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무래도 요즘 성격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있고,
또 제 책도 전반적으로 성격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내년 상반기에 나올 책도 "초예민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평소에 이웃 여러분들께서 성격에 대한 의문사항들을 많이들 질문 주십니다.
오늘은 그 중 공통적인 주제를 몇 개 추려서,
성격심리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점들을 짚고 넘어가 볼까 합니다.
성격에 대한 오해 및 이해
① 성격은 스펙트럼(연속체)의 개념이다.
가끔씩, 저에게 너무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분들이 계신데,
맞습니다.
제가 유독 이분법적으로 설명을 드린 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극단적인 성격을 기준으로 설명을 드려야,
해당 성격의 핵심적인 특성을 이해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에요.
가령,
내향-외향의 경우,
사실 인구통계학적으로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확실한 내향 또는 외향이 아닌 "양향성"으로 분류됩니다.
즉, 내향, 외향 둘 모두의 측면을 얼마간 가지고 있다는 거죠.
※ 보통, 양향형이 50프로 내외, 외향형이 30프로 내외, 내향형이 20프로 내외로 알려져 있다.
양향성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친 성향이 아닌, 이른바 중립적인 성향에 가까운데,
문제는 이러한 중립성은 평균에 가까운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특징을 잡아 설명하기가 매우 애매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성격에 대해 설명할 때는,
어느 한 특성의 최저점(내향)과 최고점(외향)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당신이 어느 쪽에 더 치우쳐있는지 검사해보고, 더 가까운 방향 위주로 해석하세요.
와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내에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카카오같이가치 버전의 BIG 5 사례에서는,
외향성의 국내 평균이 대략적으로 50점대 초반에 분포돼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분석을 할 때, +- 10점을 마지노선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쳐있다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심리학자마다 그 기준이 다소간 상이할 수 있어요.
(ex. 0점부터 40점 초반대까지 내향인으로 해석, 60점 중반대부터 100점까지 외향인으로 해석)
성격 검사를 해 보면, 실제로 검사자들의 과반수는 평균적인 점수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럴 땐, 해당 성격 말고,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다른 성격들 위주로 해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중립적인 성격은 극단성이 없기 때문에 행동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죠.
통상적으로, 성격이 중립적일 땐, 성격보다 상황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내 성격에 중립적인 측면이 많은 사람일수록,
상황별로 달라지는 나의 모습 때문에,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 내향인 또는 외향인은 확실히 구분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게 행동까지 이어지지만,
양향인들은 중립적인 측면이 있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외향성만큼은 그 사람의 행동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는 다른 성격들을 찾아서 그 성격 위주로 해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② 내가 보는 나 vs 남이 보는 나
성격은 본능과 비슷합니다.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강하죠.
하지만, 모든 이들이 타고난 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죠.
인간은 고등지능체이기 때문에 본능대로 살지 않고, 자연스레 사회화된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소간 본능을 억누르고 사회에 맞춰 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성격 또한 당연하게도, 살아온 환경에 따라 어느정도는 변형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내성적인 외향인들의 경우,
(낯을 많이 가리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유형)
외향인들의 특성에 따라 기본적으로 흥이 있기 때문에,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 이를테면, 친한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굉장히 활발하고 텐션 있게 노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내성적인 면모 때문에, 그 상황에 익숙해질 때까지 최대한 몸을 사리게 되죠.
※ 내성적인 사람들의 사회적 민감성은 사실 생존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내적 특성에 해당된다.
구석기 시대는 친인척 위주의 소규모 집단으로 구성돼 있었고,
외부에서 낯선 사람이 유입될 경우, 그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일지 판단하고 경계하는 것이 중요했다.
선천적으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낯선 사람을 반기겠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친숙해질 때까지 거리를 두면서 상황을 재기 때문에,
외향적인 사람들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스트레인저들의 위험한 속성을 알아챌 수 있는 가능성이 보다 더 높았다.
이러한 특성이 생존 그 자체가 중요했던 원시 시대에는 중요한 성격적 특질 중 하나였지만,
생존보다 사회성이 더 중요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불운하게도 디스어드밴티지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법과 도덕은 본능을 가로막는 일종의 억제기에 해당됩니다.
만약, 세계에 종말이 오게 돼 무법천지가 되면,
본능에 미쳐 날뛰게 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지게 되겠죠.
이와 마찬가지로, 상황적 압박(성격의 억제기)이 없는 경우,
즉, 내가 온전히 내 성격대로 있어도 되는 상황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이
보통은 100% 내 성격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해석하셔도 무방합니다.
※ 통상적으로는, 나 혼자 있을 때, 가족과 같이 있을 때, 친한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등,
내가 전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내 온전한 성격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남들과 있을 때 보여지는 나의 외부적 이미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격x상황>의 일종의 "화합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말로 극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상황이 내 성격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더라도,
상황에 맞추기 위해 내 성격을 역행할 때의 스트레스가 엄청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내 성격대로 행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내 성격에서 중립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상황에 따르는 것과 성격에 따르는 것의 파워게임에서 전자가 항상 이기는 싸움을 하기 때문에,
내 성격이 어느정도 상황에 맞춰 조율된 채로 제 3자들에게 보여지게 되는 것이죠.
언제나 사람이 제일 어려운 이유는,
첫째, 과반수의 사람들이 중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항상 상황에 따라 그 행동이 상이해지기 때문이고,
둘째, 성격은 언제나 상황에 의해 조율되기 때문에,
상황적 압박을 제로로 만들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온전한 성격을 알아채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성격적으로 개성이 강한 사람들,
즉, 어떤 성격이든 극단 쪽으로 많이 치우쳐있는 사람들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유도리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겉과 속이 비슷해서 이중성이 없으며,
또, 그 단순하고 명확한 측면 때문에 같이 지내면서 복잡하게 머리 쓸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무명자님.
오늘도 유용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