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사귀는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헤어지는 과정에서 혹은 이별한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발생한다.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특성상 교제폭력은 자칫 '사랑 싸움'등으로 '사소화'되거나 개인적 문제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가해자들은 너무 사랑해서 너를 아껴서 그랬다는 식으로 친절과 호의를 가장해 관계를 만들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사랑과 폭력을 혼동하기도 한다.
교제폭력의 유형은 행동에 제약을 가하며 감시와 통제, 폭언과 욕설,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친구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성관계 사실이나 데이트 비용을 빌미로 만남을 강요하고 협박하는 것, 그 밖에 정신적 괴롭힘, 갈취, 강제추행, 강간, 폭행, 주거침입, 상해, 감금, 납치,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5년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 및 치사 사건 검거자는 219명에 이른다. 거제,동탄,남양주 사건 등 이른바 교제폭력.스토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이 보도되고 있지만 법조인들은 현 체계로는 교제폭력 피해자를 지킬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2024년 거제에서 11번, 지난해 경기도 동탄시에서 9번이나 스토킹 혐의자를 신고했던 피해자, 경기도 남양주의 피해자 또한 6차례나 신고했었고 스마트워치도 소지한 상태였지만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의 경우는 가해자가 성범죄 전력으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데도 경찰은 그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지 여부를 감시할 조치조차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현재 경찰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피해가 발생해야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충북 도내 스토킹 범죄가 4년 사이 2.4배 증가하고 있지만 경찰 대응은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행법상 경찰이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결정해도 검찰에 신청하고 법원의 승인을 받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해자가 조사를 거부하며 비협조적으로 일관하거나 검찰의 판단을 기다리는 사이 피해자는 사실상 보복범죄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상황의 시급성에 따라 경찰이 즉각적인 분리나 구속 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사법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은 2015년 물리적 폭력 없이 상대방을 정서적·심리적으로 조종하는 ‘강압적 통제’까지도 범죄로 규정했고 미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해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바로 분리 조치한다. 미국, 영국, 호주의 경우 스토킹 가해자에게 영구적인 접근금지 명령도 내릴 수 있다.
2017년부터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여성·가족·청소년 관련 입법에 기여했고 최근 교제폭력 위험성을 고발한 책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를 펴낸 허민숙 조사관은 교제 폭력의 위험을 알리는 징후 즉 강압적 통제 (coercive control )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연인,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는 행동”으로 이미 호주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을 검토한 결과 63% 사례에서 강압적 통제가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위험 징후인 강압적 통제, 비신체적 폭력 같은 위험 신호가 여전히 입법 공백에 놓여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위험을 재규정하고 국가는 지금이라도 여성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수차례 신고에도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피해자가 그토록 원했던 가해자와의 안전한 분리가 이뤄지지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피해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