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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피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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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인도의 여름은 4월부터 8, 9월까지라고 할 수 있는데
최악의 혹서기이자 건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달은 5월과 6월입니다.
3개월의 긴 방학이 주어지는 것도
피서철이 되는 것도 당연히 이 기간이 되지요.
대부분의 외국 유학생들은 자기네 나라로 귀국해버리거나
아니면 어디론가 가서 몇 개월씩 더위로부터 피신해 있고
델리를 굳세게 지키고 있는 외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에서의 피서는 바다나 계곡으로 놀러간다는 낭만의 뉘앙스가 있지만
인도에서의 피서는 생존을 위한 일종의 탈출입니다.
인도 땅에서 태어나 인도의 공기를 마시며 적응해온 이 나라 사람들에겐
날씨란 원래 이런 것이고 삶이란 이런 인고의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외국인들에게 이런 기후는 시험에 드는 일이며 도전이기도 합니다.
인도대륙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피해버리면 사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단지 43-48도로 불타듯 작렬하는 이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입니다.
오늘은 인도인들이 더위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피서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만 간단하게 말해보려고 합니다.
저녁에 공원을 산책하면서 만났던 이웃의 한 인도 사람에게 들은 얘기인데
더위로부터 자신을 잘 보호하려면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레몬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약간 작은 라임(Lime)이라는 게 있는데
그 라임의 즙을 짜서 물에다 넣고 약간의 설탕과 소금을 넣어서 쥬스를 만듭니다.
이 라임 쥬스는 비타민이 아주 풍부하여 피로회복과 원기보전에 효과가 커서
인도인들에게 아주 사랑을 받는 기호음료입니다.
맛이 시큼시큼하고 짭짜름해서 마시기가 그리 상쾌하지는 않은 쥬스이지만
하루에 최소한 3리터 이상을 마셔준다면 더위에 지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에서 캐낸다는 붉은 소금과 라임을 사서 막 바로 실천에 들어갔습니다.
평소에 1리터의 물도 제대로 마시지 않는 제가
하루에 3리터 이상의 라임 쥬스를 마시는 일은
노동이나 고역이 될 정도로 부지런을 떨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하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훨씬 수월했고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공부하고 싶은 기력과 의욕이 생겼습니다.
아마 수분과 비타민, 염분을 충분히 공급해주어서
몸이 정상적인 발란스를 유지하는가 봅니다.
또 인도인들이 일상 속에서 늘 즐기는 음료 중에는
거리에서 가게에서 직접 짜주는 오렌지 쥬스와 사탕수수 즙이 있고
또 커드를 물에 타서 마시는 랏씨라는 게 있습니다.
모든 쥬스나 음료에 소금을 쳐서 마시는 게 인도인들의 특이한 방식인데
땀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수분과 염분, 비타민을 그렇게 섭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름만 되면 인도에는 아주 인도다운 풍물이 하나 돌아가고 있습니다.
에어 쿨러(air cooler)라고도 하고, 그냥 쿨러 라고도 하는 물건인데
7-8개월간 계속되어 온 팍팍한 건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명물로서
시원하고 촉촉한 공기를 방안에 양껏 주입시켜주는 신통한 선풍기입니다.
직사각형의 대형 선풍기에 밑바닥에는 물을 잔뜩 채울 수 있게 만들어졌고
짚 비슷한 끈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선풍기의 각 삼면에 잘 부착시킵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물을 호스로 끌어올려 삼면으로 골고루 계속 흘러내리게 합니다.
호수 옆이나 강가에 있으면 늘 시원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이 쿨러 안에서 물기를 머금은 시원한 공기가 방 안을 촉촉하고 시원하게 해줍니다.
헬리콥터(?) 지나가는 소리를 내긴 하지만 보통 선풍기의 열풍보다는 수십배 시원하므로
인도에서 여름을 나기 위한 가장 긴요한 피서 필수품입니다.
에어컨은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고
일반인들은 이 쿨러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계곡의 물소리인양 들으며 이 더위를 이기고 있습니다.
이 여름은 또 인도인들이 히말라야로 피서 가는 시즌이기도 합니다.
일부 부자들은 히말라야 산간 휴양지에서 쾌적한 피서를 하겠지만
다수의 일반 서민들은 히말라야 곳곳의 성지로 순례여행을 갑니다.
라닥이나 히마찰 지역의 눈길이 뚫리는 것도 5월이고
힌두교 시크교 히말라야 성지들의 순례시즌도 바로 이 기간부터입니다.
작년에 4대 성지 중의 하나인 바드리나트를 다녀왔습니다.
리쉬케쉬에서 출발한 버스는 히말라야 험준한 산맥들을 구비 구비 오르고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계곡을 끼고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갑니다.
하루에 바드리나트까지 다 가지 못하므로 도중의 조시마트에서 하루 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같은 버스를 타고 또 가야만 합니다.
어느 깊은 히말라야 골짜기에 들어서니
온몸을 싸고도는 기운이 너무나 상서롭게 느껴져서
마음이 숙연해지고 경건해지면서
입에서는 저절로 만트라가 흘러 나왔습니다.
눈을 들면 순간 순간 설산이 하얗게 빛나는 얼굴로 우리를 반기고
호탕하게 흘러내리는 갠지스 강물이며 건강한 전나무 숲도 보이고
산사태로 길이 막혀 몇 시간씩 길에서 기다려도
불평하는 사람이 하나 없었던 그 산 그 풍경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릅니다.
침묵을 공유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착한 친구 하나 있으면
털털거리는 딱딱한 로컬 버스에 앉아
하염없이 산을 끼고 올라가는 그 과정 그 시간들이
그냥 그대로 <히말라야 드라이브>입니다.
저렴한 여행경비에 히말라야의 영적 냉기를 마음껏 쏘일 수 있었던 그런 여행은
의식 속에서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귀한 추억이며, 아름다운 피서였습니다.
얼마 있으면 우리의 큰 스승님 붓다가 태어나신 초파일이 오고 있군요.
“구루(스승)는 여러 모습으로 온다” 는 말이 있습니다.
달리 해석해 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들이 다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되겠지요.
인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우주 만물이 다 구루이고 스승입니다.
인도는 스승을 잘 모시는 아름다운 풍습과 옛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21세기 현대문명 속에서도
성자들을 키워낼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서구 문명의 영향으로 스승의 개념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가
스승을 모실 수 있는 그런 풍토로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첫댓글 일중스님 글은 언제나 따뜻하고 솔직하고 잔잔해서 참 좋습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