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 밀어닥친 한파로, 뉴스에서는 머리털과 수염 등이 얼음으로 뒤덮인 냉동인간(?)의 모습을 간혹 비추곤 한다. 이처럼 추운 겨울에는 곰이나 다람쥐, 파충류 등 동면을 하는 동물들처럼, 사람들도 차라리 겨울잠을 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공 동면 장면은 지난 1969년에 선보인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Space Odyssey)’ 이래로 최근의 ‘패신저스(Passengers; 2016)’에 이르기까지 우주여행 관련 SF영화에서 숱하게 등장한 바 있다.
몇 년에서 몇 십 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우주선 안에서 보내야하는 우주비행사와 여행객들이 그동안 신체적인 노화를 늦추며 시간을 버는 동시에, 식량을 비롯한 생활자원 등을 아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일부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 냉동 기술 역시 신체가 꽁꽁 얼려진 상태로 형기를 채우는 ‘냉동 감옥’이 등장하는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 1993)’을 비롯한 여러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선보인바 있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독사들. ⓒ Free photo
그러면 이처럼 SF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나오는 사람의 인공 동면과 냉동 인간 기술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먼저 인공 동면부터 보자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어찌 보면 이미 인공 동면과 매우 유사한 원리를 의학에서 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뱀이나 개구리와 같은 변온동물들만 동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고등한 동물, 즉 곰, 두더지 등 인간과 소속이 같은 포유류의 여러 동물들도 동면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과의 심장 수술 등에 활용되고 있는 ‘저체온 수술법’도 체온을 낮추어서 인간의 신진대사를 거의 멎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공 동면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수술을 끝낼 수 있는 1-2시간 정도가 저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현재의 수준이며, 그 이상은 견디기 어렵다. 따라서 장거리 우주여행 등에 이용될 정도로 몇 년 이상씩 동면을 취하여 수명과 에너지를 아낀다는 것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은 먼 이야기이다. 다만 동물의 동면에 관하여 동면을 유도하는 호르몬 등에 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밝혀내고 이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한다면, 미래에는 동면을 통하여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동면과 유사하면서도 훨씬 온도가 낮은 상태로 보존하는 인간 냉동기술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인간의 몸 전체를 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성의 정자를 냉동 상태에서 보관한 후에 여성의 난자와 수정시키는 기술은 1950년대부터 가능해졌다. 냉동 인간에 관한 이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에팅거 교수인데, 그는 인간을 냉동시켜서 보존한 후에 해동하면 되살릴 수 있다고 학계에서 1964년에 발표한 바 있다. 1967년에는 냉동 인간이 사상 최초로 탄생하였는데, 신장암을 앓았던 미국의 심리학자 베드포드 박사가 자신의 희망에 따라 사망 직전에 냉동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이론적인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아직까지 인간을 냉동시켰다가 되살리는데 성공한 적은 없지만, 이후로도 냉동 인간이 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그려지듯이, 불치병에 걸렸거나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의학이 훨씬 발달했을 먼 미래에 부활할 것을 꿈꾸며 냉동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냉동감옥이 등장하는 SF영화 데몰리션맨. ⓒ 데몰리션맨 포스터
현재 냉동인간 사업을 하는 곳은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알코어 생명연장 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이다.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장래를 기약하며 캡슐에 냉동상태로 잠들어 있고, 계약자만 수백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동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는데, 계약자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지만 사회 저명인사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데몰리션맨 등의 영화를 보면 인간을 냉동시킬 때에 순식간에 꽁꽁 얼리는 식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냉동기법이 SF에서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체액이 얼면서 세포가 파괴되어 곧바로 완전히 사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냉동 인간을 만드는 첫 프로세스는 체온을 서서히 내리고 섭씨 3도 정도의 저온 상태에서 혈액을 비롯한 인체의 수분을 모두 제거하는 일이다. 그리고 혈액 대신에 동결방지 기능이 있는 냉동생명 보존액을 주입하는데, 겨울철에 자동차가 냉각수의 결빙으로 인하여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동액을 넣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존액의 주입이 끝나면 더욱 낮은 온도로 급속 냉동시킨 후, 장기 보존을 위하여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캡슐에 넣어 보관하게 되는 것이다.
냉동 인간이 나중에 해동되어 되살아나는 과정은 물론 그 역순이 될 것이다. 액체질소 캡슐에서 꺼낸 후 서서히 온도를 높인 후, 동결방지 보존액을 빼내고 혈액과 체액으로 대체한 후에, 전기 충격 등의 심폐소생술을 써서 살리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냉동 인간이 나중에 성공적으로 깨어나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사람을 대상으로 마음대로 얼리고 녹이는 실험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냉동과 해동은 참으로 구현하기가 어려운 기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체의 냉동과 해동에 관한 신비가 모두 벗겨진 것은 아니지만, 냉동기술은 꾸준히 발전하여 최근에는 항온동물인 개나 토끼도 얼린 후에 해동하여 살리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라고도 한다.
또한 인위적인 실험이 아닌 사고였지만, 예전에 캐나다에서는 13개월 된 아기가 영하 20도의 날씨에 밖에 나가서 눈에 파묻혀 꽁꽁 얼어붙었지만, 10시간 만에 발견되어 구조된 후 의료진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살아난 예도 있었다.
따라서 냉동 인간이 부활하기를 꿈꾸는 먼 미래에는 불치병의 치료나 생명 연장뿐만 아니라, 냉동 인간을 해동시키는 기술 역시 크게 발전하여 별 문제없이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냉동 인간의 부활 여부와는 별개로, 과연 되살아난 인간이 예전의 지능이나 기억들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는데, 이는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인간의 지능이나 기억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도 워낙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냉동과 해동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뇌의 신경망과 프로세스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지, 복잡하기 그지없는 신경세포와 기억회로망을 완벽히 복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냉동 인간을 되살리는 것 자체는 앞으로 가능할 것이라 믿는 과학자들도 기억의 유지와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뇌세포와 기억의 복구에 나노기술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즉 아주 미세한 나노로봇이 돌아다니면서 뇌의 신경세포와 회로망의 손상된 부분들은 복원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해석이다. 먼 미래에는 나노과학기술 역시 크게 발전하여 나노로봇을 실용화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앞으로 기대할만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