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평론 13호/신자유주의와 국가의 재도전>
이병천 <한국의 경제위기와 imf체제>
1. 정부의 규제완화
"근본적인 문제는 단기차입에 대한 규제가 없었다는 데 있었다.
1997년 6월말 현재 한국의 단기외채 비중은 67%,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의 비율은 67%로,
이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2. 종금사와 재벌의 단기이익추구
"단기외자 이자율은 장기의 약 절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에게
단기차입이 아주 강력한 유인을 제공"
-122쪽
3. 국제적 요인
"채무 대국인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주도 성장체제는
원활한 자본유입을 위해서는 강한 달러 정책이 필요하고
경상수지 적자의 축소를 위해서는 약한 달러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환율과 금리의 재조정이 필요할 때마다
각국에 협조 조정을 요청하고 사실상 강요해 왔다.
미일 협조체제는 미국의 금융 주도 성장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지주에 해당하는데,
1995년의 강한 달러-약한 엔화로의 협조조정은
10년 전 1985년 플라자 합의 때의 약한 달러-강한 엔(엔고)으로부터의
일대 반전을 의미했다."
-123쪽
4. 김영삼 정부의 재벌규제정책 미흡
"엔고 상황에서 대대적 설비투자를 감행했던
한국 경제는 대타격을 입었다.
그 와중에도 김영삼 정부는 원화 고평가 정책을 유지"
-124쪽
5. 미국의 약탈
"미국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oecd 가입이라는 미끼를 내걸어
한국을 금융세계화의 함정에 빠트리고 그럼으로써 위기발발에
큰 몫을 했던 것이다. ...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외환위기에 빠지자
일본은 1997년 9월 imf 연차총회에서
아시아 통화기금을 창설하는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11월 일본 정부에 서한을 보내
imf창구일원화 원칙을 제시하면서
일본이 개별 국가차원에서 한국에 자금을 지원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했고,
일본은 이에 순응하여 당초 우리에게 약속했던 신규자금지원은 커녕
일본측 채무의 만기연장마저 거부했다."
-132쪽
첫댓글 클린턴이 북한이랑 정쟁하려고 했던거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개인적으론 양아치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클린턴은 미군병사의 희생(대략 5만여명)이 크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받고 전쟁을 하려는 생각을 접었더랬죠...... 미국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아프간에 최소 3000명은 파병해야 한다는 조xx 씨 같은 양반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단기차입에 대한 규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외환거래 자율화를 도모하면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요?
그에 더해서 이 당시 김영삼은 사사건건 미국정부와 충돌했더랬죠... 심지어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고 까지 말했더랬습니다. 미국의 속국인 주제에 이렇게까지 건방을 떨 수 있었는지(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못할짓이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양반입니다. 하긴 지금까지도 시시때때로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제정신은 아니지 싶습니다만......
심지어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일본한테 한말입니다
남자가 곧 죽더라도 그런정도의 배짱은 있어야죠. 김영삼 대통령 배짱 하나는 사줄만하네요. 혹시 정일 횽님 흉내 낸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