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평생 잊지 못 할 그 선생님을 오늘 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으며, 친구의 숙부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시고,
강릉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풍수지리학 공부를 하고 계셨습니다.
강릉대학교 풍수지리반과 강원대학교 풍수지리학 팀이 합동으로
고가(古家) 답사를 겸한 현장교육이 오늘 강릉에서 있었는데,
선생님은 강릉대학교 수강생으로, 저는 강원대학교 수강생자격으로 참석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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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남단 작은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아담한 모 초등학교,
저는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그곳은 읍내를 한 번 다녀오려면 날을 잡아 하루해를 다 넘겨야 했습니다.
가느다랗고 꼬불꼬불한 국도(신작로)는 비포장이었고,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않되었습니다.
제가 6학년이 되었습니다.
공부는 대충하였지만, 그래도 급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겸손하였고, 저는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언제나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숙제가 문제였습니다. 숙제가 싫어서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산수숙제 같은 것은 정답이 분명하여 상관없었는데...
그 이외의 과목이 문제였습니다. 특히 사회생활과 자연, 그리고 국어가 그랬습니다.
선생님으로 부터 숙제를 받으면,
저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언제나 2등에 불과하였습니다.
급장이랍시고 가끔은 저에게 숙제검사를 맡기는데
그럴 때 제가 보면 그 친구는 숙제를 해 오는 게 정말 기가막혔습니다.
감히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그 친구는 저에게 공부가 뒤지는 게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에게는 베껴올 수 있는 전과책이 있었습니다.
표준전과였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저에게는 감히 꿈꿀 수 없는 사치였고-
저로서는 정말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랜시간 속앓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민만 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훔치는 수 밖에... 전과책을 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작정한 날이 왔습니다.
아침부터 심호흡이 이어지고... 침도 자꾸 마르고...
내 맘을 누가 들여다보지는 않을까 주위를 살피기도 합니다.
칠판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에 애들이 밥먹은 후 운동장에 모두 나가야 할텐데?
친구가 오늘도 전과책을 가지고 왔을까?
들키지 않을까?
책이 없으진 걸 알면 선생님께 바로 말할텐데?
책상위에 올라가 눈 감고, 팔 들고 자수할 때까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입니다.
[ "나 떨고 있니?" ]
아니야 모를 수도 있어... 맘 먹었을 때 해야 돼!
어쨋든, 점심시간에 결행(?)했습니다.
그러나 제 가방에 넣어 둘 수는 없습니다.
친구가 전과책이 없어진 걸 알것인지, 그냥 넘어가게 될 것인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래서 교실 뒷 쪽 모서리에 세워진 삼각통 모양의
청소도구함과 벽 사이의 틈에 잘 끼워 두었습니다.
만약, 청소당번이 발견하면 그것도 소용없는 허사가 되고 맙니다.
5교시가 지나고 종례가 끝났는데도 친구는 말이 없습니다.
청소당번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하늘이 저를 도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청소검사가 끝나고 당번이 집으로 돌아가도 정작 선생님이 가시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인가 정리할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과책을 당장 꺼내가지 못하면 내일은 사단이 날 것이고...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큰일입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시는 교실문을 급한 듯 열고...
"선생님 안가셨어요?"
"응, 왜? 뭐 놔두고 갔나?"
"네"
난, 괜히 내 책상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어렵사리 청소도구함으로 다가가 전과책을 꺼내어 재빨리 가방에 넣었습니다.
이제, 선생님께 인사하고 나서면 만사(?)가 끝납니다.
"선생님 돌아가겠습니다."
"................"
선생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 ? ? ? ?
"중산~~"
"네~"
"이리 와 봐"
"네?"
"그것, 여기 선생님책상에 꺼내놓고 가!"
" .........."
(어린아이의 연기(?)가 아무려면 선생님 눈에 가당치나 했겠습니까?)
눈앞이 캄캄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허공같았고... 달아오른 얼굴은 식을 줄 모릅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입니다. 머리가 멍~ 합니다.
이제, 학교도 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이며 친구들의 얼굴은 또 어떻게 본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제가 급장 아닙니까! 그러니 말하여 무었합니까?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다음 날 학교를 못갔습니다. 아니 안갔습니다.
"어머이, 내 오늘 학교 못갑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그렇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후가 되자 학교를 마친 친구들이 몰려왔습니다.
"니 많이 아푸나? 오데가 아푸나? 선생님이 니 많이 아픈지 가보라 하더라"
그나마 천만 다행입니다. 친구들은 어제의 그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내일도 모레도 학교를 갈 수 없습니다.
다시 밤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오랜만에 뵙습니다. 중산이 많이 아픕니까?"
선생님 목소리다.
찢겨진 문틈으로 살펴보니...
늦은밤 집을 찾은 선생님은 마루에 계시던 어머니와 한참을 이야기 하십니다.
이불을 다시 덮어 쓴 저는 곧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드디어 방문 열리는 소리가...
"야~ 중산~ 어디가 아푸노? 이넘 봐라, 어디가 그리 아프냐고 이넘아~~
내일도 학교 못오겠나? 내일은 학교 나와라이이~~ 나 간다~ 이넘이 그래도 대답이 없네~~~~~"
조금 후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난다. 선생님이 가신 것이다.
? ? ? ? ?
그런데? 웬 보자기가? 하얀 보자기가? 하얀 보자기 하나가 제 머리맡에 있었습니다.
? ? ? ? ?
그속에는... 그 보자기 속에는 동아전과, 동아수련장, 크레파스, 연필, 공책.......
"책이네? 너그 선생님이 뭘 이런 걸 다 사왔노..."
선생님은 어머니에게도 아무말 안하고 가신 것입니다.
저는 그 보자기를 앞에두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린마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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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납니다.
선생님은 제가 책에 욕심을 낸 이유를 충분히 알고계셨던 것이기에
저에게 조금도 상처주지 않으시려고...
제가 만약 책이 아니고 다른 것을 탐했다면 선생님은 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선생님은 그날 조퇴하고 삼척읍내 다녀오시느라 그렇게 늦은 밤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진정한 스승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을 오늘 또 그렇게 만났습니다.
가까이 계시기에 가끔 찾아뵙기는 하지만...
동작그만/저는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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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샘터
저는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동작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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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29 01:24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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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정한 스승님을 모시게 됨을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내가 없기에 남의것을 가져가는것...우리가 자랄때는 없는게 훨씬 더 많았지여...연필도 귀했고 종이도귀해서 여간해서는 휴지란게 없었는데...동작그만님과 같은 경험이 더러는 있을것 입니다...노스승님의 깊은마음에 머리숙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정말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생님이셨습니다.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마 그때 선생님이 달리 하셨다면, 저에겐 가슴에 큰 못이 박혀있었을 것입니다.ㅎ
저도 그런적 있어요..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한권밖에 못 빌리게 되어 있는데 숙제하고 재빨리 보면 금방 보기에 두권이 필요했어요 규칙은 한권이고, 책은 더 보고싶고..그래서 생각해낸게 가슴에 한권을 감추고 한권만 선생님께 보이는겁니다. 그렇게 쭉 해오다가 졸업때에 그만 육성회비를못내서 헉교를 안갔습니다 졸업식에 오라고 반장이 찾아 왔는데 공식적으로 빌린 책 밖에 내놓을수밖에 없었어요..그땐 왜 그리 책이 보고 싶었는지.....
아 그러셨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ㅎ
저도 모르게 왜 눈물이 나죠. 그땐 참 어려웠지요.저도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그리워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지금은 연필 종이도 흔해서 청소하다 쓰레기통에 깨끗한 종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울때가 있네요.지금의 아이들은 우리 심정을 모르겠죠...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때가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ㅎ
모처럼 일요일 샘터에 들어온 일은 참 잘했다 싶군요? 역시 우리 샘터다운 곳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동작그만님이 우리 샘터가족들께 정겨움이 베인 인간미로 이토록 심금을 울려 주셨으니.....
그런가요? 죄송할 뿐입니다. ㅎ
동작그만님!.... 한동안 주역 공부 열중하다 자연스레 풍수지리로 옮기면서 역시 독파 계획이라 중도하고 말았답니다. 제겐 퍽 관심있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좋은 공부 열심히 하시기 바라며.... 늘 감동의 글로 풍성히 샘터를 가꿔 주시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 옛날 학교가 서울 중구 한복판인 덕에 젤라는 초등시절 동아전과 수련장 표지 모델로 연속 등장했었답니다ㅎㅎㅎ)
그러시군요, 선택된 학생이셨습니다. 진즉 알았으면 전과 한 권 부탁드리는 건데 ㅋㅋㅋ
마음이 짠해집니다....그런 스승님을 만난 동작그만님은 행운아...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ㅎㅎㅎ
옛날 생각이 나네요~ 참 훌륭하신 선생님이시네요 요즘의 선생님들이 마니 반성해야할것 같네요
아니요, 요즘의 선생님들도 그런 분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요 ㅎ
동아전과,표준전과..그 두꺼운 책이 자랑스럽던 어린시절이었네요...몇일전 20년전에 실내화 도둑으로 몰려 지금까지 가슴아팠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딸아이와 몰랐던 이야길 나누며 지금도 미안하고 속상합니다..초등학교1학년이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28세가 된딸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지금도 속상합니다...
ㅎㅎㅎ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코끝이 찡해지는군요. 40여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 사건도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어 고운 색깔로 동작그만님의 추억의 앨범에 채웠겠습니다. 훈훈한 인간미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여행님께도 그런 선생님이 계시겠지요? ㅎ
예, 저도 초등학교 2학년 때, 개울에서 새알 캐고 정신없이 목욕하며 노느라고, 9일간 땡땡이 친 적 있었는데 잘 마무리해주신 그 선생님이 뵙고 싶군요. 아직까지도 존함은 기억납니다.^^
정말 얼굴 화끈..가슴 찡..눈물 핑입니다.. 그 훌륭한 선생님을 아직도 가까이 뵐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정말 즐거운 마음을 갖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그 동아전과로 공부 열씨미해서 일등 했나요? 욕심이많은 소년 이엇구나?^^
ㅎㅎㅎ
몰이리 애매하게 웃냐? 대답을 해야지
눈물납니다...감동의 드라마군요...평생 그런 스승님 한번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누리햇빛님, 오늘 좋은 휴일 되셨습니까? 반갑습니다.ㅎ
그때 그시절 까만 보자기(책보) 허리에 매고 코는 왜그리 나오는지? 소맷자락이 허옇게 바래고 국민(현 초등)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는길엔 밭에 구멍난 무우밭이 수두룩~ 머리에 하얀 석케가 돌아댕겨 어무이가 띠띠약 뿌려주고난뒤 참빛으로 빗으면 죽은서케가 우르르르~ 그땐 누구나 물론이고 없었을 시절입니다. 잘사는집이래야 손에 까만가방(재봉틀질해 만든거) 손에들고 다녔습죠. 동작그만님의 글 섭렵하니~ 그 맘이 전이돼 오는듯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ㅎ
참 좋은 스승님을 두셨네요. 어린 제자의 마음까지 헤아려주시는... 항상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ㅎ
그런 ....가슴아픈 추억도 아마 우리세대에서나 느낄수 있었지 않을까 싶네여 진정한 스승을 두신 동작그만님이 부럽습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동감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