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줌마.
우스개 소리 같긴 하지만, 억척스러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변혁운동에 나선다면, 세계의 진보는 조금 더 빨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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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위원회 김은화 부위원장. 11월 첫 출산을 앞두고도 '7.10 황새울 대첩'과 평택투쟁에 의욕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사)나눔과섬김 |
소위 ‘7.10 황새울 대첩’이라 불리는 7월 10일 평택의 황새울 들녘에서 부른 배를 움켜잡고 뒤뚱거리며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선 만삭의 아줌마를 본 사람이 있다면, 일정 부분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불러오는 배를 붙들고 투쟁 속에 뛰어든, 정말이지 못 말릴 대한민국의 아줌마. 그녀는 11월에 출산을 앞둔 민주노동당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위원회 김은화 부위원장이다.
8월 26일 오전 대추초등학교에 경찰이 난입했을 때에도 김 부위원장은 남편 고영균씨와 함께 평택으로 달려왔다. ‘평화 난장’이 열리던 대추초등학교에서 361번째 촛불을 함께 밝히고, 풀뿌리를 짓밟은 공권력의 만행을 함께 성토했다.
추석을 하루 앞둔 17일, 조카의 추석 선물을 사러 나선 ‘투쟁하는 아줌마’ 김 부위원장과 남편 고영균씨를 부천시 송내동에서 만나 보았다.
일하던 아줌마, 대학가다.김 부위원장은 전주여고를 졸업한 뒤 인천에 와서 평범한 노동자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건설회사 등을 전전하다 ‘20대가 꺾이는 25살’에 선택하게 된 곳은 다름 아닌 대학이다. 노동현장에서 삶을 배우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전공한 것이다.
2000년 남녀공학 사상 처음으로 여자 총학생회장이 당선되던 그 해, 대학생 김은화도 ‘사상 처음’이라는 획을 함께 그으며, 여자 총학생회장이 된다.
졸업 뒤 ‘연하 동기 동창’인 고영균씨와 혼인하고 잠시 공장일과 공무원노조 간사 활동 등을 하다가 정착하게 된 곳은 (사)나눔과섬김.
아줌마 김은화는 교회 부설 법인(대표 백현종 목사)인 ‘나눔과섬김’에서 저소득층 자녀와 실직 가정 자녀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인 ‘우리 배움터’를 운영하고, 부천여성회에서 지역운동을 일구고 있다.
전국 유일, ‘이주노동자 자녀 - 비이주노동자 자녀 통합 배움터’ 운영‘우리 배움터’는 이주노동자 자녀와 비이주노동자 자녀가 함께하는 통합 배움터다. ‘이주노동자 자녀’를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시설은 이주노동자가 많은 안산의 공단 인근에 많이 자리하고 있지만, ‘통합배움터’는 부천시 원미구 신흥동에 위치한 ‘우리 배움터’가 전국유일이다.
“처음부터 통합배움터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에요. 공부방을 만들고, 자격제한을 두지 않은 채 아이들을 받은 것뿐이지요.”
사실 이주노동자 자녀와 비이주노동자 자녀의 통합배움터가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것은 ‘우리 배움터’ 운영자인 김은화 원장도 모르던 것이었다. 작년 초 공부방 운영을 시작하며, SBS에서 취재를 나온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통합배움터가 사회통합의 의미로써 목적지향점은 있지만, 현실에 적용해 보니 한계점들이 있었습니다. 외국인이다 보니, 일단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일’이었고, ‘이주노동’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갖고 있는 일선 학교에 입학시킨 것부터가 성과점이지요. 법적으로 한국 국적이 아니다 보니,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공공학교에 입학 허가 내 주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요.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학교에서 한국 국적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으로 통합 배움터의 운영은 사실상 끝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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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리프(오른쪽)와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에 온 지 2년이 돼 가는 무탈리프는 '우리배움터'에서 한국 학교에 입학시킨 1호 이주노동자 자녀다. ⓒ(사)나눔과섬김 |
일선 학교 현장에서도 ‘이주 노동자의 자녀’들이 ‘세계화’라는 입맛에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 이제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일선 학교에 입학하는 데 대한 규제의 벽은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의사소통’과 ‘피부색’이다. 중앙아시아 쪽에서 온 피부색 하얗고 콧대가 높은 이주노동자 자녀들과 동남아시아권의 까무잡잡하고 뭉툭한 코를 가진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다른 것은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의 지점이다. 영어를 배우려고 할 때, 영어학 박사 학위를 지닌 흑인보다 정규과정도 제대로 못 마친 백인에게 신뢰를 갖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주노동자들의 타향살이우리배움터 이야기 하나.
‘우리배움터’ 2호점인 삼정배움터에 다니는 브라이언(페루, 당시 13살)의 아버지가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것은 작년 여름.
문제는 브라이언의 아버지가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신분 노출 이후 출입국 관리소로 보내져 강제출국 조치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공부방 원장인 김은화씨와 ‘나눔과섬김의교회’(담임목사 백현종) 목사, 브라이언이 다니는 교회의 선교사, 브라이언 아버지의 친구(한국인)가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서 작성과 서류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나눔과섬김의교회 전도사로 사역 중인 김 원장의 남편 고영균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점심도 못 먹었으니, 먹고 오겠다고 한 뒤 경찰 허락 하에 밖으로 나왔다더라고요. 식사 후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도주해 버렸고, 허탈한 마음에 경찰서로 돌아가 도주 사실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고 전도사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옆에서 지켜보며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 비인간적입니다. 한국에 온 지 1년 된 브라이언은 남동생 마이클(한국 거주 6개월)과 어린 여동생이 있고, 부모와 함께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요.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의 송아지처럼 큰 눈망울에서 떨어지는 눈물이란 것이 참, ……. 평등의 이름으로건, 인권의 이름으로건, 차별은 없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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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페루). 아버지가 강제출국 당할 뻔 했다. 가운데가 김은화 원장, 오른쪽은 마이클의 형 브라이언. ⓒ(사)나눔과섬김 |
투쟁하던 아줌마, 당 지역위원회 부위원장 되다.‘우리 배움터’ 김 원장은, 평택 상황과 인천 문학산
패트리어트 기지 문제 등에 결합해 오다 8월에 민주노동당 부천시 오정구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소사·원미·오정구로 이루어진 부천시는 그간 소사구와 원미구에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가 있었으며, 오정구는 이번에 준비위원회를 꾸리게 됐다.
오정구에 거주하고 있는 김 원장은 원미구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운동을 일궈 오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의 오정구 준비위원회 건설과정에 후보로 등록하여 여성 부위원장으로 뽑히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뻔하지 않나요? 기자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대답은 진보진영에 꾸준히 서 있을 운동가 한 명의 삶을 기대하게 했다.
“노동자 서민이 밀집한 부천시 오정구 지역에, 진보정치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첫발을 내딛은 지금, 혼신을 다해 지역운동을 할 겁니다. 궁극적으로 자주 민주 통일 세상을 향한 길에 언제나 서 있을 것이니 만큼, 그 길 가다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7월 12일 김은화 부위원장 남편 고영균 씨의 민중의소리 블로그 내용
아빠, 왜 경찰들하고 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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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맨손으로 평화롭게 요구했다. 길 비키라고....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민주가 아빠에게 묻는다.
"음~, 민주야! 네 방에 어떤 모르는 아저씨가 들어가 앉아 있어. 그래서 네가 '내 방이니까 나가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고 버티고 있어. 그럼 민주는 어떻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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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소화기뿌리고 몽둥이와 방패로 공격해오는 경찰...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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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민족을 지키기 위해 죽봉이라도 들어야 했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
"어~, 그런데 그 경찰이 네 방에 앉아 있는 아저씨 편이면?"
"우~ 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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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와 매국노, 반드시 심판하리라!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
아이들에게 경찰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다. 나도 그렇게 배워왔고, 대다수의 어른과 사회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또 그렇게 배우고 자라는 것이 정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소수 지배권력을 옹호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외세에 아첨하고 민족을 팔아먹는 이들의 졸개로 살아가는 것은 더더욱 정의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찰이기 때문에 '정의'인 것이 아니라, 불의를 옹호하는 경찰이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야만 한다.
방송차에서 예쁜 목소리의 여경이 스피커의 큰 소리로 외쳐댄다.
"법이 있는데 왜 법을 지키지 않습니까!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히 조치하겠습니다."
민족을, 민중을 외면하고 외세에 빌붙어 자기의 형제·자매를, 동족을 핍박하는 것이 법이라면 그런 법은 백 번 천 번 이라도 위반하겠다.
사랑하는 아가야!
너는 아직 엄마의 뱃속에 노닐고 있지만, 너를 품고 함께 싸우러 나온 엄마를 배우거라.
행여나 너에게 이상이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네가 살아야 할 조국의 바르지 못한 것들과 맞서고자 불러오는 배를 붙들고 투쟁 속에 뛰어든 엄마를 배우거라.
네가 세상에 나와 성인이 되기 전에 통일된 자주 조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열심히 노력하마!
http://blog.voiceofpeople.org/wkwn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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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