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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25)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은하 밝은 고요한 밤에는 새벽을 알기 어렵고(星河夜靜難知曉), 바람은 약해 종소리가 밤을 알리지 못하는데(鐘漏風微未報更)⋯ 첫 닭의 꼬끼오 소리 무척이나 듣기 좋구나(喜聽嘐嘐第一聲).’
이 글은 조선 전기 대학자이며 문인인 용재 성현 선생의 시 일부다.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성종의 명을 받아 1493년에 유자광·신말평과 함께 조선 음악의 교과서라 불리는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문학과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그는 새벽의 고요함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시를 통해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왜 닭은 동틀 무렵인 새벽에 우는 걸까?
척추 동물의 경우 뇌 중심부에 솔방울을 닮은 호르몬 분비 조직인 송과선(松果腺)이 있다. 여기에서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합성·분비되는데 멜라토닌은 낮과 밤의 일주기(日週期)에 따른 생리적·행동적 활동의 일상 리듬을 만드는 생체시계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은 빛이 약한 밤에는 분비가 촉진되어 수면을 유도하고, 빛이 강한 낮에는 분비가 억제되어 수면에서 깬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밤에 방의 전등을 끄지 않으면 잠을 자기 힘든 건 이 때문이다.
포유류는 눈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지만, 조류는 머리의 피부를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빛을 받아들여 송과선을 자극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훨씬 빛에 민감한 생활 주기를 갖는다. 이 때문에 새벽 동틀 무렵 희미한 빛에도 조류는 멜라토닌 분비 감소로 잠에서 일찍 깨어나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지저귄다. 닭 또한 이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아침을 알리는 알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현 선생의 귀에는 새벽 첫 닭의 울음소리가 듣기 좋았겠지만, 베드로 성인에게는 그 소리가 가슴 철렁한 천둥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번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에는 베드로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루카 22,33)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22,34)라고 하시는 장면이 있다. 실제 베드로는 새벽 첫 닭이 울기 전 예수님께서 끌려가실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22,62)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굴종, 자신에 대한 비굴함에 괴로워하던 베드로 성인의 인간적인 나약함은 첫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변모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때까지 교회의 반석으로서 역할을 다한다. 생명파 시인 청마 유치환은 1953년 그의 수상록 「예루살렘의 닭」에서 ‘위선이 선(善)을 능욕하는 그 부정 앞에 오히려 외면하며 회피하므로서 악에 가담하지 않았는가. 새벽이면 새벽마다 먼 예루살렘 성에 닭은 제 울음을 기일게 홰쳐 울고 (⋯) 사모치는 분함과 죄스럼과 그 자책에 눈물로서 베개 적시우노니’라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사순 시기는 깊은 성찰을 통해 세상과 자신에 대한 행동의 변모를 실천해야 할 회심(回心)의 시간이다.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 세상의 부정과 위선 그리고 자신에 비굴함에 대해서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겠다.
[과학과 신앙] (24) 사람 눈이 두 개인 이유
사람의 눈은 왜 두 개일까? 과학책에서는 이 질문에 원근감과 입체감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것은 눈이 두 개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누가 또는 무엇이 사람의 눈을 두 개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과학은 아직 답하지 못한다.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장점은 명확하다. 두 눈과 물체 사이에서 형성되는 각도를 광각(光角)이라 하는데 광각의 크기에 따라 뇌에서는 물체가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를 인지한다. 눈과 물체의 양 끝에서 형성되는 각도는 시각(視角)이라 하는데 물체의 크기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눈은 빛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기로서 사물의 형태나 색을 감지하고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게 하지만, 모든 동물의 눈이 사람 눈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물속에서는 멀리 있는 물체가 잘 안 보여 대부분 어류는 가까운 물체만 식별할 수 있는 근시(近視)이며 눈에 색을 감지하는 세포가 없다. 양서류인 개구리나 파충류인 뱀의 경우도 불완전한 눈의 기능으로 인해 다른 감각기의 도움을 받아야 먹이를 식별하며 색 구별을 못 한다. 조류의 경우는 사람보다 5∼10배 정도 멀리 볼 수 있는데 하늘을 날며 높은 곳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생존 조건과 관련 있다.
포유류인 개의 경우는 빨간색을 구별하지 못해 사람의 적록색맹과 유사한 시각을 갖고 있으나 뛰어난 코의 후각과 귀의 청각이 눈의 불완전함을 보완한다. 오직 인간과 침팬지 같은 일부 영장류만이 자연에 존재하는 많은 색을 볼 수 있으며 앞을 향한 두 눈으로 원근(遠近)감을 인지하고 사물의 크기를 파악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발달한 눈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과 타인에 대한 본질적인 원근 조절에 종종 실패한다. 세상에는 멀리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으며 반대로 가까이 클로즈업해야지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내면으로는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구석구석 성찰하고, 타인의 잘못이나 세상 일들에 대해서는 조금 떨어져서 전체적인 윤곽을 봐야 한다.
인터넷에 악플을 올리는 사람들, 남의 잘못에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가까이 다가간 적 있을까? 매주 한 번 수채화 수업에 간다. 스케치북에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제대로 채색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때 미술 선생님께서는 자주 “가까이서만 보면 안 보여요. 조금 멀리 두고서 보세요”라고 말씀하신다. 요즘 이 말의 의미를 자주 되새김한다. 세상일과 타인에 대한 원근 조절이, 정신의 시력이 필요하다.
이번 주 사순 제5주일 복음에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죄지은 여자를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라고 하시자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갔다.”(요한 8,9) 타인의 잘못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비난하기 전에 자신에 대해 가까이 보는 내면의 원근 조절이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시력을 잃고 멀리서 봐야 할 것은 너무 가까이서 크게 보고, 가까이서 봐야 할 것은 너무 멀리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과 신앙] (23) 사순절, 보라색에 대한 단상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유리 프리즘을 이용해 최초로 빛이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태양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이 나오는데, 데카르트는 빛은 원래 색이 없으나 프리즘의 재질 때문에 여러 색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국의 뉴턴은 1666년 두 개의 프리즘을 이용한 보다 정교한 실험을 통해 빛이란 여러 가지 색이 혼합되어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며, 빛이 유리 프리즘을 통과할 때 각각의 굴절률 차이로 혼합된 빛이 나누어져 여러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입증했다. 뉴턴은 1704년 그의 저서 「광학(Opticks)」에서 기존 통념을 깨고 색(color)이란 물체가 가진 성질이 아니라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의 성질이라고 결론지었으며, 프리즘을 통해 분리된 빛의 여러 색을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색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일곱 가지 색은 무지개에서 볼 수 있으며 빨강·노랑·파랑은 색의 3원색이라 부른다.
원색(primary color)이란 사전적 의미로 다른 색으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모든 색의 바탕이 되는 기본 빛깔을 의미한다. 그래서 빨강·노랑·파랑은 1차색이라고도 하며 1차색끼리 혼합해 만든 색은 2차색, 다시 1·2차색을 혼합해 만든 색은 3차색이 된다. 예를 들어 보라색(violet)은 1차색인 빨강과 파랑으로 만들어진 2차색이며, 자주색(purple)은 1차색 빨강과 2차색 보라로 만들어진 3차색이다. 인위적으로 합성된 첫 번째 색인 보라는 자연에서 가장 드물게 발견되는 색이다. 허브 식물의 대표인 라벤더나 붓꽃에서 보라색을 볼 수 있는데 염료를 자연물에서 얻었던 과거에 보라색은 귀한 재료여서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황제의 의복에만 보라색이 사용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보라색의 붓꽃 그림을 여러 점 남겼는데 보라색 자체가 주는 색의 매력에 이끌렸을 뿐 아니라 보라색 붓꽃의 꽃말이 ‘기쁜 소식과 행운’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집 「메르헨」에 아이리스(iris : 붓꽃)에 대한 글을 쓸 정도로 보라색의 붓꽃을 좋아했는데 그는 붓꽃이 피는 시기가 한 해의 가장 은총의 순간이라고 했다.
보라색은 가톨릭의 전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연중 시기 사제의 제의 색깔은 녹색이지만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 시기 제의 색깔은 보라색으로, 이는 통회·속죄·보속의 의미를 지닌다. 또 사제가 고해성사를 주관할 때 착용하는 영대 색깔도 보라색으로, 통회와 보속을 의미한다.
미국의 색채연구소 팬톤(PANTONE)사는 ‘2022년 올해의 색’으로 보라색을 선정했다. 보라색은 빨강과 파랑의 혼합이라는 의미에서 ‘서로 다른 가치의 화합, 커다란 대립의 통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분열과 반목을 보이는 빨강과 파랑의 극단적 대립도 사순 시기를 보내며 보라색이 지닌 의미처럼 통회와 속죄의 시간을 거쳐 화합과 통합으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헤르만 헤세가 말했던 보라색 붓꽃이 피는 은총의 시기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찾아오리라.
[과학과 신앙] (22) 정의의 저울
물리학과 화학에서 무게(weight)는 중력에 의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며, 질량(mass)은 물질이 갖는 고유의 양으로 정의한다. 무게의 단위는 N(뉴턴), 질량의 단위는 g(그램)이나 ㎏(킬로그램)을 사용한다. 무게는 장소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값이라 달에서 몸무게를 측정하면 지구에서보다 1/6 작게 나오지만 질량은 우주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값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두 용어는 구분 없이 사용되어 흔히 ‘내 몸무게가 70kg이다’와 같이 표현하는데, 과학적으로 이 표현은 오류이며 ‘내 몸의 질량이 70kg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또는 ‘무게=질량×중력가속도 상숫값(지구의 경우 약 9.8)’이므로 ‘내 몸무게가 686N(뉴턴)이다’라고 해야 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상업과 교역에서는 거래 대상이 되는 물질의 실질적 양이 중시되어 무게가 아니라 불변의 값인 질량을 표준으로 사용한다. 고기 600g(한 근), 금 3.75g(한 돈)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질량은 저울로 측정하는데 성경에 “아브라함은 (⋯) 은 사백 세켈을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게로 달아내어 주었다”(창세 23,16)고 쓰여있듯 인류는 예부터 저울을 사용했다.
기원전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저울 사용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 세계의 안내서인 ‘사자의 서(死者의 書)’에는 죽은 자를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가 양팔저울을 이용해 한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쪽에는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을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그림이 있다. 죄가 많은 자의 심장은 무거워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어져 지옥으로 쫓겨나고 반대로 저울이 깃털 쪽으로 기울면 영생의 세계로 간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원은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한 그림을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왼손에 저울을,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공평하고 엄정한 법의 기준, 칼은 법 집행의 엄격함과 강력한 권위를 상징한다.
요즘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유명 인사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거기에 따른 여론 반응이 보도되고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는 성경 말씀처럼 절차적 공정성과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
인간이라면 삶이 다하는 날 누구나 한번은 서야 할 법정이 있다. 그 어떤 법정보다도 상위에 있는 그곳의 재판관은 하느님이다. 우리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 동안 제대로 살아왔는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 그곳에서 간단한 셈법으로 정의의 저울을 마주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고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생각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큰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과 칸트가 숭고한 가치로 여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과학과 신앙] (21) 세균과 인간
1999년 프랑스 신문사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 목록에는 영국 작가 H.G.웰스가 1898년 집필한 공상과학 소설(SF) 「우주전쟁」이 있다. 웰스는 「타임머신」 「투명인간」 같은 유명한 SF 소설을 남겼으며, 그의 과학적 식견과 인류 문명의 지향점에 대한 깊은 고민은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준다.
「우주전쟁」은 지구 문명보다 앞선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한 이야기다. 화성인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나온다.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 존재라는 오만함을 꼬집고 당시 제국주의 영국의 잔악한 식민 지배를 고발한 이 작품은 여러 번 영화나 TV 시리즈로 제작됐다. 소설은 지구의 세균에 면역력이 없는 화성인들이 세균 감염으로 자멸한다는, 조금은 허무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이 쓰인 1890년대는 프랑스의 파스퇴르가 탄저균을, 독일의 코흐가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해 질병의 원인인 세균연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시기였다. 세균(細菌, bacteria)의 크기는 0.5㎛(마이크로미터)부터 0.5㎜ 정도로 매우 작아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세균은 중세 유럽 인구의 30~50%를 죽음에 이르게 한 페스트균이나 폐렴균처럼 질병을 일으키는 종류부터 유산균처럼 인간에게 이롭거나 인체에서 공생하는 비병원성 대장균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이 세균들도 각자 생존 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의 또 다른 창조물이다. 세균은 보이지 않을 뿐 생물의 몸, 공기, 물, 휴대폰 표면 같은 사물 등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단순한 세균감염이 치명적 합병증을 유발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28년 영국의 플레밍이 푸른 곰팡이가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이후 인간은 항생제를 개발해 세균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항생제 사용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군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간만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비웃듯 세균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 변이를 통해 진화하여 살아남아 지금은 어떤 항생제에도 견디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했다.
과학자들은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원시적인 세균의 출현을 38억 년 전으로 추정한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수십억 년 전부터 열악한 원시 지구 환경에 적응한 세균은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지구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좋든 싫든 세균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문학적 표현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호흡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이 폐렴인데 증상이 심할 경우 호흡부전과 사망에 이르게 된다. 폐렴은 60대 이상에서는 치사율이 30% 정도이며, 80대 이상에서는 50%나 된다. 현재 88세로 고령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양쪽 폐에 폐렴 진단을 받고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전 세계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교황의 쾌유를 기도하고 있는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디 세균과의 힘든 싸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 청해본다.
[과학과 신앙] (20) 재의 수요일에
환경부 소속 국립 생물자원관의 국가생물 다양성센터 자료에 의하면,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동물의 종류는 대략 100만 종이 넘고 식물은 32만 종이 넘는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몸은 부피와 질량을 갖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백질·지방·탄수화물 같은 유기물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물질들은 화학반응에 의해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원소(element)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 100여 가지 원소가 알려져 있으며 이 중 약 25가지가 생명체의 구성 및 생존에 필수적이다.
특히 탄소(C)·산소(O)·수소(H)·질소(N) 등 네 가지 비금속 원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96%나 된다. 이외에도 생명체 몸에는 칼슘(Ca)·칼륨(K)·나트륨(Na)·마그네슘(Mg) 같은 금속 원소가 존재하며 이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거나 중요한 생명현상 기능을 담당한다.
물질적 관점으로만 봤을 때 원소(원자)들의 집합체인 생명체는 죽음에 이르러 또 다른 생명체인 미생물에 의해 다시 개개의 원소로 분해되고 흩어져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원소로 회귀한다. 풀과 나무 같은 식물은 30여 종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을 태우면 탄소(C)·수소(H)·산소(O)·질소(N) 등의 비금속 원소들은 산소와 결합해 기체로 날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금속 원소들과 비금속 원소의 일부는 고체 산화물 형태로 남아 재를 이룬다. 따라서 재의 성분은 주로 산화칼슘(CaO)·산화칼륨(KO)·산화나트륨(NaO)·산화마그네슘(MgO) 등인데, 이들은 모두 염기성이다. 염기성 물질 중 물에 잘 녹는 것을 알칼리(Alkali)라 부르는데 어원은 아랍어에서 왔다. 영어의 정관사 ‘The’에 해당하는 아랍어 정관사가 ‘알(al)’이며 칼리(kali)는 ‘식물을 태우고 남은 재’를 의미한다.
비누가 없던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풀과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를 물에 녹여 빨래할 때 비누로 이용했다. 잿물은 비누와 같은 염기성이라 단백질을 분해하므로 빨랫감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냈기 때문이다. 또 밭에 재를 뿌려주기도 했는데 이는 재의 금속 원소 성분이 작물에 미네랄을 제공하는 천연비료 역할을 하여 생육을 도왔기 때문이다. 또 재의 염기성 성질은 잎과 줄기 및 토양 속 해충 접근을 막아줘 뿌리를 보호하는 천연 농약 역할도 하며 밭작물에 해가 되는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살균 효과도 있다.
죽음과 소멸을 상징하는 재가 이처럼 옷에 묻은 세속의 때를 씻어내어 새로움을 주고 풀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역설적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생명과 죽음은 시작과 끝이 아니라 영원의 연결고리이며 하느님 섭리가 아닐까 싶다.
3월 5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었다. 이날에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에 얹는 재의 예식을 치르며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는 말씀의 뜻을 깨닫도록 해준다. 재의 수요일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참 의미를 되새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