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고 오산시장 장날에 매번 나오면서도 여길 안 가봤습니다. 익히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가고, 시간이 없어 못 가고, 배가 안고파서 또 안 가고.... 아무튼 이번엔 봄맞이 제초제 한통 사러 농약사 가는 길에 '오산 할머니집'을 드디어 들렀습니다. 이곳은 4대째 내려오며 거의 80년 가까이 소머리 설렁탕을 팔고 있는 식당입니다. 한국의 오래된 한식당 100선 중 27번째로 랭크되어 있습니다. 맛이 기대 되네요. 됨됨이가 어떤지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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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27번째로 오래된 한식당이면 여행객들이 제법 들끓을 것 같지만, 오산은 여행할 만한 곳이 없어 동네 사람과 시장 사람들만 찾고 멀리서 오는 경우는 많이 없을 겁니다. 대부분 맛집의 성공 비결은 맛이 1순위지만 그것 만큼 중요한 것이 근처에 가볼만한 곳이 있거나, 그 도시의 여행지 간 이동 경로상에 있거나 해야 하거든요. 어지간히 맛있지 않고서야 가는 길 역주행해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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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으로 선정'이라고 붙여 놨네요. 코딱지만한 오산에 이런 식당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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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설렁탕과 수육 두 가집니다. 둘 다 소머리 고기로 만드는데요. 삶은 육수는 설렁탕으로, 고기는 수육으로 파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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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국물은 가마솥에 늘 끓고 있고 뚝배기에 고기와 국수를 넣고 토렴을 몇 번 해서 주십니다. 사진 한번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니, 제가 먹을 것 담다가 '홍홍홍' 웃으시면서 후다닥 화면에서 빠져 나가시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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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맛 없으면 맛있는 설렁탕 집이라고 말할 수도 없죠.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참 맛있습니다. 양파 찍어 먹는 쌈장도 달큰하고 맛있어요. 부산에서 순대 찍어 먹는 막장과 맛이 좀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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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설렁탕집과 조~금 다른 점은 소머리 고기를 쓴다는 것과 파를 직접 넣어 준다는 겁니다. 저야 파를 사랑하지만 파가 별로인 사람들은 미리 말을 해야겠네요. 그리고 공기밥은 조밥인데 한지 얼마 안된 고슬하고 윤기 있는 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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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머릿고기도 들어 있지만 우설도 가끔 보이더라고요. 가끔은 투명한 젤리같이 씹으면 쩍쩍~ 소리 나는 콜라겐 덩어리도 있고, 개인적으로 내용물이 굉장히 맘에 들었어요. 국수도 미리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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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순댓국밥이나 설렁탕, 곰탕에 소금을 아주 조금만 넣고 짠 맛이 거의 안나게 해서 먹습니다. 그래야 국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오산할머니집 설렁탕은 특별한 기교 없이 전통 그대로의 맛으로 승부하고 있습니다. 초딩입맛인 분들은 별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밥 2공기 말아 먹었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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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뜨끈하고 구수한 국물이 참 맘에 들고, 부드럽게 잘 익은 고기도 먹기 좋습니다. 소금을 거의 넣지 않아 함께 올려 먹는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꿀맛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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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적 사진일까요? 양복 입고 색안경 쓰고 계신 노신사가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산은 여행지도 없고, 딱히 가볼만한 곳을 소개해드릴 수 없는 도시인데요. 그나마 오산시장이 역사가 100년 정도 된 재래시장입니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갈 필요까진 없겠지만, 근처 사신다면 시장도 보고 설렁탕도 드실 겸, 겸사겸사 찾아 보세요~ ^^* 할머니집은 오산시장 초입에 있는 대원약국 뒤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