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무늬다. 얼, 얼굴은 마음이 드러
난 곳이라는 뜻이다. 곧 심벌이다.
조선의 초상화가는 배채법이라고 비단이나 한지를 뒤집어
색을 매겼다. 얼굴 손 드러내는 살은 뒤에서 다 매긴 다음
바로놓고 먹선만 살짝 넣어 완성한다.
밖은 곧 속이었던 것이다. 마음이 밖으로 비친 것이 얼굴
이고 모습이다. 그래서 초상화는 속에서 울어나게 뒤에서
색을 넣어 울어나게 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사람 삶의 궤적과 의식의 그림자다.
작품을 통해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본다. 작품은 그 사
람의 관상이자 전신사주다.
자화상이란 자기가 자기를 그리는데 당신이 그린 것인데
왜 자화상이야?
예술가는 작품으로 자기를 이미 그렸으니까. 나는 그것을
번역하는 것일 뿐.
(이효석의 자화상)
밤길
(메밀꽃 필 무렵)
징검다리 개울 건너
물방아 안골에
내년엔 꼭 집을 지으리라
임시로 뿌린 메밀씨가
내년 되면 또 내년
메밀밭만 경영한다.
메밀씨 동이가 되고
성처녀는 제천댁이 되는 사이
장터만 떠돌다 가버린 세월
머리에 하얀 메밀꽃이 앉도록
재산이라곤 늙은 나귀 등에 얹어도
평생 한 짐을 넘지 못했다.
봉평에서 대화, 대화 지나 판운
물 몇 번 건너고 산굽이 비탈 돌아
늙은 나귀는 졸며졸며 가도
목목마다 물소리가 길을 잡아준다.
이번엔 곧장 동이 엄니 사는 제천이다
급해진 허생원 걸음에
늙은 나귀의 워낭소리도
촘촘 밤하늘에 뿌려진다
다시 쓸 것임
<시작노트>
"간(間)"
공간, 시간, 인간,
3차원 공간에 시간이 얽히면 4차원이다.
이 3개가 모두 "간"이 따라 붙는다. 모두가 관계이지 독립적인 존재는 없다는 해석의 말
이다. 우리가 존재 실체라고 하는 것이 존재나 실체가 아닌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단어에 '간'을 붙여 우리에게 전해준 선조들은 이미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존재란 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잠시 비치는 그림자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우주에서 먼지까지 이 세상을 이루는 물질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어떻게 작동 하는
가? 왜, 세월따라 모든 것은 변하는가를 알기 위해 물질의 원점, 원자 속을 열어보니 물
질은 입자(알갱이)가 아니라 파동이었다. 파동이 얽혀 소용돌이치며 입자성을 띠다가
사라지는 것이 물질의 근원 원자 속의 세계였다. 연기, 색즉시공, 일체유심조가 불교용
어가 아니라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의 행동양식이었다. 먼지가 생명의 신경처럼 행동하
고 있었다. 원자 먼지 속이 태풍이 일어나는 우주였다.
허생원의 유작이 봉평 메밀밭이다. 봉평 대화 평창 주천 제천을 오가는 길위에 인생.
5일장이니 릴레이로 매일 장이 서는 것이다. 그러니 이동은 언제나 밤길일 수 밖에
없다. 일평생이 길 위에 있었던 것이다.
허생원의 꿈도 이제나 저제나 장사가 잘 되서 봉평장터에 점포하나 내고 떠돌이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평생 재산이 늙은 나귀짐을 넘어보지 못했다. 그 사이 해마
다 메밀꽃은 피었다가 졌다. 물레방아간 '원나잇' 추억은 지워져 갔다. 그날도 이렇
게 소금을 뿌린듯 메밀꽃이 하얗던 달밤. 그때 뿌린 메밀씨가 '동이'다. 그러나 허생
원은 알 수 없다. 허생원도 모르는 사이 동이는 성년이 되고 성처녀는 제천댁이 된
다. 아마 성처녀는 동이 아버지를 만나고자 제천으로 갔을 것이다. 동이 아버지를
찾아주려 했던 것이다. 동이가 끈이 된 것이다.
이 수필 같은 소설을 왜 사람들은 갈수록 그리워하며 감상에 젖는 걸까? 배경이 서
사를 더욱 애절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동이와 제천댁을 은근히 암시만 해주
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는 애타는 것이다. 길 위에 세월, 길이 인생이 되
었기 때문이다. 영화 같은 인생이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얀 메밀꽃" 봄 여름 꽃은 붉은색이 많다. 가을꽃은 흰꽃이
많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붉었다가 하얗게 된다. 색으로 왔다가 빛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의 삼원색을 합치면 흰고, 색의 삼원색을 섞으면 검
게 되는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그날밤 봉평에서 대화까지 물길을 따라 밤길을 가는 허생원의 지난
세월 되새김질 이야기다. 그 씨앗이 동인줄도 모르고. 허생원, 메밀꽃, 늙은 나귀, 모두
쓸쓸한 인생의 자녁 가을 이야기다. 영화의 스토리와 배경이 아주 잘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세월이 지날수록 흥행이 더해진다.
문화제를 만들고 관광 소재를 개발할 때 배경과 정서를 생각해야 한다. 관(觀)에서 광
(光)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즉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觀)에서 보이는 빛(光)을 찾아
야 시너지가 생긴다. 그래야 사람들은 정서적 공감을 하고 울림을 증폭시킨다.
제천은 "개천(開天)"이라는 고대문명의 메트리스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잃어버린
땅 "아사달"을 카피해 놓은 지명들과 유물유적이 산재해 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