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인사 나누는데요. 오늘은 좀 특별하게 봄날이 느껴지는 이때 봄날입니다. 봄처럼 회복합시다. 네 피어납시다. 네 하천을 걷다 보니까 벌써 버드나무 잎사귀들이 막 파릇파릇하게 조금씩 나는 게 느껴지는 벌써 계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봄날에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서 더욱더 회복하고 또 온전히 일어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로 먼저 정리해 봅니다. 여러분들은 마치 드라마를 보듯 이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 보십시오. 어느 날 갈릴리 호숫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런데 갑자기 그들 가운데 한 남성이 막 그 무리들을 파고 헤치더니 예수님 앞으로 나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야이로 회당장입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발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예수님 제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오셔서 고쳐주세요.
예수님은 그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고 가자고 하시고 그와 함께 그 길을 따릅니다.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 길을 갑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달려와서 이야기합니다. 야이로 님 딸이 죽었습니다. 더 이상 이제 예수님을 괴롭게 힘들게 하지 마십시오 하면서 슬피 웁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셔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예수님은 그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숨을 거두는 시기이기 때문에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을 비웃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고 아이의 부모와 3명의 제자를 데리고 소녀 방에 들어가 그 소녀의 손을 잡아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그리고 그 소녀는 벌떡 일어납니다. 여러분 지금 머릿속에서 이 장면들을 이렇게 회상하면서 따라가 보면 아주 참 놀라운 역사를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한 장면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믿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특히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 지금 우리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하는데 우리 믿음에 대해서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지 또 그 믿음이 어떻게 하면 굳건하게 계속적으로 세워져 가는지 또 이 믿음은 어떤 역사를 이루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앞쪽에 22절에 보면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회당장 중에 하나인 야이로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 소개하고 있어요. 그 인물은 야이로입니다. 야이로라고 하는 이름 자체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야이로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주의 깊게 볼 단어는 회당장이에요. 회당장은 그 당시에 유대교 회당을 이끌어가는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했던 일들을 살펴보면 회당의 예배를 주관하고 회당에서 행정과 재정을 관리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습니다. 마을에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그러한 어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이 장면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보니까 그렇죠 그 당시의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건 지금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 동네 어른이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30대 초반의 청년 앞에 엎드린 거예요. 받아들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건 질서를 뒤엎는 일입니다.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도움을 청하는 것 어쩌면 회담장의 입장으로 보면 체면의 문제도 있었을 겁니다. 모두가 존경하던 그 권위에 손상이 갈 수도 있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는데요. 요한복음 9장 22절 중반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역하는 그 과정 속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경우 그들은 출교 당합니다.
여러분 출교라는 말이 우리는 교회를 떠나게 한다 이런 의미로만 생각하면 별거 아니잖아요.
뭐 그냥 내가 원하는 다른 데로 가버리지 뭐 아니요. 이 당시에 이 유대교 문화에서는 출교는 완전히 그들의 삶 속에서 배제돼 버리는 겁니다. 삶의 터전을 다 잃어버리는 걸 의미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유대교 지역의 최고 지도자인 회장장인 야이로가 지금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회당직이라고 하는 그러한 직분을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출교를 당할 수도 있는 그 상황 속에서요.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다 알면서도 이 아이로는 예수님 앞에 왔고 엎드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을 보니까 자기 딸이 죽을 상황에 처했고 예수님이 자기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는 정말 붙드는 심정으로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 안에 자리 잡자 지금 자기가 자기의 딸을 살려주기만 한다면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체면 권위 직업 성공 그런 건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보고 느낀 겁니다.
근데 어떻게 이 회당장 야이로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만약에 이 야이로의 딸이 죽을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 아이로가 이렇게까지 믿음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요?
그 당시에 유대교회 지도자들의 그 분위기를 보면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이 야이로도 다른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비방하고 예수님을 멀리만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딸이 죽을병에 걸리니까 이 아이로라고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작은 믿음이 그 안에 뒤집어 들어가게 된 것이죠.
여름철 우리 계곡에 가면 시원한 물에다가 수박 한 통 탁 담가놓고 수박이 시원하게 익어서 우리가 이렇게 먹잖아요. 근데 수박을 보면 그 딴딴한 그 겉표면이 물속에 넣어놔도 절대 물이 그 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수박에 우리가 맛을 본다고 이렇게 세모랗게 조각을 내놓고 맛을 딱 보잖아요. 그렇게 조그마한 구멍 한 개만 만들어놓고 물속에 담그는 순간 그 수박에는 물이 그냥 꽉 차버리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굳게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참 많아요. 요즘 특별히 복음에 대하여 마음에 다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내가 복음을 전해도 전도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아 보여요.
그런데 여러분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삶의 빈틈이 생겼을 때 그때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를 격려해주고 도와주면 그들의 마음의 틈 사이로 복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위기가 우리가 영적으로 볼 때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길 수 있는 영적인 기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믿음이 굳건해질 수 있는 그런 기회입니다.
혹 여러분들 가운데도 지금 상황에서 어렵고 힘들고 정말 붙들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있는 여러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또 여러분들 주변의 위기 가운데 지금 살고 있는 어떠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우리가 기도로 따뜻하게 다가가서 복음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삶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들에게 지금이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5절에 보니까 이제 그 예수님이 이제 야이로와 함께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 딸이 죽었다라고 하는 소식을 긴급하게 전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야이로의 입장에서 지금 이 장면을 생각해 볼게요.
야이로는 자기의 체면 권위 어떤 거 다 내려놓고 오로지 자기 딸을 살리겠다는 마음에 예수님을 붙드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믿음으로 간절히 구했는데 예수님이 같이 가지고 계시는 중이에요. 가는 예수님과 가는 그 과정 속에서 이 아이로의 마음에는 살 수 있겠구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전갈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충격과 슬픔이 이 아이로의 심정에 가득했을 겁니다. 어쩌면 그 딸을 죽는 그 순간에 내가 함께하지 못했다는 그 안타까운 마음이 이 아이로의 마음을 더 힘들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에 대한 원망이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읽은 본문에 야이로가 처음 예수님 앞에 다가오는 장면과 또 오늘 죽었다는 그 소식을 전하는 그 중간 과정에 12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집으로 가던 중에 그 12해 앓았던 그 여인을 만나서 고치는 그 과정이 없었다면 조금만 지체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가셔서 죽어가는 그 아이에게 손만 얹었다면 자신의 딸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그 생각에 원망의 마음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가 가졌던 믿음은 의미가 없어졌어요. 죽어가는 그 딸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딸이 죽어버렸으니까요. 지금 이 야이로에게는 예수님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분 정도의 수준으로 믿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의 위기를 발견할 수 있어요. 신앙생활하다 보면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를 붙들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내 믿음을 벗어나는 그런 일들을 겪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때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또 내가 가진 믿음이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 순간이 바로 믿음의 위기입니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이 믿음의 위기는 늘 도사리고 있어요.
욥기에 보면 도 그렇게 믿음 좋은 도 사단의 시험을 당한 뒤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너무나도 시험이 커서 그 시험을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힘들어 외치는 고백입니다.
창세기 16장 2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수많은 자손들을 약속하셨는데, 75세 때에 하나님의 그런 약속을 받고 부름을 받았던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고 가난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내 나이가 85세고 아내는 75세인데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지겠느냐
그때에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죠.
하나님이 약속은 하셨는데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내 여종에게 들어가서 아이를 갖자 얻을 수 있을까 하노라.
그들은 믿음을 믿음이 흔들린 겁니다. 자신들이 생각할 때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일이죠.
요한복음 20장 25절 하반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들 증언하고 있는데 도마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에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데도 믿지 못해서 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의지했고, 예수님의 그 말씀들을 받아들였던 이 도마도 예수님을 따르긴 했지만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보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다고 하는 사실은 도무지 자기의 믿음 안에서 이거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요 누구나 이 믿음의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지금 믿음 생활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지금 이 정도 선까지는 나는 믿어 나는 뭐 무조건 믿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계시겠지만 삶의 어떤 아픔이 다가와보면 큰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내 믿음의 그 크기를 볼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믿음의 한계를 벗어나는 그런 일들을 겪을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또 우리의 위기를 맞이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세요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이 상황 가운데 야이로가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끼면서 울부짖는 그 순간에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 딸이 죽었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고 회당장은 그 말씀을 듣고 그 가던 길을 같이 그대로 갑니다. 만약에 여기서 회당장이 그냥 마음을 확 내려놔버려가지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 딸이 죽었다는데 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냐고, 왜 슬퍼하지 말라고 하냐고 그만하라고 하고, 만약에 자기 혼자 뛰어서 집으로 가버렸다면 아마 이 믿음의 위기는 정말 믿음의 완전히 소멸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회당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듣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딸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위기가 오히려 믿음을 더욱더 굳건하게 하는 사건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분명한 믿음의 위기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어요. 때로는 어떤 큰 사건으로 인하여 때로는 내가 원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을 때 근데 여러분 그 믿음이 흔들릴 그때가 참 중요합니다.
그때 여러분들 옆에서 속삭이는 악한 사단 마귀의 속삭임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니 믿음이 이 정도지 뭐 니가 뭘 할 수 있겠어? 너는 실패자야. 너는 패배자야. 넌 이걸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럴 때 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
우리의 믿음이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에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믿음의 위기가 오히려 더욱더 견고하게 세우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제 40절부터 쭉 이어지는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도착하셨는데 사람들이 막 울고 있고 예수님은 이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표현을 했는데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제 그 부모와 제자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키시니 그 아이가 살아나 사람들은 놀랍니다.
여기에서 여러분 40절에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라고 하는 이 말씀을 좀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다 내보내신 후에 38절에 나오는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갔는데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그러니까 이 딸 아이가 죽은 상황을 듣고 찾아온 조문객들 애국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풍속 가운데는 사람이 죽으면 조문객들이 찾아와서 큰 소리로 우는 것 그것이 당시의 애도 방식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요즘 장례식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장래에 이런 분위기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장례식장에 가면 곡하는 소리가 안 나면 자녀들한테 막 사람들이 뭐라고 했어요?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왜 곡소리가 안 나냐고 그리고 상여를 지고 이렇게 갈 때도 뒤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그 곡하면서 따라가는 어떤 그런 장래 절차에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분위기도 동일합니다. 지금 이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지금 곡하고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내보내셨어요. 그리고 이제 이어지는 말씀 가운데 그 비웃는 사람들을 내보내셨습니다.
왜 소녀를 살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있는 그 상황에서 그를 살리셨으면 더 놀라운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예수님은 그 아이를 살리는 그 장면 속에 사람들을 다 내보내셨을까요?
지금 그 내보내진 사람들은 이미 이 소녀는 죽었고 이 모든 상황은 다 끝났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은 게 아니라 잔다고 말할 때 비웃었던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람들은 이제 이 소녀는 끝났고 예수님은 이 소녀를 살리지 못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다 내보내신 겁니다.
여러분 믿음 없는 사람들은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이 부모와 자기와 함께한 제자 3명 5명만 데리고 그곳에 가셨습니다. 이들에게는 믿음의 한 자락이 있었던 것이죠. 소녀가 잔다고 할 때 비웃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부모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비웃을 수 있을까요?
한 가닥이라도 내 딸이 살아날 수 있다라고 하는 희망을 지금 이야기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하면서 비웃어요. 아니요. 그 부모는 절대 비웃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3명의 제자도 역시 예수님과 지금까지 사역을 동행하는 과정 속에 수많은 역사들을 보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비웃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기적의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뭘까요?
두 명의 맹인이 예수님 앞에 막 소리 지르며 자기들이 보기를 원한다라고 말할 때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너희 눈이 뜨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58절에 보면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 나사렛에서 다른 지역들에서 사역했던 그 사역과 전혀 다르게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근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세요.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아멘 예. 믿음은 이런 말씀들을 볼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체험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전해져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통로가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죠. 이 통로가 열려 있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믿음의 통로를 닫아버리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시잖아요.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응답하지 않으실까요?
아니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활짝 열려서 믿음의 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강조하세요. 그리고 때로는 왜 믿음이 적냐고 믿지 않냐고 책망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적절한 믿음을 가졌을 때에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죠.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 지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믿음의 통로가 막혀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나의 신앙을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어떤 큰 어려움일 수도 있고 내가 넘어서지 못하는 어떠한 큰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멀게 하는 죄의 문제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회개해야겠죠. 그리고 그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의 믿음이 작은 상태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그 믿음이 날마다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들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의 믿음이 점검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더욱더 견고하게 세워지는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더 여러분들 이 과정 속에서 믿음 안에서 더욱더 회복하기를 소망하며 주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