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후암… 단종의 비 추모심경 피력
약 사 전 나라발전 염원 담긴 글씨
◇청룡사 비각 편액
◇흥국사 약사전 편액
영조(英祖/ 1694∼1776)는 조선 제21대 왕으로 숙종의 넷째 아들이며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 이름은 금(昑)이다. 영조는 1721년 왕세자에 책봉돼 1724년에 즉위했는데, 50여 년의 긴 재위 기간 동안 탕평책(蕩平策)을 통해 당쟁 방지에 힘썼다. 또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켰으며, 균역법 실시와 ‘속대전’을 편찬하는 등 조선 후기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임금이었다.
사찰에 전하는 편액 중에는 영조의 고양 흥국사 <약사전>, 서울 청룡사 <전봉후암어천만년> 편액 외에도 어필이 적지 않은데, 고려의 것으로는 공민왕의 부석사 <무량수각>이 유일하다. 또 조선의 것으로는 세조의 공주 마곡사 <영산전>, 정조의 해남 대둔사 <표충사>, 숙종의 법주사 <대웅보전>, 순조의 순천 선암사 <대복전>, 헌종의 합천 해인사 <사방무일사>, 고종의 예산 보덕사 <소석시경> 등이 있다. 불교를 멀리했던 조선의 통치 이념과는 달리 역대 왕들은 불교를 신봉하면서 국가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고, 그런 지극한 마음을 담아 불보살을 모신 전각에 제액(題額)했던 것이다.
서울 숭인동 청룡사 정업원구기비각에 걸린 <전봉후암어천만년> 편액은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定順王后)가 영월로 유배가는 단종과 이곳에서 작별하고 정업원으로 출가해 허경(虛鏡)이라는 비구니로 살았던 까닭에, 영조가 1771년 이를 기려 비를 세우고, 비가 오래 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이 편액의 글씨는 송설체(松雪體) 풍의 가느다란 행서로, 액판 좌측에 두 줄로 ‘신묘구월육일 음체서(辛卯九月六日 飮涕書)’라는 서자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는 부기(附記)가 있다.
고양 흥국사 <약사전> 편액은 1770년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의 묘인 소녕원(昭寧園)에 가던 중 이 절에 들려, 이 곳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로 고치고, 절을 망모(亡母)의 원찰로 삼으면서 함께 쓴 글씨로 전한다. 편액의 글씨는 결구가 단정하고 혼후(渾厚)한 운필(運筆)의 행서이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
첫댓글 서각을 하는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자료제공에 감사드리며 화창한 봄날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