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장 1-8절. 바울이 천부장 앞에서 변호함. 요약설교
1절.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1. 사도 바울은 자기를 때리고 죽이려고 한 원수 같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부형들>이라고 존칭어를 썼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기 동족을 사랑하는 훌륭한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이 그 마음속에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볼 때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난동을 부리고, 마귀에게 충동을 받아서 악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려 하는 마귀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 같은 동족들을 사랑과 존경의 언어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바로 25년 전에 자기가 죽였던 스데반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사도행전 7장 2절에서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교인들을 향해서 <부형들>이라고 호칭했던 것입니다.
2. 여기서 바울이 변명하는 말이란 것은 자기의 주관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객관적으로 변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관적인 율법관이나 성전 제사에 대한 신앙이나 할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과거에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였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했던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습니다.
2절.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1. 바울 당시에 히브리어는 랍비들만 사용하는 어려운 언어였습니다.
이 히브리어는 고대에 평민들이 사용했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 중간 시대부터는 주로 글을 쓰고 가르치는 랍비들만 사용하고,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은 어려운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히브리어를 사용한 것은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유대인의 지도자인 랍비였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랍비들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히브리어를 바울이 말하자 그 권위에 눌려서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1. 나는 유대인으로
바울은 정통 유대인으로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빌 3:5)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던 지파였습니다.
나머지 10지파는 북쪽 왕국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바알 우상을 섬기고, 온갖 우상을 섬기다가 앗수르에 망했던 지파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정통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당당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바울의 할아버지는 로마 군대의 전쟁에 공헌을 하여, 로마가 세계를 정복한 후에 포상으로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그 후로 바울의 할아버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학문이 발달한 길리기아 다소 성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려서부터 다소 성에서 공부했고, 다소 성 사람들은 어린이에게도 혼자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천막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13살까지 다소에서 자랐고, 유대인들은 13살부터 성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13살 때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살 이후로 30살까지 예루살렘에서 자랐습니다.
3.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바울은 13세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라면서 당시 가장 학문이 뛰어난 가말리엘 문하에서 랍비 교육을 받았습니다.
가말리엘(Raban Gamaliel Ha Zaken: רַבַּן גַּמְלִיאֵל הַזָּקֵן: BC 15-AD 70년경)은 사도행전 5장 34절에 나오는 가말리엘로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모두 제압하는 가장 존경받는 율법 교사였습니다.
이 사람 말이라면 유대 나라의 모든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과거에 군중들처럼 율법에 열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열심>이라는 말은 열심당 과격분자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열심당원(Zealots)은 3대 가치인 백성, 성전, 율법을 파수하기 위해서 무력을 써서라도 3대 성결을 지키기로 맹세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행 21:28 참조).
4절.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1. 바울은 과거에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즉 사도행전 8장 3절에 말씀한 대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기독교인의 집에 쳐들어가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게 했습니다(행 26:11)
또한 교회를 뿌리째 없애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책임자 노릇을 했습니다(행 8:1).
이처럼 바울은 과거에 바리새파 열심당으로서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했고, 남녀 성도들을 감옥에 잡아넣었고, 심지어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한 열성분자였다는 것입니다.
5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1.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권한을 위임받아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사실은 산헤드린 공회원인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자신의 말에 대한 증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2.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1) 바울은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웃 나라 수도인 다메섹으로 피신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도록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 다메섹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피난 간 기독교인들도 많았습니다.
얼마나 바울이 극단적으로 기독교 말살 정책에 선봉장이 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6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1.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50킬로 가야 합니다.
이 거리는 당시에 군사들이 5일은 걸어가는 거리였습니다
원래 팔레스틴에서는 정오에 햇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밖에 다니지 못하고, 무화과 같은 나무 그늘에서 쉬거나 낮잠을 잡니다.
이 큰 빛은 죄인을 회개시키는 생명의 빛이요, 참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 5절에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장 9절에도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얼마나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둘 열성이 대단했으면, 이런 대낮에 햇빛을 마다하지 않고, 군사들을 이끌고 다메섹으로 행군했습니다.
거의 다메섹에 다 갔을 때, 정오쯤 되어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바울을 둘러 비췄습니다.
여기서 <큰 빛>이란 햇빛과 같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비치는 초자연적인 빛을 가리킵니다.
즉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이 임재하심으로써 비치는 초자연적인 큰 빛이었습니다.
<큰 빛>이란 단어에서 <대광> 고등학교 이름이 나왔습니다.
7절.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1.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큰 빛만 보인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시 떨기나무에서 초자연적인 빛을 보고, <모세야 모세야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개인적인 이름으로 불러주신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은혜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하여 나무에 숨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아 아담아> 하고 찾아와서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내 이름을 불러주어도 영광스러운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개인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을 지독하게 핍박하는 바울을 형벌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새 사람 만들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8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1.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와서 <사울아 사울아> 하고 이름을 부르시자, 바울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에게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이 물음은 바울이 지금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물은 것입니다.
즉 바울이 <주님>(Κύριε)이라고 부른 것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אדני: my Lord: 나의 주님)라는 뜻으로서, 구약의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감히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호칭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께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은 것은 자신이 지금 철저하게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에게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온 그 하나님이신가를 물은 것입니다.
2.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대답하셨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느라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도록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열심히 섬겨온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울은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셔서 온갖 질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나사렛 예수가 바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여기서 바울은 180도 반전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껏 평생을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일만을 위해서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왔는데, 나사렛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바울 자기가 세상에서 없애버리려고 한 기독교가 바로 구원의 종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완고한 유대인들처럼 불순종하지 말고, 바울처럼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성도들을 최일선에서 핍박했던 사울(바울)을 용서하시고, 사도 삼으신 놀라운 사랑의 주님을 날마다 충심으로 잘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