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소금
마5:13-16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Matthew 513 u`mei/j evste to. al[ aj th/j gh/j\ eva.n de. to. a[laj mwranqh/|( evn ti,ni a`lisqh,setaiÈ eivj ouvde.n ivscu,ei e;ti eiv mh. blhqe.n e;xw katapatei/sqai u`po. tw/n anv qrw,pwnÅ)
지난번까지 우리는 8복에 대해 상고했습니다. 주님께서는 8복에 대해 설교하신 다음에 빛과 소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소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최상의 향기는 빵, 최고의 맛은 소금이며, 최고의 사랑은 어린이의 사랑이다” (E.W.하우)
오늘 본문은 앞에 나온 8복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8복의 말씀은 율 법의 핵심인 십계명과도 그 내용상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4복은 5-8복에서 내용상 반복되는 것으로 믿음 사랑 소망을 나타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1복)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는 자세로 믿음과 통하고,
-애통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적나라하게 내어 놓게 하여 믿음을 반영하며,
-온유한 자세는 사랑을 내포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앞으로 배부를 날을 소망합니다.
-또 긍휼을 여기고 긍휼을 받는 자세는 심령이 가난한 자세와 통하며 믿음을 나타내고,
-마음의 청결은 애통하는 자세와 통하며 화평케하는 자는 온유한 자와 통합니다.
-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장차 천국을 소유하는 소망을 지닙니다.
이 8가지 속성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패한 인간은 그 렇게 못합니다. 주님은 여기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어떤 속성을 지님을 말씀하시 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8복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8복의 내용이 그리스도인의 內적인 자질을 말한다면 오늘 본문은 이 내적인 자 질이 外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8복을 자세히 보면 4째와 8째가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7가지 속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흘러 보내는 자들인 것입니다.즉 7가지 속성을 밖으로 흘러내보내는 자들입니다. 앞의 8복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말한다면 빛과 소금에 대한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가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되는 점은 이런 사역을 통해 영적으로 매우 귀중한 것을 이웃에게 주는 자세에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누리다 가 다시 밖으로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이방 모든 우상종교는 모두 다 탐심에 근거 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사고구조를 형성시켜 이런 빛과 소금처럼 되라는 말을 하 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이 진리를 증거하실 때 얼마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 계를 지닌 대상을 이용하시는지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이 두 가지를 알고 그것과 관계합니다. 빛을 내는 태양과 소금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도 없으면 생 명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이 처럼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고대 그리 이스인들은 소금을 神聖하다고 했고 로마 사람들은 “햇빛과 소금보다 더 유용한 것 은 없다”(Nil utilius sole et sale)라는 속담까지 만들어 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소 금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기 때문에 소금을 모세 오경에 비유했습니다.
1. 소금의 역할
13절을 직역하면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어리 석게 되면, 미쳐버리면) 무엇으로 짜게 되겠느냐? 밖에 버리어져 사람들에게 밟히 는 것 외에는 어떤 무엇에도 가능성이 없게 된다”입니다.
이 구절은 눈에 띄게 수동태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짠 맛을 잃어버린다, 밟힌 다. 그리스도인이 소금 역할 을 하는 것은 소금의 맛을 내게 되도록 힘을 받았기 때 문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두 부패하여 그 누구도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 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부패하고 타락한 역사입니다. 로마 역사든 중국 역사든 인 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거기엔 인간이 부패하여 짐승 수준으로 따러진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비인간적이고 짐승 수준의 삶이 즐비합니다. 신자들 은 주로 집, 직장, 교회, 시장을 오가지만 우리가 가지 않는 어두움의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잔인합니다. 이런 인간은 가만히 두어도 그대로 썩어 서 멸망합니다.
이런 썩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 리스도를 보내셨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로 다른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소금의 기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기독 교인들이 그 받은 거룩한 기능을 상실하면 밟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말입니 다. 이제 그 기능을 살펴 봅시다.
i) 소금은 맛을 낸다:
여러분은 소금이 없어서 소금 없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주 일날 예배 마친 다음 친구들과 시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화전놀이 하려고 했 습니다. 쌀, 파, 고춧가루 등등을 가져갔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찌개를 만드는데 다 른 것을 다 넣었습니다. 그런데 소금을 가져가는 일을 잊었습니다. 함께 친구들과 큰 솥에 밥을 지어 먹는데 찌개가 전혀 맛이 없는 것입니다. 소금을 지참하는 것을 잊은 것입니다. 그날 놀이는 한마디로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소금이라는 말을 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음식의 맛을 내는 기능입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요 리 솜씨가 좋아도, 띄어난 조미료를 쓴다 해도,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습니다. 욥기서에도 “싱거운 것이 소금없이 먹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 겎느냐? 이런 것은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욥 6:6).
주님이 우리를 보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없는 이 세상은 맛이 없는 사회임을 전제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한번 관찰해 보십시오. 돈이 없으면 없는 데로 삶에 맛이 없고, 돈이 너무 많아 처치곤란이 되어 이 세상 향락을 다 누리면서도 맛이 없어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언가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은 맛을 내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만이 이런 세상에서 내적인 맛을 내도록 사명을 받았 다는 말은 영광스러운 사실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 주위에 맛을 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다시 배교자 쥴리안 황제가 나타나 교회를 몹시 핍박했는데, 그 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불평하여 한 말을 보면 “당신은 그리스도인들을 가 까이 보았느냐? 움푹 패여 들어간 창백한 얼굴 펑퍼짐한 가슴, 그들은 자기들의 삶 을 곰곰히 생각했고 욕망에 따르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햇빛이 비치나 그들은 그것 을 보지 않는다. 땅은 그들에게 충만한 것들을 제공하나 그들은 그것을 탐하지 않았 다. 그들의 모든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체념하며 고난당하는 것이 었다”고 했습니다. 쥴리안 황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가운데 생명력을 보았던 것입 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기독교인들이 참된 맛을 내지 못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어제 카톡으로 유튜브 동영상 하나 받았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현대교회는 건물이 교회의 본질인 줄 알고 큰 건물을 짓고 사람들 을 많이 모아 종교행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 면서 지금 우한코로나 바이러스 19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모습 을 비추어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마트에 휴지가 떨어져 살 수 없을 때 기독교인이 자 기가 산 휴지를 하나씩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감동적인 그림입니다.
ii) 소금은 구별된다:
그런데우리가주목해야하는것은맛을내게하는소금 은 그 대상과 항상 구분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소금이 다른 무엇과 융합하여 소금도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까? 즉 소금으로 나물을 묻힐 때 소금이 그 나물과 중간 물건이 됩니까? 아닙니다.
말하자면 소금은 결코 다른 무엇과 야합하지 않습니다. 소금이면 소금이지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맛을 내려면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 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聖徒라고 불리는 데, 이것은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말합 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우상 숭배하는 이방민족과 구별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구약의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되 지 않았을 때 우상숭배 문화와 야합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 입니다.
기독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큰 비밀에 속합 니다. 또 소금은 자기 주위 대상을 소금화 시키고야 맙니다.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전도의 목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세속적인 것을 함께 하는 것을 보는데, 이런 자들은 소금의 역할이 아니라 이 세상화(世上化) 되어 버립니다.
요컨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향기를 발하려면 소금과 음식물 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iii) 소금은 부패를 방지한다:
우리가 소금을 말하면서 뺄 수 없는 사실은 부패 를 방지하는 기능입니다. 물고기를 소금으로 저려 놓는다든가, 김치를 만든다는 것 등은 부패방지와 관계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막 썩어 들어 가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이런 세상에 부패를 막는 기능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 에는 소위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역사가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은 다른 어떤 종교 도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종교의 핵심이 자아중심이 기 때문입니다(비교종교연구).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이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따라 치리하므로써 그리스도인으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이 름을 지니고 있으면서 이런 기능을 모르면 사실상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단 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양육하는 곳입니다.
바로 이런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보고 소금이라고 일컬으신 사실은 무척 큰 영광입니다. 독일의 신약주석가인 리네커(F.Rienecker)는 주석하기를 “현실은 다시금 잔인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주 묻기를 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쓸모없이 된 세상이 이미 오래전에 타락한 채 그대로 있으며, 왜 하나님은 항상 더 참으실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소금 곧 그리스도인 때문에 하 나님은 아끼시고 최후 심판을 더 연기(延期)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아직까 지 남아 있는 것은 소금의 역할을 하는 기독교인들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추진을 받는다면(성령충만의 의미는 이것임), 마음이 가난 하고,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률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어 소금처럼 맛을 내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이는 교회에 나오는 이유를 교양을 배워보기 위해서라고 말 하는데 이런 者들은 복음이 무엇이며 기독교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기독교 또는 교회는 지식욕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 는 사람을 양육하는 곳입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삶이 따르는 것을 가르칩니다.
2. 맛을 잃으면 밟힌다
소금이 발에 밟힌다는 말은 우리에게는 낯선 사실입니다. 이 구절은 그 당시 팔 레스타인의 역사적 배경을 보아야 이해됩니다. 주님 당시 사해바다 근방에는 소금이 석회나 식물찌꺼기와 섞인 채 창고에 저장되었는데 그것을 오래두면 소금기는 다 빠 지고 석회와 식물찌끼만 남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소금기 없는 석회와 식물찌꺼기 덩어리를 길바닥에 버려 밟히게 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길바닥에 버려져 짓밟히듯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맛을 잃으면 세상 사람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은 할 짓 못할 짓을 다 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조금 잘못하면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짓밟으며 멸시합니다.
여기 맛을 잃었다는 말은 “어리석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서 능력을 잃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어리석음을 매우 심각하게 취급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바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하고 마음대로 범죄함을 매우 자주 지적합니다. 로마서 1:23이하에는 타락한 인간들의 짐 승같은 행태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우준(愚蠢)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우준하다는 말이 바로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한글개역은 우준으로, 개역 개정은 어리석다로 번역되었음)
그리고 이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잠 1:7) 말의 반대 개 념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기능을 그만둔 사람은 진실 된 의미에서 어리석게 되고 나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와 곡간이라는 주님의 비유를 기억합니다. 그가 재산을 모은 것을 보면 이 세상적인 측 면에서는 영리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부자는 나름대로 사람을 불릴 줄도 알 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는 바보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적인 차원에서 어리석어서 영혼도 곡식을 먹는 줄로 알고 또 물 질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내세 를 위해 잘못 준비하여 지옥으로 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인 맛을 잃은 사람 들을 주목해 보면 대개 복음의 비밀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피상적으로 알고 외식적으로 위선적으로 살다가 결국 지옥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그 원래의 품질을 회복시킬 수 없듯이 믿음과 충성심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고 결국 멸시 를 당한다는 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 바닥에 버림을 당해 자기도 짓밟힘을 당하지만 소금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더욱 부 패해져 살아가기가 힘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더욱 부패해지고 잔인해지면 기 독교인들도 살아가기가 힘이 들게 됩니다.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이 소금역할을 못하 면 자기에게 손해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참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하나님 의 진리를 전파하여 영적으로 나태해져 무능해진 인간을 변화시키는데 작용하는데, 이런 그리스도인이 없어지니 죄의 세력이 더욱 만행을 부리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 도인들이 이 세상에 윤리적인 건강과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있는데, 이런 그 리스도인들이 사라져서 죄악의 풍토는 횡포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3. 종말론적 심판
“밖에 버려지다”는 말은 성경에 몇 번 나옵니다. 더러는 예복을 입지 않고 임금 잔치에 참여했다가 결박된 채 바깥 어두움에 내어던져 버리는 경우(마 22:12)에 표현이 나오고, 더러는 한 탈란트 가진 종이 불충성하여 주인이 그를 내어던져 때(마 25:30)에 나오는 단어인데 본문에 나오는 이 단어와 모두 동일합니다.
결국 버림을 당한다는 말은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 으로서 맛을 잃은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시어 심판하실 때 어두운 곳으로 내어 던짐 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이 세상 마지막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며 살아갑니다. 그때 지옥을 가느냐 아니면 천국에 가느냐를 항상 생각하면 준비하는 삶을 사는데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큰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책임 이 따르는 것입니다.
4. 나가면서
1)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들만이 팔복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닙니다.
2) 8복은 그리스도인의 7가지 속성을 말합니다. 이 일곱가지 속성은 그리스도인 으로서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3) 놀랍게도 소금은 7가지 맛을 낸다고 합니다.
4) 소금은 맛을 내고 맛을 내야할 대상과 구별된다. 나아가 부패를 방지합니다.
5) 맛을 잃으면 세상 사람들에 의해 밟힘을 당합니다.
6) 맛을 잃은 소금이 심판을 받고 밟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마지막에 있을 심판을 바라보며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권호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