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에 대한 생각/ 사직 구장에서의 독창 뒤에 느낀 것

[이원우]

  <나를 관중 앞에 내세우기 불안해서였을까? 우선 볼품이 없으니까. 그래 작년보다 유니폼도 더 멋진 것을 구단에서 내 주었다. 시구 때와는 달리 모자를 벗었다. 바람에 백발이 나부끼는 느낌이었다. 지금 와서 고백인데, 경상도 출신인 나는 발음 혹은 발성에 역시 문제가 있다. '무궁화' 를 '무궁와'로 소리내기 예사고, '어'와 '으'가 아리송하다. 마찬가지로 '대한 사람'을 '대안 사람'으로 誤唱하기 쉽다. 많이 고치긴 했지만 아직도 염려가 된다. 군 부대에 가서 방병들을 만나려면 애국가를 정말 정확하게 소화시켜야 한다. 여생이 그리 길지 않은 노병에게 부여된 소명이다.>

평생을 교직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그마치 43년 동안 학교 울타리 안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있다. 83년도부터 소위 노인학교라는 데에 발을 들여 놓아 25년 동안 버텼다.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직접 운영한 것도 20년이다. 물론 무료다.

  그러니 애국가를 수도 없이 불렀을 수밖에. 한참 때는 초등학교에서도 언제난 애국가는 4절까지였다, 그러다 시부저기 1절로 끝내다니 안타깝다. 그런데 노인 학교에서는 언제나 完唱이었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우리 나라 만세

  해서 나는 애국가에 대한 향수에 언제나 젖어 있었다. 정년퇴임하고 나서, 나라 사랑은 못 해도 애국가에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자.

 <김시진 감독은 퍽 겸손했다. 시구자가 잘났든 못났든 간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줄 아는-->

  <양팔을 번쩍 치켜들었지만, 중게하는 방송에는 시구 장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 꾀죄죄한 노인은 유명 신사가 아니어서다. 그러나 주님은 다음해에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자를 올려 세워 주셨다. 애국가를 부르게 하신 것>

  한데  드디어 프로 야구장에서 애국가 독창을 하게 된 것이다. 돌고돌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얻게 된 영광이다. 설사 4절까지는 아니면 어떠랴. 바른 애국가를 한 번 선보이면 될것을!

  손자를 데리고 갔다. 석성초 3학년 바오로! 할아버지인 나는 당연히 노예(?)다. 온갖 소원을 늘어놓고 생떼를 쓰기 예사. 물론 짜증도 받아 줘야 한다. 혼이 났지만, 녀석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 귀향(歸鄕)이었다. 손 잡고 이리 저리 다니는 것반으로도 내겐 힘이 되었다. 호텔에서도 시간 보내기 좋았고.

  그런데 경기에 또 이겼다. 내가 '헛소리'를 했다.

 "거봐, 내가 나서면 이기는 거야!"

  하필이면 상대팀 두산 선수들도 농심호텔에서 묵는 게 아닌가? 유니폼을 입은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렸으니 그들을 만날 수밖에. 유니폼을 그대로 입은 나와 손자랑 둘이서 몇 번이나 그들과 그 좁은 공간에서 몸을 부딪쳤다. 눈치 하나 빨라서 그들은 나를 알아보기도 했다. 손자 어깨가 으쓱!

<참으로 힘들게 돌고 돌아 두 번째 마운드에 섰다, 못난 모습으로. 그나마 새로 얻어 입은 유니폼의 춤이 넉넉해서, 복부 비만이 약간은 감추어졌다.(웃음). 10년 만이다, 뜻을 둔 지. 13년도에 시구를 했었지만, 어느 소년에게 약속을 어긴 게 너무나 미안해서라도 야구장에서 애국가를 불러야만 했다. 팔엔 검버섯이 많아서 이름 감추기 위해 토시를 꼈다. 수도 없이 연습을 했기 때문에, 비록 반주가 없어도 '사장조'의 첫음을 정확히 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사장조'로 실려 있는데, 왜 '바장조' 어쩌고저쩌고 야단일까?>

< 반주할 친구를 못 구해서가 아니다. 구장에서는 본래 애국가를 그냥 부르는 것이다. 불문율이다.

나는 6개월 전, 암 수술을 받은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전화를 걸었었다, 한국 야구위원회 양해영 사무총장에게. 애국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반겨 맞았다. 그때 나눈 이야기가 기가 막힌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젠가 조용필이 잠실구장에서 애국가 독창을 했는데, 창피를 당했다지 뭡니까? 글쎄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불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정말 충격적이다.

  "그 시간에 저도 거기 있었습니다. 제가 야구위원회 일을 오래 보아왔었거든요."

 나 같은 張三李四가 애국가를 불렀다는 것만 해도 장하다(?). 캐스트와 해설위원으로부터 칭찬까지 받았으니, 내게는 기념비적인 일이고말고. 다행히 우리 가톨릭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애국가 제창을 하더라. 자랑스럽다. 애국가에 대해 눈을 뜬 것만으로도. 올해부터는 노인학교 외에 유일하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군 부대에서 장병들과 더불어 열창을 하리라.>

 <올라오기 전 어느 날 진영 노인대학에 들렀다. 워낙 자주 다녔기 때문에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노무현 대톨령 일주기 전후이리라. 검은 넥타이를 맨 것으로 보아--.노무현 전 대통령이 졸업한 대창초등학교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노인학교다. 거기서도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이유가 있다. 학생들은 더불어 늙어가니까, 아쉽다면 이 많은 학생 중 가톨릭 신자는 다섯 명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꼭 3년 만이 작년 4월 13일, 한 번 가고 싶다고 학장님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는 것이었다. 왕복 10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한 달 넘게 연습한 결과, 나는 18.44미터를 충분히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암을 수술한 지 4개월 남짓. 착각을 할 만하다고.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