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부키의 배경과 변천
① 염불춤과 여자가부키(遊女歌舞伎)
염불춤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 - 1333)에 지슈(時宗)라는 불교 일파를 조직한 잇펜 쇼닝(一遍上人)이 시작한 정토종(淨土宗)의 한 형태로 나타난 것인데,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일종의 춤추는 종교였다. 염불춤의 형태는 표주박이나 징, 꽹과리, 북을 치면서, 손발을 마구 놀리며 염불을 외며 난무(亂舞)하는 것이다.
가부키춤은 이 염불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즉 가부키의 기본이 되는 것은 노오의 춤이나 무악(舞樂)의 춤이 아닌 바로 이 염불춤이었다.
염불춤은 진혼(鎭魂)무용으로 발전해 마침내 우란분재(盂蘭盆踊)으로도 되고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엑스터시를 경험하기 위한 종교무용으로 변했다. 이러한 염불춤은 당대의 가요나 춤 등과 어우러져 오락성이 강해졌다. 바로 이 염불춤을 가지고 교토의 무대에 등장한 사람이 가부키의 창시자로 알려진 이즈모(出雲)의 오쿠니(阿國)라는 무녀(巫女)였다. 이즈모의 오쿠니는 교토의 시조가와라(四條河原) 강변에서 가설극장으로 판잣집을 짓고 공연을 하였다. 오쿠니 연희집단은 민중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이렇게 오쿠니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남장을 하거나 괴상한 복장을 하고 연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을 유녀가부키라고도 했으며 연희집단을 편성해 지방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그리고 지방도시에도 토착 유녀가부키패가 생겨나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② 미소년 가부키
여자가부키는 풍속을 문란시키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1629년에 금지당한다. 이 금지령을 계기로 새로 등장한 것이 미소년들의 가부키이다. 이들의 나이는 12세에서 15세 정도였다. '와카슈가부키(若衆歌舞伎)'라고도 불리어졌던 이 미소년가부키 또한 종래의 여자가부키와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없었다.
즉 유녀와 같이 용색(容色)을 위주로 하여 배우의 미모, 미성(美聲)이 자랑이었다. 예쁜 소년들이 무대에 등장하여 춤, 노래, 곡예 등으로 그들의 육체적 매력을 발산하였다. 그러나 이 미소년가부키도 남색의 매음을 겸하여 결국 유녀가부키와 같은 폐해를 초래하게 되었다.(1652년)
③ 성인가부키(야로가부키)
미소년가부키가 금지된 후 가부키는 당분간 사회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나 시민들의 가부키 부활운동이 일어나고 탄원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로 인해 가부키의 흥행이 허가되었으나 조건부였다. 그 조건이란 여성과 소년이 출연해서는 안 되고 성인남자만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춤을 추지 않고 노오와 교겡을 흉내내는 연희어야 된다는 조건이었다.
즉 소년의 상징인 앞머리를 깎아버리고 성인남자 머리를 할 것, 여자가부키나 미소년가부키와 같은 선정적인 무용이 아니고 연극을 할 것, 이 두 조건을 받아들여 1653년에 다시 흥행을 하게 되었다. 이후로 가부키는 연극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종래의 가부키가 무용과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쇼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노오의 극적인 요소를 도입하면서 연극으로 탈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여자가 없다는 것이다. 여자의 등장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가부키에서 '온나가타'라는 특수한 존재를 성립하게 하였다.
④ 온나가타(女方, 女形)와 역(役)
일본에서는 오늘날, 여자배우가 참가하는 가부키가 경우에 따라서 상연되기도 하지만, 300년 동안 여자역을 남자가 연기해 왔다. 온나가타에서 가타(方)란, 어원적으로 직분을 뜻한다. 또한 온나가타는 '오야마(女形)'라고도 하는데, 오야마란 원래 유곽의 유녀, 즉 논다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가부키에서는 경성(傾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녀의 역이 중요한 존재이다. 온나가타의 대부분은 모든 가부키 배우가 그러하듯, 어릴 때부터 무대에 올라 유녀(幼女)의 역부터 숙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서민의 딸, 귀인의 딸 등을 차츰차츰 연기하다가 가장 어려운 역인 유곽의 유녀(遊女)역을 맡게 된다.
특히 '오이랑(花魁:화괴)'라는 역은 유녀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를 말하며, 경애받는 호칭으로 통한다. 다음으로 온나가타 역에는 게이샤(藝者,藝妓,妓生)가 있다. 교토에서는 게이코(藝子)라고도 하는데, 여러 종류의 게이샤에 온나가타가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한다. 다음으로 마누라역이 있다. 온나가타는 성적매력을 필요로 하지만, 귀인의 딸 같은 처녀나 유녀, 기생보다는 서민의 딸, 소위 스무살 전후의 원숙한 미가 필요한 유부녀역이다. 이외에도 악녀역과 할멈역이 있다.
⑤ 겐로쿠 가부키(元祿歌舞伎)와 덴메이 가부키(天明歌舞伎)
오쿠니 가부키에서 출발한 가부키는 여러 차례 금지령을 받으며 험난한 길을 걸어왔으나 잡초처럼 끈질기게 자라나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걸친 겐로쿠 시대(元祿時代, 1688-1704)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숙기를 맞이하게 된다. 일본연극사에서 겐로쿠 시대를 에도 시대 전기를 중심으로 한 약 40년간(1673-1715)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가부키가 용색(容色) 본위인데 비해서 겐로쿠가부키는 사실적인 대사극을 확립해 가부키 사상 획기적인 시대를 형성하였다. 한편 1720년-1730년대에 걸쳐 단행된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개혁 운동에 의해 가부키는 쇠퇴해가기 시작한다.
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가부키에 인형조루리의 장점을 이용해 1740년대 들어서 가부키는 다시 성행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1780년대까지 약 반세기간의 가부키를 당시의 연호를 따서 '덴메이가부키'라고 부르게 되었다. 특히 인형조루리의 대본으로 가부키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기다유 교겡(義太夫狂言) 혹은 마루혼 가부키(丸本歌舞伎)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루혼이란 조루리의 텍스트를 말한다. 덴메이가부키 시대로 접어든 후 자주 상연하게 된 기다유 교겡은 인형조루리와 가부키 두 성격을 하나로 조화시켜 창출한 새로운 연희라고 말할 수 있다.
2. 가부키의 연기와 연출
가부키의 양식에는 극도로 과장된 방종하리만큼 화려한 성적매력이 있다. 노오의 유현에 대조되는 가부키의 이념은 '위안'과 '즐거움'이다. 노오에 의해 정화된 넋은 가부키에 의해 현세의 육체적인 기쁨을 향락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가부키에는 연출가가 없다. 구지 연출가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을 꼽자면, 극단의 책임자나 가장 실력있는 주역배우가 그 책임을 맡는다고 할 수 있다. 가부키 배우의 연기에는 일정한 '약속'이 전승되고 있다. 고운 여자가 앉을 때에는 모두 정해진 법에 따라서 앉고, 우는 법, 웃는 법, 먹는 법 등 배우의 연기는 거의 전반에 걸쳐 일정한 약속이 있어 여기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약속을 가부키에서는 '가타(型)'라고 한다. '가타'라는 것은 일정한 형태로 굳어진 행동의 본보기를 말한다.
가부키뿐만이 아니라 노오, 교겡, 분라쿠, 다도, 꽃꽃이, 무용 등 일본의 전통문화에는 전부 형이 있다. 일본의 전통문화가 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 문화가 神에 대한 제사에서 생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형은 제사의 절차에서 시작되었다. 형에는 두가지의 성격이 있는데 첫째, 시간의 확대(오랜 시간에 걸쳐 세련되었다는 것) 둘째, 공간의 확대(하나의 지역, 그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합하다는 것)이다. 가부키는 형의 연희라고 할 만큼 모든 면에서 형을 볼 수 있다. 연기 이외에도 화장이며 의상, 반주음악, 장치설정, 장식법, 각본작성, 연극흥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형이 존재한다.
특히 배우 '연기의 요소'에 따른 형의 분류에는 배우의 연기(동작,표정), 대사, 의상, 화장들이 있으며 '연기를 창출한 것'에 따른 형의 분류에는 연희의 종류, 지역, 가부키의 종류, 가문(家門), 사제(師弟)관계, 개인들이 있다. 한편 가부키 배우를 에도시대에는 야쿠샤(役者)라고 불렀다. 야쿠샤란 원래 고대에는 神佛에 관련한 일을 맡는 자를 뜻했다. 그것이 점차 연희를 통해 신에 봉사하는 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노오야쿠샤, 가부키야쿠샤라고도 칭했는데 에도시대에는 특히 가부키배우를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야쿠샤 대신에 배우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① 구마토리( 取,바림)
구마토리라는 것은 얼굴에 연지로 선을 긋는 독특한 화장법을 말한다. 처음에는 연지를 바른 얼굴 위에 분을 바르고, 그 분 위에 연지로 다시 선을 긋는 방법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분 밑에 연지가 잠겨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단지 분을 발랐다는 것이 아니라 분 밑에 연지색이 어렴풋이 보인다는 데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 구마토리는 가부키의 고유한 양식미를 표현하는 배우의 독특한 얼굴치장 방법으로 홍색계통과 남색계통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② 미에(見得)
미애라는 말은 외양, 외관, 허식, 허영 등의 뜻을 갖는다. 가부키의 독특한 연기수법의 하나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즉 무대에서 연기가 진행되는 어느 한순간에 배우가 정지 상태로 눈을 부라리거나 손이나 발에 힘을 집중시키는 연기를 말한다. 원칙상 이 순간은 무대에 출연하고 있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정지 상태가 되고, 또한 미에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반주음악도 멈추고 딱딱이만 친다. 미에는 말하자면 연기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일이며 연기의 어느 순간에 초점을 모으는 연기인 것이다. 이는 관객에게 어느 동작을 인상깊게 하고자 할 때 배우가 신체의 움직임을 고정해 조각과도 같이 정지한 포즈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가부키가 회화적인 무대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런데서 비롯한다.
③ 다테(殺陳)
무대에서 벌어지는 난투장면을 '다테' 또는 '다치마와리(立回)'라고 말한다. 살인, 격투, 범인체포 등 살벌한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양식화란, 가부키연기의 일종이다.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와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난투를 표현하는 모든 것을 다테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살벌한 장면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다테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다테의 가장 화려한 움직임은 '돔보(とんぼ)'라고 일컬어지는 공중제비이다. 돔보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상당한 숙련을 필요로 한다.
④ 롯포(六方)·단마리(だんまり)·게렝(ケレン)
가부키에서 배우들이 무대에 들어설 때 손발을 내저으면서 위세있게 걷는 걸음걸이를 롯포라고 한다. 연기술로서의 뜻은 천지동서남북(天地東西南北)의 방향으로 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으로 나아갈 때 왼발과 왼손, 오른발과 오른손을 같은 쪽으로 내미는 걸음걸이다. 단마리는 가부키연기의 하나로서 한자로는 '암투(闇鬪)' 또는 '암도(闇挑)'라고도 쓴다. 등장인물들이 어둠 속에서 대사없이 무언으로 서로 더듬어 찾는 동작을 과시하는 연기법을 말한다. 한편 게렝은 무대에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교묘한 기교와 수법의 뜻으로 쓰이고 가부키의 연기와 기예에도 응용하게 되었다. 몸을 공중에 뜨게하는 장치, 재빨리 변신하는 연기, 겉옷을 재빨리 벗고 속에 입은 옷을 드러내는 연기 따위를 말한다. 곡예적인 요소를 도입해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⑤ 가부키 음악
가부키는 일종의 음악극이기도 하다. 가부키 작품은 기다유 가락 없이는 상연할 수 없다. 기다유는 가부키에서 다케모토(竹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연극의 배경, 정경, 인물의 행동, 심리 등 조루리의 사장(詞章) 중에서 대사 이외의 가락이 붙은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 다케모토의 일이다. 가부키의 음악은 크게 게자(下座)음악과 무대음악으로 나누어진다. 게자음악은 무대를 향해 왼쪽에 검은 발로 칸막이를 한 안에서 연주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연주자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다만 기다유 조루리의 경우는 오른쪽 위에 자리가 있다. 가부키의 효과음악은 모두 게자음악이 떠맡는다. 이에 비해 무대음악은 무대의 일정한 장소(마루)에서 연주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와 연주를 한다.
⑥ 가부키 춤
무(舞)와 용(踊)은 일본어로 각각 '마이'와 '오도리'라고 한다. 일본무용하면 보통 가부키 춤을 뜻하고 약칭으로 '일무(日舞)' 또는 '방무(邦舞)'라고 한다. 일본의 무용을 '무'와 '용'의 장르로 나누면 무악이나 노오 따위의 중세까지의 무용은 무이고, 근세 가부키 춤은 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부키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염불춤계의 민속무용에서 비롯해 풍류춤에서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무'가 노오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서 '무'는 조용하고 의례적인 인상을 준다. 이에 비해서 '용'은 민간에서 행해진 모내기 춤이나 우란분 춤 등을 포함한 화려하고 흥청거리는 매우 활발하고 민중적인 활력을 지닌 신체운동이라는 인상을 안겨준다. 가부키는 원래가 가부키 춤에서 발생한 것이니 만큼 대사극으로서의 길을 밟으면서 항상 무용성이 중시되어, 하루의 가부키 상연작품 중에는 반드시 한두 막의 무용극을 삽입하고 있다.
⑦ 가부키 극장
가부키 극장은 '시바이(芝居)' 또는 '시바이고야(芝居小屋)'라고도 한다. 주로 가부키 무대장치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마치(花道)'라는 꽃길과 회전무대이다. 노오나 가부키의 무대는 액자식이 아니라 객석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초기 가부키가 노오무대에서 답습한 무대와 분장실 사이의 통로 기능이, 무대 전체가 확장되는 바람에 상실되어 관람석을 가로지르는 형태로 출현한 것을 꽃길이라고 한다. 객석에서 무대를 향해 볼 때 왼쪽에 위치해 있고, 관람석을 지나 무대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배우가 출입하는 통로를 말한다. 길이는 극장에 따라 다르지만 폭은 약 1.5m이다. 이 꽃길은 연출상 매우 중요하다. 원래 꽃길은 관객이 배우에게 '꽃(화대나 선물 따위)'을 선사하기 위해 가설 통로를 마련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꽃길은 단순한 등장인물의 통로 내지 출입구가 아니며 무대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특히 관객과의 공감공명에 의해 연극적인 마당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회전무대는 에도 중기 1758년에 오사카의 대극장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무대 중앙의 원형부분이 회전하는 무대를 말하는데, 이로 인해 장면전환이 신속하게 되고 또한 연출상의 무대효과를 낳아서 자유로운 장면구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높이가 다른 이중 구조로 된 무대의 높은 부분을 회전시키는 방법은 이미 18세기 초에 고안되었으나 동일 평면의 일부분이 도는 오늘의 회전무대는 1758년이 처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