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마중 나선 꽃길
구월이 하순으로 기우는 셋째 수요일이다. 어제 지기와 연락이 오가길 코스모스가 피어날 교외로 걷기 일정을 조율해 떠나는 날이다. 지난주 문우들과 나서기로 한 트레킹이 강수로 미루어졌다.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동행할 일행과 접선이 예정된 옛 도지사 관사 앞으로 나갔다. 한 지기가 운전대를 잡아주어 완전체가 된 일행은 뒷좌석에는 셋이 타 정원을 초과해 길을 나섰다.
행선지를 위임받은 나는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읍 주남저수지 일원으로 정했다. 여정은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랬듯 동행이 누구이며 때도 그에 못지않다. 우리 일행은 그간 몇 차례 교외 나들이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함께했다. 같은 생활권에 사는 이들이라면 주남저수지 탐방은 나서보긴 해도 동판저수지 코스모스 꽃길과 대산 강가 꽃단지는 낯설 테다.
우리의 자연학교 등교는 직장인들 출근 시간대와 겹쳐 도로 사정이 다소 혼잡함은 감수하고 창원대학 뒤 25호 국도 정병산터널을 빠져나갔다. 동읍 용잠 회전 교차로에서 읍사무소 앞을 거쳐 무점마을로 가는 들길로 들어 벼가 여무는 들녘을 지났다. 무점마을은 인근 무성마을과 함께 예전 경전선 철로를 사이 두고 섬처럼 고립되었으나 KTX 선로가 달라져 외부와 교통이 나아졌다.
주남저수지 남쪽의 동판저수지는 동월과 판신 마을에서 가까웠으나 ‘무점마을 코스모스 꽃길’로 불린다. 지금은 시내버스 종점이 되어 간간이 버스가 들어와 머물다 떠나기도 하지만 예전엔 바깥으로 드나들기 불편했더랬다. 그 시절 마을의 한 노인이 동판저수지 길고 긴 둑에 코스모스를 심어 꽃을 피웠다. 이후 주민들이 함께 나서 꽃길은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하게 가꾸었다.
지난여름 끝자락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주남저수지 둑길에서 동판저수지를 거쳐 덕산까지 걸었다. 그날 뜨거운 뙤약볕을 이겨내고 잎줄기를 불려 키운 코스모스가 꽃망울을 맺어 한두 송이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엊그제 또 한 차례 혼자서 무념무상 둑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일행과 함께 나서 마을 앞 개울 건너 둑에다 차를 세우고 정자 쉼터에서 다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여정의 예열을 보탠 쉼터에서 내려와 길고 긴 동판저수지 둑길에 조성된 코스모스를 완상하는 발걸음을 디뎠다. 한 지기는 신발을 벗고 걷기도 하고 무릎이 불편한 선배는 뒤처져 연신 폰 앵글을 채웠다. 저수지 수면에는 연잎과 갯버들이 무성했고 둑 바깥 들녘에는 벼들이 익어 고개 숙여가는 때였다. 수문을 지난 판신마을 가까이 이르니 여름내 꽃잎을 펼쳤던 백일홍은 끝물이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 차를 함께 다고 좌곤리와 상등리에서 주천강 돌다리까지 둘러 주남저수지 재두루미 쉼터로 갔다. 시야에 펼쳐진 광활한 수면과 들녘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내수면 어로작업 계류장에서 용산마을까지 나아갔다. 지난봄 유채꽃이 저문 둑에는 메밀 싹이 떡잎을 펼쳐 나왔는데 서리가 오기 전에 꽃을 피우려면 바삐 자라야 할 듯했다. 길섶에 넝쿨로 자란 나팔꽃도 봤다.
점심때가 되어 용산과 합산마을을 지나 죽동리에서 낙동강 강가 일동의 초등학교 근처 식당으로 갔다. 메밀국수 전문점에서 국수와 함께 만두와 돈가스를 곁들여 느긋하게 수저를 들었다. 식당을 나와 오후 일정은 낙동강 강가 팽나무가 선 북부리와 멀지 않는 대산 꽃단지로 향했다. 파크 골프장은 새롭게 정비를 하는 중이고 플라워랜드는 철을 잊은 여러 꽃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접근성이 다소 불편한 외진 강가였지만 당국에서는 정성 들여 꽃단지를 조성해 놓았더랬다. 늦은 봄부터 피던 장미는 여태 고운 자태를 보여주었고 핑크뮬리는 물이 드는 즈음이었다. 앞으로 피어날 소국이나 코스모스가 차례를 기다렸고 경계선 밖에는 물억새 이삭이 패었다. 귀로에 강변 따라 본포로 올라가 찻집을 찾았더니 휴무라 신설 지방도를 따라 시내로 와 커피잔을 들었다. 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