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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박 완 서
인부들은 대충 큰 세간만 들여놔주곤 온다 간단 말도 없이 없어져버렸다. 그믐날이라 해가 곱빼기로 있어도 모자랄 만큼 예약을 받아놨는데 재수 없이 문 앞에 차도 안 닿는 집이 마수걸이로 걸렸다면서 투덜대더니 아내에게 운임을 미리 우려낸 모양이다. 아내는 공갈에 약하다. 나는 혼자서 재봉틀이니 간장독, 무슨 누더기 같은 게 너불대는 보따리 등을 두서없이 나르다가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라면 상자에 든 사기그릇을 꺼내 일일이 행주질을 하고 앉았다. 큰 살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삿날인데, 안팎에 발 들여놓을 틈도 없이 흩어져 있는 옴두꺼비 같은 세간들은 거두칠 척도 안 하고 기껏 사기그릇을 꺼내 조신한 동작으로 닦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칵 치밀며 곧 아내의 머리채라도 낚을 듯이 들고 있던 경댄지 뭔지를 마루 끝에 와지끈 내동댕 이 쳤다.
“깜짝이야…… 여보, 조심하세요. 하마터면…….”
아내는 겁먹은 듯 덩달아 그릇을 떨구더니 두 손으로 우선 자기의 배를 소중히 감싼다. 아이를 둘씩 낳은 적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게 소녀같이 미숙한 몸에서 헐렁헐렁 겉돌고 있는 밉디미운 임신복ㅡ
나는 고만 머리채를 낚으려고 싱싱하게 긴장했던 주먹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면서, 다리에서까지 맥이 풀려 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아 입맛을 다신다. 쓰다. 낭패의 맛인가.
“힘드시죠? 미안해요. 그치만 제가 홑몸이 아니란 걸 아시면서…… 이번엔 꼭 잘 낳고파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무거운 것만 제자리에 놔주시면 잗다란 건 제가 두고두고 치울 수 있어요. 임신 초기에 무거운 결 들면…….”
“글쎄 알았다니까. 냉수나 한 그릇 떠와요.”
아내는 제법 몸이 무겁다는 듯이 뭉그적대며 일어나 착 달라붙은 배를 억지로 앞으로 내미느라, 훤히 비치는 깔깔이 임신복 속에서 가려진 뒷모습이 활같이 휘어 보인다.
나는 아직도 목구멍에 가로걸린 뜨거운 것에 냉수라도 끼얹지 않으면 환장을 하고 말 것 같아 한 대접의 물을 단숨에 들이켠다.
세간 나르기를 건성건성 끝낸 나는 세간살이와는 이질적인 시커먼 쇠붙이들을 세간살이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정중하기조차 한 몸짓으로 헛간 쪽으로 나른다.
녹슨 철판, 가내공업용 절단기, 프레스, 용접기, 컴프레서, 전기 고데, 가마, 그런 것들이 거듭되는 사업 실패 끝에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공구(工具)였고, 이 마지막 공구에 나는 애착과 친화감을 느낀다. 이런 일이란 일찍 이 없었던 일이다.
부친으로부터 꽤 기틀이 잡힌 면직물 공장을 물려받았을 때만 해도 부친이 돌아가셨으니까 마지못해 사업가가 되었다 뿐 새로 사업에 손을 대는 젊은이다운 의욕도 야망도 없었다. 나는 미리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자수성가한 부친은 진작부터 나에게 돈을 벌려면 아랫사람을 어떻게 부려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쳤었다. 그래서 나는 돈은 조금 주고 일을 많이 시키는 기술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 일을 내가 직접 행해야 한다는 데 당해서는 전전긍긍했다. 사업은 날로 부진해갔다.
직물계도 차차 틀이 잡혀 큰 자본이 투입되어 대기업화하고 더군다나 화학섬유의 대량생산으로 면직물계는 사양의 길을 걸을 때라 나는 쇠망의 흐름을 저항은커녕 얼씨구 하며 탔던 것이다. 드디어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공장을 정리했다. 부친이 일생 동안 모은 돈을 불과 일 년 만에 날리고도 나는 자책보다는 우선 돈을 조금 주고 일은 많이 시켜가며 사람 부리는 그 지겨운 일로부터 놓여났다는 해방감이 앞섰다. 그것은 부친으로부터 놓여났다는 해방감일 수도 있었다. 나는 공장을 정리한 얼마간의 돈으로 부친의 망령이라도 감히 간섭할 수 없을 것 같은, 될 수 있는 대로 생전의 부친과 생소한 사업에 이것저것 손을 대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전축 조립 공장, 석유난로 공장, 다시 또 규모를 좁혀 노트 공장, 단추 공장, 형광등 기구 공장 이렇게 잡다하게 업종을 바꿔가며 영락없이 적지 않은 손해만 보고 물러났다.
물러났다기보다는 마치 차멀미에 못 견딘 나머지 달리는 차에서 신선한 외기로 뛰어내리는 돌발사고처럼, 그렇게 갑자기 하던 일에 멀미를 내고 무작정 무위와 고독 속으로 뛰어내렸던 것이다.
사업을 하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어려운 일은, 돈을 조금 주고 일은 많이 시키는 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다. 세리와의 간교한 ‘쇼부’, 관료에의 아첨, 수지맞는 일이라면 염치 불구하고 송사리의 분야까지 넘보는 대자본의 파렴치한 촉수, 동업자간의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경쟁,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심한 멀미, 신선한 외기로 뛰어내리지 않고는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느글느글한 멀미가 되어 나에게 작용했다.
때로는 이럴 수는 없어, 이래서는 안 돼 하고 제법 분별 있는 자제를 꾀해본 적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내 멀미는 순전히 내 생리일 뿐,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어서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자꾸 사업을 시작하고 그만두고, 그럴 때마다 사업의 종류가 바뀌고 규모가 줄어들어 드디어는 영세한 가내공업으로 영락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멀미는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쓸모와 외모를 고안해서 만든 상품이 시장에서 호평을 받을 만하면 똑같은 외모의 물건이 나와 도저히 그 값으로 만들 수 없는 싼값으로 시장을 휩쓸었다. 겉모양만 같을 뿐 내용은 형편없는 것이었으나 상인도 고객도 싸구려를 좋아했다.
나는 업자간의 이런 더러운 표절행위에 대해서도 멀미부터 했다. 오죽해야 그랬을까, 오죽해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 않나 하고 난 뭐 그들보다 좀 나은 양해가며 느글느글 멀미도 해가며, 내 물건을 그따위 싸구려보다 더 싸구려로 처분하고, 사람 상종 안 할 혼자만의 생활로 돌아와 겨우 생기를 회복했다. 단 한 번도 어쩌면 단 한 번도 맞서볼 생각도 이겨볼 생각도 안 하고 느글느글 멀미만 했다.
내가 이런 멀미 끝에 나의 마지막 공장의 상품인 형광등 기구를 처분했을 때는 불과 십만원 남짓한 돈이, 그것도 한 달 반의 연수표로 내 수중에 남았다. 기어코 나는 또 한번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번만은 해방감을 옹글게 누릴 수가 없었다.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란 자각이 새로운 중압감이 되어 나를 억눌렀다.
그때 나에겐 두 아들이 있었고, 아내는 또 임신중으로 입덧이 한창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여행을 다녀오마고 속이고 정관 절제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며칠을 우이동 산장에서 혼자 뒹굴며 아픔을 참다참다 진통제라도 몇 알 먹고 잠이 들면 비슷한 악몽이 잇달았다. 아내의 뱃속에서 엉기고 있는 선연한 핏덩이를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듯이 똑 따내면, 아내의 자궁 속은 정말로 광활한 수원의 녹지대보다 몇 배나 더 넓은 딸기밭이 되어 빨긋빨긋 무수한 딸기를 익히고, 나는 다시 그것들을 미친 듯이 물어뜯어내느라 손이 핏빛으로 물들고 나중에는 선혈이 뚝뚝 듣는데도 딸기밭은 끝이 없이 광활하고, 딸기는 스위치를 넣은 전구처럼 눈 깜박할 사이에 익어갔다. 잠드는 것이 휴식을 의미하지 않고 피투성이의 고투를 의미했다.
그런 중에도 회복은 순조로워 얼마 후에는 수술이 성공했다는 담당의사의 진단까지 받았다.
이제야말로 나는 멀미에서 뛰어내린 해방감을 옹글게 누릴 차례가 된 셈이었다. 그 상쾌한 해방감을 조금도 닥치지 않고 고스란히 내 것으로 삼기 위헤 나는 생식능력까지 떼어냈던 것이다. 나에겐 그 상쾌감이 그렇게 필요했다. 밀폐된 실내의 숨구멍만큼이나 다급하게 필요했다. 그런데도 그게 좀처럼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나는 초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살짜리를 급성 뇌막염으로 잃고, 한 달 후 여섯 살짜리 맏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유산을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고것들에게 나는 복수를 당한 셈이었다.
아내의 비통은 허구한 날을 줄기차서 나는 내 몫의 비통조차 비켜놓은 채 우선 그녀를 달래느라 서툴게 어물쩡댔다. 무자식 상팔자라든가, 당신이 이러면 나는 어찌 살겠냐든가, 별로 신통치 않은 소리를 온종일 웅얼거렸다. 물론 자식이야 그까짓 거 또 낳으면 될 게 아니냐는 새빨간 거짓말도 안 했을 리 없다.
어쩌면 여직껏 생존경쟁에서 맞서기보다는 피하기를 일삼던 내 타성이 이번 일에도 교묘히 작용해서 내 감정을 보다 견디기 유리한 입장 ― 비통을 감당하기보다는 남의 비통을 위로하는 입장으로 처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아내는 마치 습 이라도 하듯이 급작스럽고도 격정적으로 나를 구했다. 그 미숙한 몸뚱이 어느 구석에서 그런 성숙한 욕망이 숨어 있었나 싶으리만큼 대담하고 열띤 몸짓으로 나를 탐하고 나는 어설프게 그냥 당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아내는 그 줄기찬 비통을 거짓말처럼 말끔히 털고 새로운 임신을 시작했다.
상상임신을 한 것이다.
다시 생활에 평온이 왔다. 아내는 새 아기를 위해 조그만 양말도 뜨고, 조그만 모자도 뜨고, 손수건만한 베갯잇에 예쁜 수도 놨다. 가끔 노래도 불렀다. 노랫소리는 아주 낮고 부드러워 듣고 있으면 살갗을 깃털로 살살 건드리는 듯한 간지럼증이 왔다. 아내는 변명 비슷이 말했다.
“다 애길 위해서예요. 제가 마음을 화평하게 가져야 뱃속의 애기가 착하고 튼튼하게 자라거든요. 당신도 아시죠? 태교라는 거.”
나는 모르겠다. 마호메트교만큼도 모르겠다. 모르면서 나는 태교라는 것에 맹렬한 증오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럴 때의 아내에겐 공포감마저 느꼈다. 나는 내 작업장으로 도망쳤다. 공장을 정리한 물건들을 처박아둔 곳이니 창고인데도 나는 굳이 작업장이라 불렀다. 그러면 내가 무직이란 생각은 안 해도 되니까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녹슨 공구와 철판조각 사이에 망연히 앉아서 나쁜 짓을 하듯이 몰래 죽은 아들들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텅 빈 내 내부에서 조그만 점처럼 위축됐던 아들들이 점점 자라서 내 내부를 가득 채우고 내 주위를 맴돌았다. 별로 자상한 아버지가 못 되었던 나는 아들과의 사이에 추억이 될 만한 아기자기한 사건이 없다. 그 대신 무심히 바라보던 거친 장난, 음정이 엉망인 노랫소리, 가끔 산책길에 따라 나와 양손에 하나씩 매달리던 조그만 손의 감촉, 그런 순간의 단편들이 싱싱한 생명력을 갖고 되살아났다.
매일매일 우두커니 아이들 생각에 침잠하는 사이 나는 아이들이 살았을 때보다 더 아이들과 친해졌다. 살벌한 작업장은 아이들로 가득 차고 아이들의 눈을 내 것으로 한 내 눈에 모든 공구와 녹슨 철판이 친근감과 어떤 뜻을 지니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장난감을 만들고 싶어졌다. 아이들의 무분별한 파괴욕과 창조욕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장난감을.
내가 생각하는 아이들이란 죽은 내 아이들 또래의 아이들이기도 했고, 또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죽은 내 아이들을 생각할 때 심장이 아픈 것과 똑같은 아픔 없이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최초의 욕구불만은 비싼 장난감을 곱게 가지고 놀 것을 강요당한 대여섯 살 적부터 비롯됐다. 부친은 어린 나에게 그게 얼마짜리란 걸 여러 번 되풀이 해서 일러줌으로써 내가 그 장난감에 겁나게 정떨어지게 했다. 부친은 이런 식으로 나의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다운 파괴욕과 창조욕을 봉쇄했고, 자라면서 싹트는 모든 가능성으로의 출구를 봉쇄했다. 학교에 들어가 공작을 잘하거나, 그림 솜씨를 보이면, 그런 걸 잘하면 장차 배고프다고 위협당했고, 노래나 글짓기를 잘해도 배고픈 짓이라고 경멸을 받아야 했다.
나는 형광등 기구를 만들다 남은 철판조각으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나이를 거꾸로 먹어 도로 아이가 된 듯이 그 일이 잘돼 신이 났다. 우선 실제의 모양에 구속받지 않고 마음껏 환상을 누린 탈것 동물 곤충의 모양을 위한 도형을 떴다. 그리고 하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여러 조각의 철판을 접합시키는 방법을 썼다. 접합은 볼트와 너트로 하고, 드라이버로 웬만큼 힘을 주면 산산이 분해할 수 있고, 다시 접합을 시키려면 본래 모습대로 되기는 좀처럼 어렵고, 또 애써 그럴 필요도 없는 아이들 천성의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탈바꿈을 시킬 수 있는 그런 장난감이었다. 그러려면 한 가지를 위해서도 여러 조각의 철판을 필요로 하느니만치 많은 틀을 맞춰야 하고, 틀 값에 따라 원가가 비싸진다는 계산은 할 새도 없이 환상적인 전체의 모양과 분해한 후 가장 다양한 탈바꿈의 가능성을 지닌 조각의 도형을 그려보고 요모조모 뜯어고치는 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제품이 되면 비닐봉지에 넣고 예쁘고 튼튼한 드라이버와 여분의 볼트와 너트도 곁들이리라. 나는 아주 소년이 돼버린 것처럼 가슴이 뛰었고 하려는 일이 생채를 띠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꼈다.
어느 날 잠자리에서 아내가 밀어처럼 나긋나긋 속삭였다.
“여보, 당신 요새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나보죠?”
아내는 고운 잠옷을 입고 있었고 향수 냄새를 알맞게 풍기고 있었다. 침실의 모든 것은 정갈하고 아늑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태교라고 생각되자 나는 약간 불안하고 약간 소름이 끼쳤다.
“응, 일? 그렇지. 일은 일이지만 이번 일은 좀 특이해 돈도 좀 벌 수 있을걸.”
나는 내가 한 나중 말에 흠칫했다. 나는 늘 돈을 버는 몸짓만 했었는데 이번 일에도 그 몸짓을 곁들이고 싶어하는 내가 징그러웠다. 나는 돈을 버는 일이 중요한 일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번 일로 돈 좀 벌 수 있으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지만 여보, 제발 제 말을 달리 듣진 마세요. 네 여보. 당신 하시는 일을 말리진 않겠어요. 그렇지만 이번 일도 경제성이 없는 일이란 건 틀림없잖아요?”
아내는 한 번도 내가 하는 일을 우습게 보는 눈치를 보인다거나 돈을 못 번다고 바가지를 긁은 적이 없다. 꼭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쓴다. 경제성이라든지 상업성이라든지 시장성이라든지 하는 알쏭달쏭한 말이 나는 바가지보다 더 질색이다.
“그래서?”
“여보, 그러니 우리 이 집을, 네? 이 집을 처분합시다.”
“집을?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이 집은 우리 식구에겐 과람해요. 그리고 흉가예요. 전 흉가에서 애기 낳긴 싫단 말예요. 그러니 이 집 팔아서 좀 뚝 떨어진 데 트인 넓은 집을 사면 당신도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하실 수 있고, 목돈이 좀 떨어질 테니까 그걸로…….”
“그걸로?”
“여보, 정말 딴 뜻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녜요. 다 애기 때문이에요. 이 뱃속의 애기.”
아내는 이왕 마음먹고 꺼낸 말을 매듭짓고 말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나긋나긋하던 말씨가 철사처럼 긴장하뎌니 내 손을 끌어다가 자기의 홀쭉한 배에 얹는다. 교태나 읍소(泣訴) 대신 뱃속의 것으로 좀더 떳떳이 자기 생각을 주장하려는 눈치다. 나는 징그러운 것에서 손을 움츠리듯 움츠리고 돌아눕는다.
“여보.”
“계속해 보구려.”
“목돈이 떨어지면 줄잡아 서너 장이야 안 떨어질라구요. 형부네 회사에 맡기면 또박또박 사 부는 틀림없대요. 사 부면 우리 식구 실컷 살고 저축도 할 수 있어요. 당신만 그 돈 안 건드리고 당신 일 계속할 수 있으면 말예요. 네. 그럴 수 있죠?”
마치 성가시게 구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안기듯이 아내는 내 사업으로 내 장난감을 삼으란다. 하긴 아무리 어른이라도 돈 못 버는 소일거리야 장난감이지 별것인가. 게다가 내 일이란 게 장난감을 만드는 일이니 궁합이 척 들어맞는 셈이다.
“여보 화내심 싫어요.”
“당신이 그렇게 경제성이 있는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 그러고 보니 당신 나 없어도 잘살겠는데.”
“어머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언짢게. 당신은 이 애기의 아버지란 말예요. 애기에 겐 아버지가 필요해요.”
아내는 또 한번 내 손을 잡아다가 자기 배에 댄다. 어쨌든 나는 그 일을 당한다. 싫지만 당한다. 무한히 오랫동안 당한다. 내가 이 일에서 놓여나려면 집 팔기를 승낙하든지 뱃속의 애기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려주든지 해야 한다. 나는 내가 결과를 감당하기 쉬운 쪽을 택한다.
나는 집 팔기를 승낙한 것이다. 나는 늘 그랬었다. 늘 당장 감당하기 쉬운 것의 편이었다.
집을 파는 일은 아내의 일이었는데 새 집을 구하는 일은 내 일이었다. 아내는 뱃속의 애기를 핑계로 집 보러 다니는 데 따라나서지를 않았다. 있지도 않은 애기가 있는 애기보다 더 심하게 우리 생활을 간섭했다.
그러니까 나 혼자서 이 집이 마음에 들어 계약을 했고, 끝전 치르던 날, 전 주인이 들려준 이 집에 대한 기분 나쁜 내력도 나혼자 들었다. 하긴 아내가 들었대도 별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잘 죽는 흉가라든가, 대들보가 부러진 걸 반자로 감춰놓았다든가 하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기분 나쁜 문제는 이 집 자체에 있는 게 아니고, 이 집 아래 벼랑 밑에 있으면서 이 집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삼층집과 관계가 있었다. 삼층집에는 김복록(金福祿)이라는 땅장수가 살고 있다고 했다.
도심에서 좀 떨어졌지만 C동은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로 남향으로 완만하게 경사를 이뤄 양지바르고 잘 포장된 널찍한 도로가 문전마다 고루 뻗어 있었다. 그러나 완만한 경사도 포장도로도 김복록의 집까지이고 그 뒤, 즉 우리집부터는 별안간 경사가 급해지고, 길은 리어카도 못 들어갈 꼬부랑 비탈길로 변한다.
본래 산이었던 곳에 한 집 두 집 생기기 시작한 무허가 판잣집이 산을 완전히 점령해서 생긴 동네로 C동 사람들은 이곳을 산동네라 불렀고, C동에서 자주 생기는 도난사건도 모두 이 산동네 사람들의 소행으로 볼 만큼, 산동네는 C동 사람들의 골칫거리였다.
C동 사람들도 나무랄 수 없는 게 어쩌다 도둑놈을 퉁겼다 하면 줄행랑을 쳐 달아나는 곳이 산동네였다. 그 창자 속 같은 꼬부랑길로 들어섰다 하면 쫓아가봤댔자 거기도 거기 같고 그놈이 그놈 같고, 그러다보면 온 산동네가 짜고 자기를 골탕 먹이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감마저 생겨 슬그머니 도망을 쳐오게 마련이다. 그리곤 산동네라면 치를 떨었다.
그러나 산동네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제 손톱 발톱 닳아 제 밥벌이 한다는 긍지가 대단했다. 아닌게 아니라 고물장수가 수집한 걸 해체해서 재생하는 일로부터 비닐우산 만들기, 봉투 붙이기, 조화 만들기 둥 이 산동네 전체가 하나의 이색적인 가내공업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집터 하나는 잘 고른 셈이었다. 산동네치곤 초입이어서 비탈길은 좀 숨이 차다 할 만큼만 오르면 되었고 터전도 넓었고, 전 주인도 가내공업을 하던 이라 마당에 따로 헛간 같은 작업장까지 있었다. 문제는 김복록네 삼층집과의 고약한 관계인데, 그것도 전 주인이 큰 죄를 지은 듯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해라도 하듯이 엄숙하게 일러준 깐으론 별로 대수로운 일도 못 됐다. 그러나 안 그러니만은 못한 일이었고 간추리면 대강 이런 이야기가 되었다.
삼층집 김복록은 우선 부자였다. 별로 배운 것도 특별한 기술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손을 댄 땅장사가 그를 벼락부자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땅 보는 데는 귀신이라느니, 그가 어디서 복덕방하고 몇 마디 쑥덕대기만 해도 아무리 허허벌판이라도 당장에 그 근처 땅값이 치솟는다느니 하리 만큼 신비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복록 자신은 곰곰이 생각해도 순전히 운수였다고밖에 부자 된 방법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란 시시한 것이게 마련이다. 알맹이는 늘 설명할 수 없는 데 있다.
김복록은 부자의 생활을 사랑했다. 부자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는 고급 주택지인 C동에서도 C동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지대 높은 곳에 아름답고 웅장한 집을 신축했다. 그는 남향의 베란다의 등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C동과 멀리 번들대는 강줄기와 수양버들이 늘어진 강변로를 조망하기를 즐겼고, 북창(北窓)을 통해 산동네의 빈궁을 구경하기를 즐겼다.
그는 뾰족한 쇠꼬챙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삼엄한 벽돌담을 저택 삼 면만 둘러싸고 눈에 안 띄는 북쪽은 축대조차 없는 벼랑을 자연의 담장으로 삼아 내버려두고 있었다.
집을 지을 때 앞의 정원을 넓게 남길 욕심으로 쓸모없는 북쪽은 벼랑에 바싹 다가서 지은 터라 실상 담을 쌓을 만한 여백도 없었다. 그러고도 그는 벼랑 위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뒷집 사람을 불러다가 축대를 쌓으라고 호령을 심심하면 내렸다.
벼랑은 푸석바위였으나 경사가 완만하고 아카시아가 무성해 사태가 날 염려가 있는 것도 아닌데 김복록은 다만 뒷집 사람을 호령하는 데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두 손을 비비며 엉거주춤, 큰 죄를 지은 듯 말까지 더듬으며 며칠만 참아달라고 허리를 깊게 굽실대는 꼴을 굽어보면 마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히는 것처럼 쾌적했다. 사람에게 이런 쾌감대가 있을 줄은 김복록도 미처 몰랐었다. 그는 부자로서의 여러 쾌감 중 특히 이런 쾌감을 사랑했다.
그가 친구의 부탁으로 땅을 보러 가까운 시골에 내려갔다가 여름이라 피서 겸 며칠 묵고 와보니 그사이 축대가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그는 부아가 왈칵 치밀었다. 푸석바위를 어떻게 쪼아냈는지 두어 자가량이나 뒤꼍이 남겨져 김복록은 도리어 땅을 얻은 셈이었으나 그 머저리 같은 뒷집 가난뱅이를 불러다가 호령을 하는 즐거움이 막힌 생각을 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북창문을 열고 이 축대를 누구 맘대로 이렇게 쌓았느냐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뒷집 남자는 얼굴에 핏기를 잃고 달려왔다.
“마침 안 계시길래 주인마님께 의논을 드리고……, 그저 소인은 주인마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노라고 하였사온데…….”
“이런 엉큼한 놈 봤나.”
그가 처음으로 ‘놈’ 자까지 붙이자 사나이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진다.
“네놈이 일부러 여자들만 있을 때를 엿봤다가 쌓은 속셈을 누가 모를 줄 알고 엉큼을 떨어? 이 고얀 놈.”
점잖게 호통을 친 김복록은 돌아서서 금고를 덜커덕 연다. 육중한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사나이는 자기의 심장도 덜커덕 내려앉는 것을 느낀다. 사나이는 와들와들 떨려오는 것을 참으려고 어금니를 악문다.
김복록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듯 사나이의 이런 꼴을 빤히 안다. 회심의 미소를 우물우물 삼키고 금고 속에서 꺼낸 청사진을 펴고는 적당한 곳에 붉은 볼펜으로 직선을 죽 긋는다.
“똑똑히 봐라 이놈, 네놈이 내 집 땅을 얼마나 먹었나. 지도에선 이래도 이게 줄잡아 열 평은 실할 거다. 광명천지 밝은 세상에 이놈, 남의 땅이 열 평씩이나 거저 삼켜질 줄 알았더냐? 이 날도둑놈 같으니라구.”
잔뜩 겁을 먹은 사나이의 눈에 청사진이 제대로 들어올 리도 없거니와 보인댔자 어디가 어딘지, 뭐가 뭔지, 그렇다면 그런 줄 알밖에, 쥐뿔도 알 리가 없다.
“이 일을 어쩔갑쇼? 이 일을 어쩔갑쇼? 한 번만 봐주셔야지.”
“봐주다니 어떻게? 자네 아마 청사진을 못 믿겠나본데 그럼 측량을 해보게나. 측량비는 자네 부담인 건 알겠지?”
김복록은 ‘놈’ 자를 빼고 한결 누그러진 소리를 했으나 무식한 사람에게 청사진이니 측량이니 하는 어휘가 주는 막연한 공포를 충분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도 운수가 좋아 치부는 했을망정 지금도 땅장사에 따르는 청사진이니 측량이니 환지니 구획정리니 체비지니 하는 알쏭달쏭한 말들에 대한 공포감은 여전했다.
과연 사나이는 청사진을 확인하기는커녕 측량이란 말에 한층 안색이 질리며,
“나리, 나리가 없는 사람 봐주셔야지 어떡합니까? 그저 한 번만 봐주십시오.”
“봐주다니 내가 무슨 수로 봐주겠나? 청사진이 이런 걸. 참 답답한 친구도 다 있네, 허허허…….”
김복록이 너그럽게 너털웃음을 웃자 사나이는 한층 용기를 내며
“그럼, 어떡할갑쇼? 가르쳐만 주시면 꼭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야 마땅히 축대를 헐어 다시 쌓아야지.”
“아이구 나리, 그러시지 마시고 제발 좀 봐주십시오. 축대만 쌓은 게 아니라 축대 위에 헛간까지 진걸요. 공장을 좀 해보려고요. 먹고살아야지 어쩝니까?”
“알았네, 알았어. 그러려구 서둘러 축대도 쌓고 남의 땅도 슬쩍슬쩍 먹으셨겠지.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땅을 사게나 사. 열 평을.”
“네, 그래만 주신다면 백골난망이겠습니다. 돈은 어떻게든 쉬 마련해오겠습니다.”
“땅값은 잘 알겠지?”
“네, 나리께서 그저 잘 알아서 좀 봐주셔야지 어떡합니까?”
“봐주지. 여기 땅값이 평당 십오만원은 가지만 십만원씩만 쳐주게.”
“네?”
이제야말로 사나이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겨우 단말마의 신음처럼
“아, 아니 십만원이라뇨? 저희 동네 요새 시에서 불하 나온 값이 치, 칠천원인뎁쇼.”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그건 산동네 땅값이지, 여긴 고급 주택지야. 자네가 먹은 땅은 금싸라기 같은 이 부자 동네 땅이란 말일세. 공연히 어수룩한 척하지 말게. 촌놈이 서울 놈 간 빼먹는다더니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걸, 허허…….”
벌벌 기다시피 돌아간 사나이는 다음날 십 년은 더 늙은 몰골을 해가지고 신문지에 돈을 싸가지고 왔다.
“얼만가?”
“네, 오, 오만원인뎁쇼.”
“음, 계약금이로군. 일 할은 치러야지 오만원이 뭔가?”
“아니올시다. 그냥 좀 잘 봐주십사구. 그냥 눈감아주십사구. 어떡합니까? 나리 같은 분이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 안 봐주시면 누가 봐줍니까?”
사나이는 김복록이 혹시 돈꾸러미를 도로 주면 어떡하나 싶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줄행랑을 쳤다.
김복록은 유쾌했다, 이게 바로 ‘와이로’ 라는 거였다. 그래 와이로고말고. “나리 좀 봐줍쇼” 하지 않았던가.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봐달라고 주는 돈이면 와이로지 별건가. 큰돈도 많이 벌어본 그다. 그렇지만 요렇게 감칠맛 있는 돈은 처음이다.
그는 돈을 만져본다. 귀엽고 신통하다.
배운 것 없이 땅장사를 하려니 시청 구청 등기소 같은 관청에 가서 자기 아들같이 젊은 애들한테 굽실거려도 봤고, 좀 봐주십시오 하며 ‘와이로’ 를 꾹 찔러준 적은 부지기수였지만 당해보긴 처음이다. 비로소 돈보다 윗길에 드는 게 이 세상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렵부터 그는, 무슨 사업을 벌여 중역 자리에 앉히려고 대기시켜놓은 아들들을 어떻게든 관청에 밀어넣을 궁리를 한다. 세도 부리고 와이로 먹는 팔자는 뭐니뭐니 해도 관청물 먹는 양반밖에 더 있겠느냐는 게 김복록의 상식이었다.
와이로로 가까스로 김복록을 달랜 사나이는 축대 위 헛간에서 빈 깡통을 닦는 일을 시작했다.
“야, 이게 무슨 냄새냐? 킁킁, 이거 사람 살겠나. 하도 사정이 딱해 봐줬더니 고작 이런 얌체 짓을 해. 이 고얀 놈. 당장 고발을 할까보다.”
그는 심심하면 북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번번이 사나이는 달걀 꾸러미도 사오고 과일 바구니도 가져와 사죄를 했다. 사나이의 몸은 자꾸 오그라들었다. 드디어 어느 날 불쌍한 사나이는 이사를 갔다.
김복록은 서운했다. 근지러운 곳을 시원히 긁어주던 머저리는 떠난 것이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이도 별수 없는 머저리였다. 젊은이였으나 어리숙했다.
김복록은 젊은이를 불렀다. 젊은이는 이런 으리으리한 집에들어와보기는 생전 처음임 이 그 거동에 역력했다.
“자네 그 집 얼마에 샀나?”
“오십 만원 주었는뎀쇼.”
“왜 그렇게 싸게 팔았는지 알지?”
“네, 시에 갚아얄 게 그냥 있어서요. 그러니깐 권리금만 준 셈입죠.”
“이런 말귀 못 알아돋는 사람 봤나. 자넨 속은 거야. 속았어.”
“네?”
“사기를 당했다니까. 큰일이네 큰일이야.”
그러곤 천천히 돌아서서 금고를 덜커덕 열고 청사진을 아무거나 한 장 꺼낸다. 젊은이의 얼굴이 노랗게 변한다.
“잘 보게 여기를.”
그는 붉은 볼펜으로 직선을 긋는다.
“요기가 자네네 터고 여기가 우리 턴데, 전에 살던 놈이 축대를 이렇게 쌓질 않고 요렇게 쌓아서 여기 이십오만원짜리 금싸라기 땅을 열 평이나 먹으셨다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곱게 먹어지나. 우린 뭐 등신만 사나? 내 아들은 ××청에도 있고 ××서에도 있네. 그놈이 먹어만 놓고 뒷감당을 못 해 쩔쩔매더니 결국 몰래 집을 속여 팔고 도망을 쳤구먼. 원 세상에…….”
불쌍한 젊은이는 눈앞이 캄캄하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전번 사나이와의 사이에 일어났던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김복록은 또 한번 와이로도 먹고, 봐달라는 애원에, 고맙다는 인사도 받고, 그러고는 모자라 심심하면 트집을 잡아 들들 볶아먹고 했던 것이다. 젊은이도 오래 못 살고 떠나갔다. 이런 식으로 이 집은 삼 년 동안에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권세 부리는 재미란 한번 맛보면 어쩔 수 없는가보다.
이사 온 지 며칠 안 돼, 미처 자리도 잡히기 전에 나도 삼층집의 호출을 받았다. 앞뒷집간의 관계의 내력을 알 만큼은 알고 있는 터라 의외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만은 그 일을 면하게 되었으면 하고 바랐었다.
나는 김복록이 앉으라지도 않는데 소파에 깊숙이 묻혔다. 피곤하다. 아닌게 아니라 김복록의 등뒤엔 한 길도 넘게 큰 금고가 검게 번들댄다. 내가 상상하기는 공갈치기의 소도구로서의 장난감 같은 금고였는데 이건 너무 육중하다. 그 옆엔 틀에 자개 장식을 한 대형 거울이 걸려 있다. 그 속에 방이 또하나 펼쳐져 있다. 그 속에 있는 내 모습은 그 속 풍경과 너무 안 어울린다. 금고보다 거울이 더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래도 나는 김복록을 마주 보지 않고 두리번두리번 딴전만 피운다. 김복록이 먼저 말을 건다. 격식대로 집을 얼마에 샀느냐고 묻는다.
“댁의 용건부터 말씀하시죠.”
나는 냉랭하게 말하고 비로소 김복록을 정시한다. 근력이 좋은 초로(初老)의 늙은이답게 적당히 비대하고 적당히 추한데 불결감이 강하게 풍긴다. 그 불결감은 옷차림이나 목욕한 횟수, 환경하곤 전연 상관없는 불결감이다. 나는 조금씩 고통스러워진다.
“좋소, 그럽시다.”
김복록은 아까보다 더 탁한 소리로 말하고 벌떡 일어나 거칠게 금고 문을 열고 청사진을 꺼낸다. 나는 청사진에 무관심한 척 시선을 돌려 초하의 햇빛 속에 눈이 부신 베란다의 풍경을 본다. 베란다에는 색색의 피튜니아가 만발해 있고 김복록의 손자인 듯한 어린 남매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계집애가 곁눈질로 이쪽 방의 눈치를 할금할금 살펴가며 피튜니아 꽃잎을 물뜯어다가 소꿉에 담아 상을 차린다. 종종걸음으로 남자애 앞에 갖다놓더니 우선 자기가 냠냠을 하고는 남자애에게도 냠냠을 시킨다. 남자애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좀 계면쩍은 듯이 그러나 즐거운 듯이 그 짓을 한다.
나는 이런 광경에 빙긋빙긋 미소를 흘리면서 한편 지금 나에게 용건이 있는 듯한 이 불결한 남자를 어디서 본 듯하다고, 어디서였을까, 어디서였을까 아물아물 생각하고 있었다.
김복록은 청사진 위에 붉은 줄을 그으려다 말고 이 작자는 딴 놈팡이들과 같이 다루는 것은 약은 수가 못 된다는 걸 깨닫는다.
“에, 또, 마아,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자면, 마아.”
그는 상대방이 자기보다 유식해 보이면 ‘에 또’ 와 ‘마아’ 를 써 먹는다. 그것으로 자기 말에 권위가 서고 자기를 고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나는 김복록을 어디서 어떻게 본 적이 있는지가 도무지 생각이 안 나 안타깝다.
한편 베란다에선 아이들이 소꿉장난에 싫증이 났는지 병원놀이다. 이번에도 또 애꿎은 피튜니아가 경을 친다. 약도 약솜도 꽃잎이다.
사내애가 오동퉁한 계집애의 팔을 흰 피튜니아 꽃잎으로 싹싹 문지르고 나서 붉은 꽃의 꽃물을 짜내서 바른다. 계집애는 흰 팔이 분홍빛으로 얼룩진다. 계집애는 눈을 스르르 감고 앓는 소리를 낸다. 나는 홀린 듯이 아이들의 이런 장난에서 눈을 못 뗀다.
나는 ‘에 또’ 와 ‘마아’ 가 섞인 장황한 연설을 이해하기도 전에, 김복록을 언제 어디서 만났었는지를 생각해내기도 전에 이미 그 고질적인 나의 멀미를 시작하고 있었다. 당장 이 방에서 뛰어나가지 않으면 우장을 토해놓고 말 것 같은 심한 멀미를 용케 달래주는 게 바로 피튜니아가 만발한 베란다의 아이들이 있는 풍경이었다.
질식하기 바로 전에 한 가닥 청신한 공기가 들어오는 구멍을 찾아내어 허겁지겁 콧구명을 박듯이 그렇게 절박하게 나는 베란다를 보고 있었다.
“알아들었소?”
다시 김복록이 악을 쓴다. 지루한 연설이 그럭저럭 끝난 모양이다.
“좀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알아들을 것도 같군요.”
그러면 그렇지 네놈이 무식한이렷다, 김복록은 회심의 미소를 띠고 ‘에 또’ 와 ‘마아’ 도 빼고, 말도 놓고 다시 경위를 설명한다.
“알겠습니다. 땅을 사면 되겠군요.”
“그야 여부가 있나.”
“평당 만원씩이면 사죠. 파실 의사가 있으면 열 평의 분할 수속을 해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밟아주십시오.”
“뭐, 뭐라고 소유권 이전등기? 아니 누가 만원에 판댔어? 응 누구 맘대로.”
“그럼 얼마에 파실 작정이십니까?”
“평당 십만원. 십만원에서 한푼도 귀가 떨어지면 안 팔아.”
“안 팔면 그만두십시오. 실은 저도 사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안 보인다. 꽃그늘에서 숨바꼭질을 하나보다. 저만치 난만한 꽃그늘에 머리만 박은 계집애의 앙증한 궁둥이가 우산처럼 퍼진 치마 밑으로 보인다. 꽃무늬가 있는 팬티에 싸인 토실한 궁둥이가 너무 귀여워 나는 이상한 고통을 느낀다.
“뭐? 누구 맘대로 안 사. 그럼 내 땅을 내놔야지. 남의 땅을 공거로 먹을 배짱이야. 날도둑놈 같으니라구.”
“말씀 삼가십시오. 누가 댁의 땅을 먹는댔습니까? 가져가세요. 아마 축대를 조금 내 쌓았다 이 말인가본데, 축대가 저렇게 기니까 열 평이라야 길게 열 평일 테니 한 뼘쯤 되겠군요.”
“뭐? 뭐라고, 누구 맘대로 하, 한 뼘이라고…….”
“그야 우리 맘대로야 안 돼죠. 가져가시더라도 측량을 하고 수속을 밟고 가져가셔 야죠.”
“뭐 측량? 다, 당신이 측량을 하겠다고? 흥, 측량은 돈 안 드는 줄 알고.”
“왜 제가 합니까? 땅이 필요한 건 당신인데. 백만원이 생기는 것도 당신이고.”
“뭐? 내가 언제 뭬 필요하댔어? 뭬?”
“원, 이런 어른 봤나?”
아이들이 안 보인다. 아주 안 보인다.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나는 일어나면서 김복록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별안간 아물아물하던 게 명료해진다. 바로 그다! 순간적으로 나는 김복록을, 오랜 세월 내가 하려는 일 뒤에 숨어서 나에게 그 고약한 멀미를 일으키게 한 징그러운 괴물의 정체로서 파악한다.
저런 모습이었구나. 바로 저런 모습이었어. 탐욕이니 비열이니 파렴치니 하는 추상명사가 뼈와 살을 갖추면 바로 저런 모습이 되는구나. 나는 진저리를 쳤다.
나는 그날부터 다시 장난감 만들기에 골몰할 수 있었다. 나는 멀미로써 나를 속박하던 괴물의 정체를 알아낸 것에 신선한 기쁨을 느꼈다. 또 그 괴물의 본질이 알고 보니 보잘것없이 허약하다는 게 내게 용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 다시는 멀미를 않겠다는 자신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함으로써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방법보다는, 그와 맞서 그 본질을 알아냄으로써 자유로워지려는 방법에 접근하고 있는 스스로를 자각했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일이나마 기쁨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대견한 일이었다.
드디어 몇 가지 마음에 드는 장난감 모형이 완성돼 칠을 하려고 컴프레서를 돌렸다. 낡은 가내공업용 컴프레서는 몹시 털털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당장 끄지 못해. 네가 이 동네 다 샀어? 안 끄면 고발소에 찌를 테야.”
김복록네 북창이 열리더니 그 추한 얼굴을 길게 내밀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나는 다시 느굴느글 멀미를 하지는 않았지만 기계에서 나는 지독한 소음에 대해선 대책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김복록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이웃에 대한 예절이었다.
나는 헛간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지하실을 만들어 헛간을 이층 구조로 만들면 소음이 나는 것은 지하실에서 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작업장 면적을 늘릴 수 있겠거니 해서였다. 나는 이 집에서 오래 살아 보일 터였다. 다른 이웃처럼 가내공업으로 밥벌이도 할 터였다. 꼭 그렇게 할 터였다. 그러기 위해 좀더 쓸모 있는 작업장을 만들려고 땅을 파는 것이지 김복록이가 무서워서 땅을 파는 것은 아니었다.
콘크리트는 미장이를 시키더라도 파는 것은 내가 파리라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원체 해보지 않던 일이라 여러 날이 걸렸다.
내일쯤은 미장이를 대리라 할 만큼 팠는데 비가 내렸다. 비는 계속 내렸다. 설마 벌써 장마가 질라구 했던 게 웬걸 암만 해도 장마가진 것 같다.
나는 할 수 없이 한데 나자빠진 공구와 기계, 철판 부스러기 등 잡동사니를 구덩이 속에 처넣고는 날 들기를 기다릴밖에 없다.
나는 온종일 아내 곁에 앉아서 태연히 내리는 빗발을 본다. 트랜지스터에선 올해 장마는 예년보다 한 달은 빠르다고, 특별 뉴스라도 되는 듯이 신이 나서 떠든다. 요새는 신문도 라디오도 뉴스거리가 없어 심심했던가보다. 아내는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띠고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아기 옷일 게다.
“당신,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아무 거나.”
“뭘, 아들이 좋으면서.”
“정 말이야. 계집애도 좋아.”
김복록네 베란다에서 본 피튜니아 꽃그늘의 계집애의 궁둥이가 선명히 떠올라 나는 쓸쓸히 웃는다.
순간, 쾅 와르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헛간을 중심으로 마당이 순식간에 가라앉지 않는가. 이럴 수가·…·나는 엉겁결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굵은 빗발 속에 지옥의 입구처럼 입을 연 웅덩이를 본다. 사방에서 흙탕물이 곤두박질을 쳐 웅덩이를 채운다.
곧이어 처참한 아우성이 정말 지옥에서 들려오듯이 불길한 울림으로 온 동네로 퍼진다.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내를 떼놓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아우정은 김복록이네 삼층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죽은 듯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여보, 저 또 유산을 했나봐요.”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하다. 이 애처로운 여자에게도 이제 진실을 알려줘야 할까보다. 우리가 다시는 애기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여자에게 아무리 잔혹하더라도 조만간 이 여자가 감당해야 할 진실임을 어쩌겠는가.
“무슨 일이에요? 지진이었나요?”
“아니.”
내가 헛간 속에 열심히 지하실을 파고 있는 동안 김복록은 자기 집 지하실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지하실도 쓸모없이 넓기만 한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죽을 때라 환장을 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미망인은 울면서 넋두리를 했다.
지하실 북쪽 견고하고 번쩍이는 타일 벽을 뜯어내고 우리 집 마당 밑을 향해 파들어온 것이다. 처음엔 열 평만하던 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걷잡을 수 없이 욕심을 내며 파들어왔다.
그는 조작된 땅 열 평을 미끼로 한 공갈이 잘 나가다가, 나에게 와서 벽에 부딪히자 그런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나를 골탕 먹이고 아울러 스스로의 탈출구를 삼으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희생자는 김복록 하나였다. 인부들은 굴 천장에서 빗물이 새 며칠째 쉬고 있었다. 하필 그 시간에 왜 그가 그 굴 속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땅이 가라앉은 원인이야 얼마든지 추측할 수가 있다. 굴을 떠받친 갱목이 몇 년 전 김복록이 집을 신축할 때 쓰던 목재였다니 썩었달 수도 있겠고, 나도 이쪽에서 구덩이를 팠으니 지층이 얇아졌달 수도 있겠고, 내가 구덩이에 처넣은 공구의 무게 때문이랄 수도 있겠고, 어쩌면 그런저런 까닭들이 합쳐서 땅이 가라앉은 원인이 됐을 게다.
그러나 왜 좀 전까지도 삼층 자기 방에서 초조한 듯 빗발을 보고 있던 김복록이 하필 그 시각에 거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끔찍한 모습으로 거기 말없이 죽어 있었다.
“큰일났군요.”
“응, 참 안됐더군.”
“그게 아녜요. 큰일난 건 우리란 말예요. 사람이 둘이나 죽다니, 이 집도 흉가예요. 그러고 그 집에서 우릴 가만 안 놔둘걸요.”
“왜?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잘잘못이 무슨 문제예요. 그 집 아들들이 다 권세 부리는 직장에 다닌다던데요. 우릴 즈이 아버지 원수로 삼고 복수하려고 할 거예요. 즈이 잘못은 감쪽같이 덮어놓고 다 우리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거예요. 그 집은 돈 있고 빽 있어요. 어떡하죠? 아아, 이 집도 흉가예요. 두고 보세요.”
창백하던 아내의 얼굴이 어떤 확신으로 선무당년같이 불길하게 빛난다. 계집년이 재수 없게시리……, 나는 아내를 거칠게 밀치고 문득 심한 멀미를 느꼈다. 온 세상이 낡은 차가 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마구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그놈의 지긋지긋한 멀미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도피하고 굴종해야 할 것으로 느낀 게 아니라 맞서서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서 느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사람 속에 도사린 끝없는 탐욕과 악의에 대해 좀더 알아야겠다. 옳지 못할수록 당당하게 군림하는 것들의 본질을 알아내야겠다. 그것들의 비밀인 허구와 허약을 노출시켜야겠다. 설사 그것을 알아냄으로써 인생에 절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멀미일랑 다시는 말아야겠다. 다시는 비겁하지는 말아야겠다. 라디오에선 장마가 곧 개리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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