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강가에서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구월 넷째 주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첫차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노점에 펼치는 시장을 봐 오기 위해서다. 소답동과 구암동을 지날 때 시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차에 오르는 할머니들도 보였다. 나는 합성동 시외주차장을 지난 마산역에 내리고 할머니들은 같이 내리지 않음을 미루어 어시장으로 시장 보러 가는 길인 듯했다.
평소 삼진 방면으로 산행을 나설 때 이른 시각 마산역 광장에 들렀지만 순수하게 시장을 보기 위해 찾기는 처음이다. 작년에는 어쩌다 텃밭을 가꿀 기회가 생겨 가을 푸성귀가 흔해 이웃과도 나누었으나 올해는 그럴 여건 못 된다. 봄철에는 손수 산나물을 뜯어오기에 장터에서 찬거리를 구하지 않았으나 철이 바뀌니 상황이 달라져 시장의 푸성귀를 조달해야 식탁에 찬이 되어 올랐다.
재래시장이나 대형 할인매장에 파는 찬거리도 좋겠으나 나는 마산역 번개시장이나 노점의 푸성귀에 친근감이 더 갔다. 산지에서 선별이 되지 않은 채 흙이 묻었거나 찌그러진 못난이도 나왔다. 이럴수록 더욱 시골다워 고향의 흙내음이나 땀내를 느낄 수 있어 더 친화적으로 다가왔다. 할머니가 펼쳐 파는 제철 솎음배추와 열무에 이어 껍질을 벗겨 파는 도라지와 고구마 잎줄기도 샀다.
남지에서 캐왔다는 땅콩을 사고 나니 그 곁에는 한 할머니가 청도산 송기떡을 팔았다. 백화점이나 떡 가게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은 송기떡이라 두 가닥을 샀다. 시장을 본 물건들을 배낭에 채우고 손에도 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복귀해 거실 바닥에 부려 놓고 이후 식탁에 오르는 과정은 나와 무관했다. 나는 그길로 선걸음에 발길을 돌려 산책을 나서 아파트단지로 내려섰다.
이웃 동 꽃밭에는 꽃대감과 밀양댁 할머니가 가을에 핀 꽃들을 살피고 있었다. 친구한테 간밤 유튜브에 올려둔 꽃범의꼬리꽃 영상을 잘 보았노라고 인사했다. 두 사람과 헤어져 나는 나대로 아침나절 일과 활동을 나섰다. 동정동으로 나가 대산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주남저수지와 면 소재지 가술을 지난 제1 수산교에서 내렸다. 다리를 건널 때 산야에는 안개가 걷혀갔다.
수산교를 건너간 강둑에는 내 나이 또래로 짐작되는 두 사내를 만났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라는 글자를 새긴 모자와 조끼를 입었는데 그 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밀양강이 흘러온 오산까지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불법 유해 환경을 감시한다고 했다. 두 사내를 뒤로하고 수산대교에서 명례 방향의 강둑 자전거 길을 따라 걸었다. 아침 햇살이 번지는 강변 둔치 풍광을 바라봤다.
대평리를 지나다 강변 정자에 올라 가져간 삶은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구한말 천주교 전래 과정 순교자를 배출한 명례 성당을 앞두고 둔치로 내려섰다. 몇 해 전 당국에서 ‘명품 십리 길’이라는 구절초 쑥부쟁이 꽃길을 조성했는데 그간 관리가 부실해져 물억새와 갈대만 무성했다. 그래도 산책로를 겸한 자전거 길 길섶은 풀을 잘라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평원을 연상하리만치 드넓은 둔치에 꽃이 피는 물억새의 열병을 받으면서 수산으로 되돌아왔다. 파크골프장의 잘 다듬은 잔디밭에서 스틱으로 공을 몰아가는 골퍼들을 볼 수 있었다. 울타리 모과나무에는 주렁주렁 열린 모과가 잘 영글고 있었다. 수산으로 돌아오니 장터는 오일장을 맞아 상인과 손님이 더러 보였다. 강가에 저지대서 캐낸 연근이 흔해 한 무더기 사서 배낭에 넣었다.
수산에는 꽤 알려진 ‘수산국수’ 공장이 있다. 거기로 가니 자연 채광에서 건조 시킨 국수가 명품인데 다 팔려 며칠 뒤 나온다고 했다. 투명 아크릴이 덮인 천정 건조장엔 면 가닥을 말리는 중이었다. 수산국수 대체재가 되는 서가네 국수 세 다발을 사서 아까 건넜던 제1 수산교를 건너왔다. 본포에서 가술로 가는 41번 녹색버스가 다가와 탔다. 버스는 주남저수지를 둘러 원점으로 회귀했다. 23.09.23
첫댓글 그림이 멋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