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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태국의 유소년축구팀이 동굴탐사를 갔는데 갑작스러운 폭우로 불어난 물이 동굴입구를 막고 동굴속으로 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중학생정도의 축구선수 12명과 지도교사 1명이 실종된 것입니다. 이들이 실종된 것은 6월 23일이었고 실종소식과 함께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시신이라고 수습하기 위해 부모들이 모여 기도하며 종교의식을 하던 9일째되는 날 7월 2일에 동굴로 수색작업을 나갔던 영국 다이버팀에 의해 동굴입구로부터 약 4Km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중간중간 물이 차있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약 3Km이상되는 거리를 잠수를 통해 나와야하기 때문에 발견과 동시에 구출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음식물을 가져다 주고 수중잠수훈련을 시키고 하루 3~4명씩만 구출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7월 11일 드디어 13명의 축구팀 실종자들을 모두 구조하게 되었습니다. 구조과정중 1명의 태국 특수부대 네이비실 군인 한 명이 희생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TV와 인터넷뉴스등 언론을 통해 살펴보던 사람들은 모두 노심초사 초조하게 지켜보았지만 그 누구보다 더 안절부절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바로 유소년축구선수들의 부모님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그 당시에 자녀를 둔 부모님의 마음은 우리가 이해를 한다고 말해도 진정한 이해와 위로를 해줄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을 만한 한 명의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 아버지는 귀신들려 수시로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며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외아들이 있는 아버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귀신들린 아들과 그 아들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기를 원하는 아버지, 그리고 귀신을 내어쫓아달라고 요청을 받았으나 귀신을 내어쫓지 못한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삶속에 귀신이 들어올 때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과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해야할 영적인 은혜를 살펴보고 진정 영적 삶속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는 귀한 은혜가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알아야할 것...
악한 영이 우리의 생활에 들어오면 첫째로, 육신이 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39절입니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오늘 본문을 보니 귀신들린 아이는 온갖 소리를 내며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흘리고 스스로 몸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귀신들려서 행동하는 이 아이가 정확하게 어떤 모습을 보였을런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귀신들린 사람, 정신분열증이 있는 사람 등 뭔가 자기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살아오면서 한 번 정도는 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들려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자신에게도 위협을 가하고 자신의 몸을 상하면서도 그것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이 건강한 삶인지 깨닫지 못하고 윤리와 도덕도 모르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양식도 모르며 악한 영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마치 서울광장에서 지금 퀴어축제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영에 매이면 자신들의 부도덕, 비윤리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도 악귀들린 사람의 행동이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19장 16절입니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벗은 몸으로 돌아다니고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하게 하며 살아갑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선지자와 바알선지자의 갈멜산싸움이 등장합니다. 갈멜산에서 각자의 신에 대한 종교예식을 하며 신을 찾을 때 그 신이 불을 내려서 제단에 있는 송아지를 태우는 역사가 일어나면 그 신이 참신이라고 인정하자는 내기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 먼저 바알선지자들이 그들의 종교예식대로 바알을 찾습니다. 제단주위에서 뛰며 굴리며 북과 징을 치며 온갖 큰 소리로 바알을 찾습니다. 그래도 어떤 징조도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열왕기상 18장 28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귀신의 종교 바알종교추종자들은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종교예식 규례대로 칼과 창으로 그들을 몸을 상하게 하면서 바알을 찾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알이 불을 내렸습니까? 아니요 내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신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을 기뻐하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악신, 사탄마귀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이 어떻게 자신의 백성을 몰락으로 내어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자살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속에 악한 영이 그 몸을 사로잡아서 그렇다 말씀드리기에는 그렇지만 최소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관리를 잘하고 못하고는 있을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몸을 해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바알선지자와 엘리야의 싸움에서 바알선지자의 제단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순서였습니다. 엘리야는 제단 주위로 물이 흘러내려가는 도랑을 내고 송아지위에도 엄청난 불을 붓습니다. 아니 불이 내려 태워야할 제물에 물을 붓는게 말이 됩니까? 억지로 불을 붙여도 불이 나지 않을 정도로 촉촉하게 제물에 물을 붓고 제단도 촉촉하게 젖게 만들고 제단주위에도 많은 물이 모아진 도랑을 만들었느니 정말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어떤 종교예식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앞에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 기도이후에 불이 내려서 번제물을 태우고 나무와 돌을 태우고 흙도 태우고 도랑의 물이 불로 인해 바짝 바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인간에게도 해를 끼치지않고 오히려 도와주시고 기적을 허락하시고 신비한 일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이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진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의 확실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며칠간 굶주린 사자가 있는 사자굴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몸이 상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다니엘 6장 23절입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귀한 약속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7장 16,17절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악한 영에 매여 몸이 상하고 육신이 괴로워지는 일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운 일들, 힘든 일들속에서 육신이 강건하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알아야할 것...
악한 영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둘째로, 문제해결을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것을 악한 영이 방해합니다.
누가복음 9장 41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모인 사람들을 책망하시며 예수님께서 언제까지 참으시겠냐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말은 어려운 일들, 힘든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간적 방법에 의해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세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40절, 41절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항상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 읽은 41절을 우리가 묵상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라고 오해하며 읽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의 신앙적 가치관을 책망하시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뒤틀려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했던 아버지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를 책망하시려면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외시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를 따라다니고도 이런 영적 능력을 행하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틀어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제자를 책망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영적 능력이 어떤 수양이나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으십니다. 우리도 종종 착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어떤 사람들을 찾습니다. 어느 사람은 능력이 있느니 어느 사람은 능력이 없느니라고 따지며 찾다가 결국 마지 못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느 사람도 능력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능력만이 참된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귀신들인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는 예수님께 나오면 해결받는다고 생각하기전에 인간적인 방법을 찾았고 예수님앞에 왔어도 예수님을 찾기보다 예수님의 제자를 먼저 찾았습니다. 지금식으로 표현하면 아이가 영적인 문제가 생겨 제대로 생활하지 못할 때 자기 교회 목사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어디 목사님이 기도빨이 세다더라 어디 목사님이 신유은사가 있다더라하면서 다른 교회 찾아가고 이교회 저교회 막 옮겨다니며 사람을 찾아다닌 것입니다.
어떤 영적 은사를 가지신 목사님, 중직자들을 보면서 대단한 영적 훈련과 고행등을 통해 뭔가를 이뤄낸 분들로 착각하며 대단한 노력이 영적 은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은 착각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망령되이 만드는 일이고 결코 기독교신앙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사탄마귀는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막습니다. 사람을 찾아다니게 하며 사람을 의지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막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4,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그러면서 자기 교회 목사님에게 기도부탁을 하며 해결해야하는데 신앙가치관에 따른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 제자라고 하더라도 사람일 뿐입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나 보이는 목사라도 인간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야 되는 것이지...사람들에게 매달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탄마귀는 하나님을 찾기보다 인간의 이성과 우리의 합리적 사고로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찾기보다 인간을 찾고 나의 능력을 찾고 내가 의지할만한 세상의 것들을 찾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사탄마귀의 공작에 넘어져서 우리 스스로 뭘 할 수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알아야할 것...
악한 영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셋째로, 예수님께 나와 문제를 해결받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 42절입니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결국 오늘 본문에서 귀신들린 아들이 낫게된 이유는 이 아들을 예수님께 들고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짐을 예수님께 맡길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모든 짐을 예수님앞에 들고나와 예수님께 기도하며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시도록 간절히 매달려야합니다. 시편 55편에 시편기자는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고 노래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준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두 친구가 똑같이 20킬로그램짜리 배낭을 지고 등산을 합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죽을힘을 다해 올라가는데 다른 친구는 가볍게 올라갑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배낭을 싸는 법이 달라서입니다. 등산을 많이 다닌 사람은 배낭 싸는 법을 잘 압니다. 가벼운 것을 아래에 넣고 무거운 것을 위에 넣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무거운 것을 밑에 넣습니다. 이것이 아래로 잡아당기니 허리가 뒤로 젖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자신이 뭔가를 해 보려는 의지와 힘을 전부 빼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에 집중해서 순종하고 따르는 연습을 하십시오. 자꾸 내가 애쓰고 머리를 쓰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기쁘지 않고 지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승리의 길을 목자를 따라가는 양처럼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양이 혼자 앞서 가 보겠다고 난리를 친다면, 목자인 예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혼자 그 무거운 짐을 다 지고 살아왔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시고 모두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물 흐르듯 임하시는 성령님의 만지심과 하나님의 부요가 채워집니다. 험한 나그네 인생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충분한 은혜와 부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4장 29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보통의 새들은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갯짓을 합니다. 이 날갯짓을 통해 새들은 자신의 뜻대로 날아갈 수 있지만, 대신 바람이 너무 강하거나, 폭풍이 몰아칠 때는 날지 못합니다. 게다가 기류가 심한 높은 하늘 역시 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조금 다릅니다.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바람의 흐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공을 날다가 바람의 흐름을 발견하면, 독수리는 날개를 고정시키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능력 때문에 독수리는 폭풍우 속에서도 날 수 있고, 또 다른 새들보다 훨씬 높은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거친 바람 속에서도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바람을 헤칠 강한 날개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기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우리를 온전히 맡길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은혜의 흐름을 깨닫는 것뿐입니다. 주님과 함께 함으로 높은 하늘로 비상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악한 영이 우리에게 찾아오면 우리에게는 마음의 병이 생기고 육신의 병이 생기고 결국 고통과 좌절속에 살아가고 우리 스스로 우리를 힘들게 만들며 살아갑니다. 이런 일을 끊기 위해서는 악한 영을 대적하고 악한 영의 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합니다.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능력으로 사탄마귀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만이 사탄마귀의 권세를 끊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악한 영이라고 할지라도, 너무나 어둡고 암담한 사탄마귀의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위엄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속에 악한 영이 쳐들어와 우리 중에 영적인 병이 찾아오고 육체적인 고통이 찾아와도 영적 분별력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사탄마귀의 공격에도 좌절하고 낙담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붙들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악한 영의 유혹과 악한 영이 우리에게 주는 질병과 고통도 하나님께서 그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악한 영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사탄마귀는 절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권세로 항상 믿음가운데 사탄마귀를 대적하며 이겨내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