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진에서 한림정으로
구월 셋째 목요일이다. 올가을은 들머리부터 가을장마라고 이를 만치 비가 잦다. 궂은 날씨 덕으로 도서관에 나가 시간을 보낸 날이 덤으로 생기기도 했다. 초여름 장마철은 으레 비가 오려니 하는 체념으로 자연학교는 실내로 옮겨 하루를 보내곤 했다. 비가 잦은 가을에 들어서도 설립 주체가 다른 두 기관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찾아 거기서 빌려다 둔 책도 집에서 잘 읽고 있다.
이번 내리는 가을비가 폭우거나 바람이 심하다면 도서관으로 나갈까 생각했는데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경전선으로 운행하는 열차 시각표를 확인해 봤다. 열차 운행 시각은 연중 고정되지 않고 대체로 분기별로 부분 개편했다. 서울행 KTX 운행 시각을 우선하고 무궁화는 뒤따라 앞뒤로 조정이 되었다. 내가 가려는 경전선은 운행 시각이 크게 달라진 점 없었다.
아침나절 삼랑진으로 나가 한림정까지 걸을 요량으로 식후에 우산을 받쳐 쓰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상류 천변을 따라 창원대학 캠퍼스로 들어섰다. 이른 시각이라 넓은 교정에는 학생들이나 교직원 차량의 드나듦이 없어 한산했다. 동편 공학관 건물에서 계단을 따라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가 매표창구 직원에게 삼랑진행 열차표를 한 장 끊었다.
아침 일찍 순천을 출발 진주와 마산을 거쳐온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비음산터널을 빠져나간 열차는 진례를 지나면서 원호를 크게 그려 진영역에 잠시 멈췄다가 한림정을 앞둔 화포 습지는 진흙탕 황토물로 채워 있었다. 높이 자란 갯버들은 잠기지 않은 푸름과 대비되었다. 화포천 저지대는 웬만한 강수에도 습지 바닥은 빗물이 채워져 한동안 머물다가 낙동강 본류로 빠져나갔다.
모정에서 터널을 빠져나가 강심을 가로지른 철교를 지날 때 밀양강과 합수하는 강물은 상류로부터 불어나 넘실넘실 흘렀다. 열차는 낙동에서 휘어진 밀양으로 오르지 않고 부산 방향으로 미끄러져 멈춘 삼랑진역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가 한적한 거리에서 송지로 갔다. 읍사무소가 위치한 송지는 오일장이 서는 삼랑진에서 중심인데 장날이 아니라 시골다운 티로 번잡하지 않았다.
부산 대구 고속도로가 김해 생림으로 건너는 육중한 교량 아래서 국도로 걸쳐진 교량 진입로를 거쳐 옛길 낙동교를 걸어 건넜다. 삼랑진은 밀양강이 합류해 강폭이 넓어지고 유속이 빨라지는 지점이라 깊은 강심과 빠른 물살에 적합한 트러스트 공법으로 놓인 철제 다리였다. 강을 건너간 마사삼거리 쉼터에서 우산을 접고 배낭에 넣어간 삶은 고구마와 양파즙을 꺼내 간식으로 삼았다.
생림 마사 폐선된 옛 철길은 낙동강 레일파크로 운영하는데 비가 오는 날이라 찾은 이들이 없어 한적했다. 강변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걸으니 땀섬에서 이어지는 드넓은 둔치 건너는 밀양 상남 들판으로 짐작되었다. 마사마을로 가는 강변의 오토캠핑장은 시설 개보수로 휴장이었다. 산기슭은 산딸기를 재배하고 익어 가는 벼를 거두면 가을에 양파나 마늘 농사를 짓는 마사마을이었다.
모정으로 가는 산마루를 넘는 고갯마루는 포장된 길이지만, 경전선에 KTX가 놓이면서 새로운 터널이 생겨 옛길 터널은 자전거길로 바꾸었다. 자전거가 다니니 도보로는 당연히 걸을 수 있기에 나는 예전에는 산마루를 넘던 고갯길을 짧은 터널 구간을 걸어 지났다. 낮에도 조명이 켜진 터널을 빠져나가니 모정마을이었다. 화포천 하류는 우기를 대비한 웅장한 한림배수장이 드러났다.
물억새와 갈대가 꽃을 피우는 천변에서 모정교를 건너 한림 들판 시전마을을 지났다. 텃밭에는 가을 채소가 싱그럽게 자라고 벼농사 농지에는 딸기 모종이 자라는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가을과 겨울을 넘긴 새봄은 상큼한 딸기가 생산될 농장이었다. 한림정역 앞 돼지국밥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더니 아침에 지나갔던 철로를 역순으로 되돌아왔다. 23.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