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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08 천국에 대한 비유(마태복음13장1-9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13장 1절에서 9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13장]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비유라서 설명을 제가 왜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 아는 얘기죠.
다 아는 얘긴데도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밭이 옥토같이 되지 않을 때 참 마음이 상해요.
그리고 옥토 같지 않아서 아무리 뿌려봐야, ‘개 등에 소금 흩기’라는 말이 있죠.
여러분 개 등에 소금 흩어봐요. 개가 ‘많이 뿌려라 많이 뿌려라’ 하면서, 아무 효과 없어요.
그런 것처럼 아무리 들어도, 제가 한 교회에서 10년을 설교를 했는데, 한치도 안 변한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기적이라고 했어요.
이를 일컬어 이적이라고 일컫더라.
어떻게 그렇게 하나도 안 변할 수 있을까..
교회에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오거든..
그래서 저 사람의 마음 밭은 어떻게 생겨먹은 밭일까 그런 생각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런 밭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여러 가지 밭에 비유하셨는데, 씨앗이 아무리 좋아도 밭이 잘못되면 안 자라는 거야.
나는 처음에 에스라하우스에서 성경강좌를 하면서 사람들이 어떤데는 보면 다 참 은혜와 진리에 감동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나는 99% 알곡들이 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내 생각이 20% 정도가 한번 듣고 갔다가 다시 오거든요.
다시 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 마음이 당겼던지 들렸던지 통했던지 무슨 수가 있는 거죠.
한번 왔다가 다시 안오는 사람이 80%라는 얘긴데, 그 사람들도 내가 그 두루마리를 풀지 못해 고민이야.
이유가 두 가지겠죠.
한번 듣고 도통했던지 아니면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던지..
그 둘 중에 하나이든지, 그 외에 수소의 사람들은 오고 싶기는 한데, 여건이 허락 안 되어서 CD를 가지고 듣고 있지 않겠나..
저의 희망 사항이죠.
그래서 제가 진짜 옥토같은 사람을 볼 때에는 듣고 가서 홈페이지에 간증을 올리든지 제게 편지를 한다든지 그렇게는 5%도 안 돼요.
그래서 낙심이 되는 거예요. 진짜.. 어떤때는..
제가 이렇게 정말 혼신을 다 쏟아 부어서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하는데도 겨우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밖에 안 되나..
한편은 내가 사람이 시원찮아서 그런 게 아니냐?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죠.
그래도 소수이지만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거예요.
이게 참 유일한 희망이예요.
예수님께서 이 말도 안 했으면 내가 진작 그만 두었을 거예요.
더러는 옥토에 떨어진다 이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예수님이 말씀하셨어도 다가 아니라는 거죠.
다 100% 다 옥토가 아니었다는 얘기죠.
그래서 참 그나마 위로가 되고 그렇게 합니다.
더러는 옥토가 있다는 겁니다.
나는 이 비유를 들을 때 얼마나 참 달게 들리는지..
[마태복음 13장]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씨앗이 떨어지는데,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길바닥 같은 데는 굳었죠.
사람이 밟고 밟고 또 밟아가지고 굳어졌는데, 여러분 사람 마음도 대개 좀 길가에 사는 사람도 마음이 길바닥 같아요.
원지라는 동네에 가보니까 온 동네 사람 마음이 전부 길바닥 같은 거야.
하도 사람이 자꾸 바뀌고 왔다 갔다하니까 누가 새로 왔는가 싶었는데 금새 없어져버리고..
그러니까 누구에게 정을 줄 일 없고 누구 이별할 일도 없어.
오거나 말거나 가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자기에게 해롭게 안 하면 관심도 갖지 않는, 그야말로 서울같이 개인주의가 발달해버리고..
그런 마을 사람들은 대개 예를 들면 역촌이 좀 그래요. 역촌이..
역전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좀 그렇고, 버스 주차장 가에 사는 사람들 뺀질 뺀질 달아가지고 기름때가 올라가지고..
이게 마음이 전혀 깊은 심도있는 얘기가 안 되는 거라.
길바닥 같아서 그래요.
그리고 한편은 장소도 그렇지만 나이도 그래요.
나이도 젊은 어린 아이가 옥토예요.
아무래도 어린 아이가 옥토이고, 중간쯤 되면 거기 무슨 가시덤불이나 벌써 못된 습관의 돌짝밭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늙으면 그야말로 하도 별것을 다 들어가서 ‘너는 야 떠들어라 나는 그냥 듣는다.’ 별의 별놈 잡놈 다 들어와서 길바닥 같이 굳어져버린 거야.
사도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치는데, 두란노 서원 가기전에 회당에서 가르칠 때 ‘어떤 사람은 마음이 굳어서 이 도를 순종치 않고 비방하더라.’ 그런 얘기가 나와요.
그래서 순수하지 못하고 별별 그저 풍상을 겪어가지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어가지 않는..
그래서 어린 아이가 부드러운 옥토같죠. 그렇죠?
제가 보기에는 30살 안에 뭔가 세계관 가치관 역사관의 방향이 잡혀야 되지, 아이고 나이살 해서는 어려워요. 굳어져버리면 어려운 거예요.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하면 에스라하우스 근방이 천하에 돌밭이야.
괭이로 한번 파면 손바닥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야.
팠는데 흙은 하나도 없고 흙 1cm밑에 바로 돌이 있어서.. 흙 하나 돌 하나..
그렇게 돌짝밭이예요.
거기는 전혀 곡식이 될 수가 없는 그런 곳이죠.
돌짝밭 하면 늘 생각나는 게 에스라하우스 근방은 진짜 돌짝밭이예요.
오죽하면 그 재벌 진로회사가 독일제 장비를 가지고 갈아엎다가 그 비싼 장비만 다 때려부수고 20년 만에 손들고 나와 버렸잖아요.
내가 가보니까 왜 손들고 나갔는지 알겠더라고..
돌짝밭이야.
사람의 마음 속에도 못된 습관의 돌들이 들어 있어요.
어떤 것은 돌 중에 담배가 들어있는 돌도 있고, 술이 들어있는 것, 노는 것 좋아하는 것, 별별 어떤 돌들이 사람 마음 속에 박혀 있으면 말씀이 잘 안 심어져요.
그 다음에,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어떤 가시는 자기 아버지가 가시야.
자기 가족이 가시처럼 해가지고 도저히 믿음이 자랄 수 없는 그런 환경이 있어요.
다 뚫고 올라갈려면 대단한 믿음이 필요해요.
그 다음에 어떤 욕심 자기 꿈 계획 이런 것들이 자기 생각속에 꽉 들어차가지고 그 사람 마음 속에 하나님 말씀이 심어지지 않고, 심어졌다손 쳐도 싹은 나는데 자라지 못하고 그늘에서 못 크는 거죠.
그리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여러분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제일 소출이 안 나는 게 대체로 감자 마늘 고구마 이런 것들이예요.
마늘같은 것은 한개 심어서 6개 밖에 안 돼요..
하나 본전빼고 나면 5개 밖에 안 되죠.
마늘이 소출이 적은 편이죠.
감자는 반쪽을 심어서 4개 5개 그것도 얼마 안 돼요.
역시 곡식이 참 많이 나는 거예요. 그렇죠?
곡식은 벼 한 알 심으면 벼 가지가 3개 4개 올라오거든요.
한 이삭에 110개에서 150개 달려요.
벼 한 알을 심었는데 400배 500배예요.
조는 그야말로 세지도 못해요.
조는 한 알 심었다가는 그것 셀려면 자살할거야. 얼마나 많은지..
곡식이 역시 많이 달리는 거예요.
여러분 수수도 큰 수수 이삭에는 몇개 빗자루 될만큼 많이 달리니까 굉장히 많이 달리거든요.. 곡식들이..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하나님을 잘 안믿을 때도 막연하게 군담처럼, ‘아이고 하늘이 이래 부라줘도 못사니 참 인간들이 그렇다’ 그러면서.. 그런 소리를 가끔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 심는 것은 세상 시원찮게 심어요.
어머니는 낙천적이야.
대충 뿌리고 발로 툭 차고 덮어놓고 그냥 가버려..
그래도 그게 곡식이 잘 돼요.
아 거 참 우리 어머니가 단계댁인데, 단계댁은 참 손이 걸다. 뭘 심어도 잘 되는 거야.
우리 동네 온 밭에 비해서 우리 밭이 항상 뭐든지 잘되거든요.
사실은 우리 어머니가 그런 게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거름을 잘 넣어서 그런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세상 서글프게 하는데도 잘 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가 뭐가 익어갈 때 그래요.
하늘이 이래 부라줘도 못 사는가.. 참 한탄을 가끔 해요.
그렇게 부라주는데 못 사는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30배 60배 100배 하는데, 아닙니다. 예수님은 100배 60배 30배야.
100배가 기본이고 조금 안되면 60배고, 영 안되어도 옥토에 떨어지기만 해도 30배..
여러분 우리 교회도 보면 한 사람이 열심히 희생하면 100명까지 교회가 커요.
못해도 60명, 한 사람이 좀 그런 데로 하면 어지간하면 30명까지는 모입니다.
그래서 교회 숫자를 보면 대체로 그 교회에 몇 사람이 참 충성된 사람이 있는가?
대체로 비율이 나와요.
우리 교회는 150명 모이잖아요.
그러면 서너사람 정도가 5사람 정도 그런 정도가 꽤 열심히 해가지고 모이는 거예요.
100배 60배 30배.. 5사람..
다불과 10사람 정도가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나머지는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이고..
만약에 우리가 전부 나 하나 때문에 최소 30배씩 모인다고 해봐요.
그러면 역사가 달라지죠..
제가 인천에 있는 주안교회에 두번인가 집회를 갔었는데, 한 권사님이 1만명을 인도한 거예요. 만명..
교회 7만명 성도가 된다는데, 그런 사람 7명만 있으면 7만명 되는 거죠.
어떻게 만명을 교회로 인도하겠어요? 한 개인이.. 대단하죠..
그래서,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이것 참 놀랍죠.
여러분 비유로 한다는 것은 대체로 어려운 것을 쉽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합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하는데, 예수님 비유 중에 이런 비유는 아는 사람은 알게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할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거야.
너희에게는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는 알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이 만약 가리웠다면 저주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에게 가리웠다고..
그러니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런 말도 있어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못 들을 사람이 있고 들어도 깨닫지 못할 사람이 있고, 은혜에서 소외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창세전부터..
두려운 말씀이죠.
여러분 제가 참 설교를 쉽게 한다고 하거든요..
어려운 성경이지만 쉽게 할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고, 제가 가끔 TV로 나갔을 때나 라디오로 나갔을 때에 저의 설교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쉽다는 거예요.
세상에 쉽게 편안하게 조용하게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느냐..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쉽게 하는데도 우리 교회에 와서 안 들린다하면 보통 문제가 아니죠. 그렇죠?
쉽게 하는데, 안들리면 큰일 아닙니까?
교회에 처음 나와서는 안 들릴 수 있습니다.
저 자신이 그랬거든요.
두서너 달 정확하지는 않은데, 12월달부터 나와가지고 3,4월까지니까 서너달 되겠죠.
아이고 어떻게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
제가 내 일생에 그것도 기적인 것 같아요.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설교를..
그리고 그 전도사님이 설교하는데 맨날 뭐 ‘몇장 몇절, 몇장 몇절’ 뭐하는지 모르겠어. 도대체가 저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 나가보니까..
그러다가 어쩌다가 철학자가 무슨 말을 했다하면 반짝반짝하게 듣고..
하여튼 성경 이야기하면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리하다가 어느 날 정말 중생이라 할까, 무슨 귀가 할례를 받았는지 하여튼 어떤 체험이 있고 난 이후에는 설교하는 것을 알아듣는데, 설교를 보통 알아듣는 정도가 아니라 200% 깨닫는 거야.
그래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못 듣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항상 그 뒤로.. 제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열심히 설교를 해봐도 못 듣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저처럼 몇개월 지나다가 열리면 되는데, 영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제가 전에 원지교회에 있을 때 사람들이 참 착해요. 부부가..
착한데, 부인은 교회를 나오고 남편은 참한데 교회를 안 나오는 거야.
착하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가봐. 그렇죠?
그러더니 이번에 보니까 그 착한 부인까지 안 나오는 거야. 최근에 알았어.
그게 하나도 아니고 둘이야.
제가 그 교회에 14년이나 있었는데, 도대체 뭘 들었을까..
그런데 한 부인은 참 자기 관리도 잘하고 미인은 아니지만 자기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품위를 잃지 않고, 또 어느 분위기에도 잘 어울리고..
예배 시간에 하여튼 겉으로 보면 잘 듣는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가봐. 그러다가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안 나오는 둘 다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보통 일반적으로 볼 때, 그 마을에서도 아무도 그 사람들 나쁘다고 할 사람이 없어요.
실제 생활도 그렇고..
그런데 안 들리는 가봐..
단, 둘 다 성경강좌에 안 왔어요. 한번도..
14년을 있었는데 안 온거야. 그것도 참 기적이죠.
제가 가는 데는 확실히 기적이 많이 일어나요.
그래서 은혜와 진리가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것도 문자대로 사실이야.
언제든지 저는 좀 자랑도 아니고 솔직한 간증인데, 무슨 집회를 하든지 간에 저는 번번히 집회하기 전보다 배나 성장하고, 집회때가 되면 담임교역자로부터 안 듣던 얘기를 들으니까, 새로운 세계에 눈이 번쩍 열리고 그렇게 하니까 매번 집회할 때마다 우리 교회에서 다 뭐라고 했느냐?
‘이번 집회는 노집사를 위한 집회다.’ 전부 다 그랬어요.
나는 그런데 다른 사람은 꼭 누구 몇 사람이 집회할 때마다 시험들어요.
강사의 말에 상처를 입어서 교회에 안 나오기도 하고..
저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는데..
그것도 돌이켜 보면 알 수가 없는 일이죠.
그리고 저는 얼마 안 가서 성경으로 방향을 딱 정했어요.
그런데 성경으로 방향으로 정하지 않은 사람은 끝내 뒤끝이 안 좋더라고..
굉장히 열심이고 맨날 그저 앉으면 그냥 기도하고 방언하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방언하고 앉았는데 교회 안 나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니면 죽었거나..
그런 사람은 대개 끝이 안 좋아요.
하나님 말씀으로 바로 방향을 정하지 않은 사람은 대개 끝이 안 좋고, 또 지속적인 성장이 안 돼요.
어느 한계까지 가다가 흐지부지 되는 사람이 많아요.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식의 세계는 아는 것만큼 더 보죠. 그렇죠?
가진 자가 더 가지는 거야.
똑 같은 강의하고 앉았는데 그 깨닫고 누리고 하는 것이 배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 같이 앉아 있는데 혼자 시험드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이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아니고, 이사야서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죠. 그렇죠? 기억나세요?
마태가 뭐든지 예언이라고 해요. 이 사람은..
‘예언이 응하였다.’ 자꾸 이렇게 하는데..
천국 가서 마태 만나면 내가 혼날지 모르지만..
이것은 예언이 아니고 이사야서 안에 있는 소명이죠.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때 이런 목적으로 소명을 받은 건데 이것을 예언이라고 하는 거죠.
..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못하리라’가 아니고 ‘못하게 하리라’고 되어 있죠? 그렇죠?
이사야서 6장에 보면..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너희’라고 하는 것은 열 두 제자들이죠.
여러분 제일 복이 하나님 말씀을 알아 듣는 게 복이예요.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고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하는 이게 복이라는 거예요.
최고의 복이예요.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너희 보는 것 너희 듣는 것’이 메시야죠.
메시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자 하여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면 최고 영광 아닙니까?
예수님 제자가 되었던 열 두 제자.. 사람이 태어나서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어요?
18절,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악한 자’는 사탄이겠죠.
사탄은 우리 마음속에 떨어진 말씀을 주워내어 버릴려고 해요. 쪼아 먹어버리고..
실컷 들었는데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보니까 그래도 이사야서 한권 꽤 오래 되었는데 남아있는 것 같애. 그렇죠?
이게 예언이 아니고 이사야 소명이었다 명령이었다 하는 것 벌써..
딴교회에 가서 말하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전혀 안 통합니다. 그냥 무슨 말인지..
목회자들도 안 통해요.
그렇게 정직하게 정확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어리버리하게 두루뭉실하게 대충 알아가지고 그러니까 한개도 분명한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까딱하면 미신 비슷하게 만들어가지고..
더 기가 막힌 것은 교회가 미신 비슷하면 부흥한다니까..
우리도 미신 비슷하게 해볼까요?
무슨 이상하고 신비한 것이 있고 미신 비슷하게 하면 사람들이 거기 뭐가 있는 것 같다하고 모이는 거야.
말씀을 정직하게 가르치면 은혜가 안 된다 그러면서 모이지 않아요.
여기 예수님이 해석을 다 했기 때문에 별로 해석할 필요 없어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흙이 너무 얇고 속이 좁아요.
서해안에 가면 ‘밴댕이’라는 고기가 있어요.
여러분 멸치 사촌 있죠.
이 지역에서 ‘띠볼’인가 바짝 말라서 납작해가지고 거기 속이 뭐가 있겠어요?
‘밴댕이’라고 하는데 고기가 속이 좁으니까 거기 심어질게 없어. 전혀..
사람이 마음이 넓고 속이 깊고 해야 뭔가 심겨서 열매가 맺히고 그렇지..
그렇게 얇가지고..
아까 얘기한 부인은 매너가 있고 예절도 바르고 한것 같은데, 깊이가 없어. 생각하는 게 없어.. 질문도 안 해..
들을 때 그 때 재미있으면 헤헤 하다가 그게 끝이야.
아이고 이래가지고 참..
기쁨으로 받는데 있다보면 아무 것도 없어. 열매가 안 맺히는 거야.
꽃꽂이 화분은 열매가 안 맺히죠.
뿌리가 없으니까 말라지는 거야.
그런 것처럼 속이 깊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심어봤자 열매가 안 맺히고 이내 말라버립니다.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넘어져버려..
조금만 어려움 닥치면 주저앉아 버리고..
그런 믿음 갖고는 안 돼요.
제가 이렇게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하는 얘긴데, 생명이 있고 뿌리가 튼튼하고 생명이 충만하면 햇빛나면 더 잘 자라고 비 오면 더 잘 자라고 그렇죠?
그런데 뿌리가 없으면 햇빛나면 더 말라버리고, 비오면 더 잘 썩어버리고..
생명 없으면 비오면 썩고 햇빛나면 말라버리고..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르다니까..
정말 생명력을 뿌리에 갖고 있는 것은 비오면 잘 되고 햇빛나면 더 잘되는 거죠.
여러분 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니까 바람이 흔들어주는 것도 굉장히 좋다고 해요.
바람이 흔들면 흔드는 대로 큰대요..
그 다음에,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이 염려 참 되게 많이 하는 사람 봤어요.
어떤 부인인데, 하여튼 심방가면 그 사람 염려 듣다가 와야 돼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아무리 말해봤자 그 염려가 워낙 커서 소용없어요.
사실은 교회에서 그 집이 돈벌이가 제일 잘 되는데 그래..
어느 날 그 돈을 은행에 그냥 맡겼으면 이윤은 조금이겠지만 안심할텐데, 은행 직원이 조금 더 이윤을 보태준다고 해서 맡겼는데 먹고 끝내 버린거야.
그래서 염려 하던 것이 이루어져 버렸어요.
‘악인은 염려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의인은 그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그런 말 있죠?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고백이야. 그렇죠?
염려를 자꾸 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내년 것까지 하고 후내년 것까지 하고..
계속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는 것을 염려하고..
어떤 사람은 지나간 것까지 염려하는 거야.
은사가 염려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을 잔뜩 피곤하게 합니다.
나중에 한두번이 아니고, 제가 전에는 최소한도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공식적 이른바 대심방을 했거든요.
14년 있었으니까 스물 몇번 했잖아요.
나중에 그 집에서 심방 갈 마음이 없어져요. 가기 싫은거야.
아마 예수님도 가기 싫었을 거야. 그 집에는..
그래서 결국은 돈 벌어가지고 다 날려버리고 역시 지금도 교회에 안 나와요.
진짜 밭들이 달라요.
세상 염려와 재리, 재물의 이익 이런 것 때문에..
여기 ‘유혹’이란 말은 ‘아파테’라는 말인데, ‘기만 속임수’ 이런 데에 말씀이 막혀서 결실치 못해.
열매가 안 맺히는 거야.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교회에 처음 나가서 믿음이 자랄 때 1년 2년 동안에 매주 가서 듣고 깨닫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달게 들리던지..
다른 분들은 몰라도 나는 23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그것이 그야말로 저의 평생 노래가 되었죠.
에스라 성경강좌 할 때마다 맨 처음에 부르는 노래가 ‘달고 오묘한 말씀’이죠.
그렇게 달 수가 없어요.
마치고도 집에 안 가고 전도사님 피곤할텐데, 붙잡고 한 시간 두 시간 질문하고 토론하고 해가지고, 집으로 가면서 동생과 이야기 나누고 되새김질 하고..
한주간 내내 이렇게 하면서 그야말로 일은 예사로 하는 것이고, 계속 들은 것 생각하고 정리하는데, 거기에서 뻗쳐가지고 이야기가 더 넓어지는 거야.
그 다음 주간에 가서 내 삶속에서 깨닫는 것 풀어놓으면 전도사님이 감동을 받는다니까..
그런 깨닫는 것이 있는 거예요. 깨닫는 것이..
그래서 교회에 와서, 내가 전에 듣지 못하던 것 알지 못하던 것 깨닫는 즐거움이 있어야 예배시간에 설교가 달게 들리는 거죠.
그래서,
..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해석이 다 되어 있으니까..
왜 또 주석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죠.
그 다음에,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 하는 게 물론 여기 ‘바실레이아 우라논’ 정말 하늘에 있는 나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꼭 하늘 위에 있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이 땅에 있어도 하나님의 통치영역까지는 천국 하나님 나라, 교회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지부죠. 지부..
성도들이 사는 삶의 영역까지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될텐데, 거기 이런 게 있다는 거예요.
마치,
..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가라지’는 우리나라에는 어떤 것이 가라지입니까?
여기 헬라어로는 ‘지자니온’이라고 하는데, 지자니온 하는 게 무슨 ‘호밀’처럼 생겨가지고 그러면서도 먹을 수도 없는 그런 것 같아요.
자랄 때는 몰라요. 전혀..
자랄 때는 거의 같아서 잘 몰라요.
그런데 다 자랐다 싶을 때 이삭이 패 올 때 보면 이삭이 커가지고 교만하게 올라와. 먹지도 못하는 게..
여러분 ‘피’라는 것도 벼와 피가 모자리판을 해놓고 보면 전문가가 아니면 잘 모릅니다.
우리야 하도 피를 많이 보니까 그냥 보면 알고 만져봐도 알아요.
우리 고향 동네에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되는 완전 시각 장애인이 있는데, 모판에서 피를 뽑는 거야.
눈 뜬 사람도 피인지 벼인지 잘 모르는데 모판에서 피를 뽑아요.
모판에서 손으로 만져서 피를 뽑는 거야.
그래서 참 화제거리가 되고 했는데..
일반사람이 볼 때는 잘 몰라요.
벼와 피를 보면 피는 조금 잎이 반질반질하고 벼는 약간 껄끄러워요.
우리는 그냥 보면 아는데..
가라지라는 것도 너무 자랄 때는 너무 흡사해서 잘 모르는데, 나중에 이삭 열매를 내놓을 때 보면 완전히 다른 거죠.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결실할 때 보이는 거야.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참 이것도 그럴 위험이 있죠.
때로는 목회를 하다보면 잘라내야 될 사람이 있어요.
저건 도저히 놔뒀다가는 계속 이 교회가 어렵겠다 싶은데, 그리고 아무리 봐도 저거는 종자가 전혀 다르다. 예수님 종자가 아닌 거야.
그런데 이리저리 무슨 별의 별 연관이 되어가지고 거기 얽힌 사람이 많아 가지고 그것 하나 빼내면 수많은 사람이 상처가 될까 싶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고 그런 수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곡식 다칠까 싶어서 가라지도 어찌 못한채 그냥 가만히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니까 실제로..
아무리 봐도 그것은 천당갈 사람이 아니야. 그런 사람도 있어요. 교회에..
그런데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까..
심지어 목회자가 죽을 써도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그러니까 기가 막힌 일을 당하는 거야.
요즈음도 그런 얘기를 늘 듣고 있습니다.
들어보니까 목회자라 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돼.
그래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3분지 1이랍니다. 또..
해 아래 기괴한 일이 있도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고 하는 수가 있는 거예요.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아마 우리 한국에서 가라지는 피라 했겠죠? 그렇죠?
틀림없이 피라고 했겠는데, 그 쪽에서는 밀 보리 농사니까 가라지예요.
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나는 처음에 겨자를, 우리가 울며 겨자먹기로 여름되면 냉면집에서 겨자 먹잖아요.
그 씨가 얼마나 작은가 하고 가 봤더니 장다리씨야. 무우 배추 씨와 똑같습니다.
크기도 똑같고 모양도 똑 같아요.
그런데 그 씨가 씨 중에 제일 작다고 하는데, 맨드라미 씨를 안 봐서 그래..
우리는 옛날에 담배씨를 보고 작다고 했어요.
담배도 그 씨가 되게 작아요.
제가 아는 것 중에 제일 작은 것은 채송화 씨야. 그렇죠?
채송화 씨는 접시에 담겨 있어요.
너무 작아서 볼 때는 코를 막고 조심해서 봐야 돼요.
숨만 쉬면 날아가 버리니까..
어떻든 작은 씨인데, 그 씨앗이 너무 작아서 새들이 잘 쪼아 먹지도 못해요.
그러다가 그게 싹이 나고 나물처럼 커가지고 나중에는 줄기가 이렇게 엄지손가락만큼 되어서 말탄 사람 키만큼 커요.
이스라엘의 기후가 좋고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상당히 커져요.
거기에 새들이 와서 앉아서 놀다가 간다고..
그 씨가 처음에는 새가 쪼아먹지도 못할 정도로 작았던 건데, 커지는 거야.
마치 천국이라는 것이 시작할 때는 매우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거야.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이 떨어져서 시작하는 거야. 천국이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데 나중에 커져서 나중에는 큰 대형 교회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두 세 사람이 모여도 무시하면 안 돼요.
천국은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가정에서 몇 사람 모이다가 그게 교회가 될 수 있는 거죠.
여러분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무슨 굉장한 분도 아니고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빌립과 바돌로매 목수 도마 이렇게 해가지고 뭐가 되겠어요? 해봤자..
맴버들 다 그렇고 그런 사람이죠. 우리끼리 볼 때..
그런 사람을 가지고 온 세계를 기독교화 하는 거예요.
참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런데 그 꿈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유럽 같은데 가서 예수님 이름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 그야말로 깜짝 놀랄 정도죠.
그렇게 커지는 거예요.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33절,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적은 양의 누룩을 가루 서말 속에 넣었는데 전부 부풀게 하는 거죠.
질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다 퍼지게 하고..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것도 선지자가 한 말이 아니고, 시인이 한 거거든요.
시편 78편 2절에 있는 말씀인데, 뭐든지 그냥 마태는 선지자가 말했고 이루어졌대. 그냥.
아주 습관처럼 이렇게 말해요.
사실은 시인도 선지자는 선지자죠.
36절,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예수님 자신이죠.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우리가 어릴 때 벼를 베기전에 이삭이 올라오면 피가 못된 게 교만하게 쳐들고 올라와요.
이상하게 피는 농약 안 쳐도 잘 되는 거야.
그게 올라오면 벼는 가만히 놔두고 우리가 피사리 하러 간다하면서 피 뽑으러 가요.
다 뽑아가지고 단을 묶어서 불살라야 돼요. 다른 길이 없어요. 거름도 안 돼요.
거름에 넣으면 씨앗이 이듬해에 거름에 남아가지고..
아무 방법이 없고 불살라야 되는 거야.
여기에 있는 대로 단으로 묶어서 불사르는 거예요.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일 먼저 거짓선지자 음녀를 잡아서 산채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집어 던져넣는 거야.
여러분 오늘날도 악한 종교 악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많아도 그냥 놔두잖아요.
조금 기다려봐요.
이른바 짐승이라고 불리우는 적그리스도죠.
여러분 요즈음 가끔 영화에 보면 꼭 무슨 짐승이 나오죠?
죽지도 않는 짐승이 있잖아요.
어떤 것은 문어발 같은 것으로 이렇게 한다든지..
자기 다리를 끊어먹고도 안 죽고..
그런 것들이 캐리비언의 해적, 거기도 바다밑에서 짐승이 올라와서 배를 잡아삼키고..
짐승 짐승 짐승하는 게 나중에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거야.
아마도 내가 볼 때 적그리스도가 오는 길을 평탄케 하느라고 부단히 짐승을 만들어가지고..
사람이 짐승 앞에 보고하고 짐승 앞에서 벌벌떨고..
이런 짓을 계속 영화에서 미리 준비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런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바른 편에 서야 되겠죠.
44절,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나는 처음에 이것을 읽을 때 이것 비양심적이다.. 발견했으면 신고를 해야지. 그것을 감춰놓고 밭을 사다니.. 이건 비도덕적이다.
알아보니까 비도덕적이 아니고, 지금 전쟁시대가 다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밭에 보물이 있다는 것은 지금 밭 임자가 그 보물 주인이 아닌 거야.
그렇겠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시비가 벌어지니까 히브리 나라 법을 정했대요. 그 당시에..
밭을 팔아놓고 보물이 나오니까 밭을 물리자는 거야. 다시..
이것 때문에 너무 시비가 복잡하니까 ‘밭에 감추인 보화는 발견한 자의 것이다.’ 그런 법을 만들었다고 해요.
저는 처음에 이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예수님이 이렇게 비유를 할 수 있나.. 신고를 해야지..
그런데 그게 아니야.
밭에 감추인 보물은 이미 환난시대 지나간지 몇 백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주인이 바뀌고 바뀌고 해가지고 아직까지 밭에 감추인 것은 밭 임자가 그 보물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발견한 자의 것이다. 그런 법이 나왔다는 거죠.
그러한 문화를 읽기 전에 참 이 구절 때문에 볼 때마다 시험이 되었어요.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저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진주를 봐도 몰라요 나는..
진주인지 무슨 그냥 사기인지 플라스틱인지 전혀 몰라요.
어떤 사람은 척 보면 값이 얼마 나가는지 아는 거예요.
나는 눈이 멀었는지 전혀 안 보여..
나는 그냥 플라스틱으로 500원짜리나 100만원 짜리나 전혀 구분이 안 돼.
참 편하죠. 다 좋아 보이니까..
그래서 아무리 봐도 값진 진주 같지 않은데, 보물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가 봐요.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못돼야 살 수 있는 거죠?
물고기 입장에서 보면 그런거야.
그런데 물고기 잡는 입장에서는 안 그렇죠?
그래서 어떤 분이 마태복음을 복음은 복음인데, 심판의 복음이다. 그렇죠?
보면 계속 가르죠?
밭을 여러 가지 밭으로 가르고, 알곡과 가라지 가르죠?
그 다음에 좋은 고기 나쁜 고기로 가르고, 지혜로운 자 미련한 자 가르고..
계속 갈라지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가 마태복음을 복음은 복음인데 심판의 복음이다. 그런 얘기를 해요.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게 무슨 말이냐?
‘의인 중에서’ 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 악인은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교회 다니면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치 아니했나이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이렇게 되어있는 곳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거짓말 하지 마. 네가 언제 귀신 쫓아냈어? 너 언제 능력 행했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그것 다 했고 사실인 모양인데,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 곁에서 떠나가라고..’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계명대로, 경기장에서 다 달아나는데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상을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그러하오이다’ 해 놓고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도 혹 그런 수가 있는데, 저도 가르쳤는데도 믿었다 해놓고 나중에 엉뚱한 짓 하면 참 속이 상하죠.
잘 보세요.
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천국의 서기관, 다시 말하면 교회의 시대가 하나님 나라 시대인데, 거기의 서기관은 바리새인의 서기관과는 달라야 돼요.
새 것과 옛 것을, 새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시는 것이 새 것일 것이고, 옛 것은 구약에 있는 교훈 중에서 중요한 것들.
이런 것들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그 집주과 같다. 그 집주인은 예수님이죠.
그래서 구약을 다 패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근본정신은 패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잘 가져오고 새 것도 잘 조화시켜서 새 것과 옛 것을 잘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고향’이 어디죠?
나사렛이죠. 나사렛..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어떤 교회는 꼭 기도할 때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가르친다고 해요.
지금은 안 그런데 여러분 성경 당시에 ‘나사렛 예수’는 굉장히 비하해서 하는 말이예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놀리고 조롱할 때 ‘나사렛 예수란다. 나사렛 예수..’
예수가 많았거든요. 그 당시에..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쑥 들어가 버렸어요.
왜 예수라는 이름을 잘 안쓰냐 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감히 우리가 어떻게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쓸 수 있느냐?’ 해서 예수 이름을 안 써요.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은 재수 없다고 안 쓰는 거야.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 받은 자라.
저주 받아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 이름을 내가 어떻게 쓰겠어? 그러면서 안 써버렸어요.
그 당시에는 이런 예수 저런 예수가 많이 있는데, ‘나사렛 예수’라고 할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하해서 하는 그런 말이었어요.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핍박을 했잖아요. ‘주여 뉘십니까?’ 하니까 ‘네가 말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 예수님께서 자기를 ‘누가 나를 비하해서 나보고 나사렛 예수라 한단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나사렛 예수라고 하면 안 돼죠.
생각을 해봐야 돼요.
그러니까 그 분위기를 잘 알고 해야 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 때 문화도 분위기도 모르고 나사렛 예수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든지 예수님 자신이 직접 그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구주 예수님’이지 ‘나사렛 예수’ 그러면 안 돼죠.
그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여러분 옛날에는 목수의 아들은 그냥 목수입니다.
편수의 아들은 그냥 편수야. 푼수의 아들은 푼수고..
요즈음 와서 한국에서만 아버지가 목수라고 하면 죽어도 목수 안한다. 이것은 한국식이야.
다른 대부분의 나라는 아버지가 목수면 아들도 목수야. 그냥..
가까운 일본만 해도 11대째 음식점 그대로 해요.
어쩌면 그런 집은 안정되었습니다.
하던 것을 하니까 잘 안바꾸니까 망할일도 없고 하던 것이니까 다..
한국사람들처럼 자기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안하는 나라가 세상에 없는 것 같아요.
제일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안 하는 나라가 한국이야.
당연히 목수의 아들은 목수가 돼요.
그러니까 직업이 항상 그냥 균형을 유지하고 변덕이 없는 거죠.
한국은 뭐가 된다 하면 너도 나도 다 해가지고 몰려서 다 망하고 이렇게 하는데..
목수의 아들 할 때는 당연히 목수였어요.
..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갑자기 설교를 하시는데, 일반 설교와 현저히 달라요.
그리고 권세가 있어 보이고 권위가 있어 보이고 당당하고 이렇게 하니까 도대체 이 사람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아주 의혹의 눈으로 바라봤다는 거예요.
저도 아마 우리 고향 동네에 가서 내가 성경 이야기를 하면, ‘저것 다 옛날에 우리 동네에서 엉덩이 내놓던 사람인데, 저가 뉘기에..’ 하면서,
그러니까 내 엉덩이를 본 사람들은 전혀 나를 존경할 수 없죠? 그렇죠?
우스운 얘긴데, 우리는 옛날에 우리 어릴 때에는 아랫도리는 아예 안 입고 다녔어. 한참동안..
초등학교 갈 때 쯤 되어야 뭘 입는데, 하도 끌르고 입고 하는 게 귀찮으니까 밑이 다 파진 거야.
화장일이 그냥 앉으면 바로 나오는 것.. 바지를 입었는데 밑이 다 나오는 것..
바지는 바지인데 밑이 아무 것도 없는 게 있어요.
진짜 편리한 거야. 그게..
그러니까 맨 처음에 아예 안 입다가 두 번째 그것 입다가 그 다음에 한참 있다가 팬티를 입었는데, 팬티는 무슨..
우리는 팬티가 아니고 빤스였어요. 그렇죠?
왜 빤스냐 하면 일본사람들이 애 발음이 안 돼.
‘아 에 이 오 우’ 밖에 없어요. 모음이..
그러니까 ‘팬티’는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빤스’가 되어 버린 거야.
‘런닝셔쓰’가 안 돼. 그러니까 ‘난닝구’.
이게 ‘어’라는 발음이 안 되니까..
‘어’가 안 되니까 난닝구가 되어 버린거야.
런닝은 중학교쯤 가서 입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우리를 봤던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저게 단계댁 아들 아닌가’ 이렇게 밖에 안돼..
하나님의 종 꿈도 못 꾸고 단계댁 아들이고..
예수님도 고향에서는 안 되는 거야.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저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샤론교회 성도님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그래도 내가 자라난 고향 내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한번은 나와 같이 가서 전도집회를 하든지 해야 될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과연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들을까..
한번 해봐야 되겠죠. 듣든지 아니 듣든지.. 언젠가 한번 음악도 준비하고..
지금은 조금 유명해졌거든요. TV에 나오니까..
그렇지 않으면 전혀 인정을 하지 않을 텐데, TV에 나오니까 안 믿는 사람도 ‘아 거기 노목사 나온단다’ 하고 본대요.
이제는 가면 될 것 같거든요.
준비하고 있으라. 어느 때에 출동명령이 날지 알지 못하느니라..
고향에서는 예수님도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내 고향 내 집안 사람들에게 내가 하기 어려우니까, 서로 남에게 전도하는 그런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서로가 서로와 전도 짝을 만들어가지고 기도해주고 편지도 마주보고 반대로 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올 한해에는 꼭 한 가정에서 한 가정,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이렇게 전도합시다.
지난 주일에는 11명만 더 왔으면 우리가 200명 넘게 될텐데.. 그렇죠?
아슬아슬하게 또 줄어들고.. 몇 사람 나왔다 또 몇 사람 떠나고..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그렇게 해서 100배 60배 30배처럼 성장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게 그 심오한 진리를 쉽게 말씀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까지 알아듣게 하시고, 또 우리도 자신감을 가지고 전도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쉽게 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배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게 빠르게 전하고 가르치는 우리 모두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