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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관련된 두 개의 철학이 있다.
‘조화의 철학(調和의 哲學, the philosophy of harmony)’과 ‘지배의 철학(支配의 哲學, the philosophy of domination)’이다.(There are two philosophies related to life. The philosophy of harmony and the philosophy of domination.)
‘너의 삶(Your life)’이 ‘나의 삶(My life)’이 되는 것은 조화(調和, harmony)의 철학(哲學, philosophy) 이고 ‘너의 죽음(Your death)’이 ‘나의 삶(My life)’이 되는 것은 지배(支配, dominate)의 철학(哲學, philosophy) 이다.(It is the philosophy of harmony that 'your life' becomes 'my life', and it is the philosophy of domination that 'your death' becomes 'my life'.)
조화의 철학은 너와 나의 개별성을 인정 해서 차이를 개성(個性, personality) 으로 승화(昇華, sublimation)시키지 만 지배의 철학은, 너와 나를 종속관계 로 이해해서 차이를 차별과 편견(差別과 偏見, discrimination and prejudice)으로 전락(轉落, fall)시킨 다.(The philosophy of harmony recognizes the individuality of you and me and sublimates the difference into individuality, but the philosophy of domination is, Understanding you and me as subordinates reduces the difference to discrimination and prejudice.)
타인(他人, another person)의 어려움이 나의 기쁨이 되는 지배의 철학을 버리라. 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을 위해서도 큰 책임감(責任感, responsibl)을 느끼며 약자(弱者, weak)의 눈물을 닦아 주라.(I will abandon the philosophy of domination in which the difficulties of others become my joy. Wipe the tears of the weak, feeling great responsibility not only for my life but also for others' lives.)
최고의 지성(最高의 知性, the highest intelligence)은 학문적인 지성(學問的인 知性, an academic low voice) 만을 의지 하지 않는다. “이웃은 굶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된 지성(true intelligence)이다.(The best intelligence does not rely solely on academic intelligence. It is true intelligence to live with a sense of question, "What am I doing when my neighbor is starving?")
이론(理論, theory)만의 학문(學問, scholarship)은 죽은 학문이다. 때로는 남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려고 ‘저 높은 곳’에서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갈 줄도
알아야 한다.(The study of theory alone is the study of death. Sometimes you have to learn to go from "high" to "low" to feel the difficulties of others.)
실천(實踐, practice)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예수님(Jesus)①을 닮은 모습이 나타나서 누군가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일부라도 주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Faith without practice is a dead faith. A figure resembling Jesus appeared and asked someone, "How will you live?")
겸손(謙遜, humility)하게 약자의 손을 잡아 주려는 마음을 늘 품고 살라. 아름다운 예술(藝術, art)이 영원(永遠, eternity)히 기억되듯이 약자를 향한 삶과 사랑은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Always live humbly to hold the hand of the weak. Just as beautiful art is remembered forever, life and love for the weak will be remembered forever by someone.)
특히 하나님(God)②이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에게 향수(香水, perfume)를 뿌리는 것과 같다.(In particular, God will remember forever. Making a person happy is like putting perfume on him.)
그때 내게도 몇 방울의 향수는 묻는다.
남을 위한 사랑과 열정(熱情, passion) 이 나의 육신(肉身, the flesh)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때 나의 영혼(靈魂, soul)은 하늘 높이 치솟게 된다.(A few drops of perfume ask me then, too. It can make love, passion, or body for others tired, but then my soul rises high in the sky.)
삶은 좋은 것이지만 남을 위한 삶은 더욱 좋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남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부끄러운 삶은 없다.(Life is a good thing, but life for others is a better thing. There is no such thing as doing nothing for others in life.)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여전히 주변에 많다. 겸손(謙遜, humility)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곁에서 주라. (There are still a lot of people around who need my help. Stand by them with a humble heart.)
나 없는 너는 존재(存在, exist)할 수 없고 너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고 특히 약자의 눈물(弱者의 눈물, tears of the weak)을 닦아 주려고 하라.(You can't exist without me, and I can't exist without you. Try to make others happy and wipe away the tears of the weak in particular.)
그런 삶을 통해 인생을 기억될 만한
거룩한 예술 작품(藝術作品, a work of art)으로 만들어 가라. (Make life a sacred work of art to be remembered through such a life.)
= 華谷·孝菴의 좋은글 중에서 =
① 예수님(Jesus Christ , BC 7경~AD 26경)
기독교의 시조.B
.C. 4경 로마 제국의 식민지 팔레스타인 지방의 갈릴리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목수였다. 유태인은 예로부터 야훼(Jahweh) 신을 믿어 야훼가 구세주(Messiah)를 보내, 신의 선민인 유태민족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을 갖고 있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태인은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그들의 절망은 깊어져, 이 세상의 종말과 '신의 나라'를 실현시킬 메시아를 강렬히 요구하고 있었다. 유태의 지배계급이었던 사두개파와 종교 지도자 계급인 바래새파는 한편으로는 로마의 지배에 협력하고 혹은 유태교의 율법의 고정화, 형식화에 전념하여, 민중의 고뇌에 응할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압제와 빈곤, 종말관과 메시아 사상의 격화 속에서 반(反)로마의 실력 행사를 일으켰던 열심당(熱心黨)이나, 황야에서 은둔적인 공동생활을 하며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린 엣세네(Essene)파 등의 운동이 일어나 유태 하층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 엣세네파로부터 요단강의 요한의 밥티즘(baptism : 회개를 위한 세례) 운동이 일어나, 암 하레트라 불리는 유태 민족 중에서도 가장 억압 받고 차별 받아 온 사람들이 결집하였다. 예수는 이러한 운동의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요한이 체포되어 처형되고 나서, 갈릴리 지방의 열심당과 밥티즘 운동에 참가한 암 하레트, 사마리아인 등 최하층민들은 예수의 운동에 합류하였다.
그것은 후에 편찬된 복음서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劍)을 주러 왔노라”(마태복음 10:34)고 하는 예수의 격렬한 말을 전하고 있듯이, 피지배계급의 해방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복음서는 또한,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소생시킨 예수의 많은 기적을 전하고 있다. 열렬하게 메시아를 원하고 있던 하층민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이니라”(누가복음 6:20)고 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천국'의 도래를 설파한 예수를 메시아로 믿어 그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는 지배계급의 재원(財源)이 되고 있던 신전 광장에서의 상행위에 분개하여 상인을 추방하는 등, 지배계급을 공격하고, 예루살렘이 굽어보이는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 예수의 운동이 반로마적 성격을 띤 민중의 메시아 운동이라는 것을 우려한 로마, 유태 지배층은 A.D. 31~32년경 예수를 체포하여 로마의 형법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하고, 무력에 의해 예수의 운동을 진압하였다. 예수의 사후에 그가 '부활'하였다는 신앙이 생겨나 원시 기독교 교단이 형성되어 이윽고 파울(Paul)에 의해 유태교와는 이질적인 기독교가 성립하였다.
② 하나님(God)
[요약]
하나님은 아브라함계 종교의 유일신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종교적 의미로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및 이슬람교에서 그들의 신을 일컫는 데 사용하는 용어이다. 하나님의 어원은 19세기 말 평안도 방언 ‘하ᄂᆞᆯ’과 ‘님’의 합성어, ‘하ᄂᆞ님’이다. 한 동안 하느님만이 표준어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은 ‘개신교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로 표준어로 쓰이고 있다.
[용어]
하나님은 절대적 최고의 신(God), 만물의 창조주 등을 일컫는다.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하느님의 2번째 의미와 같은 용어로 개신교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를 지칭하는 말로서, 유대교에서는 유일신은(여호와는) 성부 하느님만을 가리키는 반면, 현대의 개신교에서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성령 보혜사 이 셋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한국이슬람교의 코란 해설본에서도 알라를 "하나님"으로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오로지 아랍어로 쓰인 '꾸란'만을 인정하므로, 한국이슬람교에서 '하나님'은 영어의 'God'에 해당하는 한국 교계의 호칭이다.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인도네시아 등에서 쓰이는 "알라"라는 표기는 이슬람 탄생 이전부터 쓰여왔던 용어이자 기독교에서의 신을 지칭하기도 한다. <끝>
첫댓글 효암(孝菴)박규택(公認 大法師) 시인님의 좋은글 "남을 행복하게 해주라.(Make a person happy)"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시원하고 행복한 즐거운 하루 되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