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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칙[倩女離魂(천녀이혼)/ 천녀 혼이 육체를 떠나다]
五祖問僧云, 천女離魂, 那箇是眞底.
오조문승운 천녀이혼 나개시진저
오조 법연 선사가 한 선승에게 물었다.
“천녀의 혼이 떠났는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
[評唱]
無門曰, 若向者裡悟得眞底, 便知出殼入殼, 如宿旅舍. 其或未然, 切莫亂走. 驀然地水火風一散, 如落湯방蟹, 七手八脚. 那時莫言 不道.
무문왈, 약향자리오득진저 변지출각입각 여숙여사 기혹미연 절막난주 맥연지수화풍일산 여락탕방해 칠수팔각 나수막언 부도
만약 여기서 진짜를 깨칠 수 있다면 껍질을 들고나는 것이 객사를 출입하는 것 같음을 알 것이다. 그러한 이치를 모를 양이면 함부로 어지러이 날뛰지 마라. 문득 물 불 바람 흙으로 한번 흩어지면 뜨거운 물솥에 떨어진 게와 같을 것이니 손이 일곱, 발이 여덟인들 어쩔 것인가? 이때 이를 수 없다고도 말하지 마라.
[頌]
頌曰. 雲月是同, 溪山各異, 萬福萬福, 是一是二.
송왈 설운시동 게산각이 만복만복 시일시이
구름과 달은 같고
개울과 산은 각기 다르다
복 많고 복 많은 이들이여
이 하나인가 둘인가
[蛇足]
이제 무문관도 종반을 접어들었다. 조계종 본사에서 늦게나마 화두해설집을 낸것은 고육지계라 할 수 있지만 , 어찌하겠는가?
현실여건이 뒷짐만지고 큰기침이나 하고 있으면서 화두해석은 이러니저러니 하고 있을때 비파사나를 비롯한 유사한 수행법들이 일반화되어 대중속을 파고든지 옛날이다.
화두선 보급을위한 무차대회를 열어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은 때늦은 감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본인이 굳이 간화선만을 수행법으로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너무 옥탑방에 가둬놓아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다 수행도 비파사나보다 솔직이 더 어렵다. 이유야 어떻든 이제라도 해설집의 발간은 여러측면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번칙의 천녀이혼은 앞서 선이야기 메뉴에서 다뤘던 중복된 내용중의 하나인데 우선 천녀이혼의 얘기부터 알아야 되니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이 화두는 당나라 시대의 전기(傳記) 소설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형주(衡州)에 사는 장감(張鑑)이란 사람의 장녀에 천녀라는 미녀가 있었고 장감의 외조카인 왕주(王宙)란 미남이 있어서 서로간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런데 장감은 후에 딸 천녀를 부잣집 아들인 빈료(賓僚)에게 출가시키기로 했다. 천녀는 한사코 이를 거절했으나 엄한 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고민하다가 그만 상사병이 걸려 병석에 눕게 되었다.
왕주도 화가 나서 고향을 떠나 멀리 타향에 가서 살기로 작정하고 배를 탔다. 강 언덕에 배가 닿으려고 할 무렵 어떤 여자가 "여보!" 하고 부른다. 왕주가 돌아보니 천녀였다. 이게 웬일이냐고 하며 두 남녀는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촉(蜀)으로 가서 두 사람은 5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들을 하나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녀가 고향 부모를 그리워하며 왕주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아들까지 낳았으니 이제와서 부모님도 어쩌지는 못하실 것이니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과거를 사죄하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를 간청합시다."라고 하기에 왕주도 이에 동의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왕주가 배에서 내려 장인되는 장감을 찾아 뵙고 지난 일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러자 장감은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천녀는 그 후 병석에 누워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을 했다. 왕주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며 문밖에 있는 천녀를 데려오자 병중의 천녀가 이를 맞아 두 천녀가 한 몸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오조 法演 선사(1104년 입적)는 무문선사가 법손이된다.
여기서는 소설의 내용이나 육신과 영혼의 眞僞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禪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이다. 선지란 相對를 떠나 절대경지의 세계란 것을 주지하면 이 요상한(?)화두도 별개아니다.
여관을 드나들듯이 육신과 혼이 다르지않음을 모르면, 어떠한 삶을 살았던 간에 인간이 죽으면 사대(地水火風)로 분리되어 뜨거운 물속의 게와 같이 사라질것이니 원망치 말라. 달이 있어 구름이 있고 산과 골은 서로 다르다. 절대경지에서 보면 모두가 하나요, 차별경지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두 경지 또한 다르지 않으니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떤가..그저 (禪旨)는 좋고 좋구나.
천녀이혼(倩女離魂)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난다는 뜻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倩 : 예쁠 천(亻/8)
女 : 계집 녀(女/0)
離 : 떠날 이(隹/11)
魂 : 넋 혼(鬼/4)
정신이 나가 어리둥절한 상태를 넋이 나간다고 한다. 넋은 바로잡는 얼과 함께 영혼(靈魂)과 같은 말인데 사람의 몸 안에서 육체와 정신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넋이라도 동양에서는 혼백(魂魄)이라 하여 혼(魂)은 정신을, 백(魄)은 육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지만 '백'은 지상에 흩어져 귀신으로 떠돈다.
지괴(志怪) 소설은 억울한 죽음으로 된 귀신과 요괴 등을 다룬 것으로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유행했다. 천녀(倩女)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육체와 혼이 떨어져 있다가(離魂) 몇 년 후에 다시 합쳐졌다는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천녀는 당(唐)나라 대종(代宗)때 사람 진현우(陳玄祐)의 '이혼기(離魂記)'에 처음 등장한 이후 인물의 이름이 약간씩 바뀌면서 여러 시문에서 인용돼 유명해졌다. 줄거리를 간단히 보자.
옛날 장일(張鎰)이란 사람에게 천녀라는 미모가 뛰어난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먼 친척의 아들 왕주(王宙)가 총명해서 나중에 부부가 되게 해 준다고 약속했다.
혼기가 되자 장일은 마음이 변하여 천녀를 높은 벼슬아치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상심하여 천녀는 드러누웠고 절망한 왕주는 고향을 떠나려고 강을 건넜다. 어두운 강기슭에서 왕주는 뒤따라온 천녀를 만나 부부가 됐고 5년을 행복하게 살며 벼슬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고향이 그리워져 장일을 찾아 용서를 구했는데 그때까지 천녀는 뒷방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배 안에서 기다리던 천녀를 데리고 오니 그 때에야 두 사람이 합쳐져 한 사람이 됐고 이후 행복하게 살았다.
이 애틋한 이야기가 송(宋)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의 설법서인 '무문관(無門關)'에도 실려 유명한 화두가 됐다. 여기에는 청녀(淸女)로 나와 선사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청녀가 혼이 떠났는데,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짜 청녀인가(淸女離魂, 那箇是眞底)?"
선사들은 이것을 우리의 본성은 진짜인가 거짓인가, 혹은 선심(善心)과 악심(惡心) 중 어느 것이 마음의 본체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천녀(倩女)든 청녀(淸女)든 결국은 해피엔딩이지만 혼이 육체와 떨어져 있었던 만큼 여성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나 이루어지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성어가 됐다.
비련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소재가 되어 원(元)나라의 정광조(鄭光祖)는 내용을 발전시킨 잡극으로 탄생시켰고, 1987년 홍콩에선 줄거리를 빌려와 장국영(張國榮), 왕조현(王祖賢) 주연의 천녀유혼(倩女幽魂)이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주위에서 아무리 혼백까지 갈라놓으려 해도 사랑이 간절하면 꺾을 수 없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혼백이 아니라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뻔히 하는 것을 보면 진실함을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
◼ 오조법연과 천녀리혼
몸과 마음 중 진짜를 찾는 것은 헛된 일
상대방 이해 여부 알려할 때 필요할 뿐
오조법연 화상이 어떤 승려에게 물었다. "천녀의 영혼이 나갔는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 무문화상이 평했다. "이 문제에서 깨달아 진실을 알았다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갔음을 알 것이다."
오조법연 화상은 북송대에 활약한 임제종 양기파의 선사이다. 오조홍인 대사가 머물던 황매산에서 후학을 지도하였기에 오조법연이라고 한다.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공부의 수행방편으로 삼아서 반드시 꿰뚫어야 할 조사관으로 중시한 이가 바로 오조법연이다. 위 천녀리혼(倩女離魂)의 공안(公案)은 당대에 유행한 설화에 근거한 것이다.
당대에 형양에 왕주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감이란 외삼촌의 딸인 천녀를 사랑하였다. 물론 천녀 역시 왕주를 연모하였다. 그런데 지방에 새로 부임한 관리가 천녀의 미모에 반하여 장감에게 청하였다. 장감은 그의 딸을 관리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하였다.
이에 왕주는 매우 실망하여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배를 타려고 하는데 자기를 부르는 천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결국 이 젊은 연인은 멀리 도망쳐 5년 동안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천녀가 어느 날인가부터 이름 모를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기를 시작하였다.
왕주는 고향을 방문하여 용서를 빌고 결혼의 승낙을 받기로 결심하고 장감의 집을 방문하였다. 장감은 지금까지 이야기를 왕주에게 듣고 깜작 놀랐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인 천녀가 지난 5년 동안 병으로 앓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병든 천녀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마당으로 나와서 왕주와 함께 살아온 천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천녀는 서로 만나는 순간에 하나로 합하여졌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어느 쪽의 천녀가 진짜인가? 집안에서 병든 천녀인가, 아니면 왕주와 함께 한 천녀인가? 이것이 오조볍연이 묻는 질문이다.
몸은 집안에 있었고, 마음은 배를 타고 왕주와 함께 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어느 쪽이 진짜 천녀인가를 묻는 질문은 몸인가? 마음인가? 어느 쪽이 진짜 천녀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물론 몸과 마음을 설명하거나 이야기할 때는 구별이 가능하다. 몸은 물질적인 영역이고 마음은 정신의 영역이니, 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은 서로 별개의 독립된 실체는 아니다. 몸이 아프면 즉각적으로 마음이 반응한다. 반대로 마음이 슬프면 몸이 무거워진다.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천녀의 이야기처럼 양자는 현실에서는 서로 분리되는 일은 결코 없다. 천녀이야기는 단지 이야기일 뿐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상상의 이야기와 같다.
그래서 어느 쪽이 진짜인가를 묻는 것은 부질없다. 마치 이들은 서로 독립된 실체인양 질문하는데, 모두가 부질없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의미가 있다면, 상대방이 속는가, 그렇지 않는가, 시험할 때뿐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몸과 마음은 서로 구분되고, 영혼이 존재하는 듯한 믿음을 갖게 한다. 논평하는 무문화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이 존재하고 그 영혼은 육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어떤 존재로 만든다.
아이구! 주인공아! 속지 말라. 속지 말라. 더 이상 속지 말라. 지난번 태풍으로 들판에 선 소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날아갔다.
첫댓글 육체와 정신을 이원론적으로 사유하는 전통과 하나로 보는 전통이 있다. 서로 의존관계로 卽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른 견해다.
귀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