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겨울에 부산으로 내려왔다. 두어달 지내다가 3월초에 아이들이 있는 캐나다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의 습격으로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출국과 입국이 사실상 봉쇄되다시피 되어서 예약했던 항공권을 몇 차례나 연기하곤 했다. 모두들 그랬듯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날마다 집안에서 먹고 치우고 자는게 전부였다. 취미로 하던 일거리도 가져왔지만 이상하게 손에 잡히질 않고 유일하게 하는 일라곤 휴대폰만 들여다 보는 것이다.
너무나 무료하고 지루했는지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평생 일만 하느라고 해수욕 한 번 못하고 살았으니 이번 여름엔 아예 바닷가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다.
주말은 붐빌테니 한가한 주중에만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당장 마트에 가서 필요한 용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햇볕을 가려줄 비치파라솔과 접이식 의자, 매트,슬리퍼등등을 사서 손자가 쓰던 유모차에 실으니 그들먹하다.
매일 아침 10시경에 남편이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나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등 점심을 준비해서 정오
쯤에 뒤따라 나갔다. 두어번쯤 해수욕을 즐기고 해질녘에는 퇴근을한다.
하늘에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을 보며 마음에 평정을 찾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떼지어 앉있는 갈매기들을 보며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기도 한다.
특별히 가슴에 와 닿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어린 아이들이 데려온 젊은 부부가 모래성을 쌓고 있는 모습니다. 아이들이 모래바닥을 파면 부모들이 바닷물을 떠서 부어주는 것이다.아무리 퍼 부어도 다시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데 지치지도 않는지 붓고 또 붓는다.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각자 집으로 돌아가 가는 것이다. 이 바닷가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내가 돌아가 쉴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해운대는 신라의 유명한 학자이며 문인인 최치원 선생이 낙향하여 우연히 이곳에 들렀는데 주변의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워 동백섬 동쪽 벼랑의 바위위에 "해운대"라고 음각을 새긴데서 현재의 지명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해운대는 부산8경의 하나이고 대한8경에도 들어있는 관광, 피서,피난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50년 전에 신혼여행을 왔던 곳 '이 명승지에 아파트를 사둔것도 분명 훗날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피코닉 같은 하루를 마감하고 돗자리를 털고 파라솔을 접는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구나! 행복이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평온한 일상인것 같다.
그리운 얼굴들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빨리 회복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