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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매 월마다 열리는 산악회 회의가 끝나고 선배님들께서 다음 날 산행이 있는데 같이 어떠냐고 하셔서 우연이 목요일 산행을 하게 되었다. 작년이나 재작년 같았으면 아침 9시쯤은 물론이고 6시에도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한 이후로 새벽에 잠들었다가 오후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는 좋지 못한 생활 습관으로 반은 올빼미가 되어버린 필자는 사실 다음 날 아침 9시에 눈을 떠야한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산에 간다는 기쁨보다 더욱 큰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 날 '어떤 핑계를 대서든 더 자야겠다'라고 생각할 다음 날 아침의 나를 미리 생각하여 머리맡에 헬멧을 놔두지 않고,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맞춰놓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울 밖을 나가거나 정상에 도달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같이 가려고 했던 동기 70최원기는 다음 날 아침의 본인을 차마 이겨내지 못했는지, 후에 정상에 다 도착하고 나서야 연락을 받았다. 목요일 갈 곳은 춘천 드름산에 있는 춘클 리지라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는 경기도 바깥으로 나갈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대학교를 가지만 않는다면 서울 안에서만 생활했다.) 항상 서울 바깥으로 나갈 땐 모든것이 새로웠고 신기했다. 그 덕분인지, 오랜만의 산행할 때마다 나는 바위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기대감과 기쁨이 더욱 컸다. 근처 빵집에서 점심으로 적당히 배를 채울 빵과 우유를 챙기고 바로 춘클 리지 입구로 향했다. 춘클 리지 입구는 선배님들이나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오를 때에는 일반적으로 바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나름 긴 거리를 걷거나, 전 날 미리 올라와서 야영을 하고 다음 날 등반을 시작해야 했지만, 이곳은 표지판으로 춘클 리지의 위치나 코스의 세세한 설명까지 있을 뿐더러, 무려 '도로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거짓말을 단 0.001%도 섞지 않고 도로 바로 옆에서 웅장하게 '나 여기 있소'를 외치는 것마냥 뚜렷하게 보였다. -1피치 끝에서 빌레이를 보는 필자(우) 와 마지막으로 올라오시는 37 백호선 선배님 위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필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오는 산행이었는지라 1피치에서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분명 바로 눈앞에 홀드는 크고 확실하게 있었지만, 평소에 하던 바위랑은 다른 재질이었던 느낌도 있었고(핑계) 오히려 홀드가 크고 확실하게 있었던 것 때문인지, 발을 제대로 보지 않게 되어서였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애를 먹어 버렸다. 뒤에 올라오는 선배님 빌레이를 보면서 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은 지금 와서야 농담으로 할 수 있는 뒷이야기. -1피치 끝에서 선배님이 찍어준 필자의 사진. 마지막 라스트로 백호선 선배님이 올라오시자, 선등인 35 이훈상 선배님이 바로 2피치를 오르신다. 봄 나들이 더하기 몸풀이로 온 거니까 쉽게 쉽게 가자시며 성큼 성큼 올라가시는 선배님이 밟는 곳을 천천히 보면서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미리 생각해 본다. 약간 더워질까 싶으면 적절한 타이밍으로 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덕분에 올라가시는 모습을 쉽게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선배님이 가신 곳을 잘 살펴봐 둔 덕분인지 2피치는 힘 안들이고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3피치에서 빌레이를 보는 필자와 37백호선 선배님. 3피치가 끝나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니, 아픈 발 뒷꿈치도 쉬게 해 줄 겸 아까 사 둔 빵과 우유, 그리고 커피를 꺼내 적당하게 점심 끼니를 때운다. 필자는 믹스 커피에 바나나맛 우유를 타 먹는데, 안 그래도 안나는 믹스 커피 향을 더 연하게 해 주지만, 과일 향과 커피 향을 같이 느낄 수 있고 꽤나 어울리는데다가, 뜨거운 것을 잘 못먹는 필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전략이기에 최근에 자주 쓰는 방식이다. 빵은 소보루 빵 하나와 모카크림 빵 하나. 입 안에 커피 향이 가득하다. -3피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 35이훈상 선배님(좌)와 37백호선 선배님(우). 3피치에서 쉬고 있다가 두 바위 사이로 의암호가 보인다. 진달래의 분홍빛에 막 자라나는 푸른 나뭇잎, 호수의 물색과 바위의 알록달록한 돌 색이 섞여 있는 것이, 거짓말을 조금 섞어서 꾸미자면 마치 팔레트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호선 선배님이 여기서 뛰어내리면 바로 물에 들어갈 수 있을것만 같다고 말씀하신다.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적당히 점심 끼니도 때웠겠다, 4 피치를 오른다. 선배님들 말씀대로는 4피치가 춘클 리지에서 제일 클라이맥스인 부분이라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필자도 여기서 몇번이고 미끄러져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래 계신 백호선 선배님은 언제 올라가나 목빠지게 기다리셨을 것이다. 웃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면 필자는 얼굴이 무서워지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웬만해서는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리 웃으며 찍으려 해도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분명 아래에서 보았을 땐 누워 있던 벽이 위에서 보거나 올라갈 때에는 사진처럼 반듯이 서 있는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양팔 양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것이, 아마 이곳에서 산행 때 힘을 다 소모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힘겹게 올라온 것 만큼 경치도 멋지고, 등 뒤에서 보이는 붕어섬이 작게 보이는 것이, 정상에서 앉아서 보는 것이랑 느낌이 전혀 다르다. 4피치가 끝나고 걸어서 5피치를 향해 20미터 정도를 걷는다. 아마 이 구간 하나 때문에 춘클 '리지'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제대로 걷는 곳은 여기 하나밖에 없는것으로 기억한다. 기분 탓일까 지금까지 올라온 구간보다 이 구간이 더욱 힘든 느낌이 든다. 마지막 7피치는 본인이 올라갈 때의 사진이 있다고 해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 필자가 등반한 시간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4피치가 제일 어려웠다고 말씀하시긴 하셨지만, 아마도 팔이 슬슬 필자의 한계에 다다랐던 모양인지, 결국 아무런 힘을 쓰지도 못했다. 나중엔 어떻게든 손목 등 온 몸을 사용해 있는 힘껏 올라가서 결국 정상에 다다르긴 했지만, 솔직히 필자는 저곳을 어떻게 올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위에서 당겨주는 선배님의 슈퍼 파워는 기억하고 있다.) 겨우 도달하고 나서 위에서 떨리는 손으로 빌레이를 본다. 힘겹게 올라온 길을 너무나도 쉽게 올라오시는 선배님.. 기다리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상에서 두 손 들고 붕어섬을 배경으로 만세를 외친다. 힘이 들어서 양 팔이 올라가다 만다. 그래도 정상에 도달하니 몸과 마음은 한결 후련하다. 아까 점심 때 먹으려다 말은 청포도를 꺼내 배경을 바라보며 한 알 한 알 입에 넣는다. 정상에서 내려가기 전에 부들부들 떨리는 아이폰을 최대한 뻗어 단체 사진 겸 한 장 찍어 모두의 얼굴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물론 다 들어가진 못했지만, 다 들어온 것이 어디. 안경 삼형제(?)의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끝나고 내려온 후에 저녁 식사를 고민하다가 닭갈비 이야기가 나와 역시 춘천에 왔으면 춘천 닭갈비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 없이 춘천 닭갈비 집으로 향한다. 춘천에서 먹는 춘천 닭갈비는 처음이었는데, 붉은 색깔에 비해서는 그렇게 맵지도 않고 아주 맛있었다. 아마도 정상에서 청포도를 먹지 않았다면 더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가 선배님들이 아니라 뒤에 모델 얼굴만 인식했다는 이야기는 후담.)
춘클 리지, 찾아보니 화강암으로 되어 있던 북한산이나 도봉산의 바위랑은 다르게 규암으로 되어있는 바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미끄럽고 날카롭다고 한다. 평소답지 않은 색다른 바위와 평소답지 않에 방학도 아닌 어느 평일의 한 날에 등반한다니, 필자에게 있어서는 아마 이 날이 올 해 최고의 일탈이지 않았을까 싶다. 누웠다 앉았다만을 반복하는 니트족의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활동적인 일을 하고, 서울을 벗어나 밖에서 운동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런 건강한 일탈이라면 다시 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첫댓글 재휘 덕분에 형들도 즐거웠다.^^ 군대에 가기 전에 "일탈" 한번 더 하자.ㅋㅋㅋ
정말 예쁜 곳이네 .. 언제 또 기회가 있을 때는 나도 꼭 참가해야지..
춘클릿지
작년 등반 사진보고 꼭 가보고 싶은 곳 이었는데 춘클이 나를 외면하는구나.
멋진 산행기 잘봤다. 산행기로 대리 만족이라도 해야지...
에이 형님 봄 지나기 전에 한번 가시면 되죠!
햐,,,춘클보다도 삼형제 사진이 더 매력적이고 아름다웁게 다가오누나....
울 재휘가 벌써 군대를 간다니? ㅎㅎ
크으! 있는 힘껏 부정하고 싶습니다 ㅠ
재휘가 오랜만에 등반했구나.
평일이라 그런지 봄 강이 참 고요하다.
재밌게 읽었다.
재휘덕에 그날의 즐거움이 다시금 생생 하게 생각나네!
고맙다, 입대전에 산행 자주하자,
붕어섬 --아니 자라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