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비하해서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르는등 한국에서는 과거 일본의 모습을 심히 깔보는게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대략 반응을 말하자면 메이지유신전에는 야만인인 주제에 기어올라?정도로...
그런데 조선왕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시기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박서생에 눈에 비친 일본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살펴보던 저도 살짝 쇼크였구요.
먼저 간단히 정리하자면 --> "북경보다 화려하다." ...??? 이게 무슨소리일까? 야만국인 일본의 모습이 원조천조국인 중국보다 앞서다니?
그럼 여기서 세종실록에 기록된 박서생의 말을 살펴보면...
1. 일본 농민은 수차를 이용해 풍족한 생산을 이룩하고 있다.
-> 이 말을 뒤집으면 아직 조선에는 수차가 없었다는 말인데, 찾아보니 저 훗날 고종시절에도 수차가 정착이 안되어서 고생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차가 개발된게 중국 후한시절이었을텐데 ㅡㅡ;;;;
그리고 참고로 이런점때문에 농업용수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중국과 일본에서 이미 도입되어 있던 이모작을 도입하는 시기가 크게 늦어지게 됩니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국사시간 조선후기 조선사회의 경제적 발전부분에 가서야 언급되는걸로....
2. 일본에선 화폐경제가 뿌리를 내렸다.
-> 조선은 이 당시 미곡을 조세단위로 써 보관과 운반의 어려움때문에 상업발전에 어려움이 커 이 보고에 자극을 받은 세종대왕께서는 화폐경제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게 됩니다. 다만 결과가 헬게이트인지라 백성들로부터 폭군이라는 말까지 들을정도였고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흔히 막장으로 비웃음당하는 명나라의 장졸들이 임진왜란시 조선에와서 동전을 쓰지않는걸 보고 깜짝 놀랄정도였습니다.
3. 목욕이 일상생활 되어있다.
-> 이를 본 박서생은 위생상의 이점을 밝히며 조선에도 목욕문화를 일상화 시킬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합니다.
다만 아마도 채산성의 문제때문인지 실행되지는 않습니다.
4. 상점들이 널빤지로 진열대를 만들고 상품을 진열해 상품의 위생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 이 또한 박서생은 종로에서 광통교까지 보첩과 진열대를 보급시켜 위생상태를 끌어올릴 것을 주장합니다.
5. 다리를 만들고 다릿세를 징수해 무너질때마다 금방 보수할 수 있다.
-> 처음에 보고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점이자 충격적인부분이었는데, 이런 말이 나올정도라면 조선의 가도상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가정밖에 서질 않습니다. 이건 뭐 아예 나라안 강에 대규모 다리는 존재하질 않는다는 건데....
참고로 이 기술도 일본에 가서 배워오자고 박서생은 주장합니다. 아마도 무시당한것 같지만...
6. 광물자원의 국가독점을 폐지하고 서민들에게 개발권을 주고 세금을 징수하자.
-> 이것또한 조선후기 조선의 경제발전에 가서야 언급되게 됩니다.
뭐 이것말고도 기술, 식생활, 상업등등 세종실록을 보면볼수록 충격적일정도로 "일본에가서 배워오게 했다." , "일본에 가서 구해오게 했다."라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읽다보니 이건너무한게 아닌가 싶어서 얼굴이 붉어질정도로... 조선의 전성기인 세종시절에 이정도의 격차가 나버렸다면 그전시기인 고려시대에도 고려중후반기에선 볼것도 없이 일본에 밀릴게 뻔하니까요. 국력이나 기술, 상업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고..
국사책이나 여러책을 읽으면 일본은 야만적인 국가에 조선의 선전문물을 배우고싶어 환장한 국가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더군요.
도리어 조선이 일본에서 여러가지 기술을 도입하고, 조선통신사들이 가보고 일본의 발달한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던가...
그리고 조선통신사때문에 일본에서 세금부담이 심했던건 사실인데, 조선또한 조선통신사때문에 등골이 휠정도였습니다. 경상도 1년예산을 몽땅 꼴아박아야 겨우 예산이 마련되었고 그때문에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영조시기에조차 투덜거린 기록이 있을정도였고...
후기 조선통신사의 문화의 우월성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저위에 쓴것처럼 조선통신사들이 깔보고 있다가 직접 만나본 일본의 모습에 경악하는 기록들이 대다수. 일본에서 조선통신사의 작품이 인기가 쩔었다지만, 웃긴것은 통신사들이 일본가기전 부산항으로 떠나는 와중에 민중이나 양반들에게 넘겨준 작품들이 일본한번 다녀오면 조선내에서도 인기상품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니 ㅡㅡ;;;
결국 믿을건 도자기 하나뿐이려나요? 근데 이것도 뭐한게 고작 도자기하나로 퉁치기에는 나머지격차가 너무크고... 하긴 이런걸 국사책에 기록했다간 매국노에 일빠로 몰려 까일께 예상되니 그냥 눈가리고 아웅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세금문제인데, 조선이 명, 청나라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서 일본과 같이 세율을 한 50%에서 90%까지 하여 농민들을 착취했습니까? 경상도 1년치 세금을 다 써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중흥기를 맞이한 것은 세율을 50% 유지해야지 겨우 막부와 사무라이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일본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인지요? 세금문제는 일본이 조선보다 나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맞지않다고 보네요.
일본이 조선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면 차라리 에도사람들의 식생활을 보여주세요. 일본 도쿠가와 막부 시때 때 에도는 비천한 거지조차도 백미만 먹어야 했던 지상천국이니까요. 쌀보리 조차도 없어서 보리고개라는 말이 나왔던 조선에 비해 오로지 백미만을 먹어야 했떤 일본 에도사람들, 조선과 비교하면 이 얼마나 천국입니까?
정말 에도시대에 일본인들은 백미만 먹었나요?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정확히는 '에도'사람들만, 즉 동경사람들은 백미만을 먹었습니다. 그게 열심히 개척하고 쌀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쌀값이 내려가자 쌀로 봉급을 받는 쇼군 직속 사무라이들은 생활에 어려움이 생겼죠. 쌀을 받아서 이것을 팔아 돈으로 여러 가지 생필품을 사고 자기 부하에게 봉급을 주어야 하는데, 쌀값이 내려가니 전보다 받는 봉록은 사실상 적어지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잡곡들이 에도에 들어오게 된다면 수요가 적여진 쌀은 값이 더 내려갈 수 밖에 없지요. 그런 이유에서 막부는 에도에 들어오는 곡식은 무조건 쌀에 한한다는 정책을 실행하게 되지요.
그 결과, 에도는 동아시아 도시들 중에서 유일하게 백미만 먹을 수 있는 지상낙원이 된 것입니다.
메밀국수가 주식이었는데 그것도 적어서 개미눈꼽만큼 먹었다던데 사실인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메밀이 일본에 전래되었다고 여겨지는 시기는 5~6세기, 널리 메밀국수-즉, 소바면-을 먹었던 시기는 17세기 초반입니다. 1614년, 慈性이라는 스님께서 쓴 <<자성일기>>에 에도의 常明寺에서 소바면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소바면은 널리 퍼지게 되어 18세기에 이르면 가와리소바, 모리소바, 요소바, 요다가소바, 후레이소바 등등 매우 다양한 소바면이 나타나 소비되게 되지요. 특히, 요소바의 경우. 에도, 쿄토, 오사카에서 보통 오후9~11시, 새벽 3~5시까지 판매를 허용하게 됩니다. 또한 후레이소바라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소바도 나타나 소바면의 소비를 더욱 촉진시키게 되지요.
즉, 에도와 같은 도시에서는 메밀은 주식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야참이나 간식에 비슷한 개념이었습니다. 또한 매우 적게먹은 것은 조선입장에서 일본 개개인이 먹는 소바면의 양을 보면 그런것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많은 메밀이 소비되었지요.
보릿고개는 식량의 반출이 심했던 식민지 시대 예기고
조선의 경우 임란시기나 몇차례의 대가뭄 시기를 제외하곤 식량이 남아돌았던 나라입니다 =ㅅ=;;
관리의 부패나 유통의 문제로 식략 수급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위에 언급한 특수한 시기를 제외하곤 굶어죽을 일은 없는 나라였죠.
화폐가 발달하지 못한이유? -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글쎄요, 그렇게 따지면 조선만이 아니라 삼국시대 및 고려도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들이 됩니다. 안고쿠케이지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곡식많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는 거란2차침입 때 서경의 곡식을 모든 서경민에게 나누어 주고도 식량이 남아서 대동강에 침몰시키려고 하였죠. 단순히 흉년 때 진휼정책으로 행하였다로 따지면, 삼국시대나 고려나, 조선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근대 이전에는 춘궁기는 당연한 것이었으니 흉작으로 인하여 춘궁기에서 농민들이 버틸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해동천자님하고 유문기님은 전공이 동양사이신가요? 진짜 세세한 디테일까지 빠삭하시내...
제가 대학에서 교양으로 조선사 듣는데 보릿고개는 정말 일제강점기에나 있던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이란 나라는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입니다.
허......5년전 댓글로..다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