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안 보고 계약"…재건축 선도지구 선정 앞두고 집값 들썩
오유진2024. 6. 15. 00:01
타임톡5
1기 신도시 재건축 본격화
정부는 재건축 주민 동의율, 정주 개선 시급성, 정비사업 파급효과가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11월께 정비 선도지구를 지정해 우선적으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 분당신도시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붙은 재건축 추진 현수막. 오유진 기자
“OO아파트 재건축 확정됐나요?”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매수 문의와 재건축 여부를 묻는 투자자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김모 사장은 “이 정도의 열기는 진짜 오랜만”이라며 “매수 문의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는데 매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라며 “아파트값도 지난해 신도시 재건축이 공론화된 이후부터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분당신도시 양지마을5단지 한양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해 2월 12억원에 거래됐으나, 지난달에는 2억원 이상 오른 14억8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이 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할 정도로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라며 “연말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 전까지 매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우선적으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선도지구 선정 절차 시작과 함께 정부가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이들 지역이 들썩이고 있다. 고(高)금리 등으로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끊겼던 매수 문의가 다시 늘어나고 있고, 재건축에 대한 주민 동의율이 높아 선도지구 지정이 유력한 아파트를 중심으로 실제 거래가 이뤄지면서 가격도 오름세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실제 재건축까지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실수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이주계획, 정비기본계획(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내년부터는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도지구 물량은 2만6000여 가구다. 분당에서 8000가구, 일산 6000가구, 평촌·중동·산본에서 4000가구 정도다. 정부는 ▶주민 동의율(60점) ▶정주(定住)환경 개선 시급성(10점) ▶도시 활성화 필요성(10점) 등 총 6개 항목을 평가해 점수가 높은 단지부터 선도지구로 선정키로 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에서 눈길을 끄는 건 사업 속도다. 정부는 속도를 확 끌어 올려 6년 내에 입주까지 마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11월 선도지구를 선정하면 내년에 특별정비구역을 지정하고 2026년 시행계획·관리처분계획 수립을 거쳐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가 목표”라고 밝혔다. 재건축 사업은 보통 15년 정도가 걸리는데, 정부는 특별법(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을 통해 안전진단 면제 등의 혜택을 줘 6년 만에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이 1기 신도시 재건축에 쏠리고 있는 건 이 영향이 크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1기 신도시는 교통 등 정주환경은 좋지만 집이 낡은 게 문제였는데, 정부가 6년 만에 재건축을 끝내겠다고 하니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분당뿐 아니라 주요 신도시마다 재건축 동의율이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 일산신도시에선 강촌마을 1·2단지나 백마마을 1·2단지 등이다. 강촌마을 S중개업소 김모 실장은 “강촌·백마마을은 정부가 재건축 추진 의사를 밝힌 이후 매월 10건 이상 거래가 될 정도로 거래가 활발한 단지”라며 “가격도 꾸준히 올라 전고점이었던 2022년 가격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촌신도시에서는 통합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가람(삼성·한양 등)·민백블럭(우성·동아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파트값도 지난해보다 1억원 이상 올랐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산본신도시에서는 을지삼익한일, 세종주공 6단지 등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투자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했지만 부동산시장에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금리와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와 자금조달 비용이 급등한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으로 건설사들이 ‘개점휴업’ 상태여서 적어도 2~3년은 지연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자재, 인건비, 공사비 상승으로 모든 건설사가 신규 착공을 꺼리고 있고, 공공택지마저 주택 공급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며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비 상승에 따라 집주인들이 재건축 때 추가로 내야 하는 추가분담금이 예상보다 높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22년 경기주택도시공사의 설문조사 결과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적정 추가분담금으로 ‘1억~2억원’을 첫 손(47.8%)에 꼽았다. 그러나 실제 공사비 등을 고려한 추가분담금은 이보다 2배 이상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분당신도시의 P중개업소 관계자는 “1기 신도시 특성상 입주민 상당수가 70~80대의 은퇴자인데, 추가분담금이 2억~3억원에 달하면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며 “그러면 다음 사업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주민 동의율 얻기가 쉽지 않아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의 경우 주민 간 이견으로 동의율 확보에 실패하면서 사업이 2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도시 재건축 사업을 담당할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은 이제 막 법안이 통과됐을 뿐 구체적인 시행령조차 마련되지 않아 향후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주 문제나 추가분담금 등 각종 리스크로 사업 지연 가능성이 큰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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