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는 1895년 9월 28일에 일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의 장례식은 프랑스 정부가 주도하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스스로 “과학을 위해 살았다”고 말하던 한 남자의 죽음을 기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파리 거리를 온통 메웠고, 그의 시신은 자신의 이름을 딴 파스퇴르 연구소에 마련된 무덤에 안장되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페르디난트 콘,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미생물학의 창시자란 영광을 나누어 받았다. 그리고 “백신 실험의 성공은 프랑스의 성공”이라고 말한 그에게 프랑스 국민들은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만들어주고 엄청난 지원금을 모금해 주었다. 살아 생전부터 그는 대중의 영웅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프랑스 시민들은 그가 나폴레옹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빛에는 그늘이 있는 법.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거짓을 말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푸이 르포르에서 탄저병 백신을 공개 실험할 때, 그는 자신이 탄저병균을 산소에 노출시켜 백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자신의 경쟁자인 장 투생이 사용한 방법 즉 중탄산칼륨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만든 것이다. 산소를 이용해 백신을 만든 것은 그가 백신 생산 독점권을 획득한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조제프 메이스테르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전, 그는 자신이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광견병에 걸린 개 오십 마리를 치료했다고 보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메이스테르에게 접종한 백신은 그가 개를 치료할 때 썼던 백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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