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 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悲愴)>이
이 격리된 나요양소(癩療養所)에
국경도 없이 차별도 없이
또 세균학도 없이
뇌파에 흐흐 느끼어 온다.
지금 나는 옛날 성하던 게절에 서 있고
지금의 나는 여기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수없이
떠내려온 하류에서
불시 나는 나의 현실을 차 버린다.
두 조각 세 조각 산산이 깨어진다.
지금
모든 것이 깨어진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만이
영원으로 가는 것이다.
*해변에서 부르는 파도의 노래
바다 !
억겁(億劫)을 두고
오늘도 갈매기와 더불어 늙지 않는 너의 청춘,
말 못할 가슴속 신음 같은
파도 소리
한시도 쉴 새 없이 처밀고 처가는
해식사(海蝕史).
바다의 꿈은 대기 만성(大器晩成)인가
영겁을 두고 신념의 투쟁인가
바다는 완성한다 !
욕망이 침묵하는 그 속에서
황혼이 깃들어
저녁 노을의 빛·빛·빛
변화가 파도에 번질거린다.
*三防에서
사람도 올 수 없이 막았다
구름도 올 수 없이 막았다
바람도 올 수 없이 막았다
그래서 삼방이라 하였는가
하늘을 찌르는 칠전팔도(七顚八倒)의 험산이
모조리 올 것을 막아버린 천험비경(天險秘境)에
구비 구비 곡수(曲水)는 바위에 부딪쳐 지옥이 운다.
죽음을 찾아가는 마지막 나의 울음은
고산(高山) 삼방 유명을 통곡한다.
죽음을 막는가
바람도 없어라
부엉이는 슬피 우는가
하늘이 쪼각난 천막에
십오야 달무리는
내 등 뒤에 원을 그린다.
*秋夜怨恨
--어머님의 옛날에......
밤을 새워 귀또리 도란 눈물을 감아 넘기자.
잉아 빚는 물레소리에 밤은 적적 깊어만 가고.
천상스리 한숨 쉬며 어이는 듯한 그리움에 앞을 흐리는 밤.
눈물은 속될진저 오리오리 슬픈 사연을 감아 넘기자.
바람에 부질없어 문풍지도 우는가
무삼일 속절없는 가을밤이여.
*思 鄕
내 고향 함흥은
수수밭 익는 마을
누나가 시집갈 때
가마 타고 그 길로 갔다
내 고향 함흥은
능금이 빨간 마을
누나가 수줍어할 때
수수밭은 익어갔다
*버러지
새살이 하려 찾아온
또 새손댁 금실기가
바램에 부풀은 눈시울에
똑똑히 삶을 그린 눈썹이 시물구나
손가락 떨어지면
손목은 뭉뚝한 몽두리 됐다
분에 못견딘 삶이래서
내 몽두리도 마구마구 휘어때린
매 맞는 땅바닥은 태연도 한데
어이 억울한 하늘이 울음을 대신하나
한 가지 약을 물어 천 가지를 바래며
전설로 걸어가면 신기(神奇)를 만나련가
이 실천이 꿈이련가
꿈이 실천이련가
큰 목적을 위하여
이 몹쓸 고집을 복종시키자
인내만이 불행을 달래어 두고
의심만이 나와 소근거리자
버러지 버러지 약 버러지
놀래 자지러진
네 너로 네딴으로 죄없단 빛이
누두둑 푸른 피 흘려 흘려
헒 짙은 목덜미에
왕소름을 끼친다
내가 버러지를 먹는지
버러지가 나를 먹는지
*國土遍歷
이 강산 가을 길에
물 마시고 가 보시라
수정에 서린 이슬 마시는 산듯한 상쾌이라.
이 강산
도라지꽃 빛 가을 하늘 아래
전원은 풍양과 결실로 익고
빨래는 기어이 백설처럼 바래지고
고추는 태양을 날마다 닮아간다.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빛도 고운 색채 과잉의 축연
그 사이로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은
하늘과 구름과 가즈런히 멀기도 한데
마을 느티나무 아래
옛날이나 오늘이나 흙과 막걸리에
팔자를 묻은 사람들이
세월의 다사로움을
물방아 돌아가듯이
운명을 세월에 띄워 보낸다.
전설이 시름없이 전해지는
저 느티나무 아래서
나는 살아 왓었다.
저 느티나무 아래서 나를 기르신
선조들이 돌아가셨다.
저 느티나무 아래서 저 사람들과
적자생존의 이치를 배웠다.
이제 나보고 병들었다고
저 느티나무 아래서 성한 사람들이
나를 쫓아내었다.
그날부터 느티나무는 내 마음속에서
앙상히 울고 있었다.
다 아랑곳 없이 다 잊은 듯이
그 적자생존의 인간의 하나 하나가
애환이 기쁨에 새로와지며
산천초목은 흐흐 느끼는 절통(切痛)으로
찬란하고 또 찬란하다.
아 가을 길 하늘 끝간 데
가고 싶어라 살고 싶어라.
황톳길 눈물을 뿌리치며
천리 만리 걸식 길이라도
국토 편력 길은 슬기로운 천도(天道)길이라.
*癩婚有恨
흙이 있다. 하늘의 구름과 푸른 지평은
넓기만 한데
문둥이가 살 지적도는 없어
버림받은 사내와 버림받은 계집이
헌 신짝에 짝을 맞추는 것이
어쩌면 울고 싶은 울고 싶은
하늘이 마련한 뼈아픈 경사냐
신부는
오늘만이라도 성냥개비로 눈썹을 그리고
인조 면사포에 웨딩 마아치는 들리지 않으나
5색 색지가, 색지가 눈같이 퍼붓는데
곱게 곱게 다가서라
진정 그와 그만의 짐승들만이
통할 수 있는 인정이 사무쳐
양호박 울둑불둑 얼굴이 이쁘장해
연지바른 신부, 너 모나리자여
서식(棲息)의 허가(許可) 없는 지대(地帶)에서
생명(生命)의 본연(本然)이 터지는 사랑을 허락하니
하늘이 웃어도 할 수는 없어
애당초 족보가 슬퍼함을 두렵지도 않고
오늘은 이 세상에 왔다가
내일은 저 새상에 간다고 하니
오, 문둥이의 결혼이여
분홍빛 치마폭으로 신랑방 문을 가려라
어서 어서 태양 앞에 새롭게 다가서라
*恩律 彌勒佛
논산 땅 은진 미륵불(恩津彌勒佛)
돌로 천년
살아 오신 육십 오척
몸 길이가
얼굴 길이가
갓 길이가
균형을 잃은
웅장한 험절의 어처구니 없는
옛날의 불구자.
앙데팡당의 뉘 석장이
그지 없는 인간고의 초극상(超克像)을
스핑크스로 아로새겼나.
비원(悲願)에 우는 사람들이
진정소발(眞情所發)을
천년 세월에 걸쳐
열도(熱禱)하였건만
미륵불은
도시 무뚝뚝
청안(靑眼)으로
세월도
세상도
운명도
그렇게만 아득히 눈짓하여
생각하여도 생각하여도
아 그 마음
푸른 하늘과 같은 마음
돌과 같은 마음
불구한 기립(起立) 스핑크스로
세월도
세상도
운명도
집착을 영영 끊고
영원히 불토(佛土)를 그렇게만 지키는 것인가.
*春因
꽃샘바람은
꽃이 시새워서 분다지만.
초근목피에 주린 배를 채우면
메슥 메슥 생목만 올라
부황증(浮黃症)에 한속(寒粟)이 춥다.
노고지리는
포만증(飽滿症)을 새기느라
진종일 울어야 하지만
아예 배고픔을 내색않는 문둥이는
얼마나 울어야 하는 이야기인가.
굶주림은
죽음보다도 더 무서워
아지랭이는
아지랭이는
비실 비실 어질병만 키운다.
*작약도
인천 여고 문예반과
작약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에
소녀들이 작약꽃처럼 피어
갈매기 소리없는 서해에
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
소녀들의 바다는
진종일 해조음만 가득찬 소라의 귀
소녀들은 흰 에이프런
귀여운 신부
밥짓기가 서투른 채
바다의 부엌은 온통 노래소리
해미(海味)가에 흥겨우며
귀여운 신부와
한 백년 이렁저렁 소꼽놀이
어느새
섬과
바다와
소녀들은 노을 활활 타는 화산불
인천은 밤에 잠들고
소녀들의 눈은 어둠에 반짝이는 별, 별빛
배는 해각(海角)에 다가서는데
소녀들의 노래는 <Aloha oe>
선희랑 민자랑 해무(海霧) 속에 사라져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Aloha oe>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안녕
<Aloha oe> 또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
*상달
가을 들판에
이삭들이 익으면
황금의 왕국
흙의 영가는
조국 산신(産神)에
상달 풍년 고사인데
굶주림을 허리끈으로
양식삼아 졸라매던
보리고개 보리고개
눈물이 도네
이제 풍양한
황금의 왕국은
연가(戀歌)가 에헤라 데헤라
*山가시내
산 두메
하 좁아
앞 뒤 산을
빨래줄 치네
울 아범
뭐 보고
이 산골에
사나
나이 찬 가시내는
뻐꾹새 울면
머릿채 칠렁이어
숨만 가쁘네
*旅 愁
이 세상 다할 때까지
죽자고 살아보자던 사람.
만나보자고 찾던 사람.
한번은
만나봤어야 할 사람이였지만
어쩐지
망설였던 사람.
세상과 문둥이는 너무나 담이 높아
얼마나 얼마나 많이 울어서 무너뜨려야 할 담이 높아
서로 길이 헛갈리누나
이제 그 사람을 찾아 온
천리땅 대구(大邱)길은
경(慶)
그 사람은 가고
허전한 여수(旅愁)는
그런대로 사랑했던 까닭인가.
*歸 鄕
고향으로 가는 길은
자꾸만 뜨거워지는 것은
달랠길 없어
한때의 잘못된 죄는
꽃도 없는 캄캄한 감옥 속에
벌을 몸으로 치르고
이제 법 조문보다
자유로운 고향길을 가는데
산천을 소리쳐 불러보고 싶구나
고향을 소리쳐 불러보고 싶구나
산에서 들에서
뻐꾸기가
누구를 부르는가
누구를 찾는가
내 마음같이 흔건히 울고 있는데
산천은 전과 같이 나를 반기네
고향도 전과 같이 나를 반기네
정말
법 조문이 무엇인가
자유가 무엇인가
인생도 알듯 하는데
산천초목은 엽록소 싱싱하게 푸르러
하늘과 바닷빛
아스라한 하늘 끝간 데
영원에서
영원으로
생명이 넘쳐 흐르고...... .
첫댓글 한하운 시인도 말년에는...
한센병이 다 나아서 소록도를 떠나 뭍에서 돌아가셨다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