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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광법회에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지난 2021년 7월 11일부터 시작된 스님측의 사무국 폐쇄로 3년 동안 굳게 잠긴 사무국 앞 복도에서,
사무국 업무를 위해 갖다놓은 탁자를 종무원들이 남쪽 일주문 앞 도로에 갖다 던지는 등 여러가지 고난을 당하는 중에서 심월행보살님께서 크게 다치는 등 수많은 수모와 추위와 더위를 묵묵히 견디며 지켜온 우리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간절한 원력에 불보살님의 가피가 함께한 것입니다.
이번에 스님측이 광명의 등 설치,모금활동,부처님오신날 관련행사 등을 못하게 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서 기각 결정을 내려서 불광법회가 법회활동, 시설물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새롭게 교체된 광명의 등입니다.올 한해 청정도량으로 더욱 발전하는 불광법회가 되고
불광법회.불광사의 모든 형제님들의 건강과 소원이 성취되시길 불보살님께 기원드립니다.()()()
일요법회를 위해 현관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시는 보현보살님들 이십니다.
오늘 경찰관님들의 입회하에서 쇠고리를 절단하고 사무국 문을 열었습니다.그동안 스님,종무원들이 주인행세를 하면서 보시도 하지 않으니까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주장을 하다니~
법회 식구들이 보시해서 지은 절 인데,아무 주장도 하지 말고 돈이나 내라는 주장?
불광법회 불광사는 부처님 뜻에 맞게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청정도량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지난 3년간 비워둔 공간을 법회식구들의 온기로 금방 밝고 활기찬 사무국이 되었습니다.
게시판의 2021년 7월 일정표가 그간의 고난과 인욕의 시간을 증거합니다.
송파 6.7.9구와 중랑구에서 떡과 생수를 보시하여 나눔봉사를 하시고 지정스님의 대종사 품수 취소와 호법부 제소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법당안내팀 보살님들께서도 언제나처럼 여여한 모습으로 자리하십니다.
천수경 봉독과 타종 헌향과 헌다, 사회자님의 멘트로 법회의 시작을 알립니다
금강경 법문을 해주시는 효림스님! 매월 기다려지는 법문이 되었습니다.
감사와 찬탄을 드리옵니다.()()()
오늘의 법사: 효림스님
오늘의 법문 : 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다.
이제 며칠 후에 사월 초파일입니다. 작년 사월 초파일 즈음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월 초파일을 부처님오신날이란 명칭으로 지금 통일되어서 불교계 전체가 부처님오신날이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때부터 초파일을 부처님오신날이란 용어로 사용되었는지 기사를 보니까 1970년대부터 불광법회에서 광덕큰스님께서 사용하셨다고 기록된 걸 봤어요. 얼마나 좋습니까, 부처님오신날이라! 오늘은 다른 때 법회보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살아있고, 그래서 여기에 즈음하여 좋은 게송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설명하기 전에 가수의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제행이 무상이라,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설법을 부처님께서 하셨어요. 차유피유연기법, 此有彼有緣起法이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부처님 말씀하신 게송에도 보면 차유고로피유요. 차기고로피기라. 이것이 있는 연고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는 연고로 저것이 일어나며 멸무명고로 멸생노병사라. 무명이 멸한 연고로 생노병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는 뜻입니다.
비작세존비수작, 非作世尊非誰作이라. 이것은 세존 우리 부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고 그럼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학교에서 방정식이란 거 배워보셨죠? 방정식이나 더하기 빼기 이런 수학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문화사회적으로 이치를 발견해서 그게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건 위대한 수학자가 있어서 만들어낸 게 아니고 그 이치를 발견한 겁니다. 그렇듯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남자가 있으려고 하면 반드시 그 대칭되는 여자가 있어야 된다. 여자라는 개념이 없으면 남자라는 개념도 성립할 수가 없다. 이런 연기법을 세존께서 말씀하셨어요.
여래무관유상존, 如來無關有常存이라 이것은 부처님과 관계 없이 상존하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우리 인류가 이 위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알지 못했어요. 부처님은 연기법을 창조해서 위대하신 게 아니고 인류가 모르던 것을 부처님이 깨달아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위대한 겁니다. 그 가르쳐준 연기법이 우주 공간 안에서 유일한 진리라는 겁니다. 왜 우리가 부처님을 위대하게 생각하느냐 하면 바로 이 법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금강경 또는 여러 대승경전을 배우는데 대승경전 뿐만 아니라 원시경전의 아함경 등 부처님의 모든 경전은 그것이 불교의 경전일 수 있게 되는 것이 연기의 논리에 위배되지 않아야 됩니다. 연기의 논리에 합당하면 불교의 경전이고 합당하지 아니하면 불교경전이 아닙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것은 그리스 철학이나 중동의 종교가 진리냐, 서양의 기독교가 진리냐 하는데 불교의 연기론에 부합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불자는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연기론이라고 하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합당하고 타당하고 가장 보편적인 것이냐 하면 이 세상의 어떤 진리도 각자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보편성이나 타당성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게 아니라 대체적으로 다 그래요. 그래서 그건 진리가 아닌 겁니다. 연기법만이 진리입니다. 오늘날 과학은 진리라고 합니다. 과학을 왜 진리라고 하느냐 하면 과학이 진리일 수 있는 것은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연구를 해서 이미 진리로 밝혀진 것 조차도 계속 연구를 합니다. 이렇게 연구해도 결론이 이렇게 나오고 저렇게 연구해도 결론이 이렇게 나오면 진리입니다. 그래서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고 아무도 부정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과학자들은 언제든지 과학에서 진리로 밝혀진 것조차도 새로운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으로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인정해야 된다. 그렇게까지 과학자들이 겸손하게 나옵니다. 그러니 진리죠. 그런데 종교는 그렇지 않아요. 인류문화사적으로 그들이 진리라고 얘기하는,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조차도 한 번도 실험해서 검증된 바가 없고 그 누구도 실제적으로 증명해 보이지 못해요. 그런데도 진리라고 자꾸 고집하니 그건 진리가 아니죠. 그래서 불교는 연기법이 진리라고 합니다.
시고시법위진리, 是故是法偉眞理. 이런 고로 이 법은 위대한 진리다. 부처님이 오셨거나 오시지 않거나 원래 있는 법인데 그걸 부처님이 발견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셔서 위대한 진리입니다. 시법위지교중생, 是法爲知敎衆生이라. 이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셨다.
석가불존래세상, 釋迦佛尊來世上이라. 그러한 석가불존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법이라는 게송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느낀 점이에요. 불교 외에 중국 사람들의 음양사상이 상당히 훌륭한 사상입니다. 음과 양인데 음이 뭐냐 하면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높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낮은 것이 있다. 그래서 높은 것은 양이고 낮은 건 음이다. 꽃도 암수가 있고 모든 동물도 암놈 수놈이 있고 심지어 전깃불도 양이 있고 음이 있잖아요. 그게 합해져서 불이 켜지잖아요. 불교의 연기법과 유사하고 닮은 데가 있는데 궁극적인 진리를 밝히는 데까지는 음양론이 도달하진 못했다. 비슷하게는 갔는데. 서양에는 그런 사상이 없어요. 너무 열내서 얘기하다가 나중에 하고싶은 얘기를 놓칠 수 있으니까 다시 노래 듣겠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이 뭐냐를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양론에 의하면 삶이 양이라면 죽음은 음입니다. 여기까지는 음양론이 해석할 수 있어요.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이건 음양론에서는 그런 논리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생사해탈을 연기법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생사해탈, 삶과 죽음은 대립입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요. 제행무상, 인류 역사상 태어나서 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말씀드렸다시피 죽었다고 하는 것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겁니다. 부활이란 없는 겁니다. 어느 큰스님은 죽었다 살아나는 건 바둑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는데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부처님은 연기법을 통하여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해탈을 얻을 것이냐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연기법을 가르치신 겁니다. 연기법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백담사에 교수사로 있을 때 어느 학인이 물었어요. “스님, 종단의 교육원장 하시는 분이 깨달을 필요 없다. 연기법만 충분히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스님은 그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래, 연기법을 충분히 이해하면 되는데 그 스님은 연기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부처님은 우리에게 연기법을 이해하고 알아라고 말씀해주신 게 아니야. 그 가르침을 통하여 해탈하라, 부처님이 되어라.” 부처님이 이걸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음양 논리에는 생사해탈이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믿어서 천당을 가고 극락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천당과 극락을 만들고 내 삶 속에 “인생아, 고맙다.” 인생을 통하여 내가 스스로 극락을 만드는 겁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가르침입니다. 다시 한 곡 들어봅시다.
금강경 원문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금강경 25분 화무소화분
수보리야, 너의 뜻은 어떠하냐? 너희들은 여래께서 이런 생각을 짓되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고 이르지 마라. 내가 중생을 제도하고 있다. 너희들은 지금 나한테 제도 받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수보리야 이런 생각하지 마라. 막작시념, 유명한 구절입니다. 어찌한 연고이냐. 실은 중생이 있지 않기에 여래가 제도하느니라. 중생이 있어서 제도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중생은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제행무상으로 모든 것은 변한다. 여기에 슬프고 쓸쓸하고 절망적이고 가장 부정적인 것이 들어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희망적이고 가장 긍정적인 것이 들어 있어요. 세상은 변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왔고 그래서 어린아이가 변하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점점 나이가 먹어갈수록 인격이 고매해지고 훌륭해지고, 불도수행을 열심히 했더니 내가 부처님에 점점 가까워지는구나. 무상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아요. 무상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겁니까?
만약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한다면 여래는 곧 아, 인, 중생, 수자상이 있음이라. 이게 핵심입니다. 여래가 너희는 중생이니까 너희를 제도해서 부처로 만들어준다는 이런 생각을 하면 벌써 그건 아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부처님이 되어야 하는데 부처님이 되는 조건에 우리를 중생이 아니라 다 부처님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술만 먹으면 문짝을 걷어차고 완전히 인간이 개차반이 되어서 저 인간을 어떻게 하나? 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그 힘든 걸 하시겠습니까?” 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랑 사진을 하나 보여주면서 ”내가 이런 인간하고도 같이 살았는데 그걸 못하겠습니까?“ 하더랍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고약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고약한 사람조차도 그 사람의 내면에는 불성이 있다.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씨가 있다고 보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부처님을 믿는 원인입니다. 저 사람이 거짓말을 저렇게 잘하는구나,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잘하는데 거기에 불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건 불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내가 있다고 함은 곧 내가 있음이 아니건마는 범부인 사람들이 내가 있다고 하느니라. 이것도 참 중요한 명구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본래 없는 건데 오온이 공한 겁니다. 우리가 매일 외는 반야심경에 보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할 때, 우리 시대에 광덕이라는 한 고승이 한국불교에 일찍이 그런 고승이 없었어요. 왜 이 분이 위대한 분인가 하면 반야심경에 나오는 첫구절,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할 때 이렇게 되어 있지요. 우리로 하여금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도록 가르친 겁니다. 광덕이라는 위대한 고승의 사상이 여기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맨날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염송하면서 바라밀 수행을 하잖아요. 대승불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의 핵심은 육바라밀을 행하는 겁니다. 그중에서 반야바라밀을 행, 실천하자는 겁니다.
내가 불광법회 가서 법문한다니까 누가 스님 법문 실려있는 책을 몇 권 보내줬어요. 그걸 읽어보는데 불광의 기념법회같은 걸 하실 때도 꼭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형제, 꼭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시잖아요. 형제라는 말이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스님과 신도라고 나눠져 있는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중대한 용어입니다. 지금도 큰스님 말씀처럼 우리 불광 법우들, 법등이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의미입니다. 내가 있음이 아니건만 범부인 사람들이 내가 있다고 하느니라.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우리는 중생입니다. 오온이 공하다는 건 무아라는 뜻입니다. 무아상, 내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온으로 이뤄져 있어요. 우리가 불자니까 불교가 위대하다는 것을 끝없이 강조해야 하니까 말씀드립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하여 오온으로 설명한 것은 핵심을 이해하고 보면 너무 위대한 생각입니다. 색수상행식, 우리의 알음알이 서양의 어떤 철학자가 수십 년을 연구해서 알아낸 것이 인간이란 존재가 뭐냐, 내가 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고 결론을 내린 것이 기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 기억을 뭐라 하느냐 하면 식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거기까지밖에 몰라서 식이 자기인 줄 알았어요. 우리가 다 식이 자기인 줄 알아요. 그 식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하면 색, 수, 상, 행을 통해서 식이 형성된 겁니다. 그것이 개공皆空, 다 공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맛보기로 이만큼만 설명하겠습니다.
수보리야 범부라 하는 것도 여래의 말로 범부가 아니니 이 이름이 범부일 뿐이니라. 중생이나 범부라는 말이 다 같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영리하게 태어나서 하나를 들으면 둘, 셋, 열 개를 아는데 어떤 사람은 열 개를 설명해도 하나를 이해 못합니다. 하늘 천 하면 따 지를 하면서 하늘 천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불성이 있습니다. 불성이란 것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불성佛性에서 성을 쓰는데 남녀가 합방해서 하는 걸 성이라 하고 영어로는 sex 섹스라고 합니다. 그걸 왜 성이라 했을까? 영어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성이란 말은 씨란 말입니다. 불성,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씨라는 뜻입니다.
프로이드라는 사람이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해석했어요. 견성할 때도 마음을 봤다고 견심이라 하지 않고 견성, 성품을 봤다고 하잖아요. 왜 그것을 씨라고 할까요? 우리 의식에는 표면의식이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건 표면의식이죠. 서양에서 심리학이 가장 박수 받고 위대하게 취급당하는 것이 뭐냐 하면 표면의식만 사람들이 의식인 줄 알았는데 그 너머에 잠재의식이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겁니다. 우리 불교는 수천 년 전에 다 알아서 육식이 있고 그 뒤에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말나식이고 그 보다 더 아래 깊숙하게 있는 잠재의식을 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 스님들이 어렵게 설법하시는 분들은 많이 하시는데 나는 어려운 말을 자꾸 사용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워서 안 하는데 오늘은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하는데 아뢰야식이 있고 그 속에 여래장, 부처님이 될 씨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표면의식 속에 몇 겹으로 우리 의식을 가리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걸 벗기면 그 속에 불성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범부가 범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결론을 얘기할게요.
우리 중생 뿐만 아니고 부처님 조차도 아상이 없어요. 내가 너희 중생을 제도했다고 하는 상을 안 가집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내가 어려서 스님 됐을 때 하심하라고 해서 하심이 뭡니까 하니 누구한테든지 겸손하게 행동하고 하심하라고 했어요. 하심의 가장 핵심은 무아상입니다. 공자도 겸손은 얘기했는데 겸손 너머까지는 못 갔어요. 스님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날카롭게 지적하면 그 너머를 봐야 하는데 겸손 갖고는 부족해요. 그래서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불자인데 왜 불도신앙, 수행을 하느냐 하면 겸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행자 때 하심을 하고 계를 받는 순간 거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수행을 깊이 할수록 겸손을 넘어서서 무아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실스님이 되고 방장스님이 되고 위대한 고승이 되었다고 하면 고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인격이 뭡니까? 상이 없는 겁니다. (보리광보살님 녹취)
[부처님 오신날 3일전, 사무국 개방, 광명의 등 설치 등으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법회에 동참하신 거룩하신 불광형제님들이십니다.]
아 내가 큰 스님이다. 내가 무슨 주지 스님이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되는데 부처님이 야! 나는 부처님이야 그러는 순간 그게 아상이 됐다는 소리잖아요.여기 이 소리가 이런거 가지고 계시잖아요. 너희들은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한 바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왜 그러냐 실제로는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큰 스님도 이 불광 광덕 큰 스님도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그거예요. 우리는 본래 부처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도 중생을 제도한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옛날에 몇 군데 주지를 좀 했습니다. 나는 원래 내가 스님 되고 나서는 원력을 세우기를 주지를 절대 안하겠다. 이래 하고 살았는데 어찌 하다 보니까 절을 발전 시키고 돈이 많이 나고 예산이 처음 들어 갔을 때 1억 몇천만원 이러더라고 서울 변두리에 있는 집이 비가 주르르 흐르고 지붕 위에다 천막을 덮어놓고 이런 정도의 절이에요.그래서 저런 데는 뭐 그냥 들어가서 한번 살아보겠다. 옆에서 스님이 나를 따르는 식구가 많으니까 책임을 지고 추진을 해야 된다고 그래서 이제 추진을 했어요. 그래 가지고 절을 발전 시키고 신도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건물도 많이 짓잖아요. 이게 비유를 들어서 얘기 하는 거예요. 내가 건물 많이 지었다고 자랑할려고 하는게 아니고 들어보세요. 사람들이 찾아와서 야! 스님 참 집 잘 지어놨습니다. 참 불사 많이 하셨네요. 하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한거는 아무것도 없어 아 내가 집을 짓는데 내가 뭐 기둥 하나를 깎아 봤습니까? 서까래를 깎아 봤습니까? 그런거 안 했거든 안 했는데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내가 집을 지었단 겁니다. 내가 그러면 주지라는 직책을 가지고 그 내돈도 아니잖아요. 절에 있는 불자들이 시주하는 돈을 가지고 있다가 건설업체 한테 돈 지불한 것밖에 없잖아요. 그것도 내 손으로 지불한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도장 결제 한 번 해 준거 그게 다야 나는 도장 하나 찍어 줬는데 모든 사람들이 스님 불사 하시느냐고 너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집 잘 지어놨네요.그럼 내가 뭐예요.
대다수의 사람이 자기가 책임진다고 자랑하고 다니면서 상을 만드는 거예요. 다 똑 같습니다. 대통령을 하는데도 위대한 대통령이 될려면 대통령도 상이 없어져야돼 국회의원도 훌륭한 국회의원이 될려면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그 많은 권력이 주어지잖아요. 그래 가지고 그걸 가자고 어딜가서 갑질하자 그게 없어져야 되거든. 더 겸손하게 해야 되겠다.이게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일러서 뭐냐 하면 도를 깨닫고 깨닫지 아니하고 관계없이 상을 내는 사람을 그걸 불교에서는 만이라고 합니다. 만이라고 하는 심방변에 쓰는 글자인데 교만할 만이래요. 그래서 그걸 앞에다 글자를 두 자도 붙여갖고 통칭 증상만이다.더할 정, 미 상 교만이 더욱 보태어진 교만 그게 교만한 사람 그걸 증상만이라고 그래요.
증상만 그래 부처님 경전을 읽으면 어떻게 나오냐면 증상만입니다. 정말 증상만 안 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말을 이해를 못하면 불교 수행을 이루기가 아주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말에 거만하다 저사람 거만하다 그러잖아요. 그게 불교 용어입니다. 그 만자잖아요. 사만이 있고 칠만이 있고 뭐 팔만이 있다고 그러는 건데 거만한 교만하다. 이런게 다 불교 용어예요. 그래 하는데 뭐 그중에 교만한 것만 있느냐 안 그렇잖아요.
비만 남을 없수이 여기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자기를 낮춰서 비굴하게 그것도 만이야 비만 또 뭐예요? 자기 마음에 좀 안 들면은 종교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그렇잖아요. 이단이다. 조선이 뭐로 망했느냐 사문난적에 망했어요. 자기하고 사상과 이론이 딱 안 맞으면 무조건 사문난적이다. 사문난적이라 하는거 그 용어가 그 사라고 하는 이 사 자예요. 공자의 글을 어지럽게 한다. 사문난적을 어지럽게 한 겁니다. 이런 뜻이에요. 별거 아니야.
그 의미를 알고 보면 사문난적 근데 자기하고 사상과 철학이 안 맞다던가 조금 삐뚤어지면 사문난적 왜 내가 이얘기를 하느냐 지금 코로나를 끊임없이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종교인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뭐예요? 이단이 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단 이게 사람들이 스스로 사만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요. 삿될사자 사만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어찌 그 사상이 진리가 아니고 맞고를 떠나서 아 내가 메시아다 내가 무슨 하나님이다. 그 순간 증상만 이잖아요. 증상만 불교에서는 그래서 아만을 극복하고 한 사람은 아상을 극복한 사람이 불교다 이것이 그 중요한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자은성보살님 녹취)
"스물다섯 스물하나" "고마웠다 인생아" "부처님오신날" "불광"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 항상 감동입니다.
마하보디합창단의 음성공양
[하늘과 땅위에 나 홀로 존귀하시네]
불광정상화발원문을 낭독하시는 송파14구 명등 본정성 보살님 고맙습니다.
현안보고 하시는 법회장님 오늘은 더욱 많은 내용으로 불광형제님들께 감동을 주셨습니다.
법회가 끝난 후 광명의 등을 달았습니다.
스님과 종무소측의 등을 달지 말라는 가처분 신청으로 얼마나 마음을 졸였었는지 법회장님과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법당안에 각자의 등을 다는 것도 좋지만 한개의 등에 모두의 발원을 함께 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내것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하는 마음이 더욱 성취될 것입니다.
법회가 끌난 후 오늘도 법등 가족들의 소소한 만찬과 즐거운 시간이 함께 했습니다.
법회가 끝난 후 대웅전에서는 한결같이 금강경독송기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송파9구 보살님들께서 육법공양에 쓰일 불기닦기 봉사를 했습니다.
군포교 활동을 지원하는 자비의 선물 600개를 포장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송파20구에서 매월 지원하는 군부대에서 봉축법회를 함께 했습니다.
이번주에도 조계사,동명사,화광사에서 1인 시위 정진을 이어가시는 불광의 보현행자님들 이십니다.
토요시위 정진하는 불광형제님들의 간절한 원력으로 불광법회.불광사는 청정도량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을 믿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2시 청정팀의 수고로움으로 보광당이 쾌적하고 정갈한 부처님 성전으로 거듭납니다. 언제나 감동입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첫댓글 힘든작업 완성해주시고 이렇게 한번더 법문내용
새길수있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불보살님들 편집하신다고 수고가 많았습니다ㆍ
5월12일은 역사적인 불광입니다.
사무국 사무실이 몇 년동안 닫힌 문이 개방 되는 날^^
감사하고 기쁜 날^^이였습니다.
효림스님 법문도 잘 들었으며, 이날 따라
가수 자권님,기타 박민수님 노래 가사말이
유난히 마음을 울렸습니다.
불광의 역사는 영원히 계속 될것이며,
광명의 등불이 켜져으며,
차례차례로 보살님들의 마음에 등불이
붙여져 다함이없는 것처럼 입니다.
부처니오신날 이날도 아무쪼록
봉축 행사에 무탈 하길 부처님전에
기원드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비로자나님 밤늦도록 편집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로서로 도와서 이뤄지는 법회일지도 감동입니다. 곳곳에서 사진 찍고 정리하신 송지보살님 지일심보살님, 바쁜 중에 녹취하신 자은성보살님 진심 감사합니다. _()()()_
효림스님 감로법문 감사드립니다.
법회장님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무국 34개윌 만에 개방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발전하고 성취이루는
불광법회 화이팅!입니다.
불광형제 도반님님들의
불광법회 정상화를 향한 신심 깊은
서원이 담긴 광명의등을 밝히는
뜻깊은 날을 다시 볼 수있도록
수고하신 대행 보현보살님의 행원으로
모두 보리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보리광보살님, 자은성보살님)녹취
세밀하게 편집하신(비로자나불님)
미디어팀 원님들
애쓰신 노고와 수고 하심에
찬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붓다의 선심으로 우주법계중생 지구촌사람 모두함께 빤야지혜로 포교전법가득 아닛짜 제행무상 보현행원으로 보리이루는 빤야해탈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덕분에 일대사인연 감사합니다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