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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최민렬님 書
모닥불
-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집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헌겁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짗도 개털억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아이도
새사위도 갖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우리할아버지가 어미아비없는 서러운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된 슳븐력사가있다
― 시집 『사슴』(한정판, 선광인쇄주식회사, 1936) / 시전집 『白石詩全集』(이동순엮음, 창비, 1987)
◦ 새끼오리 : 새끼줄. ‘오리’는 ‘올’의 평안도 방언.
◦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 가죽신의 밑창.
◦ 개니빠디 : 개의 이빨.
◦ 너울쪽 : 널빤지쪽.
◦ 집검불 : 지푸라기.
◦ 짗 : 깃.
◦ 개털억 : 개의 털.
◦ 재당 : 재종(再從). 육촌. / 재실(齋室)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문중 회의를 할 때 일을 주관하던 학덕 높은 집안의 어른.
◦ 초시 : 과거의 첫 시험. 또는 그 시험에 급제한 사람.
◦ 문장(門長) : 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
◦ 갖사둔 : 새사돈.
◦ 붓장사 : 붓을 파는 장사꾼.
◦ 몽둥발이 : 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 백석 :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
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2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 참고 / 백석 시집
[전집]
白石詩全集, 이동순 엮음, 창비, 1987, 10,000
백석전집, 김재용 엮음, 실천문학사, 초판1997, 증보판2003, 개정증보판2011, 35,000
백석 문학전집 1(시), 최동호 김문주 김종훈 엮음, 서정시학, 초판2012, 증보판,2015, 개정증보판2017, 18,000
정본 백석 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07, 15,000
[선집]
멧새 소리, 미래사, 초판1991, 개정판2002, 7,00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시나 엮음, 다산초당, 2005 / 개정판, 다산책방, 2014, 12,000
[사슴]
사슴(선집), 안도현 엮음, 민음사, 2016, 10,000
백석 시집 사슴(초판본 사슴), 소와다리, 2016, 9,800
백석 시집 사슴(평역본), 라이프하우스, 2016, 3,900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모닥불의 속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시어를 나열하여, 평등한 사람들이 화합하는 공동체적 삶의 세계와 그 이면에 놓인 민족의 비극을 형상화하고 있다. 1연에서는 모닥불에 타고 있는 사물들을 열거하고, 2연에서는 모닥불을 쬐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열거한다. 이 같은 열거법은 판소리와 사설시조 등에서 자주 사용되던 것으로 전통 계승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3연은 앞의 두 연과 구분되는데, 내용적으로도 앞의 두 연이 모닥불과 관련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는 데 반해, 3연은 할아버지의 어릴 적 사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우리가 견디어 온 슬픈 역사와 끈질기게 이어 가고 있는 현재의 정겨운 삶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 주는 것이며, 모닥불을 통해 비극적 역사와 모든 존재를 포용하는 조화와 평등의 공동체적 합일의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해법문학 현대시 고등』,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이런 말과 말본새가 곧 우리 민족의 마음 씀씀이였거늘. 지푸라기 가랑잎 나무 막대는 물론 머리카락 개털 헌신짝도 모두모두 분간 없이 타오르는 모닥불. 그런 모닥불을 사람 짐승 높낮이 없이 둥글게 어우러져 따스하게 쬐는 정겨운 마당. 그런 정경(情景)이 우리네 마음이고 삶이고 역사였거늘. 일제하 나라를 빼앗겨 더 추웠을 북방 시인이 순우리말 토속어 구분 없이 모아다 늘어놓고 모닥불을 피우며 민족의 얼 지피고 있네. 남북은 물론 가진 자 못 가진 자 남녀노소 갖가지로 갈려 험악한 지금 우리네 이 마당도 모닥불 대동굿 펼칠 날 어서 왔으면. 이념이나 당위보다 한참 윗길인 민족의 정겨운 얼로.
이경철 문학평론가
백석의 시 모닥불은 흔히 화합과 합일의 공동체에 대한 꿈을 표현한 작품 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이런 통상적인 해석이 이 시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것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이 시에 대한 해석은 1연과 3연에 등장하는 모닥불의 차이와 관계, 그리고 양자를 연결하는 할아버지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논문에서는 1, 2연의 모닥불이 3연에 제시된 모닥불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며, 따라서 두 모닥불은 할아버지의 삶의 양 극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3연의 모닥불은 역사(청일전쟁과 그것을 종결짓는 평양성 전투와 이후 양군의 군사 활동)에 의해 상처 입은 할아버지의 유년시절과 관련된 것이다. 그에 비해 1, 2연의 모닥불은 그역사의 상처를 극복하고 어엿한 일가를 이룬 할아버지의 삶과 관련된 것,다시 말하자면 할아버지 생애의 한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손녀의 혼사와 관련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1연에서 열거된 다양한 사물을 모닥불 속에 던져 넣어 태우는 것은 혼례식 마당을 정화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할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삶과 기억을 정화하는 제의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연에서 열거되는 다양한 사물 - 쓰레기들은 할아버지의 삶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경험과 기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2연에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온기를 나누어주는 모닥불처럼 이 집안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는 할아버지가 이룩한 인간 승리에 대한 외경의 감정, 그리고 할아버지가 일구어낸 집안이 더욱 번창하기를 바라는 손자의 마음을 모닥불과 그 주위에 모여 불을 쬐는 하객들의 모습을 빌어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오성호 시인ㆍ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백석 시 모닥불 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 배달말 58호, 배달말학회, 2016.6
읽으면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도 ‘개터럭’ 다음에다가 어떤 물건을 하나 더 넣고 싶어진다. 뭘 넣을까. 모닥불 속에 타고 있는 것들은 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들이다.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타는 모닥불가에 가문의 가장 어른이신 문장과 강아지까지 어울려 불을 쬔다. 참 재미있다. 아름답고 따뜻한 평등과 평화다.
김용택 시인
위 시「모닥불」은 백석 시의 한 특장인 긴 나열을 통한 엮음의 수사가 시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이다.
먼저 1연은 모닥불이 타고 있는 현장을 그리고 있다. ‘함께, 역시’라는 뜻을 가진 보조사 ‘-도’에 의해 모닥불을 구성하는 무수한 질료들이 나열되고, 그것들은 모두 종결부의 “타는 모닥불”을 수식한다. 또 ‘-도’에 의해 연속적으로 나열되는 모닥불의 이 질료들은 연속적 운동감의 표상으로 그것들이 마치 모닥불 속으로 차례차례 던져져 모닥불을 계속 피워가는 생생한 현장감을 자아낸다. 그런데 모닥불을 피워내는 이 질료들은 하나같이 세상에 쓸모가 없어 내버려진 것들이다. 이것들이 모여 모닥불로 타오르면서 어둠을 밝히고 세상을 따스하게 데운다.
2연 역시 보조사 ‘-도’에 의해 시어가 나열되고 있는데 그것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를 수식하고 있다. 그러니까 2연은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모닥불을 쪼이고 있는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쬐고 있는 세상의 여러 사람들은 그 어떤 차별도 없이 평등하다. 1연과 2연에서 그려낸 구체적 현장의 ‘모닥불’은 바로 민중적 삶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3연은 시상 전환이 되어 시적 화자의 할아버지에 대한 회상으로 진술된다.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는 비단 화자의 할아버지 개인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1연과 2연의 ‘-도’에서 본 것처럼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 모두의 ‘슬픈 역사’일 것이다.
내용과 형식의 양 측면에서 높고 깊은 백석의 시는 우리 한국 현대시의 튼실한 거름이 되었다.
이종암 시인
백석의 시는 민족주체성이 훼손된 시기에 꺼져가는 모국어의 명맥을 되살려내었다고 평가 받는다. 그의 모국어 정신은 방언주의로 나타나는데, 그를 일컬어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 칭하는 이유가 이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토속어를 부려놓는 솜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모닥불’은 민족주체성의 확보와 모든 종족 사물들 간 관계 합일의 지향을 밀도 있게 담은 작품이라는 문학평론가들의 일반적 해석이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뜻을 잘 알지도 못하는 시어에서 맴도는 묘한 운율, 얼핏 촌스러운 시어의 평범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신선함과 정겨움이 오히려 세련된 감각으로 먼저 와 닿는다.
모닥불에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것들이 모여 작지만 따뜻한 불을 피우고 있다. 새끼 오리, 헌신짝, 소똥, 갓신창(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개의 이빨), 너울쪽(널빤지쪽), 짚검불, 헝겊조각, 개터럭(개털) 등 시 속에 등장한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이 하나의 가족 개념을 이룬다. 모닥불은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 당하고 쓸모없는, 그래서 더욱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받아서 불을 피웠다. 그리고 모닥불 주위에는 버려진 물건들만큼이나 초라한 인간 군상들과 강아지까지 누구나 와서 따뜻함을 분배받으면서 온몸을 쬐고 녹인다. 모닥불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서 타닥타닥 불을 피웠다.
재당(재종. 육촌), 초시(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 문장늙은이(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위인 사람), 더부살이 아이, 갓사둔(새사돈), 나그네, 주인, 땜쟁이, 큰개, 강아지 등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이들은 신분의 높낮이, 나이나 가족 나아가 인간과 동물간의 구분도 경계도 지웠다. 모닥불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둥글게 모여 앉은 모두가 상하좌우 문턱 없이 평등하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가슴 속의 서러움마저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모닥불이다. 고통스럽고 서러운 몽둥발이(딸려 있던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몸뚱이만 남아 있는 사람)가 된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마저 융숭깊은 내적 화해로 녹여버리는 것이다.
권순진 시인
모닥불에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받은 것들이 모여 작지만 따듯한 불을 피우고 있다. "새끼 오리, 헌신짝, 소똥, 갓신창(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개의 이빨, 너울쪽(널빤지 쪽), 깊검불, 가락잎, 머리카락, 헝겊조각, 막대꼬치 기와장 닭의 짗 개터럭" 등속 시 속에 등장한 사물들은 한때는 긴요하게 소용되었으나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것들이다.
이 보잘것없는 것들이 모여 피우는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인간 군상을 보자. 버려진 물건들 못지 않게 초라한 인간 군상이지 않은가. 그들은 다름 아닌 생의 변두리로 내몰린 민초들인 것이다. "재당(재종,육촌), 초시 문장늙은이(한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사람), 더부살이 아이, 새사위, 갓사둔(새사둔), 나그네, 주인, 할아버지, 손자, 붓장수, 땜쟁이, 큰개, 강아지" 등속.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이들은 나이의 구분도, 가족의 구분도 인간과 동물간의 구분도 없다. 모두가 상하 좌우 경계 없이 평등하다. 말하자면 이 시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하는 화해의 공동체가 아름답게 구현되어 있다.
모닥불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지만 소외 받은 이들끼리의 말없는 가운데 이심전심의 끈끈한 연대와 우애가 들어 있어 주목을 끈다.
백석의 대개의 시편들이 그러하듯 이 시 또한 이북 함경도와 평안 남북도의 감칠맛 나는 토속어가 시의 서사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시인을 일러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 칭하기도 하는데 백석은 이러한 시인의 정의에 에누리 없이 적용되는 시인이라 말할 수 있다.
이재무 시인
세 개의 원이 있다. 맨 안쪽의 조그만 원에서는 이제 목숨 다한, 온갖 값없는 것들이 조용히 타고 있다. 부스럭거리는 불의 소리들이 할딱이는 듯하다. 활활 탈 수 없는 사연을 가진 땔감들이다. 가난한 냄새도 조용히 올라온다. 개터럭에 기왓장까지도 함께 들어 있으니 차별하고 구별하지 않은 무기물의 세계다.
그 둘레에 또 하나의 원이 있다. 여기는 목숨들의 원이다. 큰 개도 강아지도, 땜장이도 당숙도 더부살이도 주인도 두 손 모으고 서 있다. 역시 아무런 차별이 없는, 오직 따뜻 함만을 고루 나누자는 목숨들의 원이다.
그 바깥에 또 하나의 원이 있으니 이 모닥불을 길러온 시간의 원이다.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동상에 걸린, 모닥불 하나 쬘 수 없어 몽당발이 된 콧등 시린 내력이 조용히 둘러서 있다. 선거 지난 지금, 너나없이 누구나 다가가 쬘 수 있는 화평한 모닥불이 하나 있어야겠다.
장석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