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휴일동안 태균이 아빠가 영흥도집을 오가며 들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주동선 활동영역인 거실과 2층 공부방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급하게 떠날 때 채 정리되지 못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작년에는 수해때문에 여름 몇 개월 떠나있었고 올해는 제주도살이 한다고 또 떠나있었고...
이래저래 영흥도집은 마치 버려진 형상으로 섬 특유의 진한 습기로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있습니다. 어딜가나 일복이 터졌다는 불만은 제 몫이 아닙니다. 다 제가 벌린 일이고 일만드는 체질이 저인지라 이 부분에서는 전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고향집으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을 주긴 하지만 긴 미래에 우리가 정착하려면 개보수가 필수입니다. 요즘 제주도 사는 맛에 먼미래에의 정착지 개념 대상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지만 제주도에 우리만의 장소를 만들지 못하면 임대식으로 뭔가를 해나가기에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저나 태균이나 돌아다니는 삶의 방식에 어려움은 없으나 굳건한 고향집은 있어야만 합니다.
그 고향집은 영흥도도 좋고 제주도도 좋고, 자연이 있고 사람들과 덜 부딪치는 곳이면 최상입니다. 교통지옥과 눈돌리는 곳마다 고층아파트 뿐인 도시에서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자연 속 삶의 세월이 주는 맛을 벌써 뼈 속 깊이 들어박혀 버린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영흥도에 와서도 제주도 그 특유의 독톡한 자연은 바로 그리움의 대상지가 됩니다. 곧 다시 갈텐데도 말이죠...
아직 단기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아이들이 3명이 있어 마음을 분주하게 하지만 여름내내 아이들을 이끌어준 교사들이 잘 하고있기에 걱정은 되지않습니다. 사실 제주도이기에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흥도는 그런 면에서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지요. 그냥 조용한 삶을 누리면서 우리처럼 어쩔 수 없이 의료서비스가 필수가 된 상황에서는 인천 서쪽 끝 여기도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병원검진과 진료때문에 올라왔다는 정도는 이제 이해하게 된 태균이, 어제 아침 눈을 뜨자 병원가자고 몹시도 재촉합니다. 팔뚝에서 피도 잘 뽑을 것이라고 팔에다 주사찔러대는 동작을 연실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신장CT촬영을 위한 조영제 약물 투여용 바늘꽂이 장착이 시도되는 동안 한참 애를 먹였습니다. 태균이 머리 속에는 채혈용 바늘만 생각하고 잠시면 될 것이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겨우 팔에다 고정한 바늘을 CT촬영 기다리는 사이 빼버렸으니 다시 혈관찾아 잡느라고 애먹고... 태균이를 도와주려 여러 명이 붙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붙잡아주려고 하면 더 많이 힘을 쓰기때문에 차라리 응원해주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제가 뛰는 심장을 문질러주며 '태균이가 할 수 있어 스스로 마음먹자' 하니까 성격좋은 간호사 두 분이 태균이 뒤에서 거의 응원가를 불러줍니다. 좀 웃기지만 고마운 광경이었죠. 덩치 산만한 청년이지만 어린아이와 같다는 걸 다 안다는 듯...
할 수 있어의 주문 속에 태균이 스스로 마음을 먹으니 팔에 힘이 빠지고 그 기회에 잽싸게 바늘을 장착합니다. 이제는 한번에 가능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습니다. 어제의 짧은 해프닝도 태균이에게는 또하나 추가된 경험이었습니다.
여기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낮에는 국사봉오르자 할 것이고 그 특유의 느린 몸짓으로 때로 멈칫거리기도 때로 속도도 내가며 그렇게 간만의 고향집 습성을 그대로 답습할 것입니다. 남겨둔 아이들과 집에 돌려보낸 준이 완이, 모두 마음이 쓰입니다. 주말까지 집에 가지 않았던 터라, 손 많이 가야하는 아이들이 돌아오니 일상 가정사가 조금은 불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입니다.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아이들이 없음에도 제 눈과 귀에는 아이들의 모습과 소리가 어디에선가 보이고 들리는 듯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상황에 쉽게 중독되어 버립니다. 없어서 편했던 것처럼, 있어서 불편한 것도 적응하고 보면 다 똑같습니다. 없었는데 다시오니 그 불편함을 감수하기가 더 버거울 수도 있기에 빨리 아이들을 데리러가야 함에도 담주 금요일까지 잡혀진 병원스케쥴은 다 마쳐야하기에 졸지에 긴 휴가를 받은 느낌입니다.
그 와중에 23일 수요일 충북 제천에서 모 장애기관의 주관으로 장애부모님 대상 특강도 하나있어서 역시 분주함은 저의 대명사인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제천에 계시는 분들은 그 날 참석해도 되지않을까 하는데요, 제천에 계신 분들이 이 글을 볼 지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분주함 속에 건강 지켜 주시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태균씨 뒤에서 간호사들의 응원가 장면은 앞으로 거점병원 등등에서 홍보? 영상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