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에서 나란히 달리던 44, 46번 국도는 한계삼거리에 이르러 작별을 하고, 46번 국도는 고성과 속초로, 44번 국도는 바로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이어진다. 힘겹게 오르던 한계령 정상까지도 잠시 아찔한 내리막길이 쉼 없이 이어진다. 몇 굽이를 돌아 내려가다 보면 흘림골의 들머리인 흘림5교에 이른다. 한계령 7부 능선으로 높은 지대지만 흘림골의 비경은 한 차례 한없이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계곡이 깊으면 안개가 잦은 법. 흘림골은 늘 안개가 끼고 날씨가 흐린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자연휴식년제로 묶인 지 20년 만에 지난 2004년에 개방됐다. 하지만 개방도 잠시, 2년여 만에 큰 재앙이 닥쳤다. 2006년 7월에 시간당 120밀리미터가 넘는 폭우가 사흘 동안이나 쏟아졌다. 이 폭우로 한계령을 넘나드는 도로가 유실되고,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면서 도로를 가로막았다. 수해가 일어난 지도 벌써 8년. 옛 모습을 많이 되찾긴 했지만, 군데군데 수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흘림골은 등선대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여심폭포까지는 그런대로 쉽게 오르지만, 여심폭포부터 등선대 입구까지 300미터에 이르는 구간은 깔딱고개라 부를 정도로 매우 가파르다. 여심폭포는 높은 기암절벽을 타고 2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다. 한때 폭포수를 떠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알려지면서 신혼부부가 많이 찾던 명소이기도 했다. 등선대까지 오르는 길은 30~40분이 꼬박 걸릴 정도로 힘겹다.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 보면 등선대 입구에 이른다.
이제 신선이 날아올랐다는 등선대로 올라보자. 등선대 암봉으로 이어지는 철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 전망대다. 기암절벽으로 무장한 칠형제봉이 나란하고, 북쪽으로는 설악산 서북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기골장대한 헤라클레스를 닮았다. 그 아래로 한계령휴게소와 골짜기 사이로 숨어드는 44번 국도도 내려다보인다. 등선대 아래로는 송곳처럼 뾰족한 암봉들이 날을 세우고, 암봉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이 그 풍경에 무게를 더한다. 등선대에서 펼쳐지는 설악산의 장관과 단풍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