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은 둘레길을 적어도 일주일에 2~3번은 다니는 길이라
따로 산행한다는 계획 없이 다니게 되어
마치 동네 마트에 가는 그 정도 기분으로 오르는 산이다.
그런데 다니는 길이 거의 학도암 쪽을 들머리를 잡기 때문에
불암산 천보사와 석천사는 피해가게 된다.
두 절을 가려면 깔닥고개나 중간의 능선 길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기에 번거로워 피한 것이다.
오늘은 문득 천보사의 눈썹바위가 생각나 두 절을 다녀오기로 했다.
옛적 다녀온 기록을 보니 어언 10여 년이 지났다.
천보산 눈썹바위는 일명 치마바위, 병풍바위로도 불리는 데
천보사의 눈썹바위에는 석공이 빚은 마애여래상과 관음상을 비롯하여
자연이 빚은 인삼바위, 모자(母子)상 등숨은 그림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옛적에는 그런 게 있는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넘어갔는데
오늘은 제대로 관찰해 보기로 했다.
불암산은 해발 507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산명(山名)에 암(岩)자가 들어갈 정도로
수락산과 같이 다양한 형성의 기암괴석의 바위가 많은 산이다.
그래서 필임산, 붓바위산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산이다.
큰 바위 형상이 부처가 송낙을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불암산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산이다.
송낙은 승려가 평상시에 납의(衲衣)와 함께 착용하는 모자를 일컫는 말이다.
천연보궁(天然寶宮)이란 자연이 빚고 하늘이 내리 보배라는 의미다.
천보사의 창건과 내력은 오랜 세월 속에 묻혀버려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사찰에 세조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즉 세조(世祖: 재위 기간; 1455~1468)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가
불암산의 수려한 모습에 감동하여‘천보산(天寶山)’이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그때 천보산 중턱에 천보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문종실록(文宗實錄)』의 문종1년(1451) 3월 병진일(丙辰日)에
의정부(議政府)가 원유(園遊:왕실의 사냥터)의 혁파를 건의하는내용의 상소문을 올리는데
그 상소문 안에“천보사 인근의 산들”이라고 천보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1451년 당시까지도 천보사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천보사에 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현재 사찰에 전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오층석탑인데,
그 조성연대가 조선 말기의 양식을 띠고 있다.
이로 보아 조선 말기에 중창이 있었던 듯하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천보사는 다시금 폐허가 되었다.
그러던 것을 해방 직후에 동훈스님이 새로이 중창하여 현재의 천보사로 기틀을 마련하였다.
근래에는 지한(志閑)스님이 2002년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2005년에는 불교대학을 개설하여 신도교육과 가람 중흥에 매진하고 있다.
(자료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천보사 용왕전 가는 길
용왕전용왕전을 둔 사찰은 대개 강이나 바다에 인접해 있는데
불암산 천보사는 산 위에 가람인데도 용왕전을 조성해 놓았다.
일반 사찰의 경우는 대개 용왕은 석조나 탱화로 대신하고 있는데
불암산 천보사는 동굴 외벽은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자연 암벽에다 용왕의 권속들을 부조해 놓았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성한 용왕과 용왕의 권속으로 거북이상들이 부조되어 있다.
아래는 파도를 상징하는 파도 모양의 물결을 부조해 놓았다.
자연석을 깍아 거북이상을 조성해 놓았다.
범종각범종각에는 불전사물(佛殿四物: 법고, 범종, 운판, 목어) 중범종만 설치되어 있다.
대웅전
천보사의 본당인 대웅전 앞에는 도솔천 내원궁이라는
누각형 3단의 작은 구조물을 조성해 놓았다.
소원종과 관음보살과 포대화상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생수병이 올려져 있다. 도솔천도 더울까?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 4칸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수미단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협시 약사여래,우협시 아미타불을 봉안했다.
본존불 뒤로는 문수와 보현,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배치하고
뒤편에는 작은 형상의 여래와 보살들을 조성해 놓았다.
좌우 벽에는 지장탱, 신중탱을 비롯하여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반야용선도가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좌협시로 약사여래,우협시로 아미타불을 봉안했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한 지장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