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정치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된 뒤 나쁜 황제로 “기록말살 형”에 처한 주 이유는 “공포 정치”였다.
엄청난 인원이 추방되고 사형되었다고 ‘타키투스’는 비난했지만 실제 로는 15년동안 사형 9명
, 추방 6명, 은둔자 4명 정도라고 한다. 이 사람들이 모두 원로원 의원이라는 게 문제였다.
결국 황제가 어떤 평가를 받고 단죄(斷罪) 되느냐의 결정은 원로원에 어떻게 보였느냐에 달려
있다. (※ 예나 지금이나 정치라는 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너무 많고 거기다
우매한 군중이 합세하면 합리적 결과의 도출은 불가능하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계속 범하고 있다.)
● 델라토르(Delator)
로마 제국의 재판(법정)은 4요소로 이루어 진다.
1. 재판장 : 법무관(원로원에서 선출)
2. 피고측 변호사 : 오라토르(Orator) –속주총독을 고발하는 검사 역할도 한다.
3. 檢事 : 델라토르(Delator) – 오늘날의 검사 역할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증거나
증인을 찾아내는 악역(?)을 맡았다. “델라토르”는 현대영어 “고발하다(delate)”의 어원(語
源)이다. 현대와는 달리 공무원이 아니고 자유업이었다. 델라토르 중에는 원로원 의원이
없다.
4. 배심원 : 켄툼비리(Centumviri) : 100~180명 정도. 재산도 있는 원로원, 기사, 평민 중 선발.
이 델라토르를 ‘도미티아누스’가 원로원 내부의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용했을 것이다.
● 종신(終身) 재무관
이 재무관은 전통적으로 공화정 때부터 최고직위인 집정관보다 권위가 있었다.
- 국세조사(재산, 병역해당자), 공공사업 발주 권, 국가의 풍기 준수
- 부적격(지도층 자격) 원로원의원 의석 박탈
帝政 때부터는 황제가 재무관을 겸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임기 3년차에 終身 재무관(단독)
제도를 만들었다. 실질적인 정치 독점이다. 황제가 휘두르자 원로원 은 대단히 분노했다. 이런
행동들이 황제가 독재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기록 말살 형”이라는 보복을 당하지 않았나
싶다.
● 암살
특별한 경우를 빼고 일반인들은 암살당하는 경우가 없다. 작든 크든 권력이나 돈 또는 치정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암살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더구나 큰 힘을 가진 자들은 빈번하게 암살
에 시달리게 마련이고 대개는 상대의 욕망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도미티아누스’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허망하게 암살당했다. 죽은 뒤 자신을
“기록말살 형”에 처할 만큼 미워했던 원로원의 반대 파도 아니고 전방의 군단이나 근위대장도
아니었다.
원래 황제는 ‘네로’때의 명장(名將) ‘코르불로’의 딸 ‘도미티아(황후가 된 뒤 바뀐 이름)’와 결혼
했다. 이 여자는 고귀한 성품과 성격, 교육, 인물 등 빠질 데가 없는 여자였다. 결혼해서 잘
살았는데 황제가 “게르마니아 방벽”등 국가 방위를 위해 집을 오래 비우다가 돌아와 보니
황후가 바람을 피웠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성급하게 바로 이혼을 했다.
그런데 황궁에는 친형(前 황제 티투스)의 딸 그러니까 조카딸 ‘율리아’가 젊은 과부가 되어
같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둘이 아재비-조카에서 남-녀로 바뀌어 버렸다. 옛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중에는 근친성관계와 동성애가 비일비재 (非一非再)했다고는 하지만 로마 황실은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느낌이다. 그런데 황제는 처신을 바로 하려고 했는지 ‘도미티아’와
다시 결합했고 세 남녀는 불편한 동거를 지속했다. 그러다 얼마 안 되어 ‘율리아’가 죽었다.
그 뒤 내성적이었던 황제는 다른 여자도 가까이 안 하고 황후와는 요즘 말로 “졸혼(卒婚)” 도
아닌 그림 같은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경우에 그냥 좋다고 할 여자는 없는 법이다. 쌓이
고 쌓이면 남보다 더 못한 관계가 부부 아니겠는가? 이건 남자가 잘못한 처사다. 그러다 사건
이 하나 터졌다.
前前 황제인 ‘베시파시아누스’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다(현 황제의 큰 아버지다. 내전 때 피살
되었다.) 그의 아들과 前 황제 ‘티투스’의 딸이 결혼을 했다. 이것도 근친결혼이다. 이 둘 사이
에 아들이 둘이 있었다. ‘티투스’에 이어 ‘도미티아누스’ 도 아들이 없자 ‘도미티아누스’가 후계
자로 삼았다. 그런데 이 후계자의 生父, 生母가 기독교인지 동방의 종교를 믿게 되었다. 비교
적 종교의 자유도 있고 평민은 관여치 않으나 황족은 얘기가 달랐다. 결국 생부는 사형당하고
생모는(티투스 의 딸) 유배를 갔다.
이렇게 되자 한 씨족인 황제에 대해 원망과 공포가 팽배하게 되고 황후의 증오까지 겹쳐서
엉뚱하게 황후의 측근 해방노예들이 황제를 덮쳐서 살해했다. 범인들은 사건 직후 달려온
근위대에게 전부 살해되었다. 원로원은 얼씨구나 하고 다음 세가지를 일사천리로 밤 사이에
처결했다. 미운 놈 박살내는 데 신이 났다.
- 전방 주둔 군단병력이 모르게 황제 사망을 공표
- “기록말살 刑” 의결
- 前 집정관 ‘네르바’를 불러 황제로 승인해버렸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암살도 그렇고 사후처리도 그랬다. 어찌되었거나 ‘네르바’는 황제가 되었
다. 누가 암살을 지휘했거나 배후조종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폭군도
아닌 황제가 죽자 곧바로 저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면 신임 황제나 원로원 또는 누군가는
계획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황후의 해방노예들이 제 목숨을 걸고 저런 큰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역사적인 사건은 저런 어이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첫댓글 "역사적인 사건은 저런 어이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집단지능이 제대로 작동하여 공생적 지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나보다 (조금이나마) 더 똑똑하다."는 말이 성립되는데 인간에게는 이게 오작동하여 중우(衆愚)정치에 빠지는 일이 많다. 그래서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대중 (무리)에 의해서 나라가 좌지우지되는 꼴을 보게 된다. 다음 번 선거에서는 제발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몇 년 후에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자책해야 엎지른 물이고 애꿎은 손가락 탓해야 소용 없다. 손가락을 움직인 건 모양 좋으라고 달고 다닌 바가지니까.
중우정치는 책에도 나올 만큼 옛부터 인간이 저지르는 한심하고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도 우쭐한 우리나라 부르조아 계층이나 젊은이들은 뭔가를 자신들이 성취하고 개선해 나간다고 착각하며 촛불을 들면 뭔가를 성스럽게 비폭력적으로 이루었다고 착각한다. 한참 광우병이 난리를 칠 때 젊은 여편네들(非페미니스트 적인 표현 ㅎㅎㅎ) 이 (누구의 마누라들인지는 파악이 안 되었고 기자들이 알리려고도 안 했다.) 유모차에 돌 안팍의 아기들을 태우고 길거리를 누볐다.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자신들은 허구헌 날 입만 열면 개인의 자유, 의사의 존중, 시민정신 이라고 지랄을 하면서 제 새끼라고 마음대로 길거리로 끌고 나와도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배워쳐먹은 것인지? 방패막이로 아기들을 동원한 것이 아닌가? 나중 그 아기들이 왜 엄마 마음대로 반대 행위에 나를 동원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할까? 그러고도 1년 후에 기자들이 취재를 했더니 바락바락 대들면서 자신들은 잘못 판단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 광우병이 얼마나 처절하게 조작한 것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