를 통찰하는 이승만의 예견(豫見) 능력은 탁월했다. 그는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1942년경부터 미 국무부 관리들을 만나 미국이 선수를 쳐 한국 독립을 미리 승인하지 않으면 일본 패망 후 소련이 반드시 끼어들어 한국을 강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의 힘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전쟁을 치르는 약자의 처지에서도 북진론(北進論)과 반공포로 석방으로 미국의 대통령, 장군, 외교관들을 압박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관철했다. 전후 57년 동안 한국 안보는 이 대통령이 쟁취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한 강력한 한미동맹에 의지했다. 이 대통령은 말년의 독재와 실정 때문에 미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처럼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부(國父)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말년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과 6·25전쟁 극복은 그의 국제정치적 혜안과 외교 역량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건국 대통령의 동상도 세우지 못하는 나라, 세계 10위권 부국(富國)의 기틀을 마련한 건국세력을 평가하지 않는 나라에서 식민지와 가난과 전쟁을 이겨낸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http://news.donga.com/Column/3/04/20100718/29961631/1
첫댓글 세종대왕만을 번쩍이게 노랑칠하면 애국그림이 된다?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잊고 애국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안되는 대한민국의 자유구조를 잊으셨다면 이승만대통령이 계셨기에 대통령의 꿈으로 성장한 아이도, 북에 협조주장한 야권도, 가난한 성장의 기억을 간직한 서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건국대통령 우남을 부정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완죤 빨갱이다
그 분만한 애국자도 별로 없을껍니다......
건국이념을 모르면 중간으로 하여 본전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대한을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런글을 자주봐야 할텐데 있는동상도 생각이 다르다고 파괴하고 부정하고 .............
李承晩 대통령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는 신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 우리 민족에게 자유와 번영을 선물한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