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원전거> - 도연명
남산 아래 콩을 심었더니
풀만 무성하고 콩싹은 드문드문.
새벽에 일어나 거친 밭 김매고
달빛 받으며 호미 메고 돌아온다.
길은 좁은데 초목은 자라
저녁 이슬이 내 옷 적시누나.
옷이 젖는 것이야 아깝지 않으니
다만 내 소원이나 어긋나는 일 없었으면.
<경자세오월중종도환저풍어규림>기이 - 도연명
예부터 벼슬살이 어렵다 했는데
나 이제 비로소 이를 알았다.
산과 강 얼마나 크고 넓은가
비바람 예측할 수 없네.
세찬 파도소리 하늘을 울릴 정도이고
강한 바람은 쉴세 없이 분다.
오래 동안 떠들다 태어난 곳 그리면서
어찌하여 이곳에서 머뭇거리나.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전원이 역시 좋으니
속세와는 하직을 해야지.
젊은 시절 길지도 않거늘
마음을 따라야지 무엇을 망설이나.
권농 - 도연명
아득한 상고시대
태초의 사람들은
유유하게 스스로 만족하며
질박하고 순수하였다네,
술수와 기교가 이윽고 싹트자
필요한 것 공급할 수 없게 되었네.
누가 그들을 풍족하게 해주었는가?
실은 지혜가 뛰어난 사람에게 의지하였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누구였나?
이는 바로 후직이었네.
어떻게 풍족하게 하였나?
실은 씨 뿌리고 모종하게 하였네.
순임금은 몸소 밭을 갈았고
우임금 역시 곡식 심고 거두었네.
옛날 주나라의 책에서도
여덟 가지 정사 중에 먹는 걸 첫째로 쳤다네.
아름다운 덕 널리 행해지고
들판은 아름답고 풍성하였네.
화초와 나무 무성하게 우거지고
부드러운 바람은 맑고 따뜻하였네.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농사철을 맞아 다투어 일하였네.
뽕 따는 아낙네는 밤중에 일어나고
농부는 들에서 잠을 잤네.
농사짓는 절기는 쉬 가버리고
따뜻한 바람 고마운 비도 오래 머물지 않아
기결은 아내와 함께 김매었고
장저와 걸닉은 나란히 밭을 갈았네.
살펴보면 저들 현명한 사람들조차도
오히려 논밭에서 부지런히 일했네.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옷자락이나 끌면서 팔짱 끼고 있겠는가.
사람들의 삶 부지런함에 달려 있으니
부지런하면 궁핍하지 않다오,
편안히 안락함만 찾으면
연말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한두 섬 곡식 쌓아두지 않으면
굶주림과 추위 번갈아 들이닥친다네.
당신네 부지런한 동료들을 돌아보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는 도덕에 심취하여
농사일 묻는 번수를 비루하게 여겼고
동중서는 거문고와 책을 즐겨
전원을 밟지 않았네.
만약 그들처럼 초연하여
옛 사람의 고상한 길 걸을 수 있다면
삼가 옷깃 여미고
아름다운 덕 공경하고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술세9월중어서전확조도> - 도연명
사람이 삶엔 일정한 원칙이 있게 마련인데
입고 먹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로세.
어찌 이것조차도 강구하지 않고
스스로 편안하기 바랄 수 있으리오?
봄이 되어 농사일에 힘쓰면
한 해의 수확도 그런대로 볼 만하다네.
새벽에 나가 가벼운 일이나마 하고
해가 지면 쟁기 메고 돌아온다네.
산중엔 서리와 이슬 많고
날씨도 일찍 차가워지는구나.
농민들 어찌 고생스럽지 않으랴마는
이런 어려움 마다할 수 없네.
온 몸이 정말 이리도 고달프지만
뜻밖의 재난이 없기만을 바라네.
손발을 씻고 처마 밑에서 쉬며
한잔 술로 기분 풀고 얼굴 편다네.
먼 옛날 밭 걸던 장저와 걸닉의 마음은
천년 뒤에도 나와 서로 통하네.
항상 이와 같기만을 바라노니
몸소 밭가는 수고는 탄식하는바 아니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