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수많은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소비자들의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않다. 브랜드들의 수익성을 바탕으로 브랜드 구조조정에 나서야 될 시점이다.
연초에 발표된 국내 주요 기업들의 2004년 사업 목표를 살펴보면 ‘글로벌 브랜드 육성’이라는 과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내수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브랜드가 핵심적인 경쟁 무기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브랜드가 더 이상 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한 해 성패를 좌우할 만큼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인터브랜드社(Interbrand)가 매년 발표하는 브랜드 순위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가 무려 7백억 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굳이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경영 일선에서는 브랜드 가치를 재무적인 성과 못지 않게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CEO들도 각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외 활동에 심혈을 기울이는가 하면, 월마트 방식(Wal-Mart Way)이나 도요타 방식(Toyota Way) 등과 같이 기업 문화나 경영 방식에까지 고유의 브랜드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기업들은 상품이나 서비스에만 브랜드를 명명하는 데에서 벗어나, 자사의 경영 활동과 연관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브랜드化하고 있으며,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한 관리에 애쓰고 있다. 이 같은 활동들이 궁극적으로 자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믿음 하에 말이다.
한편, 소비자들도 ‘브랜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생활에서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예전처럼 “오렌지 주스 하나 주세요”라는 식의 주문은 요즘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성분이 첨가되든지, 원산지를 차별화한 오렌지 주스들이 저마다의 브랜드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드에 대해 식을 줄 모르는 관심 덕분에 예전에는 전혀 브랜드를 붙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까지 브랜드 열풍이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몇 년 전만 해도 기업 브랜드 일색이던 아파트나 보험상품, 전자제품 등도 이제는 그들만의 세련되고, 톡톡 튀는 브랜드로 승부를 겨루고 있다.
브랜드, 왜 자꾸 늘어 나나?
이처럼 브랜드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시선을 한 순간에 사로잡고 오래도록 사랑 받을 수 있는 ‘히트 브랜드’ 출시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폭발적인 관심 때문에 생겨나는 브랜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브랜드 하나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치열한 고민뿐만 아니라 엄청난 시간과 투자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새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잘 나가는 기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의 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어, 유니레버(Unilever)의 경우 150여개 나라에 1,600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1999년 기준). 마케팅 담당자도 자사의 브랜드를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브랜드들 가운데 극히 소수의 브랜드들만이 소비자들에게 선택되고 기억되는가 하면,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빛을 발하기도 전에 슬금슬금 시장에서 꼬리를 감춘다는 점이다. 냉정한 현실이 아닐 수 없지만, 오로지 1등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의 논리가 브랜드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기존 브랜드의 성공을 위해, 새로 출시되는 브랜드의 숫자를 줄이거나, 출시 시기를 늦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기호나 취향 때문에 기존 브랜드가 계속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타사 브랜드와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신규 브랜드의 숫자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몇몇 브랜드의 흥행을 위해 수많은 브랜드들이 테스트되는 구도가 쉽게 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많은 브랜드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브랜드들을 유지해야 하는 비용 부담뿐만 아니라, 자사의 핵심 브랜드에 투자할 기회까지 잃게 되는 기회비용까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사한 브랜드들로 인해 혼돈스러울 뿐만 아니라, 탐색 비용도 높아지는 부담이 있다. 따라서, 기업과 소비자의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수익 창출이 확실한 핵심 브랜드 육성을 위해서 브랜드 구조조정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브랜드 구조조정의 기대 효과 및 장애 요인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브랜드 구조조정의 기대 효과
첫째,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익성을 기준으로 브랜드들을 평가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양호한 편이다. 또한, 폐기된 브랜드에게 쓰여진 인적/물적 자원을 핵심 브랜드를 육성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라고 해서 반드시 시장에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꾸준한 투자와 관리가 병행된다면 그 만큼 성공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Identity) 확립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국내 화장품 회사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성격의 화장품 브랜드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이끌려 특색 없는 브랜드의 숫자만 문어발식으로 늘리다 보면 결국에는 소비자들에게 ‘핵심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혼동을 주게 된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쉽게 짚고 넘어갈 수 없는 점이다.
셋째, 동일 기업의 브랜드 간의 경쟁을 지양할 수 있다. 마케팅 전문 기업인 P&G 조차도 동일한 상품군의 브랜드를 무리하게 확장하여, 불필요한 경쟁을 하도록 한 우를 범하였다. 1980년대 P&G의 대표 치약 브랜드인 크레스트(Crest)의 경우 한때 그 종류가 52가지에 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브랜드로 가능한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자’는 브랜드 방침 하에 크레스트 브랜드를 무분별하게 확장한 결과, 시장에서 크레스트 치약들끼리 경쟁하였다. 결국, 무리한 브랜드 확장으로 크레스트는 하나의 치약에 다기능을 담은 콜게이트 토털(Colgate Total)에 시장의 선두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일 제품군 내에 무분별한 브랜드 확장은 제살 깎아먹기 식의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시키고, 궁극적으로 시장점유율 축소를 초래하게 된다.
브랜드 구조조정의 장애 요인
사업 구조조정에 뼈를 깎는 아픔이 있는 것처럼 브랜드 구조조정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마케팅에 문외한인 CEO라면 자사의 브랜드들 가운데 인기가 없거나 말썽을 부리는 브랜드가 있을 경우에 “그냥 그 브랜드 없애라”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브랜드 구조조정에는 다음과 같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 없다.
첫째, 명확한 수익성 측정이 어렵다.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브랜드 평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점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관적인 측면의 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전략차원에서 브랜드 파워 혹은 브랜드 포지션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배가된다.
둘째, 당장 단기적으로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예외가 존재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브랜드 수를 줄이면 시장 점유율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유사한 고객을 타겟으로 하는 A,B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고 하자. A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이 30%이고, B 브랜드의 점유율이 10%이다. 만약 B 브랜드를 구조조정 결과 폐기될 경우 A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30%를 조금 웃돌게 된다. 왜냐하면, B 브랜드가 폐기될 경우 B 브랜드를 선호하였던 소비자들을 고스란히 A 브랜드로 이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B 브랜드의 폐기에 화가 난 소비자가 A 브랜드가 동일 기업의 브랜드임을 알고 오히려 회피를 할 수 있을 것이며, A 브랜드와 B 브랜드가 똑같이 고객의 니즈(Needs)를 만족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폐기된 브랜드의 소비자들을 어떻게 자사의 남아있는 브랜드로 유입 시킬 것인가가 핵심 관건이다.
셋째, 열성 소비자들의 반발에도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수익성을 토대로 브랜드 구조조정을 할 경우 기업 차원에서는 수익성 제고라는 훌륭한 성과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된 브랜드의 열렬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상당한 무리수가 따른다. 단기적으로 이익 측면에서 득을 볼 수 있지만 부정적인 구전의 확산 등으로 전체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역사적인 이유라든지 상징적인 이유 때문에 손실을 보는데도 불구하고 해당 브랜드를 살려두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브랜드 구조조정 실행방안
무슨 결정이든지 大를 위해서는 小를 버려야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현재 시장점유율 확보 차원에서 수익성이 높지 못한 브랜드를 여러 개 보유하는 것 보다는, 과감하게 브랜드 구조조정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자사의 브랜드가 과연 적정 수준보다 많은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이를 판별할 수 있는 테스트 설문이 <참고 1>에 나와 있다. 이를 토대로 자사의 브랜드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고 파악된다면, 브랜드 구조조정을 한번 고려해 볼만 하다. 구체적으로 브랜드 구조조정을 실행하기 위한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브랜드 감사(Brand Audit)를 실시하라.
브랜드 감사를 위해서는 현재 자사의 브랜드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각 브랜드들의 재무 실적뿐만 아니라, 브랜드 포지션까지 표기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Brand Portfolio) 표를 작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어떤 브랜드가 어느 시장에서 어떻게 인지되고 있으며,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 브랜드별로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쿠마(N.Kumar) 교수가 제안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작성의 예가 <참고2>에 소개되어 있다.
작성된 브랜드 포트폴리오 표를 바탕으로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 구조조정을 할지 평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 다음 단계이다. 평가 기준의 예로는 시장 점유율, 브랜드 파워 및 브랜드의 성장 잠재력 등 기업의 상황에 맞는 기준을 일관적으로 적용하되, 기업의 전략적 차원에 맞는 기준을 택하면 된다. 예를 들어, 기업의 전략 방향이 박리다매를 통한 시장점유율 극대화인데, 과거에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출시한 고급 브랜드가 있다면 과감히 폐기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점유율의 경우 그 편리함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이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눈앞의 시장 점유율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 방향까지 고려한다면 브랜드 파워 및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소비자들의 동요를 막아라
구조조정으로 인한 브랜드 폐기에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폐기된 브랜드에 로열티가 높았던 고객들로부터 온다. 이것이 감정적인 아쉬움으로 그치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으나, 열성 고객의 경우 폐기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폐기하게 된 배경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흘릴 소지가 높다. 예를 들어, 1996년 브리티쉬 항공사(British Airway)의 경우 영국의 대표 항공사로부터 세계적인 항공사가 되겠다는 차원에서 새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나, 영국인들에게 비애국적인 처사로 비난을 사고, 브랜드 변경 작업은 실패하게 되었다. 따라서, 브랜드가 폐기되더라도 지금까지 높을 로열티를 보낸 고객들에게 감사의 차원에서 고별 광고 혹은 사은 캠페인을 실시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무리 소수의 팬을 보유한 브랜드라도 아무 공지도 없이 사라져서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는 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셋째, 브랜드 이전(Brand Transfer), 신중하게 접근하라
앞서 언급한대로, 폐기된 브랜드의 고객을 자사의 대체 브랜드로 이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폐기될 브랜드와 남겨진 브랜드가 중복의 소지가 있다면, 폐기된 브랜드의 고객을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이 고객들의 혼돈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폐기될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이를 살려서 보다 업데이트 된 대체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유니레버의 경우 폐기를 결정한 세제 브랜드 레디언(Radion)의 향이 고개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대체 브랜드인 서프(Surf)에다 레디언의 향을 첨가한 서프-프레쉬(Surf-Fresh)를 선보여 레디언 고객들을 대체 브랜드로 이전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고객들의 혼동을 유발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폐기될 브랜드의 장점들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의견을 미리 수집해 두는 것이 향후 새로운 브랜드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잘 키운 자식 하나 열 자식 안 부럽다’라는 말이 브랜드에서처럼 잘 들어맞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확실한 브랜드 하나가 시원찮은 열 개의 브랜드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식은 포기하기 어렵지만, 브랜드의 경우는 다르다. 수익성과 브랜드 가치를 치밀하게 평가하여 득이 되지 않는 브랜드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늘어나고만 있는 브랜드, 좌시하지만 말고 포기의 미덕을 발휘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