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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은 여럿이겠지만 내게 어느결에 걷기가 그중 하나가 되었다. 걷는 일은 현재 내가 제대로 살아 있다는 또렷한 증거다. 2026년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로 7회차를 지나오며 그것을 몸으로 확인했다. 나의 밥벌이는 출판편집이다. 모르는 이는 컴퓨터 앞에 편하게 앉아서 하니 힘들지 않겠다고 한다. 교정·교열이 깊어지는 날이면 나는 하루 10시간 넘게 책상 앞에 붙어 레이아웃을 살피고 글자들과 씨름한다. 허리와 어깨, 눈과 손목이 차례로 아우성치기 일쑤다. 잠을 자도 몸이 풀리지 않던 내가 걷기를 시작한 뒤로는 일상의 해상도가 달라졌다. 성기던 픽셀이 밀도 있게 촘촘해져 간다는 사실이 빠개지게(?) 기쁘다.
13코스와 14코스는 서울둘레길의 네 가지 테마 중 ‘하천길’에 속했다. 실눈 뜨고도 걸을 만큼 평이한 길이었다. 스틱에서 해방된 양손은 팔랑팔랑 춤을 출 듯했고 가붓한 운동화는 뜀뛰기를 하라 해도 주저하지 않을 듯했다. 전체 코스의 절반을 훌쩍 넘으니 몸이 먼저 길의 특성을 알아챘다. 어떻게 걸어야 할지 얼추 그림이 그려졌다. 나는 안양천 코스는 즐기며 걷기로 마음의 옷고름을 매고 출발했다. 코스 초반 지점에서 결심 한 커플 벗겨내야 했다.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 10대~80대 나무통 사이 통과하기. 통과제의 같은 문이 나오기 전에 100인 원정대 총괄대장님께서 단단히 일렀다. 몸 디밀어 넣었다가는 앰뷸런스 타는 일이 발생하니까 그러지 말라고. 조악하게 얼굴만 디밀고 조별 사진을 찍었던가? 말았던가?
벚꽃을 내준 벚나무들은 청매실 빛깔 터널을 만들어주었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조각하늘은 자꾸만 숨바꼭질하자고 눈짓했다. 주황색 리본이 반가웠다. 이제는 어디서 만나도 눈물이 왈칵 날 만큼 정든 서울둘레길 안내 리본이 안양천 길 위에서도 잊을 만하면 나타나 바람에 나부꼈다. 벚꽃이 한창일 때의 화려함은 물러났지만 비로소 봄의 뒷모습이 더 섬세하게 보였다. 초록이 너무나 선명해서 ‘서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보고 싶을 만큼 맑은 풀빛, 천변로를 스치는 자전거와 러너들의 빠른 리듬, 옆을 제 보폭으로 걷는 100인 원정대의 걸음이 한 화면으로 겹쳤다. 빠른 것과 느린 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같은 길을 나누는 풍경. 따가운 볕은 봄과 여름 사이를 그네 타고 있었다.
서울둘레길 13코스는 제방 산책로에서 하천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하양, 연보라 클로버의 도톰한 꽃들이 까딱까딱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보고 또 보아도 사랑스러웠다. 철산교에서 쉬어가는 시간을 준 덕분에 보라색 꽃을 보았다. 물가에 있어서 수분을 머금은 듯한 꽃은 소래풀꽃이었다. 꽃말은 '변함없는 사랑', '치유'라는데 서울둘레길 걷기와 꼭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였을까?
구일역에 이르러 모바일 스탬프 인증으로 기분 우쭈쭈해지는 팡파르 음향을 듣고 두리번거렸다. 오전 일정 끝내고 구일역에서 합류하기로 9조 대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손수건처럼 개켜 여미고 바로 14코스를 향해 출발했다. 제방 산책로를 걷다가 안양천 건너 둥그런 고척스카이돔에 시선을 포물선으로 던졌다. 나들이 나온 분들 중에 종잇장처럼 가붓한 체구의 할머니 손을 잡고 아들인 듯한 분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 봄볕 듬뿍 쬐어 건강하세요.”라고 나만 들리게 입술을 달싹였다.
오른쪽 도로에 질주하는 차 소음이 끊이지 않아 걷는데 귀가 소란스럽긴 했다. 안양천 제방 산책로에는 곳곳에 전망대가 많아 쉴 자리가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전망대를 눈으로 훑고 지나갔다. 이번 7회차 9조를 이끌어주신 분은 변재수 강사님! 걸으며 식물 이름도 알려주고, 물에서 나와 볕을 쬐는 거북이도 보라고 해주셔서 눈맞춤했다. “9조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구조(?)될 겁니다!”라고 아재 개그를 툭 던져 모두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조장이던 분이 개인 사정으로 6회를 마치고 하차하는 바람에 우리 9조는 갑자기 등대를 잃은 듯했다. 하지만 조원들은 주먹밥처럼 마음을 뭉쳐 바로 김석환님을 조장님으로 세웠다. 우리 9조 초록 깃발은 더 생동감 있게 펄럭였고 뒤를 따르는 여자 대원들은 행렬 이탈하는 일 없이 감각의 채널을 활짝 열어젖히고 오감으로 안양천 길을 걸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 속을 지나는 움직임에 반향을 일으키거나 자극한다”라는 레베카 솔닛의 말에 나는 200% 공감한다. 걸을 때 뇌 활성화가 최고조를 이룬다. 동네 평지나 집 뒤꼍 산 둘레길을 걸을 때면 드러누웠던 생각이 하나둘 깨어난다. 꽃길, 천변, 벚나무 초록터널을 걸으면서도 나의 뇌는 쉬지 않았다.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면 더 반길 일이지만 매사에 장난기가 있는 내가 매번 영양가 있는 사유에 빠져들 리가 없다. 이번 코스를 걸을 때 재밌는닉네임을 보고 웃음보를 터트린 기억이 나면서 그 닉네임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조선왕조씰룩, 원할머니보고쌈, 최진사댁셋째닭, 별그지같은데서온그대, 용의국물, 여섯시내고환, 레오나르드빚갚으리오, 소거기국밥, 바람과함께살이찐다, 이쑤신장군, 아모르잡티, 오즈의맙소사, 육군탈모총장… 재밌는 닉네임들을 생각하며 쿡쿡 웃을 때 매혹적인 꽃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장미 줄기가 약이 올라 가시로 콕 찌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수리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땡볕. 모자도 안 쓰고 오로지 ‘시커먼스 앵경’ 하나로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100인 원정대 총괄대장님. 수변생태순환길을 원정대가 걸을 때는 행여 달리는 자전거에 부딪쳐 사고날까 봐 일렬로 걸으며 바깥으로 비어져 나오지 않기를 거듭 당부하는 목소리가 바작바작 타는 듯했다.
7회차에도 걷는 동안 얹어주신 말씀이 오래 새겨둘 일이었다. 하마터면 지나쳤을 풍경에 의미를 매달아주셨다.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사열하듯 길게 늘어선 구간을 걸을 때였다. 키 큰 나무들이 제각기 가지를 넓게 뻗고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벚나무는 개천 쪽으로, 은행나무는 도로 쪽으로 가지를 내어 볕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사람보다 나은 ‘나무들의 배려’라는 원정대장님의 인문학적인 말씀은 길 위의 독서였다.
천변 바람이 시원하게 닿는 다리 아래는 널따란 광장 같았다. 거기서 100인 원정대는 조별로 모여 점심을 먹었다. 지역 사정을 아는 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벤치에 중국집 메뉴판이 놓여 있을 줄은 몰랐다. 7조가 짜장면을 주문해 먹는 모습이 부러웠다. 천변 다리 아래에서 먹는 짜장면 맛은 먹어보나 마나 꿀맛일 듯했다.
100인 원정대에 참여하는 날은 배우는 게 많고 많다. 점심을 먹고 천변 바람을 쐬려 했더니 모이라는 총괄대장님의 마이크 소리가 왕왕 들렸다. 둥글게 모인 대원들 사이로 얼굴을 디밀어 보니 동묘 벼룩시장에서 봤던 광경이 벌어졌다. 접이식 미니의자, 여벌 옷, 에어파스, 물병 등 등산용품을 죽 늘어놓고 말씀을 이어갔다. 산행 배경지식이 꽝인 내게는 진짜 필요한 정보였다. 물을 얼려도 3일을 얼려야 한여름에 물이 빠르게 안 녹는다는 것도 묵은지 나이에 처음 알게 되었다.
다리의 힘은 위대했다. 바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두 다리로 구로구를 벗어나 영등포구로 들어섰다. 제방 산책로에 맨발 황토길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맨발길은 쩍쩍 금이 간 가뭄의 논바닥을 보는 듯했다.
안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 앞이 환하게 트였다. 대형 스크린이 눈앞에 짠 펼쳐지듯 한강이 밀려왔다. 콩 볶는 듯한 땡볕 견디며 잘 걸어왔다고 환영하는 듯 시원한 한강뷰가 펼쳐졌다. 한강을 보며 걷는 동안 가양대교가 보였고, 저멀리 맞은편에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우리 곧(5월 9일) 만나~” 하며 푸른 윙크를 보내왔다. 다음 회차에 걸을 길. 영화 ‘미리보기’인 듯 기대하며 침을 삼켰다. 한 주 쉬고 다시 걸을 날을 생각하니 마음에는 벌써 초록 숲물이 번지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드는 햇볕을 ‘볕뉘’로 알고 있다.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의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 그 길에서 볕뉘를 많이 쬐었다. 애써 몸을 다그치지 않아도 제 보폭만 지키면 되는 길이었다. 안양천 상류코스와 하류코스는 자장가처럼 순했다.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끼고 걷다가 ‘염강나들목’으로 들어가 14코스 완주 모바일 스탬프 인증을 했다. 또 선물, 서울둘레길 측에서 원정대 전원에게 야들야들한 소재의 티셔츠를 주었다. 선물은 줄 때도 좋지만 받을 때는 기쁨이 더 크게 껑충 솟으니 '이 낯짝없음'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삶의 해상도는 먼 데서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눈앞을 스치는 잎빛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리본 하나, 함께 걷는 100인 원정대의 웃음 한 자락을 놓치지 않는 데서 세계는 조금씩 또렷해진다는 것을. 볕뉘,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볕은 길 위에 얼금한 무늬를 놓고, 대원들은 또 다른 뜻의 볕뉘가 되어 서로를 가만히 보살피며 걸었다. 16차, 17차를 지나 언젠가 100차와 200차로 이어지는 동안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의 대원들이 서로에게 ‘볕뉘’가 되어준다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도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환해지지 않을까. 안양천 길은 생각 하나를 물줄기처럼 내 안에 흐르게 했다.

첫댓글 '볕뉘'가 참으로 좋았던 길이었어요. 저는 이를 땅의 '윤슬'이라고 우겨봅니다만. 서로에게 볕뉘가 되어주고 있는 100인원정대 16기가 아름답지요. 후기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