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박사, 『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
〇 10년 후의 계획을 세우면서 살았습니다.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수정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10년 전에 2025년에는 공기 좋은 곳에 세칸하우스를 갖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게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완성되기 전이지만 혼자만 누리는 것이 미안해서 몇 팀을 초대해서 함께 누리기도 했습니다. 2평의 텃밭에서 기른 상추, 노각, 가지와 토마토와 당근으로 웰빙식사로 또 다른 10년을 꿈꾸고 있습니다.
- 다른 한편 오늘을 바쁜 일만 따라 살지 말고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도 가지고 살았습니다.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당신이 살아 있는 오늘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라. 내일은 결코 보장되지 않았다.”와 간디의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인간은 자신이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늘 기억할 때 가장 자유롭게 산다.”는 명언을 가슴에 세기고 살았습니다.
- 10년 단위로 꿈을 꾸면서도 그날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원칙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을 조절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2025년 가을 문턱에서 삶을 돌아보다가 여유가 없이 쫓기는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찾다가 『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는 책을 발견하고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〇 줄거리
- 25년간 호스피스 의사로 환자들과 함께하며, 죽음 앞에 선 사람들에게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지금 후회하는 일이 있나요?” “나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삶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를 질문하여 스스로에게 묻도록 이끌었다.
- 많은 환자들은 병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절망하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저는(저자) 그런 환자들의 지지 덕분에 어떻게든 이 일을 계속해 올 수 있고,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사명이 있고, 모두 그저 사는 것만으로 그 사명을 다하고 있다.
- 사람들은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만 당시에는 항상 최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후회는 허상과 현재를 비교하는 불완전한 감정일 뿐이고 더욱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 죽음을 가정할 때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해 진다는 것을 개닫게 하기 위해서 “삶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소중히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지므로, 돈, 지위, 명예 같은 것보다도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을 사람, 느끼고 싶은 감정, 남기고 싶은 말등을 선명하게 정리하도록 하였다.
- 많은 사람들이 “나다움”을 ‘내 뜻대로 살고,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긴장할 때, 힘들 때, 인내하고 배려할 때조차도 그것이 곧 ‘나답게 사는 모습’이라는 것. 결국 나다움은 완벽한 순간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선택의 집합체이다.
- 누구도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일상 속 작은 선택들을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수없이 자유롭게 결정하며 살아왔음을 직시하게 하여 매 순간의 선택 자체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 불임 치료 끝에 아이를 얻었지만 곧 암에 걸린 환자, 은퇴 후 아내와 세계여행을 꿈꿨지만 폐암을 발견한 환자의 사례를 통해서 죽음은 분명 괴로운 것이지만, 그 앞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오히려 성숙해질 기회로 삼을 수 있다.
〶 기억에 남는 문장
-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일부러 나쁜 쪽을 고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항상 더 좋다고 생각하는 쪽을 고를 테지요. 또 후회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만약 다른 길을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한 미래와 현실을 비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집중하면 아무래도 지나치게 많은 것을 떠올리고 맙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지위, 명예를 손에 넣는 데만 급급하거나 남의 눈을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기도 하지요. 물론 그런 것을 고려하는 일도 살아가는 데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거나 갖가지 속박에 얽매여, 애초에 결정할 때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을 놓칠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을 때 어떻게 마지막을 맞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지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이 분명하게 떠오릅니다.
- 나답게 산다는 것과 항상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 자기주장을 펼치는 모습, 내 뜻대로 살 때의 모습과 반드시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긴장해서 편안하지 못할 때도, 기분이 나빠서 힘들 때도, 배려와 인내하는 순간도 우리는 사실 나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지금까지 보여 준 자신의 모습이 싫거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가 꿈꾸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생각. 이 생각이 나답게 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더 좋은 선택을 반복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꼭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고 있는 선택의 과정을 바라보세요. 자신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자유롭고 당연하게 선택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분명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내일부터 더 의식적으로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〇 느낀점
- 총 17개의 질문으로 죽음을 전제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여 스스로 나다움의 선택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어떤 사명이 있고, 모두 살아있는 것만으로 그 사명을 다 하고 있디고 주장합니다.
- 《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는 제목에 따라서 노트에 2025. 8. 21 죽게 될 것이라고 쓰자, 당장 연명치료 중단의 선을 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한다는 기준만 있을 때는 여유 없이 쫓기는 마음이 었다면, 1년이라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에 여유가 생긴는 것을 느끼었습니다.
첫댓글 오자와 다케토시, 『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 필름(Feelm), 2022.02.22.
단 하루를 살아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면 바울과 같이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것 같습니다 다 이루신 그 분의 형상을 지음받은자로서 열심히 달려가는길에 응원군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