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주교의 신용협동조합 운동 지원
이종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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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학순 주교의 영서 지역에서의 여러 활동 가운데 눈에 띄는 또 다른 활동은 바로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 운동이었다. 특히, 지학순 주교는 1967년 원주교구장에 부임한 이후 원주교구 관할 지역의 민생과 문화진흥, 교육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는데, 협동조합 운동은 이런 활동 중 하나였다.
지학순 주교의 후원 아래 1972년 남한강 대홍수를 계기로 만들어진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이하 재해위)가 농촌과 광산 지역에서 전개한 신협운동은 북미의 안티고니쉬 운동 (Antigonish Movement)과 신용조합에 기반해 1950년 말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서울과 부산에서 창립된 가톨릭중앙신협과 성가신협에 기원한다.1) 안티고니쉬 운동이란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 지방의 한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된 농어촌개발과 지역사회교육 사업을 말한다. 1800년대 후반 이곳의 주민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가톨릭 신자들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1919년 대공황 이후 이들은 매우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이에 이곳 대학의 신부들을 중심으로 주민교육 운동을 펼쳤는데, 이것이 안티고니쉬 운동의 시작이었다. 안티고니쉬 운동의 기본 철학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회정의의 실현이다. 민주적 과정을 통한 의사결정을 중시하며, 성인교육과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ation)을 통해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그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도록 도와주는 운동이다. 안티고니쉬 운동은 해당 지역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다른 나라의 협동조합 운동의 모범이 됐다.2)
지학순 주교는 안티고니쉬 운동을 전범(典範)으로 한 신협 운동을 지원했다. 1970년대까지 재해위에 의한 협동조합 운동은 농촌과 광산지역의 신협운동으로 전개됐다. 재해위에 의해 설립이 추진된 신협들은 그 운영 과정에서 부락개발사업과 한우지원사업, 원주원성사업 등 재해위가 펼쳤던 다른 사업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활성화됐다.3) 농촌지역의 경우 1973년 재해위가 남한강사업과 한우지원사업을 통해 부락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대부된 자금과 부락공공기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에서 신협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했다. 그리고 1975년부터 재해위의 주요한 사업방침 중 하나로 농촌부락과 광산지역의 탄광지부를 중심으로 신협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면서 신협운동을 전개했고, 이것을 통해 부락개발운동의 활성화와 노조의 민주화,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지원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구판장과 수비조합, 상비약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농촌·광산 신협의 활동은 점차 기초단계인 여·수신업무에서 성장단계에 있던 지역사회개발사업의 확장으로 발전했다. 이를 통해 농촌부락과 탄광지부 내 신협의 설립이 활성화됐고, 광산소비조합육성사업의 추진을 통해 광산소비조합이 활발히 설립·운영되면서 점차 재해위의 주된 활동이 부락개발운동에서 협동조합운동으로 전환돼 갔다.4)
지학순 주교의 지원 아래 재해위의 주도로 만들어진 협동조합은 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은 농협과 마을금고의 일정한 경쟁·대립 관계를 형성하며 이루어졌다. 1961년 군사쿠데타 직후 종합농협으로 탄생된 농협은 1962년 ‘임시조치법’ 등을 거치면서 정부정채기관의 역할과 농민통제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농민들의 이해와 동떨어져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던 농협은 그 자체로 농민의 자발적인 협동조합 창립과 운영을 막는 농민통제기관이라는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5)
이러한 상황에서 재해위는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연합회와 함께 쌀생산자대회와 추수감사제를 개최하면서, 농촌신협을 중심으로 가톨릭농민회의 위상과 쌀값 보상에 대한 농민들의 큰 관심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었다. 당시 조직된 가톨릭농민회의 분회와 농민회원의 주요활동은 자체적인 정기월례회와 학습회에서 1970년대 농촌과 농민 문제의 주요 현안이었던 농협민주화와 쌀값보장을 위한 쌀생산비 조사사업에 중점을 둔 제반활동이었다. 아울러 유신체제 아래에서 농협의 비농민적 성격을 보여주었던 함평고구마사건과 천주교와 가톨릭농민회에 대한 탄압으로 발생한 춘천농민회사건, 안동교구 농민회사건 등 정치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농민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6) 함평고구마사건, 춘천농민회사건, 안동교구 농민회사건은 모두 정부와 농협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가톨릭과 전개한 저항운동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농촌의 고통스러운 현실, 농협과 지방정부의 부조리 등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러한 사건들은 지학순 주교와 재해위의 협동조합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지학순 주교의 후원과 재해위에 의해 전개된 협동조합 운동은 단순하게는 가난한 농촌과 광산촌의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나아가 협동조합 운동은 당시 군부독재와 이들에게 부역하면서 사익을 위했던 세력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협동조합 운동은 1970년대 말에 ‘생명운동’으로 전환하면서 소비조합운동으로 변모하였고, 그 결과 협동조합 운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한살림운동’이라는 결과로 발전했다.
1)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 연구-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228쪽.
2) (사)한국민주시민교육원 홈페이지.http://www.kdec.re.kr/board/bbs_viewbody.php?code=bbs_edu_pds&number=269
3)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 연구-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235쪽.
4)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 연구-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228쪽.
5)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 연구-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253쪽.
6)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 연구-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267-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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