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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젠. 가면을 쓴 소년의 이름은 유스젠.
그저 유스젠이라고 불러달라고-, 단지 그것뿐이었다.
월광화(月光花) , The Second Story
“달이 뜬 밤이 되면 비로소 움직이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캠프 주변의 숲속으로 자꾸 걸어 들어가는 유스젠이 말했다. 한즈는 간간히
나뭇가지 사이로 내비치는 달을 미심쩍게 올려다보았다. 위를 올려다보며
걷다가 갑자기 멈추어선 유스젠과 부딪힐 뻔했다. 한즈는 무어라고 말하려 하였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언어도단하였다. 어두운 밤 깊은 숲 속에서 태어나는
녹색 생명체들. 숲의 깊은 곳에서 반딧불처럼 녹색 빛들이 춤추고 있었다.
유스젠은 버릇처럼 후드의 양끝을 잡아당겨서 더 푹 뒤집어쓰고는 입을 열었다.
“이 숲에는 녹색 정령들이 서식하여 수호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아름답지만 달이 지면 무서운 마물이 되어 버리죠.”
유스젠은 천천히 옆으로 몇 발짝 걸어가 거대한 월계수 나무에 이마를 기대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그는 손으로 애무하듯이 나무를 쓸어내렸다. 마치
오래된 친구사이인양. 한즈는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낮에는 마물이 된다니.. 무엇이 된다는 거지?”
유스젠은 뒤로 돌아서서 한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
한즈는 그의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필경 입과는 다른 표정의 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형상을 하게 됩니다.”
“..과연. 네 말도 틀린 건 아니군. 인간이야말로 제일 무서운 존재라는 건가.”
“글쎄요. 하지만 이 정령들은 밤에조차도 무시무시해지기도 합니다.
낮보다도 더.. 이 일시적인 아름다움을 보면.. 어쩐지 슬픕니다.”
유스젠은 계집애처럼 상냥한 말투였다. 어쩐지 슬픈 듯한 어투.
유스젠은 다시 말했다.
“있잖아요, 한즈씨.”
그는 짤막하게 말을 끊었다. 정령들 중 하나가 포르르 날아와 유스젠의 눈앞에 멈추었다.
그는 손을 가져가 정령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지그시 쳐다보았다. 정령은
미끈한 녹색피부와 긴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양이었지만 정령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고 한즈는 흠칫했다. 유스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령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저는... 저는 이 정령들이랑 닮았습니다. 한즈씨는 모르겠지만요. 제 추악한 본색을.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저도 단지 ‘일시적인’ 아름다움라고 칭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즈는 그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유스젠을 철저히
짓밟아버린 것이었을까. 단순한 동정 같은 감정이 마음 한 켠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무엇이 어쨌다는 걸까. 유스젠, 자신은 사실 보기보다 추악한 사람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 그저 일시적인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정령이란 닮은 것이다. 그래서. 단지 그것을 베일 속의 모습이라고 칭하고
한즈를 이곳까지 끌고 오기에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무언가 숨기는 것이 많을 거라고 치부하며 한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돌아가지. 밤이 깊었는데.”
.
.
.
한참을 걸은 것 같다. 아까보다도 체감온도가 떨어진 것 같아서 한즈는
살짝 몸을 떨었다. 유스젠은 앞장서서 걷다가 조용히 멈추었다. 아까와
다를 바 없이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일까. 한즈가 기웃거렸지만 아직 주변에는
무성한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스젠의 손은 약간 떨고 있었다.
“피 냄새와 살기가 진동합니다.. 저희가 묵었던 곳에서...
어서 가죠. 한즈씨. 지체할 시간이 없는 듯 합니다.”
유스젠은 말을 마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즈도 덩달아서 뛰었지만 아직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갑작스럽게. 위가 쓰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한즈는 금방에라도 토할 것만 같은 표정을 했다.
피는 싫었다. 어릴 때부터.
동쪽 국경선 근처의 한 마을을 처참하게 밟아버린 라세르크국의 횡포가
떠올라서인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 지나쳤던 마을. 그곳에서 라세르크국의
습격을 받아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시체들을 보았었다. 자신의 혈족이나 친한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기억 속에서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괜찮나요..?”
유스젠이 달리면서 약간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대답하지는 않았다.
곧 그들은 캠프지로 돌아왔으므로. 그리고 그곳에는 단검을 든 여럿의
사람들이 짐칸에서 돈을 훔쳐내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으면서
노래 부르던 사람들은 살해당한 채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스트리트 리퍼( Street Ripper ).
몰려다니는 여행자들을 습격해서 죽이고 돈을 훔치는 악질들.
그들 집단은 행동동선이 일정하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악행을 저질러서
사람들이 붙힌 별명이었다. 한즈는 놀란 눈으로 그들의 단검과-, 시체들을..
식은땀을 흘리면서 보았다.
용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사람을 사람들이 죽이는 행위는 용납할 수가 없다.
한즈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유스젠이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 새 얼마 정도 앞에 있었다.
“한즈씨는 여기에 숨어 계세요,”
유스젠은 천천히 모닥불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자신의 백마
곁에 무릎을 꿇고 한 번 목덜미를 쓸어주었다. 백마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주인을 기다리다가 죽은 애마의 등덜미에 손이 이르자 그는 손을 거두었다.
“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조용히 중얼거리고 유스젠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스트리트 리퍼들은 곧
모닥불가에 서 있는 가면 쓴 이상한 사람을 보고 눈을 번뜩거렸다. 단순한
칼잡이인 한 사내가 우두머리로 보이는 동료에게 물었다. 검은 턱수염을 기르고
왼쪽 눈에 안대를 대고 있는 그 사람이 집단을 통솔하는 자인 듯 하였다.
“어떡하죠? 저 사람도 죽일까요?”
“....목격자는 없애는 게 원칙이다. 단 하나도 살려주지 마. ”
들려오는 것은 사십 대 남자인 우두머리의 목소리. 그가 손으로 지시하자
그 칼잡이는 천천히 허리춤에 찬 단검을 뽑고 기합을 넣으며 달려왔다.
한즈는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꼬옥 감았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기겁한 칼잡이와 다섯 보 가량 떨어진 곳에 나가떨어진
그의 단검이었다. 유스젠의 손에는 날렵하게 뽑은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꽤나 섬세하게 세공된 칼 손잡이는 유스젠의 허리띠에 새겨진 장식과 같은 문양이었다.
“꽤 검을 다루는 사람인가 보군.”
조용히 우두머리가 중얼거리며 손짓하여 지시했다. 스트리트 리퍼들 전원,
7명이 곧 모두 몽둥이나 단검 따위의 무기를 빼어들고 유스젠의 주위를
포위했다. 유스젠은 천천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적은 꽤 많았지만 그의 입은 꼭 다물어진 채 여전히 무표정한 듯 했다.
저렇게 적수가 많은 데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
한즈는 일곱 명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소년의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예리하게 허점을 노리는 칼놀림. 달빛이 칼 위에서 은빛으로 춤추는 듯했다.
그의 검 실력을 보아서는 나라에서는 꽤 알아주는 천재검사의
솜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얼마 안 지나서 모두 전멸이었다. 단지-, 유스젠은 모두 급소를 피해서 공격한 듯했다.
한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방심이란 단 몇 초 안에 최대의 위기를 끌어내는 법.
끝났구나 싶어서 나오려고 했는데 한즈의 눈앞에 재빠르게 거대한 형상이 가로막았다.
경직되어서 고개를 들어서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한즈는 새파랗게 질렸다.
“이런 곳에 숨어 있다고 모를 줄 알았나.”
안대를 쓴 험악한 인상의 우두머리가 나무로 제련된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래. 너무 방심했군.
하나. 둘. 셋.
삼 초 정도 마음속으로 세 보았지만 한즈의 신변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듯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자신은 무사한 듯 했다. 천국에 와 있는 걸까?
아니면 통증이 심해서 무감각해진걸까? 아니면-,
“유스젠-,”
한즈는 조용히 이름 석 자를 불러보았다. 참으로 날렵한 솜씨가 아닌가.
단 몇 초 만에 동료의 위험을 깨닫고 와서 구해줄 정도로. 그러나 약간 마무리가
어설펐다. 재빠르게 오느라 유스젠은 방어를 못한 것이다.
몽둥이를 머리에 맞아 금이 간 가면이 곧 파편이 되어서 바닥에 와그르르 떨어졌다.
머리칼을 덮어주던 후드는 벗겨지고 가면파편에 베어서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고 한즈는 처음으로 유스젠의 맨얼굴을 보았다. 가면과 후드를 쓰지
않은 유스젠의 얼굴을. 한즈는 아연실색하였다.
그것은 에우스리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색깔인 달빛의 색깔, 은빛 머리칼.
또한 유스젠의 외양은 한즈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단한 미소년이었다.
그린 것 같은 눈썹부터 꼭 다문 입술. 그리고 푸른 눈동자. 유스젠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서 피를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일시적인 아름다움’입니다. 한즈씨.”
머리를 맞아서 지끈거렸지만 그는 일어서서 당황해하는 우두머리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천천히-, 그는 아까 전에 불었던 피리를 꺼내들었다. 조용히 입을 여는 유스젠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정령들은 밤이라고 해서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제 보여드리죠. 진정한 마물의
모습이 되어 버린 정령들을.”
아, 그렇군.
유스젠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매일 밤 변해버리는
자신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리고 싶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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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화까지 마무리군요.
1시간넘게 작업과 수정을 해서 힘듭니다;; (<-수정은 안 했잖아!)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ㅜㅜ 요즘 사랑에 고픈 사람입니다.(<-퍽)
간단한 다음편 예고 -> 마물의 등장이랑 유스젠의 고향과 할아버지.
첫댓글 음....무서우리만치 깔끔한 ....흑흑...
감사합니다 ㅜㅜ
와우... 유스젠 제 타입... <<
제가 미소년을 좀 사랑합니다 ^^(<-퍼버벅
유스젠 제 타입이에욤 ㅋㅋㅋ /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많은 격려가 돼요 ^^
정말 기대되요! 빨리 3편으로_
감사합니다. 가능한 빨리 올리도록 할께요
정말 잘 쓰시네요 ^^ 다음편이 기대되요 !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