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하였던 비극의수용소 곳곳을 보면서 엄청난 자료를 카메라에 모두 담지 못해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를 올립니다
사용되었던 독가스 잔해
그들의 안경테- 금테는 금으로 회수하고 금속테는 총알로 만들어서 다시 그들을 향해 쏘는데 사용
유태인들이 잡혀올때 가지고 온 가방 -그안에 재산관련 문서나 인적사항등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2차 피해도 ....
수도 없이 많은 신발들-남자들것
유태인의 머리카락을 따로모아 살아있던 유태인들을 시켜 짠 카페트, 옷,모자,신발등...
여자들이 신었던 신발들
의수, 의족등-금속이 많아 특히 나치들이 좋아했다고....
그당시 유태인들은 부유층이 많고 종교적 관습으로 비싼 법랑식기를 애용
이발도구들-빗, 면도솔 등
통조림, 잼등을 담는 유리병 뚜껑들
가스실
가스실내에서 유일하게 외부로 뚤린 저 굴뚝에서 연기가 외부로 솟아 오르면 유태인들이 시신을 처리
시신 소각로
아유슈비츠에서 악명 높았던 죽음의 천사 - 조셉 멩겔레 (왼쪽에서 두번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항공 사진 - 1944년 5월 31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사령관 리차드 베어와 조셉 멩겔레와 수용소 소장 루돌프 호이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시설 짓기 공사에 동원되어 콘크리트를 도르래로 올리는 인부 - 1941년
아우슈비츠 제2호 구역의 시체 소각장
헝가리에서 강제로 잡혀와 아우슈비츠 역에 새로 이송되어온 유태인들을
남자와 여자,어린이들의 두 그룹으로 렬을 나누는 독일군 - 1944년 5월
유대인 아이들을 여성들로부터 격리시키는 아우슈비츠의 나치 장교 - 1944년 5월
아우슈비츠역에 도착한 헝가리인 유대인들 - 1944년 5월 26일
아우슈비츠역에 도착한 헝가리 유대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따로 따로 2줄로 나누는 독일군 - 1944년 5월 27일
아우슈비츠에 도착되어 독일군의 분류 작업을 받는 유대인 남자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강제로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 랍비
아우슈비츠역에 도착한 유대인 어린이들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헝가리 유대인 남자들 - 1944년 5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하여 줄무늬 죄수복으로 갈아 입힌 유대인들
머리를 모두 삭발당한 유대인 여성들
강제로 아우슈비츠로 끌려온 헝가리 유대인 여성들
아우슈비츠역에 끌려온 헝가리 유대인 어린이 형제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내지기 직전의 헝가리 유대인 어린이들 - 1944년 5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향하는 헝가리에서 끌려온 유대인 어린이들
아우슈비츠의 제 4 가스실(Krema 4)
아우슈비츠 유대인 노동자들에 의해 제 4 가스실(Krema 4)로 끌려가는 유대인 여성
나치가 유대인 가스학살에 이용한 치클론 베(Zyklon B) 청산 가스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치클론 베(Zyklon B) 청산염 캔
수많은 유대인들을 청산가스로 학살시켰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아우슈비츠 가스실 천장의 청산 가스 치클론 B 투입구
유대인을 집단학살 시키던 가스실 지붕의 청산염 치클론 B를 투입시키던 구멍을 살펴보는 소련군 - 1944년 10월
아우슈비츠의 제 2 가스실(Krema 2)
아우슈비츠 제2 가스실로 끌려 가는 유대인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끌려 가는 유대인 어린이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압수당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물품 - 1944년 4월
압수당한 유대인들의 안경
독일군이 유대인들에게 강탈했던 결혼 금반지를 살펴보는 미군 - 1945년 5월 3일
아우슈비츠 제3호 구역 모노비츠(Monowitz)
부나 또는 모노비츠라고도 불리우는 아우슈비츠 3호 캠프는
폴란드 모노비체 외곽에 위치한 부나 합성 고무 공장에서 일할
수감자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42년 10월에 건설되었다.
1941년 봄, 독일 I.G. Farben사는 공장을 설립하고
집단 수용소의 노동력을 합성 고무와 연료 생산 공장에 투입하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I.G. Farben사는 7억 독일 마르크(1942년대 미화 가치 약 140만 달러에 해당)를 아우슈비츠 3호에 투자하였다.
1941년 5월부터 1942년 10월까지 SS는 수감자들을
아우슈비츠 1호에서 수감자들을 수송하는 “부나 파견” 작전을 실시하였다.
수감자들은 처음에는 걸어서 이동하였고 나중에는 철도로 이동하였다.
1942년 가을, 아우슈비츠 3호의 건설이 완료되면서 부나로 파견된 수감자들은 아우슈비츠 3호에 거주하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3호는 독일의 노동법 훈련 규율을 어긴 비 유태계 수감자들의 소위 노동 교육 수용소로 인식되었다.
아우슈비츠 제3 구역 모노비츠
아우슈비츠 제3구역 모노비츠의 I.G. Farben사 공장의 유대인 노동자들
아우슈비츠의 농장 구역 - 1944년 8월 25일
유대인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던 아우슈비츠 제 3구역 모노비츠의 공작소
2차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모노비츠(Monowitz)에 설립한 독일 지멘스사의 유대인 노동력 착취 공작소
나치 의사 조셉 멩겔레(왼쪽)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 호에스(가운데)와 조셉 크라머
가스실로 보낼 유대인들을 분류하는 조셉 멩겔레(왼쪽)와 나치 SS 장교들 - 1944년
생체실험에 이용된 유대인 어린이들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생존 유대인 여성들 - 1945년 1월 27일
악명 높았던 나치 의사 멩겔레의 생체 실험용으로 이용되었던 유대인 어린이들
2차세계대전 말기까지 멩겔레의 생체 실험에 의해 죽은 유대인들은 40만명이나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생존 유대인 어린이들
팔에 새겨진 문신 번호를 보여주는 아우슈비츠 제2구역의 해방된 유대인 생존 어린이들
아우슈비츠 제2 구역에서 600명의 어린이들이 살아남았다.
환호하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해방된 생존 유대인들 -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생존 어린이들
눈 덮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바로 빠져 나오는 생존 유대인 여성들
해방이 되었지만 우울한 표정으로 연합군을 바라보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철조망 너머의 유대인들
해방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출입구 - 1945년 1월 27일
해방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여성 막사의 유대인들 - 1945년 1월 27일
해방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남자 막사의 유대인들 -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해방된 유대인 어린이들 -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하여 수용소 문을 나서는 프랑스 유대인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을 처음부터 주관했던 지휘관으로 교수형에 처해지는 루돌프 호이스(Rudolf Hoess) 수용소 소장- 1947년
첫댓글 인간이 한 일로는 도저히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군요.
우리도 비슷한 악행을 당한게...천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왜놈들의 만행, 그 인간들이 지금 하는 꼴은...
오래전 폴란드 아이슈비추 수용소를 관광하였었는데 새롭게 다시보니 인간이 인간을 이토록 잔인하게 할 수 가있나 하고 소름끼치며 보았던 당시의 느낌이 생각나는군요 나치의잔인함에 현재의 독일은 계속 속죄하고 용서를 비는데 이웃 일본의 망동을 보면 분노가 치미는군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