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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다(4)
행 13:1-12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 설 교 >
안디옥교회와 같이
행 13장 4~12절 / 서윤발목사
Ⅰ. 서 론
교회는 아름다운 소문이 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아름다운 소문이 나야 하고, 사람을 사랑함으로 아름다운 소문이 나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소문이 난 교회가 많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안디옥 교회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Ⅱ. 본 론
1.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기 까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와 다른 여러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서 설립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곳에서 신앙의 기초를 세웠고 또 많은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당시 예루살렘교회에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상당한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그렇게 많이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만 사도들은 아직까지 다른 곳에도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늘 복음을 전하지만 거의 예루살렘 안에서만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다른 지역에도 교회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집사님의 사건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도들이 교회의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곱명의 집사님들을 일군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명의 집사님들은 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사님들은 교회에서 구제하는 일만으로는 성에 차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나가서 전도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스데반이라는 집사님은 아주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이 분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 율법을 행해서 구원 얻는 것 아니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얻는다', '성전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구원얻는 것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구원 얻는다' 그러면서 설교를 하니까 이 분의 전도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화가 나서 말하기를 이 스데반이 지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을 모독한다. 그러면서 돌을 던져서는 죽여 버렸습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있고 난 뒤에 유대 당국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가만히 나 뒀다가는 안되겠으니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겠다. 그렇게 결정하고 기독교인들과 교회에 대대적인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 핍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기독교인들이 도무지 예루살렘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각지로 흩어져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앙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나라를 떠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흩어져서 살게 된 교인들이 신앙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버릴 수 없습니다.
신앙 지키려고 피난 왔는데 피난와서 신앙을 버린 다면 헛 수고를 한 셈입니다.
그러니 각 지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자연히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들은 전혀 계획하지 못했지만 다른지역에도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또 크게 쓰임을 받게 된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라는 것은 안디옥 지역에 세워진 교회라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지역에 교회 건물을 크게 지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냥 모이기만 했습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그리고 전도하고 그러다가 점점 수도 늘어나고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부흥한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1) 이 교회는 세계 여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의 중심지가 되어서 아주 귀중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EX) 오늘 본문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서 파송을 받고 제일 먼저 간 곳은 구브로라는 섬이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 연안에서 세 번째로 큰 섬입니다.
구브로라는 이름 자체는 "행복한 섬"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여러 가지로 풍족한 섬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도착하기 얼마 전에 중요한 지역으로 승격이 되어서 로마 총독이 파송되어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런 구브로에 도착해서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그 당시 구브로 섬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바보라는 도시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에는 로마총독의 관공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 특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구브로에 파송되어 있던 로마의 총독은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도 이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자기에게로 초대를 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총독이 복음을 듣게 되면 아무래도 이 지역이 복음화 하기가 쉬워 집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를 방해하는 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이 총독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박수였습니다.
남자 무당이라는 말입니다.
본래의 의미로 하면 궁중마술사, 영매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또 바예수입니다. 엘루마라고도 불렀습니다.
※ 바예수는 "예수의 아들" "구세주의 아들"이라는 의미
※ 엘루마는 "재주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
여러 가지 주술적인 행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구원을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이 사람을 가리켜서 마귀의 자식이라 했습니다.
총독이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서 복음을 들으려고 하니 이 사람이 제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이 박수가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면서 총독에게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훼방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방해하는 엘루마를 보고는 성령이 충만해 지가지고 책망했다.
10-11절---▶"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했다.
그랬더니 이제까지 멀쩡하던 이 박수 무당이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서 소경이 되어 버렸다.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총독이 옆에서 이 모든 일들을 보고는 놀라서 그 모든 일들을 믿으며 그 가르침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다.
복음을 방해하던 그 박수 엘루마 때문에 오히려 총독이 더 빨리 하나님께로 나오게 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고 복음이 전달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바울이 사역하는 순간 순간 마다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놀라운 일들을 바울 혼자 감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열심히 세계선교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런 좋은 열매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안디옥 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리고 이 교회는 교회를 다니지 안던 사람들까지도 교회의 교인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그러면서 구분하여 불렀다고 했습니다. 좋은 소문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2. 안디옥 교회의 특징들
여러분, 어떻게 피난온 사람들이 세운 그렇게 왜소한 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예루살렘교회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는가? 또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소문이 날 수 있었겠습니까?
본문을 보면 안디옥 교회가 이렇게 좋은 교회로 자라난 것은 거기에 몇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1) 좋은 교사들이 있는 교회
안디옥교회에는 좋은 교사들이 있어서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3장 1절을 보면 교사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① 바나바 - '위로자', '권위자'라는 뜻.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름 이름이 나중에 붙여진 것으로 안다.착한 사람이라고 했고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 사람은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영입하고 함께 사역을 합니다.
② 니게르라는 시므온 - 니게르라는 말은 라틴어로 검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Negro' 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이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사람도 훌륭한 성경교사로 봉사하고 있었고
③ 구레네 사람 루기오 - 구레네는 오늘날 리비아입니다.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④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 헤롯은 요한을 목베었던 이스라엘의 분봉왕을 말하는데 이 분봉왕 헤롯과 어릴 적부터 한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자란 사람이 마나엔이다.
헤롯이 태어났을 때 헤롯의 어머니에게 젖이 잘 나지 않아서 다른 유모를 부르기보다는 같은 젖먹이를 키우고 있는 신분 있고 덕망있는 신하의 집에 이 헤롯을 맞겨서 키우게 되었다. 그래서 헤롯은 마나엔과 함께 자라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나엔은 헤롯의 신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생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요한을 목베어 죽이고 권력을 누리며 살고 있고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높은 지위를 마다하고 안디옥까지 와서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의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⑤ 사울 -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 대 학자, 위대한 전도자. 신약의 대부분의 서신을 기록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중에 바울로 이름을 바꾼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훌륭한 교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말씀으로 잘 양육이 되었습니다.
저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늘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합니다.
앞으로 교회가 성장하면서 더 많은 좋은 교역자들을 모셔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리고 잘 훈련받은 교사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여러분도 이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기 바란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좋은 교사들이 있어서 잘 양육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이런 부분에서도 축복 받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는 교회였다.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성령께서 이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시키실 선교의 일을 위해서 따로 세우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명령을 듣고는 다시 금식하고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성령의 지시대로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고 안디옥 교회는 이런 두 사람을 위해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안디옥 교회로 볼 때에는 이들을 파송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실질적인 지도자들이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빠지게 되면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이것이 주님의 뜻이고 기뻐하실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순종했습니다. 교회의 현실적인 유익을 따지지 않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라는 겁니다. 선교하라는 겁니다.
아예 그렇게 하라고 성경에 새겨놓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는 것은 교회의 부수적인 일이 아니다. 해도 되고 아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라고 명령하신 일입니다.
때로는 직접 나가 전도하고 때로는 기도로 지원하고 또 물질로 후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 많은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돈은 안 빌렸을 지라도 사랑의 빚은 다 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께 빚을 졌습니다.
나에게 복음 전해주기 위해 애써다 가신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고 기도해 주던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이 빚들을 다 어떻게 갚을 겁니까?
세상의 빚은 빚진자에게 돌려 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의 빚 사랑의 빚은 빚진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줘야 하는 빚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그것이 바로 빚을 갚는 일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교회가 개인이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더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안디옥 교회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니 안디옥 교회가 어려워졌습니까?
아닙니다. 세계선교의 중심지로 세워 졌습니다. 교회가 견고해지고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재정적으로도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명을 두고 달려가는 교회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명을 두고 달려가는 개인도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귀중하게 쓰임 받는 개인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좋은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였다.
① 안디옥 교회는 이방지역에 있었지만 그 교회를 설립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상당히 배타적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이방지역으로 쫓겨오기 전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외국에 살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회당을 지어 놓고 철저하게 유대인 중심으로 모입니다. 그러다가 특별히 이방인이 신앙을 가지기 원하는 일이 있으면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할례를 받더라도 유대인처럼 신앙생활은 못했습니다. 함께 교제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의 교인들은 달랐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은 이방지역에도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전도된 이방인들을 교회안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어떤 장벽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할례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이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보고할 때 하는 말을 보면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한 데 어울려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갈2:11-14)
② 예루살렘을 위하여 구제금을 보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개방된 교회였다는 것은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금을 보낸 것을 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Ⅲ. 결 론
1. 좋은 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복음을 위해 쓰임받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안에서 차별없이 사랑하는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자
행 13장 4~12절 / 신성종목사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제 아버님께서 닭을 한 마리 잡았으니 큰아버님 저의 집에 오셔서 아침 진지 잡수시라는 심부름을 제게 시켰습니다. 그 때에는 닭고기를 먹는 다는 것은 일년에 몇 번 안 되는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마침 큰아버님 댁에 갔을 때 형님과 동갑의 형제들이 아주 재미있게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고무공인데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함께 놀다가 그만 깜박 심부름 온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버님께 야단 맞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냥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다가 깜박 잊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 화) 아주 여러 해 전 40 여 년 전에 본 영화가 생각납니다.
[길]이란 영화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성격 배우인 안소니 퀸이란 이란 사람과 또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키도 작고 참 못생긴 여자 배우가 두 주인공이었습니다. 안소니 퀸은 서커스단의 웃기는 광대 역할을 하고, 그 여자는 그를 도와주는 조수의 역할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여 배우는 안소니 퀸을 사랑하지만 항상 괄세만 받습니다. 나는 못생기고, 할 일도 별로 없고, 남들처럼 결혼도 못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여자가 아닌가 하고 괴로워할 때 안소니 퀸이 옆에 가서 말하는 장면이 참 일품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때 안소니 퀸이 돌 하나를 발로 차면서 이 돌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 의미가 있고 할 역할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의 들꽃도, 아무도 안보는 곳에 있는 나무도 다 할 일이 있고, 의미가 있다면 인생 가운데 의미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소위 식물 인간도 불필요한 사람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라는 제목으로 함께 [사명자]를 주제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사명의 뜻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명이란 영어로 mission이라고 말합니다. 라틴어 missio란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사명자란 선교사란 말과 동의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넓은 의미에서 다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다 사명자 대회에 온 마음으로 함께 우리의 사명을 결단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인용) 요 15:16절, 사 43:1절, 벧전 2:9절
1. 사명감이 있는 사람과 사명감이 없는 사람의 차이점
미국에는 지금 2만 5천 가지가 넘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귀중한 직업이 무엇일까요? 목회자? 거짓말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아들이 목회자가 되려고 할 때 반대하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 자신이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돈 버는 것이지요. 우리는 돈 버는 것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만 벌려고 합니다. 저는 돈을 버는 것을 나쁘다거나 천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도 유학생으로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일년 가서 그만 두었는데 그 이유는 돈이 너무 많이 벌려서 이러다가는 목회자가 못 되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의 종류가 아닙니다. 사명감입니다. 심지어 목회자가 되어도 사명감 없이 목회를 하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 받지 말고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노동을 해도 소명감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사명감은 그 사람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말한대로 직업대로의 사람이 됩니다. 형사가 되면 사람을 보아도 범인인가 아닌가 하고 보고, 의사가 되면 그 사람의 병이 무엇인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상인이 되면 저 사람에게 어떻게 물건을 팔 것인가 하고 봅니다. 교사는 상대방을 가르치려고 하고, 목회자는 자기 교회로 인도하려는 관심으로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직업이 그 사람의 성품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명 감이 없을 때의 말이고, 사명감이 있을 때에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청소부에서 신문팔이, 및 구두 닥기 등 참으로 세상에서 천한 직업이란 것을 여러 가지 해보았지만 그러나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조금도 비굴하지 않게 살았습니다.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떳떳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사명감은 중요합니다.
(예화)언제인가 제가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우렌경의 예를 예화로 든 적이 있습니다. 오늘 그것을 반복하겠습니다. 그가 성 바울 대사원을 건축할 때의 일입니다. 많은 물질과 인원을 동원해서 큰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크리스토퍼 우렌 경이 평복을 입고 한창 일이 진행되는 공사 현장을 혼자서 시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한 석공이 무표정하게 대답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6자 길이에 3자 폭의 돌기둥을 깎고 있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한 석수가 아니꼽다는 듯이 대답을 합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이 짓을 해요. 또 다른 곳에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선생님 보시는 대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렌 경의 지휘 밑에서 건축되는 이 웅장한 성 바울 대사원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꼭 같은 일을 해도 사명감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이렇게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화)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는 생명이 위기에 놓여 있을 때에 큰 차이가 나타납니다. 유명한 프랭클 박사는 2차 세계 대전 때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독일의 항복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존 에프 케네기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에 프랭클의 말을 인용하였기 때문입니다. 프랭클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인생을 긍정한다. 인생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묻기 전에 내가 인생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먼저 묻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케네기가 취임식 때에 인용하였고, 케네디 대통령이 유명해졌습니다만 그라나 사실은 프랭클의 말이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안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프랭클 박사처럼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 고통을 잘 참고 견디었습니다.
2.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확신]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항상 동행]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요셉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제가 교도소에 갈 때마다 인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갔을 때에도 떳떳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비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그에게 절하는 계시의 꿈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었고, 그는 그것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계속해서 나오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했고 21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더욱이 보혜사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다만 본인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명감이 있는 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제가 지난번 8월 말 경에 김봉근 권사님이 입원한 병원에 갔을 때에 권사님이 하신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습니다. 이사야 41:10절의 말씀을 가지고 저를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위로하러 갔다가 위로를 받고 왔습니다.
3. 사명감을 갖는 비결은?
우리는 다 사명감을 가져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사명감을 가질 수 있습니까?
(1) 먼저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영안]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만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안됩니다. 지식은 수평적으로는 볼 수 있게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종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서 있는 자리, 내 위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됩니다. 시대적인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고 책망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사명감이 없었기 때문에 시대를 분별하는 영안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분별해야 하고,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2)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사명감을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내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명감을 주셔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명감은 기도와 직결됩니다. 솔직히 저도 기도하지 않을 때에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감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는 혈기가 나고, 남을 욕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그런 것들은 살아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3) [말씀에 능통한 사람이 될 때에] 영적인 안목을 소유하게 되고, 영적인 안목을 가질 때에 사명감도 생기게 됩니다.
성경은 단순히 구원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책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사를 중심으로 어떤 역사관을 가져야 할 것인지, 어떤 인생관을 가져야 할 것인지, 어떤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인지 우리들에게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문학이 다 있고, 모든 지혜가 다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40년 간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연구하면 할수록 깊고, 어려운 것을 느낍니다. 성경을 처음 연구했을 때에는 스토리만 알았습니다. 얼마 지나자 성경을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또 계속해서 연구하자 이번에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알게 되었고,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을 보는 안목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우 구원받을 만큼의 성경 지식만 갖지 말고, 전체 꾀 뚫을 수 있도록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저의 [망원경식 성경 연구]란 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4) 다음은 [큰 믿음]을 가져야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먼저 [형식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체험이 없는 믿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부모에게서 믿음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이 체험을 전혀 하지 못하면 이런 형식적인 믿음이 됩니다.
다음은 [적은 믿음]이 있습니다. 작은 믿음은 구원은 받게 하지만 근심 걱정이 올 때에 환경으로 인해서 괴로워합니다.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 적은 믿음은 바로 [연약한 믿음]입니다. 주님은 적은 믿음, 연약한 믿음을 가진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다의 폭풍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바로 큰 믿음이었고,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큰 믿음이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이런 큰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유의 은사를 베풀 때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고 칭찬을 한 것은 바로 큰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선민이란 유대인들은 보지 못했으나 이방 백부장은 보았고, 소경들은 가장 잘 보았다는 점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믿음이란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큰 믿음은 지. 정. 의가 다 있는 믿음입니다. 먼저 [지적으로] 성경을 알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압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형식적인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지성인들의 믿음이 위험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성경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적인 면]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믿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다음은 [의지적인 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 commitment, 주님 마음대로 써 주옵소서 하고 내어 맡김이 있어야 큰 믿음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감성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서양 사람들은 지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 같이 부분적이고 문제가 있습니다. 지.정.의의 세 면이 다 조화를 이룰 때 큰 믿음이 됩니다.
4. 사명감을 가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1) [주님의 일을 맡겨주십니다]. 세상에서는 일이 없는 사람을 실직자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왔다 갔다만 하는 교인은 [구경꾼 신자]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교회의 일은 사명감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합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아무런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사명감에 따라서 일을 맡기십니다. 물론 믿음이 없이 교회의 높은 직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직분자들 가운데는 불신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은 직분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하며 이사야 선지자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사명감을 갖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위대한 선지자의 한 사람인 이사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2) 사명감을 가지면 [모든 일에 지도적인 위치에 서게] 됩니다.
지도자와 피 지도자의 차이점은 사명감을 얼마나 강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교회에는 계급이 있은 것이 아닙니다. 사명감의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의 일의 종류와 양이 결정될 뿐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 집사 등 소위 일꾼들의 신분이 있습니다만 사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적인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비록 주님의 열두 제자의 하나였지만 그는 지도적인 위치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명감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소설이나 모든 작품을 보면 반드시 높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거지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지위에 관계없이 자신의 역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하나였지만 그러나 그는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함께 있었을 때에 그는 배신자가 되었고 역사에 최악의 사람이 되고 만 것처럼 우리도 어디에 서 있느냐, 누구 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하고,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3) 사명감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에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명감이란 주님께 붙어있는 가지의식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사명감 없는 사람이 큰일을 남긴 경우가 없습니다. 마치 졸부처럼 잠간 있다가 안개처럼 살아졌을 뿐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다 자신의 사명감을 느낀 사람들이고,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사명감을 가졌고, 그가 응답할 때에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하나님 앞에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그 소명감과 사명감이 바로 모세를 있게 했습니다.
(4)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한 사람은 [천국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사명감을 가지고 5 달란트를 가지고 5 달란트 남긴 사명감이 있는 종과 2 달란트를 가지고, 2 달란트를 남긴 사명감이 있는 종을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면서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1 달란트 받고 아무런 사명감도 없이 그냥 땅에 묻어둔 종에게는 “이 악하고 무익한 종아“ 하시면서 책망을 했습니다. 사명감으로 사는 사명자들은 천국의 상급이 있습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사명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사명자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잘 감당해서 성공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상문화를 꺾으려면
행 13장 4~12절 / 조재진목사
요즘 많은 성도들의 고민은 세상문화 한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사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 믿는 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없는 대학 문화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선배들이 주는 술을 받아 마셔야 되는가 아닌가를 고민합니다. 공부하러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는 두 번째 문제이고 우선 타락한 대학 문화를 믿음으로 이기는 것에서 지쳐버린 자녀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녀들을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이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 안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기가 그렇게 만만치 않지요. 하나님 없는 세상문화, 우상문화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기고 있습니까? 어떻게 술자리를 피하고 어떻게 고사지내는 문화를 이겨나갑니까? 믿는 성도들이 직장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저는 정말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우상문화, 미신문화를 이기는 영적인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과제입니다.
세상 문화의 정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세상문화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 문화가 그냥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보면 그 배후에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사단의 무서운 전략이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냥 "빠른 템포에 춤을 추는 댄스곡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리듬과 가사의 내용에는 청소년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악한 사상이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듣고 자라나는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하게 됩니다. 요즘 어린아이들이 보는 만화나 아이들 놀이를 보면 귀신이야기, 마법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실 귀신이야기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나 만화, 그리고 TV에 아주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해리포터의 마법"이라는 책이 전세계 어린이들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이야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지요.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의 영향으로 어린아이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들을 보면 어린이부가 점점 줄어가는 심각한 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문화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문화는 복음증거의 큰 장애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주팔자를 보고 점을 치는 행위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얼마 전 통계를 보니까 연초에 보는 사주팔자나 점을 치는 사람들이 팔백 만 명이나 되고 그 시장만하더라도 거의 1조원 정도가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고는 고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차 속에 북어 대가리하고 실뭉치를 넣어 둡니다. 부적을 붙이기도 하지요. 왜 사람들이 이런 우상문화, 귀신문화에 쉽게 빠져갑니까? 그것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삶의 문제는 너무 많은데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만 잘못 꾸어도 불안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악한 사단은 이런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문화, 귀신문화에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런 우상문화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병들고 민족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문화, 우상문화는 악한 사단이 인간의 삶을 망하게 하려고 문화라는 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장악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한 사람이 태어났는데 태어나고 보니까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나라입니다. 이 사람은 평생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태어났는데 보니까 불신자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아예 한 민족, 한 가족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막는 것이 바로 사단의 전략입니다. 악한 사단은 아예 세상문화를 하나님 없는 문화로 만들어서 복음을 들을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 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사단의 전략을 바로 알지 못하면 얼마 안가서 온 땅에는 불신앙과 우상문화가 뿌리내리고 말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없는 문화가 힘을 가지고 서서히 온 땅을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대학 안에는 하나님 없는 학문이 중요한 이론으로 발전해 갑니다. 역술이 얼마나 논리 정연합니까? 굿하는 것이 힘이 있습니다. 점을 보면 미래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틀린 답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속고 있습니다. 우상문화가 요즘에는 방송과 손을 잡았습니다. 역술인들을 인간 문화제로 만들고 책을 내고 영화화하기도 합니다. 또 우상문화가 권력자와 경제인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정치인들이 무속인을 찾아다니고 경제인들이 무속인들의 말을 듣고 경제정책을 펴냅니다. 그 중에서 복음증거에 많은 방해가 되는 것이 제사 문화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기를 꺼리는 것은 바로 제사 때문입니다. 한국사람들이 유교의 영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을 한국의 문화의 뿌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것 역시 악한 영이 복음을 방해하는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제사지내는 것과 효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을 귀하게 여기고 효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진 갖다 놓고 절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너무 분명하게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고전10:20, 신32:17)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효도는 죽은 부모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부모에게 하는 것입니다. 가문을 일으키는 것은 사진 갖다놓고 절하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이 하나님 복받는 것입니다. 사단은 너무 교묘하게 복음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망하게 합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 노아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문화를 그대로 따라 갔습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롯은 저 소돔성에서 세상문화를 따랐습니다. 믿음으로 세상문화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롯은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다니엘과 세친구는 세상문화, 우상문화와 싸웠습니다.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한 시대의 위대한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문화, 귀신문화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문화 한가운데 살면서도 오히려 세상문화를 이기는 영적인 능력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상문화와의 영적인 전쟁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 이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할 이 세상의 현장은 악한 사상과 우상문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 바나바와 사울이 찾아간 첫 번째 선교지가 바로 구브로 섬이었습니다. 구브로섬은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구브로 섬의 영적인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 섬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첫 번째 만난 사람이 바로 박수무당이었다고 말합니다. 6절에 보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 하는 유대인 거짓선지자 박수를 만나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름이 바 예수입니다. "예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박수무당이었고 구브로 섬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박수무당이 복음증거를 방해하고 나섰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늘 부딪히는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이 무속신앙입니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 가도 공통적인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면 제일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토속신앙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가든 무속신앙, 토속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복음이 들어가려고 하면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좌천 동 일대를 전도할 때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감사하게도 그 동안 불교서점도 없어졌고, 철학관들도 없어졌고, 교회 뒤에 있는 절도 지금은 비어있다고 합니다. 참 감사하지요. 이제는 앞에 있는 남묘호랜겐교가 떠나가야 할 줄 압니다. 저는 이 좌천동 일대가 복음의 동네가 되기를 바라고 교회앞 거리가 복음의 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 섬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만난 두 번째 사람이 바로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입니다. 7절에 보면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서기오 바울은 구브로 섬의 총독이었지만 영적인 갈급함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성경은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바나바와 바울을 초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진리에 갈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흔히" 예비된 영혼"이라고 합니다.
예비된 영혼이라는 것은 전도에 있어서 참 중요 단어입니다. 사도행전13:48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복음을 듣고는 바울을 비방하기도 했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었습니다. 이 때 믿은 그 사람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기가 막히게 설교했더니 설교에 감동 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말에 설득 당해서 예수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이미 작정하고 성령님이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은 하나님이 예비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갈급해서 일부러 바나바와 사울을 초대해서 복음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바 예수라는 박수무당이 복음증거를 방해합니다. 8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보십시오.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이 박수무당이 방해했습니다. 이런 복음의 방해들이 이 땅에는 늘 있습니다. 이런 방해는 가정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제대로 믿으려고 하면 식구들이 못 믿도록 난리를 칩니다. 예수 믿는 자매가 예수 믿지 않는 가정에 시집가서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하면 시집식구들이 다 일어나서 안된다고 방해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한 동네,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나면 나라 전체가 들고일어납니다. 절이 일어나고 무당들이 들고일어납니다. 우리는 문민 정부때 이런 현상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어떻게 우상문화에 빠진 세상을 복음으로 살려냈습니까? 오늘 우리가 보아야될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상문화를 이기려면
9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나옵니다. 9절을 보십시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에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이 9절의 말씀에서 우상문화를 이기는 길, 귀신 문화를 꺾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우상문화를 꺾으려면 무엇보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상문화, 귀신문화는 지식운동이나 윤리운동으로 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있는 사람들도 귀신문화에 빠집니다. 점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통계에 의하면 국회의원들입니다. 그 분들이 무식해서 점보러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상문화를 꺾으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있을 때 악한 영들은 이 사실을 압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악한 영은 우리 앞에서 벌벌 떱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악한 영을 내어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찬송에 능력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령충만한 사람이 찬송을 부를 때 악한 영들을 두려워 떱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충만한 사람이 기도하면 그 기도에 악한 영이 두려워 떱니다. 똑같은 찬송이지만 어떤 사람이 부르는가에 따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수금을 타며 찬송할 때 사울에게 붙었던 악한 영이 떠나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도사 시절 시골교회에서 귀신들린 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시도한 적이 있었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앞에 놓고 죽 들러 앉아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했는데, 그래도 악한 영이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는데 시원찮게 믿고 있는 한 사람의 차례가 되니까 조용히 앉아있던 귀신들린 사람이 갑자기 눈을 치켜 뜨더니 "너는 안믿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그만 믿음 없던 이 분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오 주여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소리지르며 엎드려 통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들린 한 사람 때문에 교회 안에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고 우상문화를 이기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고 기도 많이 하면 악한 영이 애들같이 느껴져서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한 마디 말에 귀신이 다 떠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는 악한 영이 얼마나 무서워 보이는지 모릅니다. 너무 큰 세력으로 다가와서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성령으로 충만합니까? 우상문화를 꺾을 만큼 능력있는 사람입니까? 성령 충만 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라
악한 영을 꺾는 두 번째 원리는 피하지 말고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박수무당을 주목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했다는 말은 희랍어로 "아테니조"라는 단어로 "전혀 주저하지 않고 똑바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말입니다. 영적인 싸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울은 박수무당 바 예수를 똑바로 보았습니다. 꼬리를 내리는 개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합니다. 딱버티고 서야 합니다. 등을 돌려서도 안됩니다. 악한 영이 역사한다고 복음증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싸우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이 도전해 오면, 혹시 우리 안에 악한 세력이 있다면 우리는 눈을 딱 부릅뜨고 그것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음욕과 욕심을 타락된 생각을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약4:7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를 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피합니다. 아무리 악한 영이 강하게 역사해도 예수 이름의 권세는 더 강합니다. 두려워 말고 대적하시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을 꾸짖고 악한 영을 향해 명령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10절에 보면 "...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십시오 우리는 악한 영을 향해 꾸짖을 정도로 영적인 권세있는 자들입니다. 영적인 권위를 잃으면 야단칠 수 없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자녀들을 향해 꾸짖을 수 있을 때입니다. 악한 영을 기도로 묶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있는 영적 권세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관계없는 영적권세가 성도들에겐 있습니다.
왜 성도들에게 영적 권세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일3:8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 분이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눅10:19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를 제어할 권세를 주셨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여러분들에게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성령이 충만하여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다 보면 어떤 영적 분위기를 분명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집은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한 집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집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답답한 집안이 있습니다. 또 괜히 신경질이 나는 집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집안의 영적 분위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악한 영이 떠나고 성령님이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우리 집에 역사하는 악한 영을 결박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악한 영을 향해 분명히 꾸짖어야 합니다. "이 더러운 영들아 너는 속임이 가득하고 악을 행하는 자이고 너는 마귀의 자식이고 모든 의의 원수가 아니냐! 우리 집에 가만히 들어와 부부사이를 이간질시키고, 자녀들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이 악한 영들아 지금 결박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에수 이름의 권세로 마귀를 꺾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식이 있다고 악한 영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산다고 악한 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을 대적할 때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사울이 아주 강하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그랬더니 그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서 인도할 사람을 찾게 되었다고 성경을 말합니다. 아마 "죽을지어다" 그랬다면 죽었겠지요.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입니다. 이 일을 보고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바울로 이름을 바꾼 사울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사울이 그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성경은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라고 말합니다. 원래 사울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반면 바울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또 사울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큰 자"입니다. 바울은 "작은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왜 사울이 그 이름을 바울이라고 바꾸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대식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면서 이방인 선교에 대한 마인드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사울은 전도를 시작하면서 전도의 현장에서는 사울로 설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생명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교만해서는,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는 한 영혼도 건질 수 없습니다. 아마 그는 이런 상황에서 그는 이름을 바울로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전도할수록,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수록 "나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구나. 주님 저는 작은 자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크기와 사람들의 숫자와 돈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몇천 명이 모이는데..." "우리 교회 예산은 몇 십억이 되는데..." 이런 말이 우리 입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특히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면 한 영혼도 건질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목회할 때, 청량리역에 나가 찬양전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젊은이를 만나 복음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무엇이며 성경과 코란은 어떻게 다른가"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질문을 받고 너무 좋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전공 아니겠습니까? 저는 신이 나서 한 30분 정도 열강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 믿겠느냐?"라고 했더니 "안믿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일어나서 가는 것입니다. 저는 참 허무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 지식을 가지고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내 말에 설득 당해서 예수 믿을 사람이 없다"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저는 겸손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식을 자랑하는 것, 돈을 자랑하는 것, 무슨 크기를 자랑하는 것으로는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영원히 겸손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영원히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고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사울이 그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나는 작은 자입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방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상문화, 악한 귀신 문화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악한 영들을 꺾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주님 바라보는 축복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는 자의 별명
행 13장 4~12절 / 김창인목사
오늘은 사도행전 13장 4절에서 12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믿는 자의 별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고, 별명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별명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별명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고 좋지 않은 별명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국으로 흩어 보내시면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돌아온 다음에 "너희들이 전국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접촉했을 텐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능력을 많이 행하던 엘리야가 다시 살아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바로 얼마 전에 죽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라고 한 것은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붙여 준 하나의 별명입니다. 그래도 좋은 별명입니다.
그러나 아주 나쁜 별명을 붙여 준 경우도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좇아낸다고 하였습니다. 즉 귀신의 왕초라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세례요한처럼 금식도 잘 하지 않았기에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즉 향락주의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주위의 친구를 보면 전부 세리요,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 알지 않느냐? 예수가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좋지 않은 별명입니다. 좋지 않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별명을 붙여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우리는 어떤 별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보냄 받은 자 (4-5)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언제 이 세상에 태어나겠습니다. 저는 그 때가 아니면 죽어도 태어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날짜를 놓고 하나님과 의논하고 태어나신 분들이 있으시면 손들어 보십시오. 없지 않습니까? "나는 누구의 아들이 되고 누구의 딸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과 의논하셨습니까? "나는 남자로 태어나겠습니다. 혹은 여자로 태어나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주권적행사로 여러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시면 여러분들은 세상에 태어날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같이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아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때는 가서 먹고 놀다가 오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기에 사명이 주어져서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 사명을 위해서 또 일할 곳으로 보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요나는 니느웨로 보내졌습니다. 요나의 사명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백성들을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그가 가지 않겠다고 도망하여 잘 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죽어 죽어하다가 겨우 살아나 회개하고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한 후에야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진작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후에 요나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요나는 그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 교회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곳에 그냥 남아 있었으면 일신에는 편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지시하기를 가사로 가는 광야 길로 빨리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광야 길로 가면 고생이 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빌립 집사는 광야 길로 단숨에 달려 갔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병거 속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지만 그 뜻을 전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답답한 중이었을 때 성령이 빌립 집사에게 지시하여 찾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내시는 "빨리 병거로 올라 오라"하여 빌립 집사를 모셨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성경을 가운데 놓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화가라면 이 장면을 하나쯤 그려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그림을 찾아보았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빌립 집사가 그 내시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를 증거했더니 "그 예수님을 내가 믿겠오"하고 물이 있는 곳에 가서 세례를 받고 떠나 갈 때는 흔연히 즉 기쁨으로 돌아갔습니다.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온 이유를 찾아보려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솔로몬 왕 때 그 에디오피아의 여왕이 예루살렘에 솔로몬을 찾아 왔다가 유대교를 가지고 돌아가서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내시는 유대교인으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던 것입니다. 그 내시가 예수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를 모시고 돌아간 것입니다. 에디오피아의 유대교도들을 전부 기독교로 개종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루어 놓은 것이 coptic church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국가가 에디오피아입니다. 그 결과 전부 coptic church에 속한 교인들이 수십 만명입니다. 복음은 수십만배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빌립 집사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빌립은 이 사건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어 보내셨을 때 순종하니까 되고 순종하니까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께 보냄을 받았다면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긍지를 가질 일입니까? 빌립 집사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왔고 우리도 그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도 보내고 계십니다. 그 사명은 첫째로 전도요, 둘째도 전도요, 셋째도 전도입니다. 빌립 집사가 그랬고 요나가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과 바나바가 그랬습니다. 관광을 하라는 것도 사업하라고 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4절에서 5절을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 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가 부흥할 때 성령이 말씀하기를 "두 사람을 따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웠고 세계선교사로 파송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보냄을 받았을 때 먼저 어디로 갔습니까? 얼마든지 육지로 가서 소아시아 지방 그 넓디넓은 지역에서 전도할 수 있는데 구태여 바다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섬으로 갑니까? 그 섬이 구브로입니다. 왜 구브로에 갔습니까?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을 보내셨는데 바나바의 고향이 바로 구브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향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교회가 없으니 우리 고향에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뜻으로 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리고 두 사람은 이방인에게 전도하러 분명히 보냈는데도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유대인을 상대로 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인에게 전도해서 구원하기 전에 내 동족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을 먼저 구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두 사람은 첫째도 전도요, 둘째도 전도요, 셋째도 전도였습니다.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린다면 요한을 수종자로 둔 것은 인물을 키운다는 뜻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상의 사명을 위해서 분명히 보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먹고 놀다 죽으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고 은혜를 주시고 훈련을 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직장으로 보내고 동네로 보내어 전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생업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직장을 가지고도 열심히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런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온갖 충성을 하면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보냄을 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삽니다. 우리의 별명이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혜 있는 자 (6-8, 12)
사람은 공부를 할 때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자연 과학을 공부하면 과학자가 됩니다. 거기에 깊이 들어가서 학문을 연구하고 남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고, 만들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 내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편함을 줍니다. 자동차와 전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연 과학을 공부해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한 학문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 공부입니다. 자연 과학만 공부하게 되면 내가 연구해서 학문을 닦고 또 물건을 만들어내고 돈을 버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결코 너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사람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사람 공부를 할 때 너를 이해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도 아는 것입니다. 또 사람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 공부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한 공부는 하나님 공부입니다. 사람 공부만 하고 하나님 공부는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가 알 바가 아니요, 또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자체를 모르게 되고 또 그 사람 자체도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고 깊이 할수록 좋습니다. 만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지어서 이 땅에 보내신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고 장관이 되고 떼돈을 많이 버는 사장이 된다고 할지라도 부모를 몰라본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부모를 모르는 사람이 떼돈을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부모는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사람이 장관이 되면 그 사람이 무슨 귀한 인물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박사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선 사업을 많이 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알아서 모시고 섬기고 받들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참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하나님을 모시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 하나님께 온갖 충성을 다 받치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에서 8절을 보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고 하였습니다.
12절을 보면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사도가 구브로라고 하는 곳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 가운데 있는 섬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로마 황제가 임명해서 파송한 총독이 있는데 그 총독의 이름이 서기오 바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총독을 찾아서 전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총독 측근에는 엘루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첫째로 바예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바'라고 하는 단어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바요나 시몬아"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는 뜻입니다. 이 '바'가 아들이라는 뜻이기에 바예수는 즉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라는 말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호수아'라는 말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그 말이 줄어서 예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분명히 유대 사람입니다.
둘째로 '바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본문은 "박수"라고 하였습니다. '박수'는 남자 무당을 일컫는 말입니다. '박수'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의 원문을 찾아보니까 '마고스'라고 하였습니다. '마고스'라는 말은 다른 곳에서는 '마술사'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남자 무당이기도 하지만 마술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거짓 선지자입니다. 예언을 해 달라고 하면 예언을 해 주는데 전부가 거짓말입니다. 총독은 그런 사람을 옆에 놓고 때로는 점도 쳐보고 때로는 마술 하는 것을 구경도 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과 바나바가 그 총독에게 전도하면 바예수는 자기 위치가 위태로워지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 쯤 되면 총독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그 엘루마 즉 바예수의 말을 들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알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너는 비켜라'고 하고는 바나바와 바울을 데려다가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총독을 가리켜 지혜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르치고 어떻게 그렇게 떠 먹이듯이 또는 재미있게 가르치는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12절을 보면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믿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는 성경으로 하나님을 배웠고 만났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까닭에 하나님을 공부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므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긴 후에 성경 공부를 하면 믿음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고 하나님께 온갖 충성을 바칠 수 있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공부를 하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트레이시 베일리(Tracy Baily)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인디아나 주 고센이라고 하는 곳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레슬링부에 가입을 했는데 체격이 좋았고 성적도 좋아서 팀장이 되었습니다. 레슬링 전국대회에 나가서 일등을 하고 늘 상을 휩쓸어 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나타났다하면 누구도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쯤 되고 보니 오만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지역의 좋지 못한 깡패들이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잘한다고 박수를 치고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오면서 축하한다고 데리고 가서 술을 대접합니다. 계속 박수를 치고 칭찬을 하고 얼리고 치켜주니까 기고만장해서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깡패들이 저 사람을 치라고 하면 저 사람을 치고, 이 사람을 치라고 하면 이 사람을 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깡패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면 더욱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지 못한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나쁜 짓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학교에 들어가서 기물을 모두 파괴하고 뒤엎어 버리고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붙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이 심리해 본 결과 고등학생이지만 아주 질이 나쁜지라 5년 징역형을 언도했습니다. 감옥에 간 베일리가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아무개도 죽이고 아무개도 죽이고 다 죽인다'라고 하면서 이를 갈았습니다.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고 살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일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계속 이를 부득 부득 갈았습니다.
한번은 교도소 안에 있는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거울을 보고 자기도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얼굴이 어쩌면 마귀 얼굴 같았기 때문입니다. 눈에서는 독기가 철철 넘치고 독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이 사나워 보였습니다. 밤낮 이를 갈면서 누구를 죽인다고 하니까 그만 그 표정과 인상이 꼭 악마의 얼굴 같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놀라면서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거꾸러지고 얼마나 울면서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교도소 안에 있는 교회를 찾아서 나갔습니다. 교회에는 성경 공부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다음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변화가 일어났고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일년만에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는데 수학에 아주 뛰어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문제 있는 학생은 다 베일 리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에서 문제 있는 학생을 붙여 주기만 하면 전부다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자기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미국 전역에서 단 한 사람을 뽑는 모범 교사로 뽑혔습니다. 그것이 1993년도의 일입니다. 백악관에 부름을 받아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고 살았다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그 인생은 망하는 길 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깨우치고 성경을 공부하고 깊이 연구하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가 일어나서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 속에서 은혜 받고 믿음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말씀을 들은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자였습니다. 우리의 별명이 지혜있는 자이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자 (9-11)
본문으로 돌아가서 9절에서 11절을 보면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남자 무당 노릇을 하던 엘루마라고 하는 바예수가 전도를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호통을 쳤는지 모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의 의를 굽게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즉 복음 전하는데 언제까지 훼방을 놓겠느냐는 뜻입니다. 주의 손이 네 위에서 너를 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당장 소경이 되어 더듬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울은 총독 측근에서 권세 부리는 마귀의 자식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갓 결혼한 여자가 애기를 잉태했습니다. 그 애기는 자기의 공로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부모의 공로로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열달 동안 어머니 태에서 자라는 동안 자기가 돈을 벌어다 밥을 해 먹습니까? 100% 어머니 공로로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태어날 때에 애기가 자기 힘으로 기어 나옵니까? 어머니가 자기가 젖먹을 때의 힘까지 힘쓰면 밀려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애기가 태어나기까지 한 일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부모가 낳아 주어서 아들 삼고 딸 삼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때 우리의 공로나 노력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다"라고 선택하고 부르시고 성령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까닭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생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듭 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신분의 변화 또는 관계 변화라고도 합니다. 갓난아이는 사람 축에는 들어도 일꾼 축에는 들지 못합니다. '너희는 몇 식구냐?'라고 물으면 남편이 있고 내가 있고 기저귀 차는 애기까지 축에 넣어 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꾼 축에는 들지 못합니다. '너의 가정에 일꾼이 몇이냐'고 물으면 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이가 일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애기는 아직 인격이 불완전합니다. 그러기에 일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한 결과 실력이 충만해지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맡겨도 일할 수 있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태가 완전히 변화되어서 훌륭한 일꾼이 되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상태변화입니다. 우리는 중생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 중생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부림도 했고 계집종앞에서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에는 목숨을 내 놓는 충성을 하였습니다. 누가 그 베드로를 당합니까? 이처럼 성령 충만할 때 어디를 가든지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마귀의 자식과 싸워서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별명은 성령 충만한 자 이어야 합니다.
믿는 자의 별명은 첫째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라는 별명을 분명히 가지고 보냄 받은 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지혜 있는 자입니다. 세상 것도 배우고 사람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공부하고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습니다. 총독 서기로 바울처럼말입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자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고 영적으로 실력이 있고 영적으로 인격이 성숙해 진 사람의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가서 일당 백을 하고 일당 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가서 마귀의 자식과 싸워 승리를 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별명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착하기만 해서는 이룰 수 없는 일
행 13장 5~12절 / 김영준목사
세상 사람들은 왜 쉽게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물론 믿는 사람들도 많지만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많고 심지어 기독교에 대해서 반발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어봐야 믿음을 가질 수도 있고 구원을 받을 수도 있는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복음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미션스쿨에 다니고 또 주일학교를 다녔지만 열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저도 다 파악하지 못합니다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열일곱 살이 되어서 그때에야 복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왜 인간이 죄인이고, 왜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고,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것을 쉽게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득력 있게 들은 것이 열일곱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교회 밖에도 복음을 들어야 될 사람들이 있지만 교회 안에도, 교회를 다녀본 사람들 중에도 복음을 배워야 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전도가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단 그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압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 이 일을 위해서 목회자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 낚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기본적으로 가장 심플하게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나를 따라오면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복음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서 안 믿는 경우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렴풋이 압니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뭔가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데 그럴 각오가 돼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 분들 중에도 아직 세례를 받지 않는 분들에게 ‘세례를 받지 그러십니까?’라고 여쭤보면 ‘아직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사실 피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에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지레 피상적으로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무엇을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무엇을 금지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지레 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나는 술 ․ 담배를 하기 때문에 교회를 못 다닙니다.’라고 말씀하는 분들, 성경 어디에 술 ․ 담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도 성경이 말하고 있지도 않은 술 ․ 담배를 가장 우선적인 예수 믿는 사람들의 표시라고 생각하니까 그것 때문에 예수님 믿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교인들도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언제까지 비본질적인 것에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하겠습니까? 언제까지 이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서로 말하고 그것을 비교하고 남의 눈치를 보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중심의 문제이고 결국은 그 마음의 문제이고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주님의 말씀을 좇는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성경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그냥 믿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 믿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더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안 믿어진다고 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고, 믿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권면할 수 있겠습니까? 믿어지고 또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믿어지는 것이 축복이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축복입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교인들에게 기도를 권면해도 여러분 스스로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기도를 할 것이 아닙니까. 스스로 예배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야 신앙생활이 즐거운 것이지 그런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 강요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영혼이라는 것이 있고 그 영혼이 숨 쉬는 것이 기도입니다. 영혼이 자라나는 것은 성경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만약 이러한 갈급함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 영혼이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든 섬김이든 봉사를 강조하기 이전에 먼저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먼저 거듭나서 영혼이 살아나야 그때부터 영혼이 숨쉬기 시작하고 말씀의 젖을 사모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신앙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인데 목회자는 안 믿는 사람에게 믿게 하는 역할도 있지만 믿는 사람이 영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그런 의지가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계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기독교 잡지를 보니까 ‘록키’라는 영화로 유명한 실베스터 스탤론이라는 배우가 있지요. 그분이 크리스천이더라고요. 저는 그것을 보고 놀랐는데 최근에 만든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에서 그의 신앙을 반영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세상에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이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실베스터 스탤론도 이제 와서 처음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고 옛날부터 믿기는 믿었는데 방황하다가 인생의 바닥에 이르러서 하나님께 돌아온 경우입니다.
우리가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 경우도 있지만 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는 뒤돌아서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더 이상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돌아설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막다른 골목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탕자에게는 기근이 축복이었습니다. 기근이 없었다면 탕자는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기근이 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들에 나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는 그것이 악하냐, 왜 그것이 죄인가를 말하기에 앞서서 탕자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시키고 사람 스스로를 천하게 부끄럽게 만듭니다. 기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올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런 기근이 사람의 자존심을 깨뜨립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렇게 힘듭니다. 어린 아이도 그렇고 어른도 그렇습니다.
제가 LA에서 청소년 사역을 할 때 금요일 저녁마다 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교회의 벤을 몰고 학생들을 픽업해서 교회에 데리고 와서 집회를 하고 다시 벤으로 집으로 데려다 줍니다. 하루는 데리고 오는 학생들 중에 사춘기 나이의 여학생 두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데리고 교회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어느 남자 대학생이 자기 스포츠카로 대기하고 있다가 이 두 여학생을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거예요. 제가 그것을 보고 화가 나 벤을 몰고 쫓아갔습니다. 그래서 그 차 앞에 벤을 대고 길을 막고 내려서 그 두 여학생보고 나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제 이 두 여학생을 데리고 교회로 가서 종아리를 걷으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필요하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목회자이기 전에 아버지와 같은 인물로서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회초리로 때리려고 하는데 한 학생은 맞기도 전에 잘못했다고 빌면서 울더라고요. 다시는 그런 거 안하겠다고 잘못했다고 비는데 한 학생은 때리려면 때려라 그런 눈으로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보고 ‘아, 같은 사람이지만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가 벌써 이십년 전이니까 그 학생들이 지금은 엄마가 됐을 텐데 지금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사람은 이처럼 차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쉽게 자기가 잘못했다고 빌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는 사람이 있고 때리려면 때려봐라 이렇게 버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목사인 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는 대로 하나님에게 합니다. 사람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하나님께는 친절할 것 같습니까.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감사할 것 같습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것을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에게 할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먼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섬김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것이 아니고 작은 일에서 형제자매를 섬기고 작은 일에 충성하고 그러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부터 대중을 향해서 설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시중들고 가서 누구를 데리고 와라, 뭐 해라, 이것부터 하면서 순종을 배우고 믿음을 배우고 또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에 한번 설교했더니 삼천 명이 회개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스케줄이 타이트했기 때문에 일들이 빨리 빨리 진행된 면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빨리 진행하셨습니다. 그래서 금방 사람들이 성장하고 큰일을 맡게 되고 사도직을 맡게 됐지만 이제는 세상이 좀 더 복잡해지고 변화가 많고 그러다보니까 우리가 똑같은 신앙의 교육을 배우는 것이 더 오래 걸리고 더 많은 걸림돌이 있고 또 새로운 지혜를 요구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옛날보다 더 식견을 넓혀야 될 필요가 있고 좀 더 인생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욕망과 그들의 동기와 생각과 형편과 처지를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서로의 형편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한민국, 나가서 글로벌 시대에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같은 서울에도 사람들 생각이 다르고 또 그들의 사는 환경이 다르다보니까 이제는 더 많이 접해보고 공부하고 또 경험을 쌓고 그것을 통해서만이 이 시대에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사람들이 쉽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내면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대비되는 다른 생각, 다른 사상을 품고 있어서 그것이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충돌입니다. 옛날에는 충돌을 일으킬 만큼 가치관이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집안에서도 여러 가지 가치관을 가진 가족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옛날 베트남전 시대에 한 집에 형은 월남군 군인으로 복무하고 동생은 베트콩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침에 형제가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형은 월남군에 출근하고 동생은 베트콩으로 출근했다, 한 집안 안에도 이렇게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고 평생 주일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서 엉뚱한 생각을 접하고 엉뚱한 생각을 좇아가서 교회를 떠나가고 신앙을 버리는 것을 종종 봅니다. 즉 그 아이들에게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파워풀 한 것을 접하게 되니까 믿음을 버리고 그것을 좇아가는 경우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더 파워풀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위 영적인 대결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본문에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첫째는 사도바울, 사도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있었지요. 둘째는 서기오 바울이라는 로마 총독이고 세 번째는 바예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선지자인 바울과 거짓 선지자인 바예수 간에 영적인 대결이 이루어지는데 그들의 대결은 누가 이 로마 총독의 마음을 주장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이 로마 총독이 예수님을 믿을 것이냐 안 믿을 것이냐를 두고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와 바울이 영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영적인 대결을 벌여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는 자가 진짜 선지자요 진짜 하나님이라고 불의 대결을 벌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불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구의 신앙이 진짜이고 누구의 철학이 진리이냐를 놓고 그 중간에 서기오 바울이라는 로마 총독이 있는데 그는 복음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불러다 복음을 들으려고 했는데 그 옆에 있던 거짓 선지자 즉 8절 말씀에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그러니까 이것은 그저 의견이 다른 것, 다원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같고 존중해야 된다는 내용이 아니고 이 거짓 선지자는 로마 총독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힘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현실이에요.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준비되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영적인 가치관의 혼동 속에서 믿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무엇인가가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냥 점잖게 권고하고 대화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처럼 영적인 권세를 가지고 파워풀하게 어둠의 권세를 대적하고 영적인 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저희 교인들 또 사역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것입니다. 학식도 있고 교양도 있고 마음도 착한데 그것만 가지고는 영적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좀 더 터프하고 와일드한 면을 소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런 것을 사모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착한 심성만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으로 거친 영혼들을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영적인 와일드한 파워를 소유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을 보세요. 그가 이 거짓 선지자에게 하는 말을 보세요. 10절에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니고 친절한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게 하시는 말씀이고 그리고 상황을 바르게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어둠의 권세가 진리를 굽히려고 하고 하나님의 길을 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영적인 능력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여러분의 가족이 믿음을 거부하는 것을 존중하고 지켜보시겠습니까? 언제까지 그것을 묵인하겠습니까?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이것이 진짜 기독교입니다. 이 초대교회의 신앙이 진짜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에요.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국가의 흥망과 치유
행 13장 6~12절 / 박지온목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어릴 때부터 복음의 놀라운 역사 위해서,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루어질 세계복음화의 귀한 역사 속에 쓰임 받도록 축복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 일에 먼저 교회와 주의 종들과 가정을 세우시고 하나님 이 일에 주의 종들에게 증거 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주께서 말씀을 통해서 한 주간도 응답 받을 귀한 역사로 말씀의 성취의 귀한 역사로 임하셔서, 각 심령이 복음의 진실한 고백들이 나오도록 역사 하시며 축복해 주옵소서. 여름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구체적으로 살릴 자를 준비하셨다가 이들로 통해서 각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부르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주께서 앞으로 우리 주일학교와 또, 중학교 중등부와 계속해서 일어날 우리 전도캠프, 또, 우리 수양회 속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고 은혜 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광고를 할 때마다 꼭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늘 잊어버려요. 그래서 오늘은 생각이 나서 제가 주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7번에 보면, 소식란에 조 순 자 집사, 박 삼 채 집사 모친께서 소천 하셔서 장래를 마쳤습니다. 이랬는데, 조 순 자 집사님의 모친 그러면 아내 괄호 열고 박 삼 채 집사님은 뭐가 됩니까? 장모죠. 그래서, 그냥 모친만 해 놓으니까, 어떤 분이 누구냐고 물어요. 박 삼 채 집사 모친인가 싶다고 이래 생각하시는 분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한번, 다락방은 사실적이고 정확해야지 되거든요. 광고도 그렇게 여러분 아시면 되겠습니다. 바꾸어서 괄호 밖에 박 삼 채 집사 모친, 그리고 조 순 자 집사님 괄호 안에 열면 조 순 자 집사님은 뭐가 됩니까? 시어머니가 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보실 때에 그렇게 보시면 돼요. 그러니까, 광고 할 때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조 순 자 집사님 모친, 박 삼 채 집사 장모님 이렇게 해주시면 제일 정확한데, 글자가 내려오니까, 그대로 하는데, 착각을 더러 하시는 분이 있어서 정확하게 알아야 되니까, 한번 광고를 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러다가 오늘은 첫 번부터 기억을 하고 계속 들고 있었습니다. 또 잊어먹을까 싶어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국가흥망과 복음", 이렇게 제목을 잡았는데, 사실은 복음이 안되면 국가흥망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그런 것이 점점 시간이 갈수록 여기에 결론이 납니다. 이번에 우리 고등부 여름전도캠프 수련회를 전북 고창군 전원교회에서 인제 기지를 두고 했습니다. 여기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무당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4군데에 무당들이 집중 모여 사는 곳이 있다고 그래요. 그래 가지고 여기는 전통적으로 우리 그 유교문화 배경에서 고인돌. 말하자면 정령 이렇게 죽은 사람들의 영이 있다고, 고인돌이 또 많다고 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고인돌에 대한 어떤 이것을 뭔가 역사적 뒷받침을 해주고 여기에 대해서 특별히 문화 척도로 유적지로 만들려고 하는 그런 사역들도 있고, 그래서, 제가 치유사역에서 아마 이 전원교회에서 정신치유 치유사역의 아마 멤버가 가 있고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작 전부터 이 지역에 대한 내용을 조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중, 고등부들이 들어가서 사역을 했습니다.
사역을 하고 돌아와서 하는 이야기가 오늘 여기 뭐 실적을 보니까? 이게 많다, 적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그 참석인원이 72명이 참석했어요. 학생 51명, 교사 11명, 봉사 요원10명, 이래서 총 72명입니다. 그리고, 영접한 숫자는 총 84명이 영접을 했어요. 다락방이 2군데 열렸습니다. 그런데 많다, 적다가 문제가 아니고, 그 지역상황에 따라서 이 일은 진짜 여러분 그냥, 그냥 그저 나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역사입니다. 이래 놓고 보니까, 우리 중학교, 우리 고등부 학생들이 이런 숫자가 영접을 되면서 보니까, 72명이 나가서 구체적으로 우리 중, 고등부 학생이 51명이 아닙니까? 그러니깐, 몇 명씩 영접했다는 내용이 되거든요. 그러니 지금까지는 별로 안 믿기고 못 믿기고 가서 영접해도 잘 안되고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전도캠프 가니까 되거든요! 와~ 나도 된다. 그래가지고 모두 영접하고 돌아와서는 하는 이야기가 야! 이번에는 참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다 그러더라 고요.
나는 이 용어를 어떻게 좀 고쳤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나요. 왜냐? 여러분은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사람들은 재미가 아닙니다. 지금, 죽음과 멸망에 있었던 사람들은 재미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재미로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용어를 조금 고쳐야 되겠다 싶은 마음이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상황을 조금 보고 우리 교회에서 지금 영세민 아파트에 들어가서 되어지는 상황을 좀 보면서 느낀 것은요. 우리는 그냥 감사하다. 재미있다.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건 본인들에게는 비참한 상황이거든요. 그 상황을 우리 보면서 조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재미있다.' 그러고 내려왔다. 물론 은혜롭고 감사하다는 건 되지만은 재미있다는 말은 좀 빼야지 되겠다 싶어요. 재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처참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뭔가 특별히 영세민 아파트를 중심해서 한번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3부 예배 서울에서 너무 아이들이 지금 비참해서 그 장소에서는 교육이 안 되니까? 좀 이렇게 분리 시켜서 격리 시켜서 교육 할 장소가 없는가? 대안학교가 있거든요. 다락방안에. 그래서, 와서 이렇게 물어요 대안 학교에 들어갈 수 없냐고, 왜냐하면, 그 가정에 놓아두어서는 안되니까! 대안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가 해서 제가 그 상황을 조금 설명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대안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연령이 어느 정도입니까?" 이러니까, 그래도 초등학교는 나와야지 된데요. 그런데 이 초등학교에서부터 문제인데요. 그래서 이러나 저러나 초등학교 졸업장은 받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그리고 나와서 이제 대안 학교에는 들어가서 고등학교 검정고시 대학 검정고시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이들이 대안학교에 들어가서 붙어 있어줘야 됩니다. 붙어야! 지금 이 말이 뭔 말인가? 여러분 잘,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붙어있어 줘야 되는데, 지금 현재 상황을 내가 이렇게 보니까, 영세민 아파트의 지금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붙어있지를 않습니다. 다 도망쳐 나와요. 그러니, 문제는 붙어있고 그곳에서 졸업하면요. 진짜 아이들이 거기에 그런 아이들이 특별히 물론 뭐 바보도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머리가 괜찮더라고요. 농뗑이 치고 막 그냥 이상한 짓 하는 아이들이. 그런데, 거기에 계속 붙어있었던 아이들은, 졸업하고 나서 완전히 모범학생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좋으니까, 공부도 다 잘하고요. 학교도 전국 검정고시 다 합격하고요. 이래가지고 기적이 나와버렸어요.
그러한 문제점을 한번 알아보기 위해서 제가 물어보았고, 상황을 좀 말씀 드렸습니다. 대안학교에 대해서 너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초등부부터 대안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런 이야기를 좀 드렸더니만, 류 목사님하고 3부 예배 때 제 이야기를 좀 받아들이고 표현을 좀 했더라 구요. 그러면서 이번에 지난 금요일 날, 제가 제주도에 공생재단이 있는데, 군산하고 일본하고 있다가 제주도만 이제 다시 분리가 되어서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 직원들이 ,집사님들이 가서 활약하고 이랬기 때문에 "목사님! 이름이라도 좋습니다. 와서 이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제가 가 보았습니다. 가 보았는데, 가서 인제 그 모두 이야기 중에서 다 같이 그래요. 고아원 주로 많이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주로 희망원, 정신병자 이런 사람들을 주력으로 하는 데가 지금 제주도입니다. 그러면서 똑같이 이렇게 사회봉사를 하면서 사회사업을 하면서 말씀하는 것이 뭐냐 하면요, 나는 지금 까지 했지만은 정말 이 분이 하는 것은 나도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나도 못하겠다고 그럽니다.
왜? 정신병자들 주로 담당하는데 그것도 10명, 20명이 아니고 350명 정도 돼요. 250명! 공식적으로 한 350명! 그런데 여러분 정신 이상자들 한 350명을 모아 놨다, 이건 말이... 하나도 힘드는데 350명 모여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이건 나날이 문제 터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분이 우리 윤 목사님이 지금 이 사역을 다락방사역에 들어와서 딱 잡고 집중적으로 이걸 그냥... 그래서 우리 교회 들어가서 우리 요원들을 붙잡고 안 놓치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렇게 사고 터지던 그런 사고가 다락방이 싹 들어오면서 그것이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변화가 되어 가는 겁니다. 너무 몰라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옆에 모여서 전부 그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이사'로 오신 분들이 뭐라 그러냐 하면요. 전혀 나는 못하겠다, 우리는 못하겠다. 나는 지금 정말 훌륭하다. 이분 박영규 목사님 훌륭하다. 그러면서 그러더라 구요.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세상이 이것은 감당을 못합니다. 돈으로도 안 되고 그래서 흔히 말하는, 그분들이 말하는 종교 아니면 해결이 안됩니다. 그러니까, 종교 아니면 해결이 안 된데요. 종교로 그런데 우리는 종교라는 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자! 그러면 예를 들어봅시다. 여러분 오늘 영세민 아파트에 들어갔습니다 만은 참 안타까운 것은 우리 기존 기독교에서 뭘 못했냐 하면 사회사업을 못했어요.
그래서 돈으로 이 영세민들을 전부 투자를 해 가지고 다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뭘 하느냐 하면요, 저녁 먹여주죠, 점심 먹여주죠,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해도 먹을 수 있으니까, 마음대로 그냥 활동하다가 조금 쉬어서 일하고 돈 받는 것 가지고 술 밤새도록 마시고 그 다음에 아침에 일어나지 안고 계속 자는 겁니다. 아이들도 같이 자고 아이들이 학교 가든, 말든 같이 자고 소망이 없어요. 일어 나가지고 늦게 일어 나가지고 뭐합니까 '부시시' 일어나 가지고 털고 점심은 사회 복지관에서 주니까 가서 점심 먹고 그 다음 또 돈을 얻기 위해서 일을 이렇게 일해 가지고 또 저녁에 술 먹고 자고 그러면 뭐냐 하면요, 이들의 정신을 안 바꾸어 주는 이상 머리를 안 바꾸어주는 이상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밥통 들고 안 나온다 뿐이지 계속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와 그 후손이 전부 죽어 버립니다. 여러분 복음 아니면은 국가 흥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요 이것대로 끝나면 하지만 한 대 한 대 한 대 내려가면서 엄청난 문제가 계속 내려가요. 이것이 엄청난 문제가 계속 내려갑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국가 흥망 문제 이건 세계흥망입니다. 복음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이것이요.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현장에 실제적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이 문제를 불신자 문제를 쭉 설명을 하니까? 옆에 있던 교인들조차도 너무 이 현장 망하는 문제를 말하니까 첫 번째는 뭐냐 하면요.
망하는 순서거든요. 여러분 그 여섯 가지 쭉 나오는 것 불신자의 망하는 순서입니다. 그 다음 우리 신자의 축복 그럴 때는 신자의 복을 받는 순서입니다. 순서대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여섯 가지 망하는 순서를 설명 하니까 뭘 느끼느냐 하면은, 막! 집중적으로 망하는 것만 이야기 하니까 그 망하는 순서 속에 다 들어가요. 다 들어가는데 영적인 문제를 못 깨달았을 때는 뭔 생각이 드느냐 하면 와! 진짜 저 사람 너무하다. 공갈치고도 보통 치는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가는 겁니다. 여러분 쭉 망하는 문제 하면요, 진짜 겁나거든요. 그 다음 본인도 말할 때 와 진짜 이 사람 너무하구나. 공갈로 알아요. 이렇게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믿는 사람도 영적인 눈이 안 열리고 이 사실이 눈이 안 열리면요. 믿는 사람 자신이 시험 들어 버리더라 구요. 같이 이 보다가 계속 이 공갈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제가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우리 이것이 좀 숙달되게 되면은 딱 가서 이렇게 진단을 해 보고 도중에 망하는 부분이 그 사람 망하는 부분이 한 두개 걸립니다. 문제는 하나만 걸려도 망하거든요. 한 두 개 걸렸을 때에 그걸 집중적으로 지적을 해 주면 되는데, 그냥 처음 제가 우리가 잘 모르니까 거의 이 문제를 쭉 설명을 하게 됩니다. 설명하게 되니까. 망하는 한 두 개 가지고 충격 받는데다가 또 앞으로 올 일이지만 그 사람한테 앞으로 올 일이지만 올 일을 미리 당겨서 말하니까! 이게 놀라버립니다. 공갈처럼 들리고 그래서 성령에 역사 아니면 강퍅해져 버려요.
그래서 오히려 반대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문제가 망하는 첫 번째 문제가 우리가 뭘 보느냐 하면요. 이것이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계속 망하니까 그래서 오는 것이 전부 우상숭배거든요. 그리고 뭘 믿는다는 것도 전부 어떤 면에서 종교입니다. 종교 우상은 전부 뭐냐 하면요.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영광뿐이고 그리고 망해도 자존심은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들 자존심 건드리면 제일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단의 배경에서 자기 영광이 사단의 중심입니다. 여기서 우리 타락의 배경이 벌서 자기 중심입니다. 이걸 보면서 참 국가의 후대들이 참 문제다 싶어요. 제가 주일학교 태아, 영아 부를 하면서 한시간 나란히 제가 준비를 하는 과정에 마침 그날 저녁에 초등부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학업분위기를 PD수첩을 통해서 보여 주더라 구요. 보여주는데 제가 새삼 놀랐어요. 중, 고등부 내가 봤거든요. 중, 고등부 수업이 안 된다는 건 내가 알았어요. 알았는데 여러분 초등부가 수업이 안 된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PD수첩에서 문 선 민씨가 담당을 하더라 구요. 그러면서 뭐냐 국가 교육에 뿌리가 흔들린다. 맞습니다. 진짜 뿌리가 흔들립니다.
어는 정도냐 하면 수업이 안 돼요. 그냥 교사 선생님들 서서 말할 때 교사 선생님들 말이 전혀 안 먹혀 들어가요. 책 펴라 그래도 자기는 전부 딴걸 합니다. 그래서 쭉 이렇게 보여 주는데, 책 펴라 그랬는데 한군데 보니까 만화책 펴놓고 앉아있고 전부 다 그래요. 그러니까 못하게 하니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이럽니다. 그 다음에 그 말이 안 통해요. 교사선생님의 이야기가 교실에 들어가기가 겁이 난데요. 전혀 말이 안 통하니까! 왜 그러냐? 내 중심입니다. 네가 하나 이런 걸로 통해서 다른 사람이 얼마나 장애를 받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장애를 받든지 뭘 하든지 내가 무슨 상관이냐 이겁니다. 자기 중심 완전히! 나는 너무 너무 놀랐어요. 이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에 실존주의 교육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교육이 자기 중심이에요. 뭐냐? 새로운 철학, 새로운 생활, 새로운 삶, 새로운 종교관들이 바로 그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가치관입니다. 자기 중심의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배경으로 해서 뭐냐하면 아이들에게 기를 살린다. 그래서 자기들, 자기 중심으로 할 수 있다고 자꾸 밀어 줬거든요. 뭘 하든지 놔 둡니다. 거기에 따라서 그 다음에 뭐가 오느냐 하면, 한둘 낳고 나니까, 주로 이제 하나둘. 이 아이들이 교육 배경이 아이들 중심에 옛날에는 생선 3토막이 되면은 머리 꼬리는 이제 아이들한테 돌아가는 거죠. 중간은 누구입니까? 어른들한테 가잖아요. 지금은 머리 꼬리는 누구한테 갑니까? 부모들이 먹고 중간은 누구 줍니까? 아이들한테 줍니다. 완전히 자기 중심이 되어 버리니까! 그러니까 뭐가 나오느냐? 내게 뭔가 하고싶어하는 것을 건드린다, 막는다 폭력이 나가는 겁니다. 주로 이런 아이들은 싸움 잘 하고 그냥 욕을 하고 그럽니다. 이 건들이면은, 이 정신병입니다.
그러면 이런 아이들이 되니까? 수업이 안 되는 겁니다. 자기하고 싶은걸 하는 겁니다. 그러니 건드리지 말라 이겁니다. 물먹고 싶으면 교실에 앉아 있다가 아무 말도 안하고 쑥 나오고 물먹고 들어가고 화장실 우리는 옛날에 화장실 막 갈라 그러다가 화장실 선생님한테 허락 받는 것도 미안해 가지고 앉아 가지고 오줌 싼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요즘에는 그거 없어요. 화장실에 지 마음대로 같다 오고 그럽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나오는 아이들 붙들고 기다가 이렇게 질문을 했어요. 어디 가냐 그러니까 물먹으러 간다 그래요. 물먹으러 가는것도 뭔가 이 선생님 허락 받았냐 이러니까? 허락 받는 것도 있어요. 허락 받는데 나갈라 그러면 못 말리니까 나가도록 허락하는 겁니다. 그런데 허락도 안 받았어요. 왜? 오줌 누고 싶어서 나가는 거 누구한테 허락 받느냐 이런 식입니다.
일본을 우리가 왔다 갔다 했지만은 뭘 느끼느냐? 일본에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피해 끼치는걸 못하게 합니다. 엄격하게 못하게 합니다. 나는 우리 나라 진짜 이 아이들이 커서 이대로 정권을 잡는다, 뭐 한다. 나는 가는 데로 진짜 겁난다 싶어요. 무슨 짓을 못하겠나 싶어요. 진짜 겁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상이나 종교에 빠지면 전부 중심이 자기 중심 되어 버립니다. 지금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어디에 빠졌느냐? 교회 다닌다, 그러면서도 전부 종교에 빠져 버립니다. 전부 자기 중심입니다. 그래서 집단 이익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닙니다. 우리 한국에 집단 이익이 나오고 막 대모 나고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전부 이게 뿌리부터 영적인 문제 오면서 점점 변해갈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겁니까? 복음이 아니면요. 해결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제가 그 영적 문제 오면서 대대로 내려가면서 점점 와닿는 그런 문제를 드리면서 지난번에 제가 일부러 그런 것, 특히 PD수첩이나 이런걸 제가 좀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조금 시간이 가도 우간다를 비롯해서 아프리카에 그 문제를 또 이렇게 방영을 하더라 구요. 하는데 거기서 내용이 뭐가 나오느냐?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아프리카 인종을 싹쓸이하겠다 그래요. 없어진다 그래요. 그게 뭡니까? AIDS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AIDS문제가 뭡니까? 지금 영적 문제가 이것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루, 이틀 나온 게 아니고 윗대부터 내려오더라 구요. 전부 내려오는데 이 영적 문제가 오게 될 때에 그렇게되면 여기에 우상 종교 이런 게 배경이 안 됩니까? 이 사람들은 성 문제가 벌써 오래 전부터 내려와서 AIDS가 확산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남자 하나가 AIDS에 걸렸다, 그러면 다 걸리게 돼요. 그런데 왜 다 걸리느냐? 1호, 2호, 3호, 4호... 쭉 나가면서 여자들이 있으니까! 그 다음에 그 남자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동생이 전부 또 이어받아요. 또 아니 난 또 보니까! 물론 성경에도 계대 결혼이 있는데 그건 또 희한한 게 있어요. 남자 그러니까, 형님이 AIDS로 죽으니까, 여러분 그렇게 되면 그 여자들이 전부 어떻게 됩니까? AIDS에 다 걸리거든요. 동생이 또 그 여자들을 이어 받아요. 형님이 동생 주고 여자도 같이 안 죽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못 말립니다. AIDS가 급속 확산이 됩니다.
그 다음에 성문화가 어떤 문화냐 하면요.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나라도 이렇게 안 되겠나 싶어요. 성문화가 어떤 경우냐? 성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그냥 붙으면 하는 겁니다. 만나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미안한 이야기지만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가족도 우리는 좀 ??도 안 있습니까? 그게 없어요. 거기에는 그러니까 이것이요, 급속도로 그냥...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보니까? 즐비하게 한 동네에 그냥 매일, 그냥 시체가 나가는 겁니다. AIDS로 그래서 그 사회 무슨 장관인가 막을 길이 없데요. 어떻게 통제할 길이... 가만히 두는 겁니다. 또 그에 대한 약간에 어떤 그 뭔가 조치는 돈이 좀 들고 하니까! 그렇다고 돈도 없죠. 그래서 하는 말이 30년 후면 아프리카 전체가 싹쓸이된다 이런 이야기까지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전통적인 우상과 종교 이 배경에서 점점 후대 내려갈수록 이게 엄청난 배경입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가 지금 현재 그런 데로 복음이 들어오면서 우상 배경에서 많은 경우 문란합니다. 옛날에 전부 우상과 같은 것은 미신이라 그래서 잘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그러면서 새벽종이 울린다. 그래 가지고 한 100년 동안, 얼마 안 되는 동안에 엄청난 경제 부흥이 일어나 버립니다. 여러분 어쩐 일인지 새삼스럽게 옛날에 못 살았던 미신으로 또 돌아가자! 이게 지금 이것이 아닙니까? 각 곳에서 지금 미신 운동을 일으킵니다. 이 우상중심으로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교 문화권이라 그래 가지고 수 천억이 들어가더라 구요. 지금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가 흥망 문제예요. 그러니 내가 더 깊이는 이야기를 못합니다. 이것을 이중에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공갈처럼 들립니다. 자기들이 여기에 빠진 것처럼, 빠져있으면 모르니까? 여러분 자신도 우리도 모르게 여기에 빠집니다. 처음 불신자의 여섯 가지 상태 망하는 순서에 거의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게 안 보여지니까 뭡니까? 화가 나는 겁니다.
여러분 도적놈한테 도둑놈 그러면 화가 나죠. 도적놈 아닌 사람 도둑놈 그러면 별로 마음에 없어요. 도적놈 그러면 화가 납니다.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를 딱 해놓고 그러면 아! 내가 도적놈이다. 회개가 나오지만 이게요, 강퍅한 사람들은 도적놈 그러면 더 화가 나와요. 꼭 지금 그 식 이예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여러분 들어가야 됩니다. 불신자한테 이걸 설명해야 돼요. 잘못 설명하면 진짜 화나도록 만듭니다. 도적놈한테 도적놈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이렇게 나오니까 문제는 영적 문제가 나오니까 정신문제 나오죠. 그러면 후대 문제 다 나오는 겁니다. 정신문제 지난번에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상세히 설명을 못 드리고 조금 제가 짚고 넘어 갑니다.
그러니까 육신적인 문제가 나오고 후손 문제가 나오죠. 후손문제가 나오면 사실은 생활 문제가 나오죠. 그러니까 육신문제, 생활문제 나오면서 후손문제까지 이게 불신자가 망하는 순서입니다. 이게 불신자 망하는 순서예요. 그러니 요즘 망하는 순서인데 이 망하는 순서에서 앞으로 쭉 올 겁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걸리는 게 영적인 문제에 있어요. 앞으로 올 것에 대해서 설명을 뭐 다 해주니까! 가중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갈 치는 것처럼 들리죠. 공갈이 아닙니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인들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교회만 나왔습니까? 공갈이 아닙니다. 시간 갈수록 문제가 나옵니다. 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런걸 강조해 버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공갈이라고 그래서 이단이라 안 그러냐고 그러니 그렇게 됩니다. 백 번, 천 번 현장 가 보세요. 이말 못해요.
그래서 아마 이번에 고등부에서 현장 가보면서 많이 느꼈을 겁니다. 당 나무가 주로 많이 있고 고인돌이 주로 많이 있는 그 동네 완전히 유교풍습 옛날에 풍습 그대로 지금 하고 있고요. 제사가 중시되는 그런 동네 종손들이 모이는 그런 동네 어떤 현상이 있는가 다 보고 왔거든요. 재미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은요. 영접하고 말씀 성취되는 것 보니까 전부 감사하다고 그럴지 모르지 만은 그 사람들은 전부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단어로 앞으로 잘 생각해서 제시를 했어요. 재미있다 안 그러고 뭐라 그래야 되는지.
자! 그러면 우리가 지금 현재 뭘 했느냐 하면요. 축복 받는 순서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었다 그럴 때에 뭐냐 하면요. 복 받았다 이게 되거든요. 그러면 어떤 순서로 복 받느냐 그것이 여러분과 제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이 순서가 이제는 여러분들이 뭐가 되야 하면요. 영접했다 그럴 때에, 영접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이 지속해서 나가야 되거든요. 여러분 캠프 통해서 이것이 이제 하나님의 계획이요. 이게 이제 영접할 때 오는 사실이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게 세계 복음화 이거든요. 세계 복음화인데 이 캠프는 지난번에도 말씀했습니다만 등불 하나 켜는 게 아닙니다. 집중적으로 환하게 켜 버립니다. 들어와서 영접하는 사람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이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밝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영접은 하되 돌아서면은 흑 암에 잡혀버립니다. 돌아서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캠프하고 난 후에 여러분들이 일꾼들이 중요합니다. 후속조치로 계속해서 빛을 바래야 됩니다. 발하기 위해서 조직 시스템을 중요시했거든요. 이렇게 해서 시스템 마지막에 가서 연결을 안 시킵니까! 이렇게 집중해서 할 때에 저는 그렇게 봅니다. 뭐냐하면 여러분 그 후에 시스템 통해서 얼마나 지속해서 빛을 발하느냐에 따라서 이 열매가 나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악한 흑 암의 권세에 눌려 있다가 갑자기 풀어지면서 예수를 영접했지만 그게 지속적으로 못 들어가면, 어떤 면에서 반정도 들어오면 잘 들어옵니다. 반 들어 오면... 그러니 지속해서 안 되면은 확실하게 영접했다 할 지라도 거짓말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조금이라도 거짓으로 한 사람들은 거의 안 됩니다. 이것은
조금 보세요. 축복이 어떤 것이 축복이냐고 그럴 때에, 여러분과 제가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 그럴 때는 성령께서 뭐하십니까? 내 안에 오신다. 내가 참 중요합니다. 이것 없이 학습으로 예수님 내 안에 계신다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특별히 태아, 영아부 위해서 기도하면서 길러야될 이유가 제일 기도를 많이 해야될 시기가 언제냐 하면 태아, 영아부입니다. 무방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 아니고는 아무도 감당 할 수 없어요. 이 잘 때도 기도해 주시고 일어날 때도 기도해 주시고 그리고 조금만 크면 말 조금 할 때에 예수님 어디에 계시냐 그러면 내 안에 그럴 때에 이게 학습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학습으로 해도 유익이 좀 있더라 구요. 안 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했냐? 성령으로 이게 이루어 져야 됩니다. 성령으로 그게 뭐냐 하면 내주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예수께서 내 안에 오신다. 오셨다 뭘 로 성령으로 이 사실이 확실히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렇게 될 때에 나는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습니까? 진짜 믿습니까? 잘 안 믿는 모양이지! 하나님의 자녀.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나도 모르게 확실하게 확인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받아 합시다. 믿어진다. 믿어지지 내주 되면은 믿어집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믿어집니다.
이게 안 되면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져요. 입은 믿는데 안 믿어요. 믿어지면 뭐가 나오느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 뭐가 나옵니까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하면 들으시리라고 믿는다. 기도가 나오죠. 그런데 여러분 기도가 안 나온다는 배경에는 기도 응답이 없다는 배경에서 뭐냐? 이게 안 와요. 첫 번째 문제부터 이게 안 성령의 내주 영적 임재라는 것이 이것이 안 되어 있어요. 이것만 바로 되어 있으면요 혹시 잘못 될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바로 되어 있으면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어코 그를 살려 주십니다. 이때에 성령의 뭐가 있습니까 이때부터 내주 되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이게 옵니다. 그러면 뭘로 보느냐? 여러분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는 그런 배경에는 간단합니다. 삶에 있어서 무슨 사건과 무슨 문제만 생기면은 어떻게 합니까? 나도 모르게 주님을 찾게 돼요. 주님의 인도를 받아요. 이것이 점 점 확인되면 깊어지고 확실히 하게 되면, 물건하나 옮기는 것까지 주여! 어디로 옮길까요? 인도해주옵소서. 이런 확신이 옵니다. 적은 것, 발걸음하나까지 옮깁니다. 기도하면서, 옛날처럼 춤 뱉어 가면서 탁 쳐 가지고 어디로 갈까? 해서 춤 튀어나가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진짜 내 안에서 성령님이 계신 것을 확인하게 되고, 구체적으로 인도 받습니다. 이게 지금 되어지고 있다 그러면요, 문제는 달라집니다. 사업과 일, 사건!
그래서 이렇게 인도해 줄 수 있는 일에 이것이 구체적으로 못되게 되는 문제 때문에 어떤 면에서 개인 개인이 사건과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사건과 문제 나오는 만큼 인도할 수 인도 받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렇게 이런 길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래서, 믿는 성도들의 사건과 문제 어려움은 시험이, 시험이 아니고 시험이 축복입니다. 문제 당할수록. 그래서 요셉의 모든 어려움은 이건 노예, 감옥 같은 것을 시험과 어려움이 아니고, 뭡니까? 축복으로 인도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바로 이 부분에 눈을 뜬다 그러면, 시험이 온다 올 수 있어요. 문제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뭡니까?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도를 받는 이렇게 들어가는 이게 인도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들어가는 구체적인 역사와 사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나 사건이 생기면 뭐합니까? 감사합니다. 아! 이것 때문에 내가 또 다시 하나님의 인도를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되죠. 그러니 교통사고 나서 다리 하나 부러져 가지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안 합니까? 그것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그때 탁 머리를 다쳤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교통사고 나기 전에 이렇게 들어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꼭 한 대씩 얻어터져야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속성 이예요. 그런 문제들! 왜? 워낙 완악 하니까! 구체적인 인도가 나오죠.
그 다음에 이 인도가 벌써 나왔다! 그럴 때는 벌써 이 기도문제와 다 연결이 됩니다. 나중에... 그 다음에 여기서 성령의 뭐가 나옵니까? 이 정도 되면 역사가 나옵니다. 역사가. 여러분 성경에 역사는 이게 쭉 축복의 순서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누가 계셔요? 성령이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면, 그 계신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내 안에 계셔서 뭐 하느냐? 역사 하게 되어있어요. 그냥 계신 것이 아닙니다. 역사 하게 되어있는데, 역사의 내용에 크게 내용에 전에 많이 말씀했어요. 이것이 뭐냐하면, 사단 결박이라 그랬습니다. 이 문제 가지고는 조금 교회 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근데, 여러분이 먼저 아실 것은요. 사단 결박 그럴 때에 말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해 놓았는데, 이제 우리가 결박할 수 있는 권위가 있느냐? 없느냐? 그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신 권세를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하면요. 사단결박 그럴 때에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뭐라 그랬습니까? 제어할 권세를 주셨나니. 직접적으로 역사 한다는 말입니다. 제어한다고 그럴 때에 뭐냐하면요. 사단의 활동이 제어되어버립니다. 한계가 와 버립니다.
이것을 설명을 이렇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기독도가 천성을 향해 갈 때에 바로 들어가는 어떤 길 어귀에 서서 갑자기 사자가 튀어나왔습니다. 양 길 옆에서 사자가 대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도가 너무나 놀라 가지고 깜짝 놀라 가지고 기가 막히게 가는 길에 사자가 들어오니 도저히 갈 수가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가만히 보니까, 어떤 문제가 있었나 하면요. 사자가 소리를 내고 막! 덤벼드는데, 가만히 보니까, 사자가 전부 굵은 줄에 메여있어요. 뭔 말인지 압니까? 굵은 줄에 메여있습니다. 사단이 제어를 받고 있습니다. 활동을 못해요. 어느 그 한계이상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런 문제면 길 복판으로 쫙 가면 관계없어요. 아무리 고함질러도 "으르릉" 거립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나니" 그랬습니다. 있어요. 없는 게 아닙니다. 이건. 우리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게 아닙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말할 것은요.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럴 때는. 근본적으로 여러분과 제게 생명을 못 건드립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믿고 아무리 지옥갈래야 갈 수 있다고 그랬어요? 없다고 그랬어요? 없어요. 지옥 갈려고 용을 써도 못 가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전할 때에 제일 첫 번째 막는 처음의 사단의 역사가 뭐냐하면요. 영접할라 그럴 때에 영혼문제 영접할라 그럴 때에 끝가지 그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영접 못하도록 붙들고 늘어집니다. 요거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을 때에 사단권세가 제어되는데, 그 제어된 것이 제일 첫 번째 제어된 것이 무어냐? 여러분과 제게 모든 문제 근본 된 영혼문제입니다. 결단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죽어도, 이젠 어떤 문제에 있어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 요 배경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왔다. 그러면요, 사단은 절대로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사람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여기서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 칼빈주의에서 조금 이해를 해야할 것은 뭐냐하면요?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칼빈주의가 말하기를 교리와 교리는 성경 배경입니다. 여러분 성경자체를 바로 못 믿으면 그것은 완전히 안 되는 거죠.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이거는 바로 붙들어야지 되죠.
그러면서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참된 교리를 붙잡고 무엇을 해야되느냐? 경건이 이루어져야된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뭔 말이냐 하면요. 여러분 사단이 절대로 못 건드리게 할 수 있는 그런 배경이 뭐냐하면은, 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와야 됩니다. 계획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 오게되는 이 과정을 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아가는 과정을 여러분 치유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 말을 뭐냐하면, 신학적으로 뭐라고 그랬습니까? 성화라고 했습니다. 성화라고.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요. 사단의 역사가 어디서 제어되느냐 하면 여러분 예수 믿어도. 예수 믿고 쉽게 말해서 양쪽 다 이 제어된 상황에서 정도로 싹 걸어가면 복음의 길로 싹 걸어가면 절대로 못 건드립니다. 못 건드리는데, 자신이 규모가 없어요. 이것을 잘못 말하면, 이것을 복음이 안되고 규모를 말하면 율법이라고 그럽니다. 또 율법이 되어버려요. 자신이 비틀비틀 거리면 어떻게 합니까? 비틀 비틀거리면 찍혀 버리는 거죠, 눌려 버립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겠습니까?
규모!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흔히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율법은 하나님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누구에게? 복음가진 자가 율법이 힘이 납니다. 율법의 역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율법이 힘을 얻게 되어있습니다. 복음을 안가지게 되면 자신이 죽어버리고, 율법자체에 벌써 눌려버립니다. 무슨 이야기냐? 사단이 이미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제어되어버렸습니다. 그 제어되었는데, 어디냐 하나님의 뜻대로 가면 갈수록 전혀 모든 문제 해결되어버렸습니다. 절대로 못 건드립니다. 자기자신이 이 속에 이 계획 속에 들어가지 못할 때에 자신이 제어가 안됩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합니까? 경건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면, 완전히 통로중의 통로가 되니까!
이래서 이 길로 가는 것이 뭐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뜻이고 이 안에서 모든 문제 해결되었는데, 이것이 뭐냐하면 우리가 전도캠프 속에서 실제로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세계 복음화를 시키는 이로 통해서 세계복음화가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 속에 들어 오라! 모든 문제 해결됩니다. 이 안에 있습니다. 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돈 벌었다고 해서 이렇게 막 쓰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위해 쓰게되면 절대로 돈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역사하지 못합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 교리 적으로 좀 이해가 되어야 되요. 그래서 사단결박! 사단결박! 그럴 때에 사단이 제어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뭐라 그랬냐? 결단코 여러분 교회를 사단이 해하지 못하리라. 절대로 당치 못합니다. 이미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사실 속에 들어온 여러분 절대로 그래서 자꾸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오라 안 그럽니까? 그것이 여러분 세계 복음화 안 되게되어 있어요. 이것이 안되면요 사단이 그것이 전부 통로가 되어서 여러분 자신이 죽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 일을 이루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요, 바울이 고백한 갈라디아2장 20절입니다."내가 날마다 죽노라"입니다. 내가 죽고 누구의 이름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도록 복음 전파입니다. 여기에 답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 문제가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단 결박문제를 조금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 오는 것이 뭐냐 하면요. 그렇게 되면은 성령이 인도했다, 역사했다. 그 역사가 성령의 역사.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시면서 그렇게 하는 주체 그렇게 하는 실제적인 역사가 천군 천사입니다. 천군 천사 이것을 놓쳐 버리면 이 천군 천사에 대한 이야기도 또 오해되어 버려요.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천군 천사들이 내가 가는 길이 너무 바쁘니까, 신호등이 절대 걸리지 말도록 천군 천사들이 역사 해 달라고 그래가지고 막 어디까지 가는데, 신호등이 한번도 안 걸리고 쫙 갔더라! 이랬는데, 그것은 진짜 사단배경에, 차라리 사단 들어오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 복음 증거에 하나님께서 뭔가 이렇게 천군 천사 동원하시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계획 속에 들어오게 하는 일에 하나님이 천군 천사로 역사 하십니다. 이 일에 사실이 이해가 안 되면 전부 나 중심이 됩니다. 복음 자체가 나 중심이 되어 버립니다. 천군 천사 나 중심으로 이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내가 좋을 데로...
그래서 여러분들이 뭔가 주여 뭐 어떻게 해 달라 이것 어떻게 해 달라 이건 우리기도 배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복음이 세계에 전파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 해 달라고, 돈 버는데 문제없게 하시고,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어려움이 있다, 없다 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돈 버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누워서 돈 번다! 그건 믿음이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돈벌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것만되면 주님이 다 보장해 버리는 겁니다. 돈을 줘도 자꾸 딴 데 쓰는데 솔직히 말하죠. 여러분과 저 수준에서 지금 수준에서 돈 한 달에 1억씩 번다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천만 다행이지 어쩌면 하나님이 그렇게 아시고 돈을 조금 밖에 안 주시는지 돈 많이 줬다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제 가 가만히 내 수준에서 목사 된 수준이지만 돈 한 달에 이 가만히 않아 있으면서 1억이 나온다 어디에 쓰게 되어 있어요.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딴 데 쓰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수준에 뭐 예수 그리스도 백 번 천 번 말 하지만요. 가만히 앉아서 돈 1억씩 생긴다. 이걸 어디에 쓸까 싶어 가지고 복음은커녕 딴 데 쓰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절대로 안 그렇다! 그렇게 생각 드는 사람들은 오늘 저녁부터 하나님께서 막 쏟아 부어 줄 겁니다. 그런데도 안 쏟아 부어 준다 저 한 테 오세요. 왜 그런가 진단해 드릴께요. 진짜입니다. 참! 이 돈 문제 가지고 사단이 역사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엄청나게 진짜입니다. 그래서 왜 믿는 성도들이 돈이 그렇게 없느냐? 그래서 지금 보세요. 다락방 하는 사람들 진짜 가난뱅이들만 모였어요. 거의 그런데 뭐냐 돈 있는 사람들은요. 천주교, 불교 배경에서 엄청나게 돈은 거기에 다 있더라 구요. 그것이 나는 처음에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싶다가 요즘에 은혜로구나 진짜 은혜 중에 은혜로다 이게 정말 복음을 위해서 정말 돈이 쓰여지는 일에 쓰여 질 때에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그 배경이 바로 되어야 돼요. 이게 지금 바로 되어야 되고 이렇게 되면은 뭐가 오느냐 하면은 시민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벌써 내게 배경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그 말은 딴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입니다. 내가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어디 갑니까?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시민으로 하나님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그는 하늘 나라 어떻게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는 옛날에 죽으면 천당 간다! 이것만 강조했는데 아닙니다. 이 땅에 있을 때 벌써 여러분과 저는 누굽니까? 하나님의 시민권 가진 자입니다. 절대적인 보호가 여기서 나옵니다. 자 그러면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때에 따라서 자연적 이 사람들 통해서 뭘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룹니다.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세계복음화입니다. 세계복음화 그러니 어린아이들까지 말하니까 그냥 나오는데 세계 복음화! 뭐가 이루어 져야 됩니까? 앞에 이것이 이루어 져야 역사는 따라서 나옵니다. 세계복음화는 따라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과 제게 따라서 나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역사가 나옵니다. 누가 역사 합니까? 이 일에 구체적으로 지금 이루어지는 사실은 기도 응답입니다. 이걸 확인할 때에 기도 응답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정말 성령이 내주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받는 사건 역사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이것은 벌써 기도 응답 속에 이미 여러분과 제게 이 일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 이루어 질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때에 앞으로 뭐가 잘 되느냐? 장사를 해도 복음 장사를 해야 잘 됩니다. 이제 장사를 해도 복음 장사 이 말이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그냥 장사하다 그 말이 아니고 복음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은 여러분 앞으로도 장사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 일이 이루어지면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가난한데도 세계 살릴 경제와 정치를 다 붙여 버립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다 한 음성으로 우리 함께 확신 가지고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이 시간 여러분과 제게 실제적인 사실로 역사하게 되실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주 앞에 기도합시다. 한 음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종들에게 불신자의 많은 상황을 보았다면 주여 믿는 성도에게 주신 축복을 솔직히 보게 해 주시옵시고 이 사실을 우리가 가졌다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정말 주의 종들에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역사로 임하여 주시옵시고 성령이 지금 내 안에 내주하고 교통하는 실제적인 역사를 확인하고 감사하도록 축복해 주시옵시기를 원하옵고 바라옵나이다. 주의 놀라운 축복의 승리가 주의 종들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고 이 일이 주의 종들에게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역사로 주께서 이루어지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충만 교통하심이 모인 무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마술사 엘루마.
양향모목사 / 행 13:8-12
앞 시간에 마술사 엘루마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마술사 엘루마”라는 제목으로 이 마술사 엘루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엘루마’라는 단어는 아람어나 혹은 아랍어로 마술사라는 뜻입니다. 마술사나 엘루마나 같은 뜻인데 중복해서 쓴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엘루마라는 외래어를 특별하게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엘루마라는 사람의 이름은 바예수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지만 이름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을 오히려 구원을 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예수는 유대인이고 거짓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세계 선교의 초기에 이런 특별한 사람을 등장시키고 그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앞으로 많을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그 역사를 통하여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그 시대의 역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본문 8절 말씀에 “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총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려고 했지만 마술사 엘루마는 그것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총독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파장이 온 나라에 퍼질 것이 눈에 훤하게 보였기 때문에 마술사 엘루마는 온 힘을 다하여서 막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술사 엘루마가 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방해하고 총독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힘써서 방해를 했을까요? 그냥 복음을 같이 들어보고 괜찮으면 같이 믿고 구원을 받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도 듣지 않고 총독도 듣지 못하게 방해를 했을까요?
1) 인간의 탐욕이 진리의 길, 구원의 길을 방해합니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욕심이 있습니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 더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 더 높은 권력을 가지고 싶은 욕심, 이런저런 욕심들이 우리들을 더 부지런하고 더 열심히 살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욕심들이 지나쳐서 탐욕이 되고 과욕이 되면 선한욕심이 악한욕심이 되고 우리의 양심마저 악한 양심이 되게 합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법을 어기게 되고, 남을 해치게 되고, 인간과의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우리 주변이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 욕심으로 인해서 자신은 조금 나은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은 받지 못하고 삽니다. 뭐든지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 하기 싫어합니다. 신앙인이라면 특별히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술사 엘루마는 철저하게 욕심이 많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못하게 하는 이기주의의 사람입니다. 자기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자기의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목회를 하는 거짓 선생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의 복을 위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2) 지식에 교만한 사람은 복음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 같이 사기꾼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기꾼들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도 듣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비극입니다.
마술사 엘루마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남도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3)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 성도들은 비교적 착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타락한 심성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대로 당시의 마술사란 천문, 지리, 의학을 비롯하여 점성술에 능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이런 정도의 학문을 가졌으면 더욱 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의 사주를 받는 사람은 이런 좋은 지식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하고 떠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천문학을 공부하면 그 우주만물의 신비함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의술을 공부하면 인체의 신비함을 보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인문학을 공부하면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음악을 공부하면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만들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타락한 양심, 악한 양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마술사 엘루마는 타락한 악한 양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만한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미래를 예언하는 선지자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거짓말이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진리의 길을 따르지 못한다면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뭘 잘 안다는 교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따르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바랍니다. 모든 지식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드리며 찬양하는 일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본문 9절과 10절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하면서 사울의 이름이 바울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유대인으로서 가진 유대식 이름입니다. 그리고 바울이라는 이름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로마식 이름입니다. 지금까지는 유대인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앞으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 충만한 눈으로 마술사 엘루마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마술사 엘루마는 당대의 모든 학문을 배운 지식인이었고 총독의 자문을 할 만큼 지혜로운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해서 볼 때 그는 거짓말 장이에 불과했고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마귀의 자식에 불과했고 악행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뭘 많이 배운 사람 같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보면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한 사람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바르게 이야기를 하면 욕을 먹습니다. 때로는 위로를 하기 위해서 힘을 주기 위해서 거짓말로 칭찬도 하고, 안 좋아도 좋다고 하고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문제는 악한 거짓말입니다. 남을 속이고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작은 이익 때문에 남을 망하게 하는 아주 악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바울이 마술사 엘루마를 성령 충만을 통해서 보니까 그가 하는 말이 보통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가 한 두 번 하는 거짓말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이라고 했고 악행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보통 거짓말이 아닌 악행이 가득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지식이 풍부하고 총독의 자문역할까지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에 동의하고 감격했을 것이고 그의 말대로 살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 자신도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것이 거짓을 참으로 배웠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서도 정말로 진실인 것처럼 호소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배운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진실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도 속고 남도 속고 다 속는 것입니다. 그런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화려할 때 권력이 많을 때 성공한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더 쉽게 속고 더 깊이 빠져듭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빠지고 자신도 속고 자신도 남을 속이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악의 근원이고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악의 근원인 미귀의 자식이 되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식들로 양분이 되어 있습니다. 중간지대는 없고 다 어느 한쪽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외에는 모두가 다 마귀의 자식이요 마귀의 종일뿐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사탄의 종이요 마귀의 자식일 뿐입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일에 심취하고 경건한 삶을 산다고 해도 예수님의 복음을 모르고 그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다 마귀의 자식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절에 다닌다고 자랑을 합니다. 절에 다니면서 시주도 많이 하고 착하고 바르게 산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 자랑은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요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의 열심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태신앙이고 주일을 잘 지키고 헌금을 많이 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잘 모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은 그런 선행을 믿음으로 대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그런 열심히 아무것도 아니고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복음을 부인하여 사탄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길을 방해하는 것을 당장 그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는 이 소중한 일에 방해꾼이 되고 있음을 알고 더 이상 방해꾼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마술사 엘루마는 유대인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마술사 엘루마는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말만 하는 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만드시고 그 이스라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시게 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몰라보고 오히려 그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뒤에 바울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지만 베드로사도의 설교나 스데반의 설교나 바울의 설교가 핵심이 다 그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통하여 발견해야 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책망이 그들의 설교의 핵심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그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그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자를 알아야 합니다. 서신서에서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자기가 배운 지식을 자랑하면서 자신이 잘못 배운 지식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 자신의 출세 자신의 부와 명성을 앞세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거짓 지도자들에게 속지 않고 바른 진리를 알고 바른 진리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복음의 진리가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 어떤 지식보다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이 세상의 거짓말과 악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르게 보시고 그 일의 방해꾼이 아닌 충성스러운 협력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