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학생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시각장애인 교사 허경호 씨
- “학교는 즐거운 공간, 재능을 발현하는 꿈의 공간”
대구 동촌중학교에는 특별한 밴드가 있다. 지난 2019년 시각장애인 영어교사 허경호 씨가 학생들과 결성한 ‘대일밴드’가 그것.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덜어주고자 만든 밴드는 학생들에게 힐링과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따뜻한 반창고가 되고 싶다”는 허경호 씨를 만났다.
Q. 반갑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대구 동촌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허경호라고 합니다. 2학년 5개 반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교내 밴드인 ‘대일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해 학교축제에서 처음 무대를 선보인 이후 지난 5월에는 동촌 유원지 등에서 버스킹 공연을, 10월에는 교육청 주최 대구 학생 동아리한마당 축제 및 교내 체육대회 등에서 공연했어요. 아이들은 진지한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고 있어요. 밴드 활동을 계기로 예술로 진로를 결정한 아이들도 있어요.
Q. 추억 그 이상을 선사하는 활동이 되었네요.
A. 제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학생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 외적인 활동을 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었어요. 청소년 시절, 음악은 저에게 큰 위로와 탈출구가 되었습니다. 헤비메탈과 록에 빠져 음반을 사 모으기도 했지요. 만일 교사가 된다면 학생들에게 음악의 매력을 알려줘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동촌중학교에 음악 동아리가 없다는 걸 알고 밴드 멤버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적극 알렸습니다. “기타 배우고 싶었는데, 밴드 활동하면 가르쳐주시나요?” “멋지다! 나중에 공연도 하나요?” 등 학생들의 관심이 쏟아졌어요. 밴드 이름은 학생들이 직접 지었어요. 밴드(합주)에서 밴드(반창고), 대일밴드로 확장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여기에 의미를 담아 ‘가벼운 상처에 붙이는 반창고처럼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학업 부담을 덜어내고 아이들이 행복을 얻길 바랍니다.
Q. 시각장애로 인해 활동이 어렵진 않는지요.
A. 밴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 주변의 염려도 있었어요. 예산이나 지원이 한정돼 있으니까요. 밴드를 맡으면 악보를 보며 악기 지도를 해야 하는데, 시각장애가 어려움이 될 거라는 우려도 있었죠. 하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기타와 드럼 등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악기들이 있었기에 동아리 비품으로 쓸 수 있었어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지도법 대신 곡을 함께 들으면서 변주하는 식으로 가르치면 시각장애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죠. 여러 문제를 돌파하면서 학생들의 반응이 더 열렬해졌어요. 교내 활력소가 되자 학교 측에서는 아낌없이 지원과 격려를 보내주셨어요. 젬베와 드럼, 새로운 음향 장치 등이 구비되었지요. 현재 대일밴드 멤버는 13명입니다. 멤버 모집에 특별한 조건은 없어요. 음악과 밴드에 흥미가 있다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어요.
Q. 교사가 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A. 시신경 위축으로 인해 5살 무렵 중증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어요. 워낙 어렸을 때 일이고 성격도 적극적이었던지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친구나 후배가 무언가 물어보면 곧잘 알려주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교사의 꿈을 갖게 되었어요. “네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잘 간다” “선배가 가르쳐준 문제가 시험에 나왔어요”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꼈지요.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영어였어요.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의 일화를 접한 뒤 교사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어요. 대학에서 초등 특수교육과 영어교육을 복수전공했는데,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특수교육 전공, 특수학교 교사만 해야 한다는 인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영어권 문화를 경험해보고자 미국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도 했어요.
Q. 학생들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A. 늘 진솔하게 다가가려고 해요. 수업 시간은 물론 악기를 지도할 때 제 경험을 많이 들려줍니다. 학생들의 학업 의욕을 북돋고자 홈스테이 일화를 종종 말해줘요. 치과에 갔을 때, 마트에서 식재료를 샀을 때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영어를 알려주면 큰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리스닝이 서툴러 길을 헤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저도 그 발음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혹시 헷갈리지 않는 요령이 있을까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교수법의 기본은 학업 의욕을 고취시키는 동기를 만들어주는 것인데, 저의 소소한 일화가 학생들에게 학습 의욕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좋은 청력이 벽을 허무는 매개가 되기도 했어요. 학생들이 몸 살짝 돌려 뒷친구와 장난치는 일이 곧잘 있잖아요. 소리와 기척만으로 알아채고는 “○○와 ○○! 장난 그만하고 집중!” 하고 외치거든요. 그때마다 신기하다며 야단법석이에요. 시각장애인의 특징을 알고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의 에티켓을 배우는 학생들, 제 안내견인 여울이와 친숙해지는 학생들을 보면, 이런 게 바로 인식개선이고 장애공감이구나 싶습니다.
Q. 장애가 결코 거리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A. 그렇습니다. 저는 장애·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방법으로 당당함을 뽑고 싶어요.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긴 합니다. 최근 장애공감이 화두가 되고 사회적 지원도 체계적으로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원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니까요. 특수학교라면 시각장애 교사가 드문 건 아니기에 사정이 좀 나았겠지만, 일반학교에 부임하면서 제 존재가 더욱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동료 교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야 하는데 초반에는 서로를 낯설게 여기거나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학생들은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 저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어요. 분위기 서먹해지면서 괜스레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가 장애로 다가오는 게 이런 순간이구나 싶더군요. 하지만 곧 ‘시각장애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되뇌고, 먼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무언가 요청할 일이 있을 땐 주저하지 않았어요. 그런 태도를 꾸준히 견지하자 동료 교사들도, 학생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더라고요. “영어가 너무 어렵다”며 아이들이 투덜대거나 볼멘소리를 할 때 반갑고 기뻤어요.
Q. 잊지 못할 추억도 많을 것 같아요.
A. 한 학생에게 메시지를 받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요. 감사합니다” 하더라고요. 졸업한 후에도 연락하거나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참 고마워요. 대일밴드 활동이 계기가 되어 예고로 진학한 학생도 있는데 “선생님 아니었으면 예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더라고요. 선생님이 되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어요. 재미있는 추억도 많아요. 보건교사의 요청으로 트로트 가사를 개작해 금연송을 만들고 캠페인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연주하기 전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트로트 특유의 리듬을 즐기면서 연주하더라고요. 프로 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흐뭇했어요.
Q.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를 들려주십시오.
A. 저는 선생님이 되자는 목표와 음악으로 교류하고 싶다는 목표, 둘 다 이뤘습니다. 앞으로도 대일밴드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고,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길 희망합니다. 학교란 곳을 공부하는 공간,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교사는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하고요. 학교는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고, 자신의 참모습과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는 공간이에요. 저는 지식만을 채워주는 교사가 아니라 삶의 한 페이지를 함께 만드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와 대일밴드의 활동이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되길 바랍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12월 통권 제194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