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좌충우돌하면서 보낸 시간이 6개월이 지났다.
이젠 가족들과 매일 마주 하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과도 어색함 없이 지내게 되었다.
영어와 수학은 쉬는 시간과 등하교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다 보니
바닥에 가깝던 학급 석차가 상승해 담임 선생님도 깜짝 놀랄 만큼 성과가 있었다.
성적도 차츰 안정세를 보이자 이번에는. 부모님의 가슴을 놀라게 했던
악기 연습은 손가락이 멍이들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부잣집 막내아들 차 현,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체육등 예체능에도 재능이 있었는지, 지하실 창고
오래된 앨범에는 그의 사진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현의 과거사를 몰랐다면, 등한시했을
것들을 확인 한 순간 형 인 후에게 뒤쳐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특히 현의 가족들, 특히 아버지는 골프를 좋아하셨다. 휴일이면 비서진들과 중역들과 함께 라운딩을 즐겼는데
엄마도 골프 실력이 월등했다.
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이 되자, 회사 규모와 한국 재계에 끼치는 영향등, 경영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장남 후는 아버지 회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는지,
인간의 몸을 해부하고 싶어, 의대에 가기를 희망했다.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와 하필 의대에 진학하는지 의아해했다.
후의 취미는 독특했다. 일반적인 그 나이 또래는, 프라모빌이나 컴퓨터 게임을 좋아 하지만
후는 애완동물을 돌보는 취미가 있었는데, 희귀한 동물 중에서 냉혈 동물인 뱀을 길렀다.
한 번은 형 방에서 형과 놀고 있는 뱀을 보고 기절초풍할 뻔 했다.
징그러운 뱀을 마치 강아지와 놀이 하듯 하는 후의 모습을 보고 인간미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언젠가 한번은 내 방에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오더니, 뭔가 차가운 것을 내 목에
감는 것이다.
순간 너무 차갑고 징그러워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자식 개자식 나는 뱀 따위는 좋아 하지 않아,,,,"
"너만 좋으면 되지 왜 나까지 좋아 하게 하는 거야."
"나쁜 자식
그러자 후는 미소를 거두고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너, 내 동생이라고 봐주지 않아
너도 예전에는 귀엽다고 좋아 했잖아
내가 언제 뱀을 좋아 했다고 그래
형 혹시 변태 아냐
뭐라고 이자식이 누구 한테 변태라고 하는 거야
그날 이후 형과 나는 서먹한 상태로 보냈다.
방학이면 우리 가족은 외국에 사놓은 새컨드 하우스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방학은 학교는 쉬지만 공부의 양은 국내에 있을 때 보다 강도가 쌨다.
플로리다에 있는 집에서 형과 나는 현지인 선생님을 모시고,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식사 예절을 배웠고, 쇼핑가에서는 현지인처럼 직접 통역 없이 쇼핑했다.
후의 영어는 유창했다. 내 기준으로는...
형은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잠시 쉬는 틈에 형은 미국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 부딪치며
현지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형은 키가 크고 호남형이라 현지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용기가 없어서 우물쭈물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언어 습득 능력도 뒤쳐지고 자신감을 상실했다.
형은 s대 의예과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의사가 탄생했다고 좋아하시면서, 장차 의료계 투자에 투지를 불태우셨다.
이때부터 부모님은 형처럼 공부를 찰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공부보다는 다른 일에 흥미가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 나는, 엄마를 졸라서 지하실에 빵 만드는데 필요한 오븐기와 믹싱기
들여놓고 머리가 복잡할 때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향긋하고 달콤한 빵 냄새는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다.
아빠는 공부 보다 빵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나를 혼냈지만 그럴수록
내 이름으로 된 제과 브랜드를 만들어서 전국에 체인점을 열고 싶었다.
부모 도움 없이 오롯 혼자의 힘으로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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