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속 연암의 발자취를 쫓아서
다.D +2Day (세째날)
2) 말문막힌 광개토 비문과 후손들
광개토대왕 비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웠으며, 응회암(凝灰岩) 재질로 높이가 약 6.39m, 면의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1.46m지만 고르지 않다. 대석은 3.35×2.7m이다.
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 내용은 대체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또한 전한(前漢) 예서(隸書)의 서풍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석문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까지 금나라 황제의 비(碑)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다가 청의 봉금제도가 1880년대에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고, 1888년에 일본인 학자 요코이 다다나오가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바탕으로 한 비문의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비석이 발견된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서예가나 금석학자들이 탁본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보다 정교한 탁본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워 비석 표면의 이끼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면의 일부가 훼손되었고, 또한 석회를 발라 비면을 손상시킴으로써 이후 연구에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광개토대왕릉비의 신묘년조는 아직도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비석은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고구려의 건국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의 역사를 다룬 첫째 부분은 묘비 제1면 1행에서 6행까지이다.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을 기술한 둘째 부분은 제1면 7행부터 3면 8행까지이다. 능비의 건립 및 수묘인에 관한 마지막 부분은 제3면 8행부터 제4면 9행까지이다.
사전 설명은 들었지만 착잡한 마음은 .....가슴을 파고들고
그래도 눈 감고 안보는것보다는 눈 뜨고 보는것이 지금 우리의 해야 할 일....
붉은 띠로 둘러싸서 광개토의 힘을 빼려는가....고구려의 혼을 지우려는가.....ㅠ.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눈탱이만 밤탱이 된듯한 마음.....
우리가 동북아 역사에서 밀릴수밖에 없는 이유~~~~ 기록해 놓은게 너무 없다 .(정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쌈하면 100전 100패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고 무엇이 우리를 무지의 역사속으로 끌어 들였나.......C--barrrr -.-;;;
제발 부탁한다! 앞으로는 기록하는 습관좀 가르켜라!!
고구려의 기상과 고구려인의 기백으로....Again 삼족오 타고 날아보자!!
Don't Forget........Forever!!
엄지 척!!!!!!!! ( 말 안해도 다 알쥬~~~~*^^*)
척 척 하지 말어You~~~부러버 화딱지 나욧!!
잊지마라! 역사는 승자의 편에 항상 선다...
억울하면 이겨야 한다....그게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이자 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