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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방위비 협상을 선언하였고 특별히 한국에 대해서 이제 부자 나라가 된 한국인들의 방어에 미국 국민들의 세금을 쓸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사진:BBC 코리아 유튜브 화면 갈무리) |
2020년 5월 8일 한국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은 요구액을 줄여 전년도보다 50% 증액된 1조 5,910억 원을 마지막 선으로 제시하였다. 아직 한국이 생각하는 선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2020년 4월 1일부터 주한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무기한 무급 휴직 조치를 취하였다. 당장 그들의 생계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자기 나라 땅에서 다른 나라 주둔군 정부로부터 노골적인 제도적 차별을 받는 현실이 참담하다. 미국의 비인도주의적 불평등 정책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와 무례한 협상 태도를 감정적으로 소화하기보다는 세계 속에서 미국이 처해 있는 입장과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를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던 미국이 처한 현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최대의 부강국으로 패권 국가가 되었지만, 얼마 전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재정 적자의 심각성은 미국의 안보·국방 고민과 직결되어 있다. 2010년 미국 합참의장이던 마이클 멀린은 “미국의 적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다. 미국 안보에 있어 최대의 유일한 위협은 부채이다. 이를 억제하지 못하면 미국은 결국 지금과는 아주 다른 나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경제 문제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미국 국민은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서나 혹은 인도적인 입장에서도 다른 나라의 사정을 너그럽게 봐줄 수 없는 현실에 처했다는 것을 인식했으리라. 그래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 가치관이나 살아온 모습을 도덕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음에도, 이기적인 부동산 업자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19년 7,436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막대한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등 자신의 경기부양정책이 재정 적자를 축소할 수 있다고 공언해왔지만, 적자 폭이 더 늘어난 것이다. 재정 적자가 커지면서 현재 국가 채무는 23조 2,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재정 적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경기 악화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2020년 미국의 재정 적자는 2조 5,000억 달러에 이르리라 판단한다. 이미 미 의회는 2조 2,000억 달러 규모의 슈퍼 부양책까지 통과시켰다.
아무리 미국이 기축 화폐 발행국으로의 이점을 이용하더라도 생산이 뒤따르지 않는 화폐 발행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것은 국부의 실질적인 축소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에 부담이 될 것이다. 재정 적자의 감소가 미국이 당면한 최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때 유권자들의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해외 미군 군비의 절감이 가장 정치적 부담 없이 재정 적자를 줄이는 방법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가 아니다.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액을 늘려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방위비 협상을 선언하였고 특별히 한국에 대해서 이제 부자 나라가 된 한국인들의 방어에 미국 국민들의 세금을 쓸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일찍이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몰락》(The Fall of Great Powers)이라는 저서를 통해 ‘제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외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데, 자국이 감당할 수 없이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면 결국 나라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경고한 바 있다. 또한, 경제학자인 글렌 허바드는 《강대국의 경제학》(Balance)에서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은 제국의 몰락을 자초하는 자살 행위임을 강조한다.
결국 미국은 미군의 해외 주둔 군비를 줄여야 한다는 불가피한 필요에 직면했다고 보아야 한다. 최악의 경우 미국은 세계 혹은 지역 패권을 포기하더라도 경비 절감을 해야 할 정도의 현실에 처했음이 분명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둔국의 부담으로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겠지만 자기 군대를 남의 나라 비용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은 불가피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패권 국가로서 미국의 지위가 약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이 그 지위를 쉽게 포기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유일 패권 국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우고 군사력 강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자 미·소를 축으로 한 냉전체제는 무너졌다. 그러나 중국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면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미 미국은 중국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으며 상당한 소비 물자를 중국 제품에 의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달러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미국은 중국 팽창을 원치 않는 아시아 나라들을 끌어들여 중국을 포위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와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을 두 축으로 하던 과거의 양극 체제는 이미 무너졌고,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치의 와중에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쉽게 조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중국 포위·견제 정책을 펴기 위해 한국에 대한 군사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에 굉장히 중요하다. 한반도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포기하기 힘든 전략적 요충지이다. 값싸게 군사적 전초기지를 운영할 수 있고, 유사시 한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피할 경우엔 주한미군 철수도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다. 실상 미국 입장에서는 미군을 남한에 주둔시키는 것이 일본이나 미국령인 괌 등에 주둔시키는 것과 전술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으면 유사시 북한군과의 일차적 교전을 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적극 지원하고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조를 강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절대로 철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빗나갈 수도 있다. 국제 정치에 ‘절대’란 있을 수 없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방위비 협상 전개와 미국의 숨은 의도
1966년에 체결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소파’(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5조 2항은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은 부지와 군사시설 건설 관련 경비를 제외하고는 미군이 자체적으로 부담한다고 명기하였고 그 조항은 1990년까지 지켜졌다. 그러나 1991년부터 미국의 재정 적자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이 체결되었고, 한국과 미국은 그 후 10차에 걸쳐 한국의 분담금을 늘리는 협정을 맺어왔다.
지금 5만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은 1951년 체결된 북대서양 조약기구 당사국들 간의 군대 지위에 관한 협정(NATO SOFA)에 근거해서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고, 미국과 특별협정을 맺어 방위비 분담금을 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런데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트럼프 후보는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등 미국의 동맹국이 안보 이익의 대가로 충분한 방위비를 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한국이나 일본은 미군 주둔에 따른 방위비를 100% 내지 못할 이유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화를 용인할 수 있다”라는 발언까지 했는데, 그의 주장은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적으로 잘사는 한국의 방위비를 미국이 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연설을 하자, 청중석의 한 동양계 학생이 ‘한국은 그 방위비 중 상당 부분을 이미 담당하고 있는 것을 아느냐’고 질문했다. 트럼프는 답변 대신에 “어디에서 왔나요?”(Where are you from?)라고 물었는데 언론은 이를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심리가 드러난 언사였다고 해석했다. 그때 그 학생은 자기가 텍사스에서 왔노라고 답했는데, 인종과 관계없이 미국인이라는 답변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분담금을 처음으로 떠맡게 된 1991년에는 1.5억 달러(약 1,800억 원)를 부담하였는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인 2019년에는 11억 달러(1조 389억 원)를 감당하였다. 그런데 2020년에는 한화 6조 원(약 50억 달러)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초반에 터무니없는 액수를 불러보는 트럼프식 협상술로 보인다. 결국, 최근 제시한 50% 인상인 1조 6천억 원이 미국이 얻어내고 싶은 금액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미군이 요구하는 분담금 내역을 보면 주한미군의 방위 기능 수행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을 포함한다. 심지어 그동안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해 2조 원 안팎의 미사용액을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의 상위 협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을 한국 영역의 방어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방위비 분담금을 지급한 것은 주한미군이 한국 방어 임무를 수행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KBS 뉴스 유튜브 화면. 미군이 요구하는 분담금 내역을 보면 주한미군의 방위 기능 수행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을 포함한다. 심지어 그동안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해 2조 원 안팎의 미사용액을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이제 미국의 전략 개념이 바뀌어서 주한미군의 주된 기능이 대한민국의 방위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견제 및 인도-태평양(Indo-Pacific) 지역에서의 패권 유지까지 걸쳐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어느 때나 한국 방어 목적 이외에 분쟁 개입 등을 위해 사용하고 이동시킬 수 있다. 한국 본토가 미군이라는 세계 기동군의 기지 제공에 상당 부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미군 주둔비를 감당하기보다는 기지 및 시설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미국이 과다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뿐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 수행 비용까지 한국에 전가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에 한국을 끌어들여 일본과의 군사 협력까지 강요하면서 새로운 냉전체제를 조성하고 있는데, 한국을 그 전초기지로 이용하려 하고 그 비용까지 한국에 부담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 일본은 과거의 나쁜 추억은 둘째 치고라도 현재와 미래의 영토 분쟁으로 군사·외교적 갈등이 불가피한 나라라는 점을 미국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한국인 근로자를 대하는 무자비한 방식
올해 11월,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트럼프 재임 시 미국 경제가 그런대로 호황을 누려서 그의 재선 가능성이 컸었는데 올해 들어 코로나19 위기로 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이 재앙이 장기화되고 경제적 피해 규모가 커진다면 트럼프의 재선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서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를 선거 캠페인에 다시 써먹을 것이 자명하고, 주한미군의 방위비를 한국 정부에 더 많이 부담시키는 게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이는 분명 경제 위기의 공포 속에 있는 미국인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미국은 이 방위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협상 카드를 쓰고 있다. 실제로 미군 1개 여단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실상 미군 철수 카드는 1970년도부터 미국이 써온 위협 수단이었고, 한국인들은 그 위협에 심리적으로 많이 동요되어 왔다. 동맹국끼리의 돈 계산에 그런 위협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이제 한미 관계도 냉혹한 주판알 게임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자유의 수호자도, 우리 경제를 도와주는 산타클로스도 아님이 차츰차츰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것은 미국이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4천여 명을 무기한 무급휴직시켜 생존권을 빼앗는 조처를 했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으로 미군 부대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근무하면서도 한국 공무원들이 받는 혜택은커녕 헌법적인 권리인 노동 삼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한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미국 정부가 주는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의 협상이 난항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협상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불법일 뿐 아니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권 유린이고 차별대우임이 틀림없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당한 조선의 근로자들이 일하기 싫은 곳에서 일할 것을 강요당한 피해자였다면, 이번에 미군 부대에서 휴직 처분을 받은 근로자들은 일하고 싶으나 일할 권리를 빼앗긴 피해자라고 말해야 하리라. 일할 수 있는 권리는 생존권이고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이고 기본권 아닌가?
이것이 한국인들이 그렇게 고마워했고 의지했던 미국의 민낯이라니 씁쓸하기 짝이 없지만, 이제야 가면 벗은 미국의 민낯을 직시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국가간 관계를 이해할 때, 환상이나 기대를 깰 때만 제대로 된 관계가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
전시작전권 회수가 중요한 이유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미군 철수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지만, 현재 미국이 처한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도 쉽지 않다. 미국 국회는 주한미군을 2만 8,500명 이하로 감축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함을 결의해 놓고 있다. 물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은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까지도 고려할 것이 틀림없다. 이미 미국에서는 많은 학자와 언론인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은 북핵 문제를 놓고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써야 된다는 주장이 가장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 스티브 배넌이 북한 핵동결을 조건으로 미군 철수를 제안했던 적도 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포기를 조건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미국의 관변 연구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주한미군 철수보다는 한국으로 하여금 최대한 방위비를 부담하게 하고 남한을 미군의 기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설사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은 남겨두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라는 계산도 설득력 있게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군사 외교 정책은 늘 상대방과 협상으로 바뀌는 것인 만큼 미국과 북한 혹은 미국과 중국이 장래에 어떤 거래를 할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으로서는 그때에 당황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핵을 갖고 있는 북한과의 군사력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이며, 남북 군사력 균형에 있어서 주한미군의 군사력이 대한민국 무장력의 일부라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협상에 대한민국이 지금껏 소외되어 왔고 앞으로도 소외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 군사주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에 한국을 끌어들여 일본과의 군사 협력까지 강요하면서 새로운 냉전체제를 조성하고 있는데, 한국을 그 전초기지로 이용하려 하고 그 비용까지 한국에 부담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진: 2014년 한미 공군 맥스선더훈련, 대한민국 공군) |
군사주권을 갖고 있지 못할 때 남한은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냉전에 미일의 전초기지가 되는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미국은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회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중에 회수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기에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는 작전권을 회수하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다. 4.15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이 압승을 거두어 공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동력도 확보한 상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이 문제를 다음 정권에 미룬다면 상당히 오랜 세월 한국은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방위비 부담금 문제도 한국의 미국 의존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설사 전시작전권을 한국이 회수하여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한국인 장성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한국군 지휘관이 실질적으로 통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작전권 회수야말로 군사주권의 확립을 향해 일보 전진한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사주권 확립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된 직후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형편없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남침이라는 비극을 가져왔고, 남한은 미국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국가 공동체로서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후 남한은 모든 면에서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한 채 국가를 건설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처한 국내외적인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남한이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시민적 기본권이 상당히 보장되고 통치권자를 국민의 선거로 선출하는 정치제도를 마련해 몇 번의 정권 교체를 경험하였다.
둘째로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남한은 경제력이 세계 20위 안에 드는 나라가 되었고, 북한에 비해 국부가 48배, 1인당 국민 소득은 23배 이상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의존했던 미국의 경제에 주름이 잡혀서 남한을 방어해줄 만한 경제적 자원이 넉넉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자기 비용으로 남한을 방위하겠다는 의지도 식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타당한 해결책은 남한이 스스로 자국 방위를 감당하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자주국방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력으로 세계 20위 안에 드는 나라가 자기 힘으로 자기 국토와 국민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한국이 자주 국방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고, 박정희 시대부터 남한이 가져왔던 꿈의 실천을 더 미룰 수 없는 때가 왔다.
어차피 미국은 남한 방위를 위해서 남한이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고 협박에 가까운 압박을 가하고 있고, 남한 역시 자주국방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미군 주둔을 위해 써야 한다는 물자를 한국군을 위해 써 자주국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이다.
▲ 한국 정부와의 협상이 난항이라는 이유로 미군 부대에서 휴직 처분을 받은 우리 근로자들은 일할 수 있는 권리인 생존권과 기본권을 짓밟혔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그렇게 고마워했고 의지했던 미국의 민낯이라니 씁쓸하기 짝이 없지만, 이제야 가면 벗은 미국의 민낯을 직시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국가간 관계를 이해할 때, 환상이나 기대를 깰 때만 제대로 된 관계가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 (사진: CBS 김현정 뉴스쇼 유튜브 화면) |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의 감축을 협박 무기로 삼는 미국 정책에 대한민국은 더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13% 이상의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굳건히 지키고 미국이 벌이는 한국인 근로자 무기한 무급 휴직과 같은 치졸한 정책의 비인도성을 강력하게 항의하면서도 타결에 조바심을 내지 말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북한이 그 경제적 곤궁함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초 처음 남북 대화가 시작된 이후 50여 년간 남북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별로 진전하지 못했음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상 평등한 입장에서 평화 공존을 이루는 것은 더 어렵게 되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한반도에서 이른바 비대칭적 군사력 불균형이 발생한 측면이 있다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평화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은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의 협상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기본 생각이 너무나 큰 차이가 있고, 전략에 있어서도 합의점에 도달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뿐 아니라 북한은 남한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정 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다. 설사 남한의 역할이 있다 하더라도 아주 작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남한이 군사주권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만들어 갈 파트너임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에 걸맞은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장 큰 전제조건이 군사주권 확립이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을 미칠 나라와의 협상을 위해서라도 군사주권의 확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남북의 군사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남한은 군사 정책에서 자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미군의 군사력을 고려하지 않고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군사력에서 열세라는 뜻이다. 물론 이것이 남한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핵무장을 하지 않고도 소련 등의 위협을 극복하고 국토 통일을 이룬 독일의 당당한 성취에 대해 남한은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과의 세력 균형을 위해서 모든 선택의 가능성은 열어 놓아야 한다. 프랑스를 비롯해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 주변국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국가가 된 것을 가볍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때문에 대한민국을 압박하고 있는 이즈음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은 군사주권의 확립이다. 방위비 협상 문제가 결국은 돈 문제일 수밖에 없다면 전시작전권은 주권의 문제라는 것을 재인식해야 한다. 군사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인내와 피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가일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국민적 자존심이 훼손되고 있는 끔찍한 사태를 목도하며 군사주권을 향한 여정을 위해 들메끈을 조여야 할 때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