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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을 나눈 신동일씨(좌)와 윤덕여 감독(우)/spo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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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는 열렬 축구팬이자 초창기 <붉은 악마>의 고문으로 활동한 신동일(48, 교사) 씨가 17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의 윤덕여 감독을 만나 나눈 이야기입니다.
신동일 씨는 앞으로 매달 한번씩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국내 축구인들을 만나
한국 축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포부를 이곳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바야흐로 한국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하 U-17팀)이 축구팬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UAE에서 열린 아시아대회에서 16년만에 우승하더니, 올해 1월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열린 발렌틴 그라니트킨컵 대회도 제패하고, 이번에는 이탈리아에서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그라디스카 시티컵에서도 우승컵을 높이 들었다.
이제 U-17팀은 올해 8월 13일부터 30일까지 핀란드에서 열리게 될 FIFA
U-17 세계대회에서 한국축구의 꿈을 펼칠 1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비행시간만 12시간이 걸리는 이탈리아에서 24일 귀국하여 이제 피곤은 좀 풀린 것 같다는 윤덕여 U-17팀 감독을 봄비가 흡족히 내리던 날 오후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운치있는 미술관 찻집에서 만났다.
"제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하여 조예선 마지막 경기(우루과이전)를
한 장소가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의 프리울리 경기장이었어요. 우디네세의 홈구장이죠. 그라디스카 시는 우디네 인근에 있었고, 그 때 묵었던 호텔 부근에
우리 선수단이 숙박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경기장들이 숙소 가까이에 있지 않아 보통 한두시간 걸려 이동해야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오후 8시 시작)가 끝나 돌아오면 보통 새벽 1시 가까이
되었는데, 잠깐 자고 다음날 아침에 기상하여 몸 상태를 점검한 후 곧바로 시합을 해야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7일 동안 결승전까지 6경기를 뛰어야 했으니 고된 일정이었죠. 경기 후 48시간을 휴식해야 한다는 FIFA의 규칙도 다 소용없었습니다. 뭐 우리 선수들이야 이런 경우를 국내에서 많이 겪어보아 다른
팀에 비하면 오히려 익숙한 편이겠지만,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좀 벅찼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라디스카시티컵은 워낙 저예산으로 준비되었는지 경기 진행이 엉망이더군요. 미국에서 왔다는 카스피안 클럽과의 조 예선 2차전 때였는데요. 아 글쎄,
주최측에서 버스 한 대에 우리 선수와 미국 선수들을 태워 경기장에 가려고 하기에 감독으로서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버텨야하는 정도였어요.(웃음)”
“심판도 우리로 말하자면 동네 축구 심판 수준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어이가
없더군요. 대기심이 없어서 선수 교체시에는 양팀의 코칭스태프 중에 한 사람이 교체 번호판을 들고 나가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결승전에서는 그래도 제대로 보는 심판이 오기도 하더군요. 유럽 SKY-B 방송사에서 결승전을 중계했다고 들었는데, 국내에서는 중계되지 않았다더군요."
KBS에서 그 화면을 받아 녹화방송을 추진하였으나 여의치 못했다고 배석했던
SPORTAL의 이상헌 기자가 덧붙였다. 결승전이 중계되었다면 우리 축구팬들이 얼마나 흐뭇하게 그 경기를 보았겠는가.
"현지에 갈 때는 인천공항에서 11시간 비행하여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두어시간 기다려 베네치아 비행기로 갈아탔죠. 베네치아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남짓, 베네치아 공항에서 현지까지도 1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그라디스카는 이탈리아 북부의 휴양지입니다. 바로 30분 거리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접경하고 있죠. 아드리아 해의 베네치아 만 일대는 우리로 말하자면 대천 해수욕장같은 곳인데, 상주 인구가 1만명 정도 되는 소규모 읍인 이곳 그라디스카에만 해도, 성수기인 여름에는 10만명 이상의 외지인들이 몰려든다더군요. 그래서 현지의 호텔들은 여름 한철 장사로 1년 먹고산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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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신동일씨(좌)와 윤덕여 감독(우)/spo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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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던 호텔도 저녁 5시만 되면 직원들이 다 퇴근해 버리고 한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도착하여 4일쯤 되니까 시차도 견딜만해졌는데, 비가 자주
오는지라 연습장에 물이 안 빠져 애로가 좀 있었습니다. 공원에 잔디가 파랗게
자란 곳에 들어가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잔디를 보호해야 한다며 말리는 관리인은 없더군요.”
“그쪽은 가는 곳마다 그런 체육공원이 펼쳐져 있어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빨리 그렇게 되어야 일선 학교에서 주말리그건 클럽리그건 가능할 텐데....높은
분들일수록 축구장하면 대규모 스타디엄이나 지어주면 되는 것으로 아시는데,
실제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정식규격 운동장이 가까운 거리에 많이 있어야 하는
거죠. 꼭 천연잔디구장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요즘은 인조잔디의 품질이 좋아져 천연잔디 못지 않습니다. 동네마다 펼쳐져 있는 축구 연습구장, 그게 바로
축구문화의 핵심적 공간 요소죠. 가장 중요한 먹는 문제는 선수단과 동행한 축구협회 장연환 차장이 힘을 써주셔서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현재 파주 NFC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장연환 차장은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한 분으로 이탈리아 말에 능숙하고 현지사정에 밝다고 한다. 장 차장은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현지 호텔 주방장에게 한국대표 유니폼을
선사하는 등 환심을 사는 작전으로 주방을 접수하여 찌개도 끓이고 곰탕도 만드는 등 우리 선수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제공하게 하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고 한다. 이번 대회 우승의 숨은 공신 제1호라 할 만하다.
"5월말 부산시에서 2002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미국, 폴란드, 아르헨티나 U-17세팀을 초청하여 4개국 친선대회를 개최하기로 확정했다며, 부산시 관계자 되시는 분들이 그라디스카시티컵 대회 진행상황을 참관하러 오셨더군요. 아마 주최측의 너무도 허술한 준비와 진행에 기가 찼던지 '5월에 부산에
오시면 차원이 다른 진행을 맛보실 것'이라고 장담하시더군요. 부산대회는 우승상금도 6만달러라 하니, 국제 청소년대회치곤 보기 드문 대회라 할 것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전원이 1986년 이후 출생자들이다. 다른 팀들은 85년생이 와일드카드로 3명이 포함되어 출전하였다고 한다.
"우리와 8강전에서 만난 브라질의 아틀레티코 미네이로 팀에는 190cm를 넘는
선수가 3명이나 있더군요. 그 선수들이 바로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경우일 것입니다. 첫경기인 AC밀란 유스팀에도 195cm나 되는 거한이 끼어있었죠. 예선에서 붙은 팀들 중 우리 선수들이 가장 작은 편이었습니다. 다들 17세 선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큰 체격이었습니다."
올해 그라디스카 시티컵 대회의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시합은 전후반 40분씩, 선수교체는 엔트리 18명이 모두 기용될 수 있게 7명까지 허용하였다고 한다. 각조 1위와 조 2위 중에서 성적이 좋은 2팀이 8강에 나가 토너멘트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한국팀은 2승1무로 1위를 한 팀 중에서는 2번째로 좋은 성적이었는데 원래대로 한다면 8강전에서 예선에서 한차례 붙은 리예카 클럽과 8강전을 가져야 했으나, 예선에서 대결한 팀은 토너멘트 1회전에서는 피하는 규칙에 따라 한국
U-17팀의 상대는 브라질의 아틀레티코 미네이로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 그라디스카시티컵 조편성 -
A조
AC밀란(이탈리아), 한국 U-17대표팀, 리예카(슬로베니아), 카스피안FC (미국)
B조
아약스(네덜란드), 첼시(잉글랜드), 베네치아, 모스카(이상 이탈리아)
C조
아틀레티코 미네이로(브라질), FC 아틀라스(멕시코), 레지나, 우디네세 (이상
이탈리아)
D조
러시아 U-17대표팀, 인디펜디엔테(아르헨티나), UFC 자스파(나이지리아), 나폴리(이탈리아)
E조
이란 U-17대표팀, 아탈란타, 아틀레티코 콜럼비아, US토리에스티나(이상 이탈리아)
F조
터키 U-17대표팀, 볼로냐(이탈리아), SBV NEC(네덜란드), SD 티그레스(멕시코)
윤 감독은 국내에서 선수들을 소집하여 이틀 훈련하고는 현지로 떠났다. 갈 때도 돌아왔을 때에도 부상자 없이 좋은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각 조별로 별개의 운동장에서 동시에 예선전을 가졌다 하니, 우리 선수단은 다른 조에 속한 팀의 전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결승전까지
질주하였던 셈이다.
결승전을 앞두고는 우디네의 프리울리 경기장에서 열린 세리에A 우디네세 :
브레시아의 경기를 관전했고, 대형 TV가 있는 아이스크림집에서 AC밀란 : 인터밀란의 더비전을 보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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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디스카컵에서의 한국 U-17대표팀/축구협회 오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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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울리 경기장은 중하위권 팀들의 시합이어서인지 관중석이 한산하더군요.
브레시아에서 뛰는 로베르토 바조는 올해 36세라던데, 여전히 잘하더군요. 그
격렬한 몸싸움도 가볍게 젖히면서 경기 상황을 한 눈에 꿰뚫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바조가 아직까지는 이탈리아 최고의 FW라고 합디다. 비에리, 델피에로 인차기, 토티...다 좋은 선수들이긴 한데, 단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대표팀 감독인 트라파토니부터 개인 플레이에 치중하는 식이고...
TV 중계로 본 밀란 더비전은 무시무시하였습니다. 비에리가 어디 몸이나 작습니까. 그 거구가 점프하면서 팔꿈치로 가격을 해대니, 네스타는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말디니는 아예 실려 나갑디다.”
“9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전광석화와 같은 공수전환이었습니다.
그 경기는 인차기가 결승골을 넣어, AC 밀란이 이겼는데 프리킥 상황에서 실수를 범한 동료 디 비아조 선수의 멱살을 움켜쥐며 으르렁대던 인터밀란의 GK
톨도가 TV 화면에 가감없이 크게 잡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팀의 화합을 강조하는데, 그쪽에서는 팀의 동료가 순식간에 원수지간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자중지란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니, 강렬한 개성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 축구가 거칠다고 혹평하는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윤덕여 감독은 단호히 고개를 돌린다.
"우리 축구는 양반입니다. 점잖기 이를 데 없어요. 우리랑 대결한 팀들은 모두
한 성깔씩 하는데다가, 게임 매너도 영 아니었습니다. 4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 선수들은 전반전 1골을 선취하더니 이거 뭐, 좀 다쳤다 싶으면 그라운드에 엎어져 떼굴떼굴... 1분이 뭡니까, 아예 죽치려하더군요."
후반전 들어 안상현이 동점골을, 정인환이 역전골을 넣자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못된 성질이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이 친구들, 퇴장당해 쫓겨나면서 우리 선수들 얼굴에 침을 뱉는가하면 볼과
상관없이 정강이를 덮치는 등 지저분하게 나왔습니다. 성격은 또 어찌나 다혈질인지....결국 그쪽 선수 3명이 퇴장당했고 우리는 2골을 더 넣으며 결승에 진출했죠. 세계축구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강한 자제력과 몸싸움 능력이 없는 팀은 도태되게 되어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이탈리아 관중들은 한국의 월드컵 4강에 대해 심판 덕이라며 조롱하다가 막상 우리와 경기를 해보고 나서는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보도가 있어 뒷이야기가 더 있을까 궁금하였다.
"월드컵때 한국 : 이탈리아전 심판을 본 에쿠아도르의 모레노 주심 이름을 모르는 현지인이 없을 정도로 그는 유명인사더군요. 한국의 승리는 모레노 주심의 공이었다는 겁니다. 이번 대회 개막전이 현지 TV로 중계되었고, 하필 한국을 이탈리아 축구의 자존심이라고 추켜세우는 AC밀란과 개막전에 붙인 주최측의 의도가 빤하기에 저도 우리 선수들에게 다부지게 싸워보자고 강조하였습니다. 선수들의 각오도 결연하더군요. 월드컵 4강의 업적을 우리가 망칠 수 없다는 책임감과 몸집 큰 선수들과 맞붙어 주눅들지 않는 정신자세가 개막전을
무승부로 이끌었던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AC밀란과의 첫시합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경기였다고 한다.
"주심이 여성이었는데.... 의도적인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감독으로서
좀 억울했습니다. 첫 골은 분명 오프사이드 상황이었고, 두 번째 실점은 명백한 반칙이었습니다. 우리 골키퍼 차기석이 볼을 잡아 킥하려던 순간 상대선수가 발을 갖다댄 것이 우리 골로 들어갔거든요. 그로 인해 우리 선수들이 흥분하였고 저는 감독마저 흥분하면 안 되겠기에 선수들을 다독이느라고 인저리타임이 좀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실점한 후 경기 종료 5분전 한동원 선수가 동점골을 넣고 쭉 우리가 우세하게 이끌어 갔습니다. 주심이 5분이나 인저리타임을 주었는데, 아마 2분 정도만 더 주었더라면 우리팀이 이겼을 것입니다. AC밀란 측에서 오히려 인저리타임이 왜 이리 기냐고 항의할 정도였으니까요."
첫 시합을 끝낸 감독의 소감이 궁금했다.
"만족했습니다. 대회에서 우리가 치른 모든 시합 중에서 가장 후회하지 않았던
시합이었습니다. 우리의 득점은 정당했지만, 저쪽의 득점은 그쪽 TV가 반복해서 보여줄 정도로 부정직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전반적인 경기운영 능력이 우리팀이 더 나았어요. 경기가 끝난 뒤 이탈리아 관중들이 우리를 다시 보는 기색이었고, 그쪽 팀 관계자들도 찾아와 훌륭한 선수들이라고 칭찬하더군요."
"AC밀란은 처음부터 강공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당황하지 않고 조직력을 발휘하며 조여들어가자 이거 쉽게 볼 팀이 아니라는 눈치가 역연합디다."
조예선에서 만난 다른 팀들의 기량은 어땠을까?
"AC밀란이 가장 힘겨웠던 상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온 카스피안 클럽은 말 그대로 약체였고, 원래 오기로 했던 호주의 마르코니 클럽이 이라크 전쟁으로 출전을 포기하는 바람에 대타로 출전한 리예카는 단단한 수비에 역습을 전문으로 하는 팀컬러더군요. 국내에는 리예카가 슬로베니아의 클럽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회 중에 이 클럽이 크로아티아 축구협회로 소속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12시간 이상 걸려 도착한 그 동네를 리예카 선수들은 30분만에 오게 된 셈이었죠.“
리예카는 한국팀에게 1-2로 패했지만 미국과 AC밀란을 각각 2-0으로 누르며
2승1패로 8강에 올랐다. AC밀란은 한국에 2-2로 비기고 미국을 6-1로 대파했지만 리예카의 역습에 휘말려 1승1무1패에 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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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어버리는 인터뷰군요... 윤덕여 감독 훌륭한 감독인거 같습니다. 선수들의 장점을 잘 알고 키워줄 수 있을것만 같군요... 같은 사람이 인터뷰했던 박성화 감독때와는 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